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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에이스 제가 해볼게요!"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단식 동메달 양하은
한국 여자탁구에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은 시련의 대회였다.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4강을 노렸던 단체전도 개인복식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노메달 위기는 양하은의 단식 동메달로 겨우 탈출했다.
양하은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좌절의 연속이다가 마지막 순간 한 줄기 빛을 발전하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였다. 양하은을 만났다.
"단 1%도 기대하지 않았다."
'한국 여자탁구의 희망' 양하은(20.대한항공.세계랭킹21위)은 10월4일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단식에서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건 후 그렇게
말했다. 베테랑 언니들 없이 주전으로 나선 첫 아시안게임이었다. 기대했던 단체전, 혼합복식, 개인복식에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막 다른길,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주저앉아 울었다. '여기까지인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순간, 거짓말처럼 다시 문이 열리고, 길이 시작됐다.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 기적 같은 동메달이 찾아왔다. 8강에서 '일본 톱랭커' 이자 '라이벌' 이시카와 카스미(21)를 돌려세웠다.
단 1%도 기대하지 않았다던 단식 동메달은 '세대교체기' 고군분투하고 있는 한국 여자탁구를 향한 선물이자, 15년을 하루같이 단 하나의
꿈에 도전해온 '탁구소녀'를 향한 응답이었다.
▶2014년, '탁구 신데렐라'의 시련
양하은은 '탁구신동' 출신 엘리트 선수다. 대우증권 선수 출신 김인순 대한항공 코치의 '탁구 유전자'와 '그림자 자원'에 본인의 집중력과
노력이 결합됐다. 6세 때 처음 라켓을 잡았고, 7세 때인 2001년 교보생명컵 초등학교대회에서 단식 1위에 오른 이후 동급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천재형 선수다. 군포 지역에서 함께 성장한 '피겨여제' 김연아와 더불어 경기도 글로벌 인재 육성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14세 때인 2008년 주니어오픈 3관왕(단식.복식.단체전)을 시작으로 2009년 바레인-도하-프랑스-코리아 주니어오픈 우승컵을
휩쓸었고, 16세 때인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현정화 이후 처음으로 여고생 대표로 이름을 알리며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2011년 두바이 오픈에서 복식 2위, 21세 이하 단식 1위에 올랐다. 이후 중국오픈, 코리아오픈,
오스트리아오픈, 카타르오픈 21세 이하 여자단식에서는 수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동급 최강 에이스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4월 코리아오픈에선 '절친선배' 박영숙과 짝을 이룬 여자복식에서 우승했다.
만리장성을 넘어 한국 여자탁구 정상을 탈환할 에이스로 주목받았다.
런던올림픽 이후 김경아 당예서 박미영 등 언니들이 대표팀을 떠났다. 2014년은 '투톱' 양하은 서효원이 주전으로 나선 첫해다.
급격한 세대교체 속에 맞이한 5월 도쿄세계선수권 단체전은 쓰라린 시련이었다. 한국여자탁구는 16강에서 풀매치 접전끝에 '복병'
루마니아에 무너졌다. 마지막 5단식에서 양하은이 '루마니아 19세 신예' 쇠츠 베르나데트에게 2대 3으로 충격패했다. 2008년 광저우대회
이후 8년 만에 16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인천아시안게임 와신상담을 다짐했다. 단내나는 훈련을 이 악물고 버텼다. 치열하게 준비했건만 실전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서효원과 함께 에이스로 나선 여자단체전에서 또 다시 고전했다. 양하은은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후쿠하라 아이, 이시카와 카스미에게
연패했다. 한국은 결국 2대 3으로 졌다. 조2위로 올라간 8강전에서 양하은은 북한 김정,리명순에게 또 2패했고 한국은 1대3으로 패했다.
동메달을 눈앞에서 놓쳤다. 단체전 패배 후 양하은은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네 탓이 아니라는 언니들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
했다. 시련은 계속됐다. 박영숙과 함께한 여자복식에서도 꿈을 이루지 못했다. 금메달 전략종목이었던 이정우와의 혼합복식에선 대진운도
따르지 않았다. 세계 챔피언이자 금메달조인 북한의 김혁봉-김정 조를 16강에서 만나 조기 탈락했다. 양하은은 좌절했다.
"연습해도 안 되는 건가. 여기까진가." 김형석 여자대표팀 감독을 붙들고 15분 넘게 '통곡'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카스미에 울고 웃다
욕심을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단식에서 반전이 시작됐다. 싱가포르 위멍위의 부상으로 8번 시드를 받는 행운도 따랐다.
8강 상대는 단체전서 양하은을 울린 '필생의 라이벌' 이시카와 카스미였다. 2010년 12월 4일 세계주니어선수권 첫만남 이후 카스미와는
12번째 만남(단체전 제외)이었다. 개인 역대전적에서 '2승 9패'의 절대 열세, 큰 기대를 할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단식 8강전에 들어가기 전 효원언니와 '이 시합 긑나면 4년 기다려야 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후회 없이 하고 나오기'로 약속했다. 효원언니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테이블에 들어섰다. 둘 중 1명이라도 살아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게음 0-8까지 밀리면서도 또박또박 따라잡았다. 양하은은 "안 되는구나 하면서도 경기에 집중했다. 안될 것 같았는데 내용만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9-10까지 따라갔다. 9-11로 내주긴 했지만 이후 냉정해졌다. 집중하다보니 플레이가 맞아들었다." 이후 네 게임을
내리 따냈다. 4대 1(9-11, 11-6, 11-5, 11-5, 11-9) 승리! 단체전 패배를 보란 듯이 설욕했다. 꿈의 준결승에 진출하여 생애 첫 메이저대회
메달, 천금 같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 살 차이 '일본 에이스' 카스미와 양하은의 관계는 김연아-아사다 마오에 견줄 만하다.
나가는 대회마다 숱하게 마주쳐왔다. 처음엔 동경의 대상이었다. 양하은은 "2009년 16세의 카스미가 요코하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 8강에 오르는 걸 봤다.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10년 12월 카스미와 첫 경기 때의 기억은 "그냥 서 있다 나왔다"다.
첫 게임을 1-11로 내줬다. 이런 서비스를 넣다니, 정말 대단한 선수라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양하은 역시 멈춰서 있지 않았다.
한 달후인 2011년 1월 영국오픈 21세 이하 단식 8강전에서 양하은은 카스미에게 두 게임을 뺏어냈다. 또 한달 후인 2011년 2월 카타르오픈
21세 이하 단식 4강전에서 4대 1로 이겼다. 이후 숱한 패배가 이어졌지만 도전 역시 계속됐다. 아시안게임, 카스미 때문에 울었던 양하은이
카스미 덕분에 웃었다. "카스미가 있어 더 자극받고 열심히 하게된다. '일본 톱랭커'인 카스미는 진짜 에이스다. 세계적인 선수들을 다
잡아낸다. 나도 좀 더 독해져야 할 것 같다."
▶내려놓았을 때 찾아온 동메달 선물
양하은에게 생애 첫 메이저대회 동메달의 의미를 물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것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의미"라고 답했다.
"내 가능성을 믿어준 이들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해 실망하고 좌절했었다. 바로 그 순간 선물처럼 동메달이 왔다."
고 말했다.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절실했던 단체전과 복식 메달은 끝내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단체전 메달이 가장 절실했다.
정우오빠와 함께한 혼합복식, 영숙언니와 함께한 여자복식도 간절했다. 모든 걸 쏟았는데, 자꾸 졌다. 연습해서 되는게 아닌가. 끝인가.
안 되나. 좌절했다"고 했다. "단식 메달은 1%도 기대하지 않았다. 내겐 선물이었다. 연습한 게 어디 도망가는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줬다"
며 웃었다. 양하은은 역전의 명수다. 양하은의 경기는 끝까지 봐야 한다. 여섯 살에 처음 라켓을 잡을 때부터의 가정교육 덕분이다.
'반전 동메달'도 1-8에서 9-10까지 따라붙은 첫 게임 끈기에서 비롯됐다. "아빠가 포기하고 나오면 엄청 혼내셨다. 지는 것은 괜찮다.
절대 포기는 하지 말라고 배웠다"며 웃었다. "역전의 맛을 알면 7게임 5-10에서도 잡는 게 탁구다.
마지막 게임 2-8로 지다가 뒤집은 적도 있다. 끝날 때까진 끝난게 아니다."
▶'양하은 스타일' 찾기
주니어, 21세 이하 여자단식에서 승승장구한 양하은이 시니어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자 '성장이 멈췄다' '정체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새나왔다.
양하은 탁구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도 생겼다. "포어드라이브가 약하다" "연결에만 치중한다" "3구 결정구가 없다"
"볼이 약하다"고들 했다. 지난 몇 년간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이다. 지적을 따라 노력도 많이 해봤다.
어설픈 변화와 중압갑 때문에 박자나 드라이브에 모호한 혼란이 오기도 했다. 연령별 또래 선수들은 정해져 있었지만, 시니어 무대는 넓고 에이스들은 많다.
양하은은 "주니어 때 경기 동영상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내 탁구는 달라지고 있다.
어쩌면 내용보다 성적만 보고 판단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올 시즌 세게무대에서 주전으로 뛰며 배우고 익힌 점도 많다. "느끼는게 많았다. 감독님이 늘 강조하시는 다리를 낮추고 허리를 더 쓰면서
스윙하는 것, 직접 느끼다 보니 정말 노력하게 된다. 본인이 느껴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강력한 백드라이브, 빠른 풋워크, 끈질긴 지구력과 승부욕, 영리한 탁구지능과 성실성 등 '스무 살 에이스' 양하은은 장점도 많다.
"주변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내 탁구는 여전히 발전하고 정립하는 과정 중에 있다.
무조건 바꾸기보다 내 장점을 살리면서 오래 걸리더라도 내 탁구 스타일을 찾고 싶다."
▶그 에이스 , 제가 할게요
양하은은 겸손하다. 담담하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냉정한 완벽주의자다. "저는 저를 믿으면 안돼요.
자신감보다는 긴장감을 유지해야 해요. 그래야 덜 방심하고 더 섬세해져요" 라고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탁구선수로서 그녀의 장점은
"탁구를 사랑한다"는 것. 백만 가지 경우의 수가 나오는 섬세한 스포츠는 늘 호기심과 승부욕을 자극한다.
"탁구가 잘 안돼 라켓을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모두 잊는다"는 양하은이다.
탁구 때문에 행복하고 탁구 때문에 속상하다. "인생의 60~70%는 탁구, 20%는 몸 관리, 먹고 자고 쉬는것,
나머지 10%는 영어공부와 기타 등등" 이라며 웃었다.
현실 인식 역시 냉철했다. "내년 개인전 세계선수권까지 랭킹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내년 성적에 따라 2016년 리우올림픽 시드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단체전에서 일본, 싱가포르, 등과 주전끼리 붙었을 때 승률이 5대 5도 안 된다. 주전 승률이 6대 4 이상은 돼야 한다.
승률이 안 나오기 때문에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고난의 시기"라고 덧붙였다. 서효원과 함께 "신흥투톱"으로 활약한
올 시즌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맛봤다. "올해 우리는 단단하지 못했다. 효원언니와 나 모두 첫 주전이었고,
지희언니는 세계선수권도 나가지 못한 채 아시안게임에 나섰다"며 아쉬움을 표혔다.
단체전, 혼복, 개인복식에서 고배를 마신 후 기적처럼 목에 건 단식 동메달이 언니들에게 미안해 맘 놓고 좋은 티도 못 냈다.
"단체 은메달을 딴 남자팀이 무척 행복해보였다. 언니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털어놨다.
성장을 향한 희망도 놓지 않았다. "리우까지 아직 2년이 남았다. 우리는 더 올라설 것이다.
효원언니와는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을 함께하며 믿음, 자매애가 생겼다. 내겐 그래도 단체전 메달이 1번이다.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 함께 시상대에 오르고 싶다."
'대한민국 에이스라고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양하은은 조심스럽게 "어느 정도는!"이라고 답했다. "책임감이 생겼다" 고 돌려답했다.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메달 계보를 이어야 하고, 에이스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책무감이다.
"언니들은 늘 매달권이었다." 그땐 몰랐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서야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메달을 못 딸 경우 '몇십년 만이다'라는 기사가 나올 거라는 부담감도 늘 있다. 우리는 더 잘해야 하고 더 빨리 자리 잡아야 한다.
2년의 시간동안 무조건 따라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단체전에서 '2점'을 책임질, 확실한 에이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확실한 에이스'는 막연한 그 누구여선 안 되지 않느냐는 회심의 '돌직구'를 날렸다.
이번엔 양하은이 피하지 않았다. 씩씩하게 답했다. "네! 그러면 그 에이스 제가 해볼게요."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 김인순 코치가 '딸' 하은이에게
인터뷰를 마친 늦은 밤, 양하은으로 부터 문자가 왔다. "한가지 얘기 못한 게 있는데요. 항상 옆에서 저 때문에 고생하시고
애 많이 쓰시는 우리 엄마, 너무 고맙고 사랑한다고 꼭 써 주세요."
잠자리에 들기 전 생각이 났노라고 했다. "고맙고 사랑한다고 꼭 전해 달라"는 양하은의 엄마는 바로 김인순 대한항공 코치다.
"엄마코치"는 하은이가 여섯 살 때부터 그림자처럼 동행해왔다. 2세들에게 탁구의 길을 대물림하는 경우는 많지만,
"엄마코치"의 길은 흔치도 쉽지도 않다. 여섯 살 꼬마가 스무 살 숙녀가 될 때까지 지난 15년간 모녀는 단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일 24시간을 함께 했다. 오직 한 방향을 바라봤다.
양하은에게 엄마는 기술코치이자, 멘탈코치이자, '한 몸' 같은 존제다.
초등학교 1학년 전국 꿈나무대회, 초등학교 2학년 교보생명컵 어린이탁구, 초등학교 4~6학년 동아시아 호프스 대회부터
2010년 광조우 아시안게임, 2011년 로테르담 세계선수권, 2013년 도쿄 세계선수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까지 모든 현장을 함께 누볐다.
김 코치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태능선수촌에서 '트레이너' 자격으로 양하은을 '딸들' 의 '멘토' 로 함께했다.
아시아청소년 혼합복식 우승, 단체 준우승을 이끌었던 대우증권 에이스,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인 엄마 김코치의 그림자 교육법은
탁구계에서 이름 높다. 국내외 경기 현장, 딸의 등 뒤에서 벤치를 본다.
'엄마코치' 라고 하면 으레 떠올릴 '열혈' '극성'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딸을 한 명의 선수이자 후배로 냉정하게 바라 볼 줄 안다.
언성을 높이지도, 인상을 쓰지도 않는다. 소속팀이나 대표팀에서도 늘 주변을 배려하고, 낮은 자세,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따뜻하지만 냉철한 '엄마코치' 와 '노력파 천재 에이스' 딸은 찰떡궁합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낸다. 탁구 유전자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도, 금메달을 향한 꿈도 결국 엄마로부터 내려받은 것이다.
세상의 많은 모녀들이 사소한 일로, 자주 싸운다. 그러나 '양하은 모녀' 는 다르다.
"정말로 싸운 적은 손꼽을 정도" 라고 했다. "하은이는 어렸을 때 속을 썩인 적이 없다. 말을 정말 잘 들었다.
힘든 훈련도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훈련이나 실전에서 단 한 번도 딸과 부딪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5번 정도 딸과 다툰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딸은 늘 '죄송하다' 는 문자를 먼저 보내왔다.
문자를 받으면 나도 금세 풀어졌다.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나 역시 엄마로서 힘들게 운동하는 딸의 모든 것을 받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다." 고 했다.
"여섯 살 때 처음 탁구를 가르치기 시작할 때부터 애아버지가 엄격하게 존대말과 예절교육을 시킨 덕분" 이라고 했다.
"이제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됐다. 탁구이야기도 하고, 인생이야기도 하고, 다들 부러워 한다." 며 활짝 웃었다.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단식 동메달은 모녀가 함께 빛어낸 인생 최고의 순간이다.
믿는 만큼 자라준 딸의 쾌거에 '그림자' 엄마는 가슴이 벅찼다.
"인천아시안게임 메달의 꿈은 이뤘다. 이제 바라는 것은 2년후 리우올림픽 메달이다. 종목 색깔 상관없이 하은이가 올림픽 메달만
딴다면 엄마로서 코치로서 더 바랄 게 없겠다."
김 코치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세상 모든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묻어났다.
자랑스런 딸 하은에게
이번 아시안게임 동안 마음 고생 많았지?
엄마는 하은이에게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구나.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보자.
엄마도 열심히 도와줄께.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을
하은이가 하나씩 이루어 갈때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2016년 리우올림픽을 향해 달려보자.
수고했고 우리 딸 하은이 화이팅 !
첫댓글 우리 하은이 언제나 홧팅!!
"리우"를 기다립니다 . 화이팅 ^^
리우에서도 메달 따 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