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절의 반짝이고 생기 넘치는 나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한창 방학과 휴가로 들떠있는 요즘, 여러분은 어떤 여름을 감각하고 계신가요? :-) 제가 여름을 사랑하는 이유는 많지만, 여름의 태양만큼이나 대지 가득 차오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제게는 이런 여름을 감각했던 순간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지금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은 이러합니다. 제 등만한 책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진 채로, 더위보다 더 뜨겁게 뛰어놀던 여름날의 놀이터에서의 어린 저, 그때의 달뜬 숨이 지금도 코끝을 스치는 것 같습니다. 다람쥐처럼 쉬지 않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던 가운데 문득 하늘색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는 순간을 발견하고, 미끄럼틀 꼭대기에 앉아 입을 헤- 벌리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던 그 순간, 바람의 온도가 그다지 낮지 않았음에도 잔뜩 달아오른 제 몸을 한 김 식혀주는 그 바람이 노을빛에 젖어 매우 달았던 것 같아요. 이런 장면을 비롯하여 여러 조각들이 남아 저의 여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해드리는 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와요.
초여름 어느 날, 체육 수업이 끝나자마자 운동장 세면대 수도꼭지를 틀면 와르르 쏟아지던 미지근한 물의 감촉을 아직 기억한다. 고1 여름방학 때, 보충수업이 끝났는데도 친구랑 헤어지기가 아쉬워 정류장에 선 채로 버스 한 대를 보내고, 또 한 대를 보내며 수다에 몰두하던 오후를 잊지 못한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오후, 한강을 따라 뛰다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쥐고 숨을 고를 때 불어오던 산들바람, 하드 하나 입에 물고 한 손에는 맥주가 든 비닐봉지를 늘어뜨린 채 휘청휘청 걷던 자정 무렵의 퇴근길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여름의 순간들과 함께 이만큼 자랐다.
여름을 감각하고 떠올리는 그것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김신회 작가의 이 대목은 누구나 비슷한 장면을 떠올릴 만한 아련한 여름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여름은 무심결에 흘려보내기는 어려운, 강렬하고도 에너지 넘치는 감각들이 많아 우리에게 더 많은 기억, 감각 조각을 만들어주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가만히 그 조각에 머무르다보면, 우리는 알 수 있어요. 우리의 기억을 이루고있는 이 여름의 감각 조각들은 그 시절의 나를 다시 감각하게 만든다는 것을요. 그 시절의 나의 에너지, 나의 감정, 내가 느낀 공기, 향기, 온도와 습도까지 그 순간을 감각하던 그 계절의 '나'를 다시 불러올 수 있어요.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 흘러감에 따라 감각하던 그 순간의 '나'가 함께 흘러 변화해왔단 사실도 깨닫게 해요. 김신회 작가의 책을 내며 출판사에서는 이런 서평을 남겼어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예찬에 그치지 않고 무언가를 ‘애호하는 마음’과 그 마음이 가능케 한 작은 변화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 그 계절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 안에 계절이 흘러간만큼 성장한 자신을 돌아보며 글로 새긴 작가. 그리고 우리에게 그녀가 감각해온 여름을 들려주는 낭만적인 이 작품 안에서 저 또한 제가 사랑하는 이 계절을 다시 한번 감각하고, 제가 그간 감각해온 여름 조각들을 다시 떠올려보게 되었어요. 여러분의 여름은 어떤 감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제가 떠올린 미지근한 노을빛 공기의 맛, 주먹만한 뜨거운 숨, 그 시절의 가볍고 뜨끈한 작은 저의 몸. 이처럼 여러분에게도 여름의 감각이 남아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통해 여러분도 여러분의 가장 뜨거웠던 여름의 조각을 다시 소환하여 감각해보시기를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