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확한 햅쌀로 빚어 조상께 감사··· 신라인들은 나라의 번성 바라며 만들어
추석 즈음은 햇곡식과 햇과일이 많이 나는 계절이다. 그래서 조상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그해 수확한 햇곡식 중 가장 좋은 것만을 골라 음식을 마련해 차례를 지냈다. 이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송편이다. 송편을 빚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가족 간 정을 두터이하는 좋은 기회였다. 송편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송편을 비롯한 대표 추석 간식을 소개한다.
◇ 송편은 왜 반달일까?
추석(음력 8월 15일)에 송편을 먹은 첫 기록은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지은 ‘농가월령가’에 나온다. 추석 송편은 햅쌀로 빚었다는 뜻으로 ‘오려송편’이라고 불렀다. ‘오려’는 제철보다 일찍 익는 벼를 일컫는 말인 ‘올벼’의 옛말이다. 쉽게 풀이하면 ‘올해 농사를 지어 수확한 햅쌀로 빚은 송편’이다.
이 송편이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해방 이후 추석이 휴일로 지정된 뒤부터로 본다. 송편은 멥쌀가루를 익반죽해 밤과 팥, 깨, 콩 등으로 만든 소를 넣고 모양을 만들어 솔잎을 깔고 찐 떡이다. 솔잎을 켜켜이 깔고 찌기 때문에 송편이란 이름이 붙었다. 솔잎을 밑에 까는 이유는 송편끼리 달라붙지 않도록 하는 것도 있지만 향긋한 솔잎 향이 배는 효과가 있어서였다. 들어가는 소의 종류에 따라 팥송편ㆍ깨송편, 쑥을 넣어 만든 쑥송편, 소나무 껍질을 넣어 만든 송기송편이 있다. 멥쌀가루에 모시잎 찧은 것을 섞어 반죽하면 모시잎 송편이라고 한다.
추석에 먹는 송편이 둥근 보름달이 아닌 반달 모양이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전해진다. 먼저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백제 의자왕 때에 궁궐 땅 속에서 거북이 한마리가 나왔는데 등껍질에 ‘백제는 만월(둥근 달)이요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고 쓰여 있었다. 왕이 점쟁이를 불러 확인한 결과 “백제는 만월이라 앞으로 기울 것이며, 신라는 반달이라 번성해 만월이 될 것”이라고 해석하자 화가 나서 그를 죽여 버리고 만다. 이는 백성들에게 퍼지게 됐고, 신라인들은 나라의 번성을 바라며 반달 모양의 떡을 빚기 시작했다고 한다.
달의 진정한 모습을 담기 위해 송편이 반달 모양이 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즉, 송편을 만들 때 소를 넣기 전 반죽 모양은 보름달을 닮았지만 소를 넣은 다음에는 반달 모양이 되어 반달과 보름달을 모두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 한과ㆍ율단자 등 추석 명절식은?
추석 명절에는 어른들이“한과 먹자”, “강정 먹자”는 얘기를 많이 한다. 여기서 한과는 우리 고유의 간식(과자)을 일컫는 말이다. 유과와 약과, 강정, 엿, 다식이 대표적이다.
먼저 유과는 제일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한과다. 기름에 지져서 만들기 때문에 ‘기름 유(油)’자가 붙었다. 찹쌀가루에 술을 넣고 반죽해 찐 다음 꽈리가 일도록 저어서 모양을 만든다. 이어 건조시킨 후 기름에 지져 내고 조청이나 꿀을 입혀 다시 고물을 묻히면 완성된다. 강정은 ‘견병(繭餠)’이라고도 한다. 밀가루와 꿀이 발린 찹쌀가루를 반죽해 썰어서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서 내놓은 과자를 말한다. 고물의 재료 및 모양에 따라 콩강정ㆍ깨강정ㆍ계피강정ㆍ잣강정으로 구분된다. 다식도 우리 고유의 과자다. 녹말ㆍ송화ㆍ검은깨 따위의 가루를 꿀이나 조청에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만든다. 흰색ㆍ노란색ㆍ검은색 등 여러 색깔로 구색을 맞춘다. 유밀과는 지금의 약과라고 보면 된다.
다식과 비슷하게 무늬를 찍어서 만들기 때문에 ‘다식과’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고려 공민왕 시절에는 이 과자를 못먹게 ‘사치품’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백성이 먹을 쌀도 부족한데 이 과자를 즐기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알록달록한 모양의 옥춘당은 돌 및 환갑 잔치에 많이 올렸다. 한편, 율단자와 인병도 빠질 수 없다. 인병은 인절미다. 찹쌀을 시루에 쪄 절구에 친 다음 고물을 묻혀 먹었다. 율단자의 율은 ‘밤’, 단자는 ‘떡’을 일컫는 말. 즉, 밤 고물을 묻힌 떡이다. 찹쌀가루를 쪄서 계란같이 둥근 떡을 만들고 삶은 밤을 꿀에 개어 붙인다. 대추를 재료로 한 대추단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