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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천왕봉에서 제석봉 사이 고사목 구간을 혼자 바쁜 걸음으로 투덜투덜 내려가고 있었다.
같이 가던 일행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멋진 풍광 사진도 이제는 찍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며...
하긴.. 천왕봉에서 이미 나의 카메라 사랑은 나에게 오자마자 비참해져 있었다.
내가 얼마나 카메라에 심혈을 기울이는지를 몰라주는 단 한사람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애꿎은 통천문조차도 그냥 지나치며 심드렁해 있었다.
왜 그 한사람은 흔한 디카일망정 소중히 한 장면을 담아주지 못할까, 내가 그토록 정성들여 찍어내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아주면
이렇게 대충 찍은 사진을 나에게 건넬 수 있단 말인가. 나에게 여행이란 카메라인데 말이다.
새해 첫 산행.. 그것도 지리산.. 그 산행에서 나는 그 한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카메라 아웃한 채 지리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다 낙마하고 내려와서 겨우 웃었던 그 씁쓸한 기록을 싣는다.
(08:40)
지리산 중산리탐방안내소 - (1.3) -칼바위 - (2.1)- 로타리산장 - (2.1) - 천왕봉 1,915m - (1.7) - 장터목산장
- (4.0) -칼바위 - (1.3) - 중산리탐방안내소 (산행거리 12.4km 약 8시간 산행)
문제의 사진은 바로 이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거의 모든 산이 다 그렇지만 정상석 주변은 그 산에 대한 기념으로 번다하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 천왕봉은
사람이 바로 정상석이라 할만큼 비로소 이 산에 올랐다는 ('들었다는'이 아니라 '올랐다'는 기쁨이 클 수밖에 없는 산)
통렬한 기쁨을 누리느라 정상석 주변이 그 어느 산보다 숨가쁘다.
그래서 웬만해선 정상석의 방도 빨리 눈치껏 빼줘야 하고 기다리는 입장은 방이 빠질 때까지 집요하게 기다리거나
겨우 꼽사리 끼어서라도 재치있게 찍어야 하는 곳이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방금 전의 요란함이 무색하도록 텅 비는 순간이 있는데, 내가 여러 사람들 틈에서 위의 모든 행위들을
끈기있게 다 해내고 마지막에 운이 좋았는지, 정상석에 홀로 찍을 절호의 찬스가 생겼던 것이다.
그때 한 사람에게 카메라를 건네주며 나를 여기에 담아달라 부탁했다.
남편은 찍어 주었다.
그것도 세 장의 사진을 '나 몰래' 찍어주려는 의도였는지.. 모든 사진에서 나는 머리를 붙잡으려 노력하고 있거나,
자세를 잡으려 서는 중이었거나, 조연도 아니고 엑스트라도 아닌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헝컬어져도 좋은 사진은 다른 때에라도 가능했고 여럿 있기도 하지만
그 순간 내가 바랐던 건 그런 방빼기를 끝낸 모처럼의 평화이니만큼 제대로 된 사진이었다.
못생기게 나와도 좋으니 그냥 정면 앵글에 인증샷이라 부를 만한 내 모습이면 족하는 그런 낮은 바램이었다.
그러나 내 몰골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자연스러움만 알고 자잘한 예의는 몰라주는 안일함으로
나를 찍어버린 것이다. 나는 이건 아니라며 다시 찍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다시 셋방살이 시작되었고 나는 방을 빼줘야 했다.
노래할 때 음치가 있고 박치가 있듯 사진에도 찍치가 있을까. 아니면 그 흔한 무심함일까.
의심스러워하다가 홧김에 나는 그냥 점심 먹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그 길로 하산하고 말았다.
그 하산길이 어떤 불씨로 도사리고 있었는지.. 그때까지만 해도 까맣게 몰랐다.
돌발의 상황이기도 했다. 중산리 주차장에서 앞서가던 회원님들 따라 산길 접어서다가
뒤에 오던 누군가(라고 해두자) 셔틀버스 얘길 하는 바람에 그만 솔깃해서 따르고 만 것부터.
제법 기다렸던 셔틀버스가 정확히 우리 앞에서 다음 차를 타라고 지시하며 가버린 것도..
그 이후 걷지도 못하고 어중간히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만 계산하며 무료하게 기다린 것도 다 돌발이었다. (09:30)
유일하게 괜찮았던 거라면 그 1시간의 걸음을 아낀 덕분인지
내 발걸음이 그렇게도 홀가분했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힘들어하는 천왕샘부터 천왕봉까지 마의 300m 구간도
조금 가파르다 정도였지 힘겹게 헐떡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거의 뛸듯이 홀가분했으니.
그러나 사람이란 오르막에서 못 본 꽃을 내리막에서 본다고 하지 않던가.
오르막에서 잘나갈 때 오만했던 내 몸이 내리막길에서 만나야 하는 불행함에는 눈뜨지 못하게 되었으니
마지막 구간에서 꽈당 사건으로 지금 거의 온 몸이 마비 지경이다.
진 ~ 즉 알았더라면... 그것이 지리산이 전하는 오르막의 비결일 것이다.
그나마 생생하고 순탄할 때의 모습이다.
셔틀버스를 타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9시 50분이었으니 로타리산장까지의 2.8km 구간은 꽤 적당했다. (11:10)
산장에서 점심이라기엔 이른 시간에 누군가 라면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었다.
아침에 휴게소에서 굳이 먹고싶지 않던 라면을 먹었기에 내게 라면보다는 커피 한잔이 그리웠다.
커피맛이 어울리는 산장의 휴식시간.
산장에서의 잠시 꿀맛같은 휴식을 끝내고 20분쯤 오르면 누구나 쉬었다 가고싶은 평탄한 너럭바윗길이 나타난다.
발아래 누운 여러 산들이 차근차근 제 속살까지 드러내니 이곳에서 서로의 간식거리를 푸는 재미도 솔솔할 것이다.
회장님이 준비해온 흑미떡이 아주 맛있었다. 모두가 감탄하는 사이 마눌님의 음식솜씨 자랑을 잊지 않으시는 센스까지...
지친 버들의 배낭을 대신 들어주는 그 남편의 배려에 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정작 중요한 순간엔 제 배낭의 무게 따윈 아랑곳않고 알아서 챙겨주는 배려의 마음.
스틱도 아예 모두 다 줘버리고 오로지 마눌님 무게까지 감당한다.
많은 날 무뚝뚝한 남편이어도 필요할 땐 저렇게 스스로 희생을 즐기니 그 맛에 여자는 감격도 불사한단다.
개선문을 지난다. 이제 천왕까지는 0.8km 남았다.
진정한 오르막은 여기서부터다.
뒤통수를 치는 듯하여 돌아보면 산들이 금새 발꿈치에 와서 눕는다.
산길 걷다가 갑자기 뒤가 가려우면 거기 자꾸만 발치 끝으로 장난스럽게 헉헉 뻗는 산들이 있을 것이다.
그 눈의 상쾌함을 지리산은 세개의 도(전라남,북도 경상남도)를 거느린 가장답게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능선과 구름의 층위를 구분지어주는 센스있는 줄자처럼 한 줄 짜리 하얀 구름층이 적도로 누웠다.
한참을 가도가도 적도의 구름층 또한 변함이 없었다.
오르막 경사가 멈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모든 오르막이 가볍다.
많은 것을 비워낸 마음 덕분일까.
산을 오를 때 내 생활이란 산에 견줄 바가 아니므로 산에 와서 다 잊고 홀홀해지는 것 같다.
오르막과 오르막을 거듭 오르니 천왕봉이 지척이다. 여전히 사람들로 정상을 이룬 모습이 손에 잡힐듯 가깝다.
그럼에도 정상이 쉬우면 천왕이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 마지막 분기점이 천왕샘. 드디어 마의 300m구간.
지금까지의 힘든 여정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시험에 드는 구간의 표식을 알리듯 구상나무가 말없이 서있다.
이제 모든 산들이 멀어지고 작아진다.
오로지 발 아래로 제 이름을 다한 듯 천왕에게 무릎 꿇는다. 아니 경배하고 섬긴다.
사람은 큰 자연에 올 때에는 뺄 것 다 빼고 와도 댈 것이 못된다.
더 작아지게 만드는 지리산 천왕의 품. 그 고지가 저긴데...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기어서 어미를 맞으라신다. 사는 동안 오만했던 제 어른의 깜냥 다 내려놓고
네 발로 기어 와야 어미가 안아준단다.
겨우 기어 올라도 다시한번 올려다 보는 것 또한 잊지 말라 타이르신다.
그렇게 자꾸만 엎드리는데도 아직도 쉬이 허락하지 않고 한자락 더 꺾여야 거기 비로소 천왕의 품이 계신단다.
그러나 나는 그 어려운 고행의 길에서 무람하게도 가뿐히 걷고 말았다. 그 벌을 받은 것이리라.
내가 하산길에서 드디어 올라갈 때 보지못한 그꽃을 본 것은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지리산 아래 낙장불입 시인이 산다. 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은 안치환의 노래로도 유명하다.
그의 시 속에 내 마음이 몇 있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서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 철쭉꽃 길을 따라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중략)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 천왕봉 (1,915m)은 나에게 고행의 오름과 지루한 하산길의 이중고를 전해주는 산이었다.
투박하게 바위를 버려두어 인자한 데라곤 없는 산이었다. 갈 때마다 너무 고단하여 뭐하러 이 산을 이렇게 오르는지 통탄해 했다.
간혹 자주 지리산 종주를 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산님들을 만나면 괜스레 그 말 멋쩍어지곤 하였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서 단련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렇게 키운 엄마 품이 그리워 지리산에 드는 걸까.
때가 되면 지리산이 마음에서 일어날 때가 있다. 나도 어느덧 산맛 좀 알아가는 듯이...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바뀐다 하여 지리산(智異山)에는 언제나 어리석음을 깨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멀리서부터 백두대간이 흘러왔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 하니 백두대간 종주팀은 만석꾼처럼 거나한 배낭을 메고 합류하기도 한다.
세 개의 도에 풍성하게 누웠기에 전국의 억양들이 총체적으로 모여드는 산으로서도 지리산은 으뜸이다.
지리산은 굶주리고 허덕이는 마음의 그릇이 언제나 허기진 끝에서야 겨우 만나니 그 산정은 언제나 비좁다.
그 품 다 안아주는 지리산은 더도 덜도 말고 국모의 그것이다.
처음 말했듯이 지리산 정상석에서의 방 구하기는 적당히 눈치껏 찍어야 한다.
이때에는 대개 포즈랄 것도 없고 그저 으스러지게 안아주거나 힘든 몸을 기대는 것이 제일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 모습을 배경 속에 어우러지게 담아주려 노력한다.
내가 사람들을 흔쾌히 찍어주므로 잘 찍히고 싶은 것이 조금 있을 수도 있을리라. 그건 누구라도 그러하므로...
내가 아무렇지 않게 카메라에 담긴 걸 알았을 때 그 마음의 허함이란 참으로 얄궂었다.
나는 소심해져 제대로 찍히고 싶었음에도 다른 이들에게 양보하느라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하고 말았다.
서운한 남편을 쳐다보았을 때 분명 옆에 서 있었다.
그 시간이 1시 20분.
오며가며 간식도 먹었기에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나에게 점심이란 장터목대피소에서 먹는 것이었다.
정상에서 밥상을 차린다는 건 지리산에선 생각지도 않았다.
카메라에 이어 두번째 봉변을 당한 것은 천왕봉에서 제석봉을 가기 전의 길에서였다.
정확히 10분쯤 걸어 내려왔을 때였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도대체 어디쯤이냐고 대뜸 화부터 낸다. 뒤에 오겠거니 싶어서 중간중간 돌아봐도 보이지 않길래 조금 신경은 쓰였다.
하산하고 있다고 했더니.. 사람들 정상에서 다 밥먹고 있는데 혼자 냅따 내뺐단다.
카메라에 대한 분노도 참아 줬는데, 지금 또다시 나에게 화를 내며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거였다.
10분 거리. 아래로만 내리 걸어온 10분 거리였다. 나에게 점심은 대피소에서 먹는 것이었길래
장터목으로 염두에 두었었는데, 그런 계획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며 큰소리를 친다.
나에게는 정상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보다 한결 나은데 말이다. 하긴 점심시간이 늦긴 하였다만...
나는 돌아서 가기로 했다.
뒤에서 버들이 생각해보자고 나를 쫓아왔지만 두사람은 장터목으로 가라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서 도시락만 주고 진짜 냅다 내빼기로 작정을 했으니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거나 다름없었다.
사람은 화를 표현해야 조금 무식할지언정 그토록 원하던 단순함을 얻으며
단순함은 사람들에게서 좋은 덕목에 해당되어 보였다.
나의 계획은 가서 도시락 주고 돌아와 버리는 것이었거나 하루종일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홧김에 하는 일은 꽤 진도가 잘 나간다.
남편이 그냥 따라오는 게 정석이었지만 그 정석을 벗어나야 화를 내는 내 마음이 가닿을 것 같았다.
앞의 화를 삭히며 걷느라 통천문도 지나쳐 왔는데 더 큰 화를 내며 통천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정확히 하늘을 보려는 그 계단 사이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왜 돌아오냐는 것이었다.
오기로 간 보람도 없이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내가 제석봉 고사목 군락 앞에서 무언지 숙연해지기까지 버들 부부도 만났지만
화 낸 사람이 사람 가려가며 웃을 수도 없었다.
그 순간 제석봉 고사목은 참으로 날카롭게 나를 맞았다.
그러나 가녀린 심기 같이 아프게 서 있는 제 몸 연약한 외마디 너머 둔부처럼 넉넉히 나를 바라보는
반야봉마저 모른체 지나칠 수는 없었다.
슬며시 그렇게 카메라를 꺼내고 여기저기 내 마음의 모양처럼 서 있는 애잔한 고사목들을 흘깃흘깃 찍기 시작하였다.
그때 어떤 회한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인간의 사소함보다 이상하게 더 가슴아파 보였다.
가슴 쓰리는 제석봉 고사목에서 내가 혼자 이 능선을 내려간다는 것은 치유의 길이 되라고 타이르는
저 거대한 지리산의 타이름만 같았다.
아, 오늘도 비탈진 제석봉 그 말없는 초원 앞에서 인간은 이만큼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 하나 겨우 건진다.
제석봉이 나무도 없이 이렇게 고사목으로만 평원을 이룬 것은 자유당 말기의 폭정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이곳엔 아름드리 잣나무와 구상나무 등으로 울창한 삼림을 자랑하였지만
자유당 권력자의 친척이 이곳에 제재소를 짓고 많은 삼림을 무참하게 벌목하였으며
무단 벌목을 책임지우려 하자 그 증거를 없애려고 이곳에 불을 질러 모든 나무를 없애고 말았다.
지금의 고사목은 그 상처를 견디고 남은 상흔의 역사인 것이다.
인간의 작은 이기심을 무심히 터치하는 가벼운 손끝인 것이다.
장터목에서 벌벌 떨며 점심 같은 추위를 먹었다.
더운 물을 준비하였지만 미지근해진 물을 컵누룽지에 부어 먹으니 가난과 추위가 온 몸에 만연하다.
어서 더운 커피 한잔으로 부유함을 만끽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장터목에서 곧바로 하산길에 들었다. (14:25)
유암 폭포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컷 담아드린다.(15:05)
왜냐면 저들도 하산하다 멈추어 도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산행의 풍경은 칼바위이다. (16:15)
친절하지 않은 지리산 하산길에서 나름 중산리에 가까운 이정표 역할을 하는 칼바위이므로
이 고개만 넘으면 나올 것 같은 여러 구역을 지나도 칼바위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더니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어디쯤에서 빙판 낙마하고 말았다.
아이젠을 신기도 므흣하고 벗기에도 애매한 상황이 몇번 연속될 때
느닷없이 단단하게 공글린 빙판길이 나타났다. 길 옆엔 목책과 허름한 줄 하나. 끝엔 다리가 놓여있다.
산행 말미에 만난 최대의 난코스였다. 그 순간 미련없이 아이젠을 다시 신었더라면...
나는 마지막 줄타기 코스까지 간신히 갔다가 마지막 한 발을 디디려다가 보기도 좋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엉덩방아가 요란했던 것은 약간의 착지 동작 후였기에 더 동작이 크고 말았다.
배낭을 메었기에 부상 까지는 아니었지만 겨울산에서 연속으로 꽈당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겨울산에 가지 말라고 누군가 나에게 이런 아픔을 살짝살짝 주는 것만 같았다.
전쟁터에서 패잔병의 다리처럼 질질 끌고 돌아왔던 어젯밤엔 정말 병원으로 가야 하는 줄 알았다.
그 당시의 하산길 보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난 후에 더 크게 아팠던 것이다.
지금은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간신히 1월의 지리산을 쓰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니 1월 산행은 많은 것에서 참고 인내하는 어머니의 품이라는 것과 견줄만 했다.
그 어미가 지리산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첫댓글 참 많이도 갔었네, 혼자서 가지 뭣하러 사람들을 저렇게 끌고 갔을까? ㅉㅉㅉ. 아뭏튼 1월의 지리산 등산 축하하네^^
뭐 축하할 거 까지야...
끌려간 주제라서 끌고 간 척은 못하겠슴다.
언니, 그 많은 마음을 풀어 남기고 온 걸 산은 알까요. 지리산은 아름답진 않지만 그 웅장함으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네요 혹독함 뒤의 쾌감이랄까 언니 병문안 가야 하는데 저도 방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네요 ㅠㅠ 파스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것 같아요
그때 버스에서 하차.. 내 다리를 내가 끌고 가는데.. 딱 한국전쟁 패잔병이더라.
질~~질..^^
이틀 쉬니 생생해졌다.
버들님은 곧 하늘로 날아 오를 듯~
조심조심, 사뿐히 즈려 밟으소서^^
눈은 가시는 님이 아니어서 즈려밟지는 않았지만
조심은 했는데도 그렇게 되더라구..^^
겨울 지리산의 감격을 부상이라는 반어법으로 부각을 시켰네요. 아름다운 몸에 아름다운 것을 더 담으려다 생긴 일종의 사랑의 생채기라고 할까! 도전의 용기가 부럽습니다.
부상? 꽈당이 옳은 말.
겨울지리산에 감격은 미안한 말씀이고.. 아름다운 몸은 좀 알아듣겠다.
그 나머지 말씀은 생각중.
도전... 용기... 그딴거 없음. 그냥 따라가면 올라져 있는 산이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