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21
사진1~2/위도면 치도리 딴치도.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려 걸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부안21
사진3~5/탄치도의 '조난어업자조령기념비'ⓒ부안21
사진6/서해훼리호참사위령탑.ⓒ부안21
위도핵피폭자조령기념비...?
위도에는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위령비(탑)가 2기 있다. 치도리 딴치
도에 있는 '조난어업자조령기념비'와 진리에 있는 ‘서해훼리호참사위령탑’이 그것
이다.
치도리의 '조난어업자조령기념비'는 위도가 전라남도 영광군에 속했던 1931년 이 일
대에 강한 태풍이 불어 닥쳐 600여 어부가 칠산바다에 수장되는 대형사고가 났는
데,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조난어업자조령기념비
遭難漁業者弔靈記念碑
이 비는 1931년 위도면 치도리 앞 칠산어장에서 조업 중 3회에 걸친 강한 태풍으로
인하여 500여 척의 어선이 전복되어 익사한 600여 어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1932년 3월 전라남도 수산당국이 건립하였다. 오랜 풍상을 겪는 동안 제단에 금이
가는 등 붕괴위기에 놓인 것을 1997년 5월 부안군의 제정지원과 치도리 주민들의 노
력으로 전면 보수하였다.
그로부터 52년 후인 1993년 10월 10일 오전 10시..., 위도 해역에서는 경악을 금치
못할 또 하나의 대형사고 발생한다. 바로 2백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침
몰사고’이다.
그런데 작금의 정부 작태대로라면 앞으로 위도에 이런 위령비 하나가 더 세워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위도핵피폭자조령기념비(蝟島核被爆者弔靈記念(塔)’...?
‘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자! 보자.
위에 거론한 대형 사고들이 말해주듯이 위도 근해는 연안반류가 흐르고 바람이 거세
어 사고가 많이 나는 해역이다. 격포 죽막동에는 원삼국시대부터 조선 중엽까지 바
다에 제사를 지내왔던 제사터가 있고, 바로 그 옆에는 칠산바다를 관장한다는 여해
신 개양할미를 모신 수성당이 있다. 이는 예부터 이 해역에서 조난사고가 많이 났음
을 증명하는 역사적 자료이다. 그 외에도 몇 해 전, 연세대 국학연구원은 심청이 빠
져죽은 인당수가 서해훼리호 침몰 지역인 임수도 부근이라고 비정한 바 있다.
얘기인 즉 얼마나 사고가 빈번했으면 국가적 제사를 이곳에서 지내왔으며, 칠산바
다 수호신인 개양할미 전설, 인당수의 제물이 된 심청의 전설 등이 이곳에 서려 있
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격다짐으로 울진, 고리, 영광 등지의 원전 핵쓰레기를 해상으로 수
송해 와 위도에 묻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안주민들이 넉 달 넘게 생업전폐
한 채 백지화투쟁하고 있는 이른 바 '위도핵폐기장'이다. 이 핵쓰레기들을 위도로
수송하는 도중에 만에 하나 사고가 난다면 위도는 물론, 한반도 더 나아가서 동북
아 일대는 죽음의 바다가 될 판이다.
1997년, 대만이 북한에 핵폐기물을 수출하려하자 정부는 ‘지정학적으로도 한반도
는 핵폐기물 처분장으로 부적절하다.’ ‘핵폐기물의 해상운송 도중 해상사고가 발
생, 핵폐기물이 인근해역을 오염시키면 여파는 수백 년 간 지속된다.’며 유치원
생, 80고령 노인들까지 다 동원해 이를 막은 적이 있다.
그런 정부가 위도에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더구나 대만핵폐기물은 저준위인
데 비해 위도에 묻을 핵폐기물은 고준위까지인데도...
또한 반감기가 몇 백 년~몇 만 년, 완전히 소멸되려면 몇 만 년~몇 십만 년이 걸릴
지 모른다는 핵폐기물을 200미터만 파도 해수가 올라오는 물구덩이 위에, 그것도 단
층이 불안정해 파쇄대가 발달해 있는 연암질 속에 묻을 것이면서도 '먹어도 될 정
도...' '껴안고 자도 될 정도...'라며 국민을 기망하고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
리겠다는 짓거리다.
정부는 한수원 집단의 철밥그릇을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어 한민족 공멸의 핵무덤
을 위도에 파지 말고, 먼저 이 나라 핵에너지정책을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으로 전
환하여 미구의 위도에, 아니 한반도 그 어디에도 ‘핵피폭자조령기념비核被爆者弔靈
記念碑(塔)’가 세워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