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은 제목에 다 있다. 백마 탄 왕자가 있어 어느날 갑자기 그대 앞에 나타나 입맞추리라. 모든 여성들이 단숨에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는 백마탄 왕자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과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획득할 수 있는 사랑의 결정적 순간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무임승차로 상층부에 진입할 수 있는 데다가 사랑까지 얻을 수 있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여주인공이 너무 쉽게 왕자님에게 백기를 들면 영화가 재미 없어진다.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관객들도 질투 어린 시선으로, 선망의 눈동자로만 바라보지는 않게 된다.
미국 위스콘신주에 살고 있는 평범한 여대생, 그리고 그녀의 앞에 나타난 왕자병 남자. 유럽에서 온 그 남자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주시하기 바라고 특별대우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다른 학생들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려고 한다. 그는 진짜 덴마크 왕자이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이런 류의 할리우드 영화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우리가 짐작하는대로다. 이런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예쁘면 안된다. 뛰어나게 예쁘니까 저런 행운이 찾아오는 거야. 이렇게 관객들이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동화 속의 이야기다. 흥행이 되려면,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되도록 포장을 해야 한다.
따라서 여주인공도 일반 관객들처럼 평범한 외모, 특별한 재주가 없는, 보통 가문의 여자여야 한다. 그러면 어느덧 여성 관객들은 여주인공의 위치에 자신을 대입시켜 놓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질성의 확보, 그리고 동일성의 유도야말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얼핏 이 영화의 뒷 부분은 상투적 신데렐라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더 극적인 화해를 위한 장치이다. 아들인 덴마크 황태자가 미국의 평범한 여대생과 사귀는 것을 못마땅해하던 왕비가, 여주인공의 목에 왕가의 보석 목걸이를 걸어주는 순간, 여주인공은 그곳을 자기 의지로 떠나야 한다. 가장 극적으로 그들의 사랑이 완성되는 것 같은 순간, 여주인공의 자유의지에 의해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이 드러나야 영화가 빛을 발하는 것이다.
뒷 부분에 몇 가지 장치를 만들어 놓았지만 [슈렉] 같은 전복적 상상력은 아니다. 뻔한 이야기에 약간의 조미료를 친 정도다. [내 남자친구는 왕자님]의 여주인공은 [귀여운 여인]의 줄리아 로버츠처럼 거리의 여자도 아니다. 평범한 여대생이다. 한국의 일반 관객에게 훨씬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남녀 주인공들의 연기력은 줄리아 로버츠나 리처드 기어와 비교할 수는 없다. 비오는 일요일 오후, 부침개와 함께 빈둥거리며 집안에서 비디오로 보면 좋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