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루퉁해서는......

오늘 저녁에도 벗씨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거실 바닥에 누워 신문을 보고 있다. 5월 5일 토요일 어린이날 경북 칠곡 다부동 유학산에 다녀온 후 낮잠을 자고 거실로 나오니 말도 걸지 않는다. 어제도 그랬고, 그저께도 그랬다. 지난밤에는 자다가 말고 안방에서 나가더니 그 길로 거실에서 잔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저께 밤에도 자다가 말고 밖으로 나가 버린 것 같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지만 최근 며칠간 좀 이상하다. 그래서 궁금하고 도저히 못 참아서 물어봤다.   "요 며칠 왜 그래?" 벗씨는 누워서 신문을 보고 있는 채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을 한다. "내가 뭘?" "말도 안 하고 웃지도 않잖아." "내가 뭘 그래? 밥도 잘 차려 주고 있는데?" 아직도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고 있다. "내가 언제 밥 안 준다고 뭐라고 하더나? 밥이야 전화 한 통화만 하면 먹을 수 있는데?" "그럼, 뭔데? 이렇게 지내면 되지?" "난, 싫은데?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인데 왜 웃지도 않고 살까?" "어떻게 항상 웃고만 사노? 주식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사람 기분도 그렇지?" "그 사람 기분이란 게 왜 그런데? 내가 언제 화내고 한 적이 있나? 회사에서 집에 들어오면 서로가 웃고 지내야지?" "웃게 만들어야 웃지?" "내가 뭘 안 웃게 만들었는데?" "그저께 당신이 거실에서 잠자고 있는데 코를 하도 골아서 내가 깨웠더니 당신이 화냈잖아?" "내가 언제 화냈다고 그래? 코를 골면 좀 깨워 줘야지." "그래, 내가 깨웠더니 당신이 화냈단 말이야." "난 화를 낸 적이 없다니까!" "화를 냈으면 간단히 사과를 하면 될 일이지. 그걸 가지고 뭐 버티고 있노?" "사과를 할 정도여야 사과하지. 그것 가지고 사과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노?" "그것 봐, 지금도 사과 안 하잖아." "아이고. 참. 미치겠네? 난 화를 안 냈다니까, 자꾸 사과하라고 하네? 남들이 들으면 웃겠다. 이런 일로 말도 안 하면?"   내가 생각해도 참 우습다. 이 일 말고 뭔가 다른 불만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일로 뾰루퉁해져 있다니 정말 이상하다. 그래서 몇 마디 더 보탰다. "아니, 회사 다녀온 후 우리가 만나서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그 짧은 시간마저 말도 안 하고 지내는데?" "아이고, 만나면 뭐 하노? 만나자마자 잠이나 쿨쿨 자면서?" 하기야 최근 며칠 간 잠이 부족해서 내가 잠을 좀 많이 잔 것 같다. 난 건강관리의 최고 지름길은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피곤하다 싶으면 무조건 자고 본다. 그래서 최근 정말 피곤했던지 일찍 자면서 코를 심하게 골았던 것 같다. 코를 골았는지는 난 못 느낀다. 그래서 코를 안 골려고 코를 골 때마다 흔들어 깨워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만 나를 깨울 때 나도 모르게 화를 낸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된 마당에 사과를 할 수는 없고 해서 또 말을 걸었다.   "그럼 잠 안 자고 있는 그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 웃고 지내야 할 것 아니가? 하루 중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되고, 게다가 같이 있는 시간 중 깨어 있는 시간마저 얼마 안 되는데, 그것조차 말도 안 하면 어떻게 하노?" 이렇게 말했더니 이제야 신문 보던 것을 그만 두고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는 정색을 하며 말을 또 한다. "그리고 요 며칠 전 칠성동 이마트에 있는 메가박스에 영화 보러 갔을 때 말인데, 유리문은 왜 안 잡아 주는데?" "안 잡기는 뭘 안 잡아? 내가 당신이 들어올 수 있도록 충분히 문을 열고 먼저 들어갔는데......"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난 5월 2일 수요일 저녁에 <더블 타겟>이라는 영화 보러 갔을 때다. 1층 마당에 주차를 하고 이마트 출입구 문을 열고 건물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들어가다가 내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심결에 뒤따라 들어오던 벗씨는 대형 문이 갑자기 쌩하고 닫히는 바람에 머리를 받힐 뻔했다. 그 자리에서 투덜투덜 댄 것은 물론이다. 난 그 때도, '난 충분히 문을 열었는데 이상하네?' 하면서 정식 사과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걸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가 재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참 많이 남을 위한 배려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있고 보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벗씨가 아니고 남이었다면 분명 뒤따라오는 사람이 다 들어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지금도 할 말이 없어서 또 둘러댔다.   "난 그 때 분명이 문을 활짝 열었단 말이야. 당신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을 만큼......" "끝까지 사과 안 하네? 하여튼 중국 갔을 때가 제일 좋았어. 중국 다녀온 지 얼마 되었다고 그 단새 그렇게 행동하노?" 난 할 말이 없다. 중국 갔을 때는 벗씨를 챙기느라 여행 기간 내내 손을 꼭 잡고 다녔는데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모양이다. 난 할 말도 없고, 변명 같잖은 변명도 해 봐야 되지도 않을 것 같아서 '허허허' 하고 크게 웃고 말았다. 그러면서 벗씨한테 애교 같잖은 애교를 떨면서 마무리를 했다. "하여튼 하루 중 짧은 만남이나마 우리 웃고 지내자. 그래, 그래, 바로 그거 말이다. 와, 그렇게 웃으니까 진짜 예쁘다." 벗씨는 고집 센 남편을 어떻게 하지는 못 하고 그저 우습다는 듯 웃기만 했다.   하여튼 가까운 사이일수록 빨리 사과하는 것이 웃고 사는 행복의 지름길인 것 같다.                                                                2007년 5월 5일   멋진욱 김지욱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