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18 (월) 05:23
아마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YH사건과 관계가 있음을 아는 이들은 극히 적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과 광주폭동 주동자 윤상원의 최측근이 모두 YH사건을 언급함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윤상원의 동지 이태복씨는 이렇게 말한다:
<1979년 윤상원 열사는 전민노련과 전학노련 두 조직에 가입하여 이태복씨와 가까운 동지가 되었다. 이들은 한국계 미국인이 소유주로 있던 YH무역 파업사태에 관여했다. 정부가 노동자들의 직장을 잃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를 묵살하자 1979년 8월 신민당사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 YH사건은 79년 10월 중순 부산과 마산에서의 시위에 대규모 군중이 운집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며칠 뒤인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했다. >
그런데 김정렴 전 비서실장도 YH사건 강경진압 등 업무능력 부족으로 김재규가 박대통령에게 질책을 많이 받은 것에 대한 섭섭함과 야속함이 범행을 저지르게 하였다고 증언한다. 김정렴 비서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1979년 8월 9일 YH무역 여공들의 신민당사 농성 때 구자춘 내무장관과 신현확 보사부 장관의 대처방안은 경찰은 외곽경비만 하고 시간을 가지고 대화로써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김재규 정부부장이 두 소관장관과 상의도 없이 야밤에 치안본부장에게 직접 강제해산을 명령함으로써 투신자살의 불상사가 발생, 민심에 일대 충격을 주었을 뿐아니라 국내 정국을 극한적 경색상태로 몰아넣었다.>
그 후 시국대책회의에서도 가끔 박 대통령으로부터 ‘강경조치만 쓰면 시국이 조용해지느냐’ 하고 공개적으로 질책을 당한 김재규가 박 대통령 시해사건 공판에서 마치 민주인사 인 것같이 언행을 할 줄은 나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정렴 저서에서)
이처럼 서로 전혀 다른 위치에 있었던 두 인물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YH사건이 부마 사태를 파생시켰으며, YH사건이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은 시해하는 화근이 되었다. 그런데, YH무역 파업사태 배후에 전민노련과 전학노련 두 조직이 있었으며, 1979년 8월 신민당사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는 것을 이태복씨와 윤상원이 주동하였다.
김대중측 운동권이었던 이태복과 윤상원이 김영삼씨의 신민당 당사를 연좌농성 장소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YH사건이 부마 사태를 터뜨리는 한 도화선이 되었으며, 김재규가 총구를 박정희 대통령께로 향하고 권총 방아쇠를 잡아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윤상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부터 자기를 이미 혁명가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 지분을 기대하며 일으킨 것이 광주폭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