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사람>, 2024년 겨울호
남광주시장 칼국숫집에서 외 1편
맹문재
먼 길을 가는 마음으로 국수를 먹어야지
아암 먹어야지
신혼부부의 행복한 날들이 국수처럼 이어지길 바라듯이
병원에서 나온 친구에게
후룩후룩 용기를 불어 넣어야지
유언비어에 쓰러진 어리석은 친구를 일으켜 세워야지
소박해서 억울한 내 응원을 풀어야지
방을 바꾸어야지
꺾인 꽃 같은 시를 새 방에 심어야지
싸워라 싸워라
일하라 일하라
먼 길을 내는 마음으로 국수를 먹어야지
아암 먹어야지
홍익인간론
다시 친일문학상이 주어진다면
그는 거부하지 않겠는가?
친일문학상 폐지 운동이 불붙은 지금
시상식에서 사과하지 않겠는가?
만약 그가 사과하지 않는다면
나는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을 한 것이 아닌가?
사람을 믿을 것인가?
역사를 믿을 것인가?
역사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니
그를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시집을 선정하는 것이
그를 살리는 일인가?
죽이는 일인가?
친일문학상을 살리는 일인가?
죽이는 일인가?
독재 권력에 맞선 그의 시들처럼
그가 친일 세력에서 돌아선다면
나는 사람을 살려 역사를 만든 일을 한 것이 아닌가?
나는 어리석은가?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맹문재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물고기에게 배우다』『책이 무거운 이유』『사과를 내밀다』『기룬 어린 양들』『사북 골목에서』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