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학 때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자취를 한 탓에, 유난히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았다. 덕분에 미혼이면서 “완전, 주부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혼자 살면서 뭐 살림할 게 있겠느냐’는 사람도 많지만, 정신없이 바쁜 마감 중에도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만 버틸 수 있고, 한 끼라도 굶으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기자로서는 이것저것 부엌살림 챙길 일이 많다.
가능하면 뭐든 냉동실로 직행 장 을 볼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이 재료가 냉동고에 보관이 가능할까?’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장을 보기 때문에 일단 마트에 가면 손님을 치르는 것처럼 한가득 장을 보는 편이다. 적어도 열흘 정도는 음식물을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지만,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마감이 끝난 뒤 냉장고를 살펴보면 건드려보지도 못하고 버려야 하는 음식물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무조건 냉동하기’다. 장을 본 날은 반나절을 다듬고 씻고 밑손질하여 냉동실을 꽉꽉 채우는데, 한 번 먹을 분량씩 나누어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해동한 뒤 물을 부어 찌개를 끓인다거나, 볶아서 먹는다거나 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그리고 특히 식사 준비하랴 출근 준비하랴 바쁜 아침 시간을 벌기 위해, 아예 국이나 찌개 등을 반조리해서 지퍼백이나 냉동 전용 용기에 넣어 얼려둔다. 그 외 오래 두고 먹을 빵이나 먹다 남은 케이크는 냉동 보관했다가 실온에서 해동해 먹는 것이 좋다. 남은 밥이나 떡도 말랑할 때 즉시 냉동실에 보관해야 해동했을 때 새로 만든 것처럼 말랑말랑한 상태로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양념한 고기나 다진 마늘 등을 냉동할 때는 아주 얇게 밀어서 칼집을 내면, 나중에 손으로 똑똑 잘라서 재빠르게 해동할 수 있어 편하다.
단, 구이용 고기의 경우 냉동한 것이 싫다면 고기에 된장을 얇게 펴 발라 지퍼백에 넣고 냉장 보관하면 신선도가 오래 유지되고, 구웠을 때 맛과 육질도 좋다. 조개류도 종이봉투에 넣어 냉동 보관해두고 국이나 찌개 끓일 때 조금씩 넣어 먹으면 편하다. 소량으로는 잘 팔지 않는 생강도 껍질을 다 벗긴 뒤 덩어리째 냉동 보관해 놓는 것이 좋다.
냉장실은 쉽게 찾아 쓸 수 있게 정리정돈 기 본적으로 냉장고나 실외에 보관해야 하는 야채나 과일은 절대 검정 비닐에 넣지 않는다. 검정 비닐이나 신문지에 싸서 보관한 재료들은 채 발견하지 못해서 썩혀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 단 감자는 제외. 경험상 감자는 오래 두고 먹을 경우라면 베란다보다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나은데, 빛을 보면 싹이 자라므로 검정 비닐에 넣어 냉장고 야채 박스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늘 남아 버리게 되는 파의 경우 한 단 사면 당장 먹을 것만 서너 뿌리 남겨놓고 나머지는 반은 어슷 썰고, 반은 다져서 냉동실로 직행. 요리할 때마다 일일이 썰거나 다지지 않아도 되어 편하다. 파를 냉동실에 보관할 때는 락앤락이나 지퍼락, 타파웨어 등 밀폐용기에 넣는 것이 확실히 오래가는데, 물기가 있으면 짓무르므로 씻은 뒤 물기를 없애고, 키친타월을 몇 겹 깔고 넣는 것이 좋다. 껍질을 벗긴 감자, 고구마, 토란이 남았을 때는 식초를 몇 방울 섞은 물에 푹 담갔다가 지퍼백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며칠 동안은 색이 변하지 않아 좋다.
한 달치 식재료를 모두 냉장고에 넣어두려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가벼우면서도 네모진 모양의 용기를 선택해 차곡차곡 잘 쌓아둬야 한다. 냉동할 음식은 주로 지퍼백에 보관하고, 냉장 보관할 음식은 신선하게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지퍼락과 락앤락을 사용한다. 사이즈를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는 타파웨어 용기는 양상추나 양배추 등 한 번 먹을 때마다 양이 확확 줄어드는 야채 등을 보관할 때 강추!
항상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전에 냉장고부터 점검하는 것이 철칙. 이때 상한 음식은 정리하고 금방 먹어치워야 할 것은 맨 앞줄로 꺼내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참, 두부는 한 번에 먹지 못하고 다시 넣어두면 금세 쉬어서 못 먹게 되는데, 사온 즉시 깨끗한 물로 씻고 살짝 데쳐 깨끗한 생수에 담가 냉장 보관하면 그냥 둔 것보다 적어도 3일은 더 오래간다. 상하기 직전의 두부가 있는데 당장 요리해 먹을 여유가 없을 때는 작게 깍둑썰기해서 잼병 등에 넣고 진간장을 부어서 재둔다. 1~2일 있다가 건져서 깨소금, 고춧가루, 다진 파·마늘을 넣어서 무치면 짭짤한 밑반찬으로 그만. 도토리묵도 마찬가지 방법을 이용하면 좋다.
냉장고를 너무 과신하는 것도 금물이지만, 늘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주부라면 냉장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만 활용하면 조리시간도 줄일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이고, 더불어 바쁜 일정에도 매일매일 ‘맛있는 밥’을 챙겨 먹을 수 있으니 냉장고처럼 고마운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글 최세진|사진 박영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