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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풀
박 승 숙
상추밭 고랑으로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비단풀이 제법 넓게 자리하고 있다. 비단풀은 땅바닥을 덮으며 낮게 번져 나가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오는 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친구가 두통에 좋다며 보내주어서 한동안 끓여 먹었던 풀이다. 집 앞에 있는 텃밭이 일터인 친정엄마는 농작물이 자라기 시작하는 봄부터 여름 내내 풀 뽑는 일에 매여 산다. 돌아서면 풀이라며 한 포기라도 놓칠세라 호미로 고랑 바닥을 훑는다. 엄마의 눈을 피해 용케도 살아 남아있다. 비단풀의 효능을 들은 엄마는 잘 키워서 말려 놓겠다고 한다. 비단풀 사이의 잡초를 제거하는 호미질이 조심스럽다. 어떤 것은 햇볕 받기 좋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준다. 비단풀은 이제 엄마의 농작물이 되었다.
농사는 필요한 식물을 재배하는 일이다. 농사짓는 사람은 밭에 있는 그 어떤 물과 영양분과 햇볕도 잡초에 나누어 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농부에게는 방해꾼일 뿐이다. 잡초가 살아남는 방법은 가치와 쓸모를 인정받아 농작물이 되는 것이다.
시골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읍내 중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대학은 대구에서 다녔다. 시골에서도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 덕분에 점점 도시로 나와 살게 되었다. 가족이 이사한 것이 아니었기에 홀로이 낯선 장소와 낯선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바람에 날려 온 풀 씨앗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떨어진 곳에서 싹을 틔우고 틈 사이를 비집고 나와야 한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대전에 남거나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이모가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대구로 내려왔다. 한동안은 대전과 서울로 친구들을 보러 다녔다.
대구 시내버스를 처음 탔을 때 느낌은 지금도 강렬하다. 주차장에서 버스가 보이면 어디서 정차하는지 살피면서 버스를 향해 뛰어가야 했다. 차에 오르면 손잡이를 양손으로 꼭 잡아야 한다. 급차선 변경이나 급정차할 때면 온몸으로 관성의 법칙을 경험하게 된다. 뒷좌석에서 운전석까지 달려가게 된 승객이 민망하여 불렀느냐고 운전기사에게 물었다는 유머는 대구에서 나왔을 것 같다. 읍내를 오가던 버스나 대전 시내버스는 정해진 위치에 서고 차선 변경이 적었다. 시간 급한 사람은 조바심을 낼 만큼 여유로웠다. 대구에서의 생활은 버스를 갈아탄 느낌 그대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발령을 기다렸다. 초등학교에 과학 실험을 도울 수 있도록 실험보조원을 두는 제도가 생겼다. 발령 대기자를 우선으로 고용하였기에 한동안 과학실에 근무했다. 틈나는 시간이면 전 학년 과학 교과서와 지도서를 읽고 또 읽었다. 과학실을 맴돌며 실험기구의 위치를 확인했다. 덕분에 교실에서 실험 수업한다는 요청이 촉박하게 들어와도 짧은 시간에 실험기구를 챙겨 보낼 수 있었다. 실험 수업을 마치고 과학실을 나가는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의 만족한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쁨이었다. 오후에는 사용한 실험 기구를 씻고 말렸다. 다음날 있을 수업 도구들을 모아 모둠별 실험 세트를 만들어 두었다.
선배선생님들은 나를 인턴교사로 여겼다.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알아두라며 월요일마다 있는 직원협의회에 참여하게 했다. 학생지도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청소년단체 지도자 자격 연수를 보내주고 학생지도자로 참여하게 했다. 시범수업이나 수업 협의회가 있는 날이면 일부러 연락해서 꼭 보게 했다. 체육 시간에 발목이 삐끗한 학생을 데려다 주기도 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통학구역이 아닌 곳에서 등교하는 아이라 집이 꽤 멀었다. 전화가 흔하지 않은 때라 집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담임선생님과 학부모님이 두고두고 고마워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교직 생활을 하는 내내 자양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마음 써 주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아르바이트 정도의 급여로 월세 내기 어렵다고 동네 약국에 딸린 비어있는 방을 대가 없이 사용하도록 알선해 주었다. 현직에 나오면 쓰일 일이 많다며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서예 교습소를 소개해 주었다. 일을 핑계로 집으로 오게 해서 저녁밥을 먹게 하고 올 때는 김치를 싸주기도 했다. 내게 손 내밀어 주었던 선생님들은 발령을 기다리는 동안 의기소침했던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발령을 받아 그 학교를 떠나게 되었을 때 선배 선생님들이 준 관심과 사랑을 밀알처럼 간직하며 살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이 시작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대화 도중에 같은 인물을 지인으로 공유하게 될 때가 있다.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선후배가 있다. 모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동료도 있다. 이럴 때면 대구라는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빅터 플랭크는 어떤 책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허약한 사람, 고난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휴머니즘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곁을 내어 주는 일이다. 물과 양분과 햇볕을 나누는 일이다. 다른 작물과 조화를 이루며 자라는 잡초는 끝까지 살아남아 자기 몫을 하게 된다. 친정엄마의 텃밭에서 이름을 찾은 비단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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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편지
박 승 숙
책장을 정리하는데 오래된 시집이 눈에 띄었다. ‘이게 여기 있었구나!’ 잊고 지냈던 그날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 번째 만남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인데도 자리에 앉자마자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훔친다. 근무지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터미널까지, 택시를 이용해 시내까지, 그리고 이곳까지 바삐 걸어왔을 그의 길이 보인다. 저녁을 먹고 왔다고 물 한 잔이면 된다며 메뉴판을 건넨다. 일 인분 주문하는 것이 민망하여 음료라도 마시라고 했지만 거듭 괜찮다고 한다. 나는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하이라이스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쳤다 싶으니 단골집을 소개해 주겠다며 일어선다.
큰길 가에 있는 경양식 집을 나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앞서 걷던 그가 오래된 한옥 앞에 멈춰 서며 들어가자고 한다. 구이집이다. 시내에 이런 집이 있었다니 식당도 메뉴도 생소하다. 뭉티기에 간천엽 그리고 오드레기를 주문한다. 대학생 때 친구들과 오던 곳이라고 했다. 그때는 돈이 없어서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자주 못 왔단다. 약속 장소 근처이기도 해서 소개도 할 겸 같이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삼학년 담임에 기숙사 사감을 겸하고 있어서 대구 나올 일이 드물었다. 오늘도 수업 마치고 잠시 틈을 얻어 나왔다. 저녁을 먹고 왔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었는지 연신 젓가락이 움직인다. 먹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따라 먹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날 정도다. 고기를 잘 안 먹는 내게는 아무래도 무리다. 당근과 오이만 집어 먹었다.
지금 맡은 학생들은 일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삼 년 째 담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기숙사 생활까지 하고 있으니 더욱 각별하다고 했다. 졸업이 가까워 오니 ‘날려 보내기 위하여 새들을 키운다.’는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며 미소 짓는 모습에 따뜻함이 묻어났다.
그 남자는 여덟 시 반 막차를 타고 기숙사로 돌아가야 한다. 하고 싶은 말 대신이라며 포장된 책 한 권을 쥐여 주고 급히 택시에 올랐다. 집에 와서 열어보니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이다. 책갈피가 끼워진 곳을 펼쳤다. ‘오월 편지’라는 시다. /이 세상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사랑하여/ 오래도록 서로 깊이 사랑하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난 일도 아니고 지금의 일도 아니리라. 아마도 훗날에 대한 일일 것이다. 부부로 만나 노년에 이르러 이렇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여섯 시에 만나 두 시간 남짓 같이 있었지만, 그 남자가 주고 간 시는 긴 여운을 남겼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라고 시작되는 구절이 낯설지 않다. 그 남자가 말했던 시다. /이윽고 그들이 하늘 너머 날아가고 난 뒤/ 오래도록 비어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그 풍경을 지우고 다시 채우는 일로/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는 부분을 읽으며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스승의 기도’라는 시를 품고 사는 마음에 믿음이 갔다. 오월 편지는 나에 대한 약속이요, 스승의 기도는 하는 일에 대한 다짐이다. 나는 일생일대의 도박에 응했다. 그 남자는 만난 지 두 달 만에 나의 남편이 되었다. 시구절로 전하는 숫기 없는 남자의 은밀한 청혼이 통했다.
나는 그 후로 경양식집에 가자고 하지 않았다. 일 인분을 주문하는 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남편이 추천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느 식당에 가든 밥은 있으니 되었다. 구이집에 가면 콩나물국, 오이와 당근, 쌈 채소 반찬이면 충분했다. 고깃집에 가면 된장찌개로 족하다. 횟집에 가면 곁들여 나오는 기본안주만으로도 푸짐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한동안 외식이라고는 뜸했다. 결혼한 다음 해 첫째인 딸이 그다음 해에는 둘째인 아들이 태어났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웬만큼 크면서 특별한 날이면 외식을 했다. 장소는 보통 고깃집이다. 그런데 딸아이가 고기를 먹고 온 날은 배가 아프다고 하거나 체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해산물을 먹으러 가면 이번에는 아들이 문제다. 도통 해물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김이나 밑반찬으로 밥을 먹고 만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던 때라 메뉴 결정권은 남편에게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일학년이 되던 해 나의 생일이었다. 남편은 나를 생각해서 앞산 밑에 있는 분위기 좋은 한식집을 예약했다. 고기 먹을 것을 기대하고 있던 아들은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음식이 나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아예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밥상에 앉히고 입에 맞는 반찬을 찾아내고서야 생일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 엄마 생일도 네 생일 해라. 메뉴 선택권은 아들에게 넘어갔다.
우리 집 식탁에는 경쟁이 없다. 음식마다 주인이 있을 뿐이다. 아들은 비린내 때문이라며 해물로 된 음식은 손도 대지 않는다. 고기는 살코기 위주로 먹는다. 딸아이는 고기보다는 해물이다. 특히 해물찜과 탕, 생선구이를 잘 먹는다. 남편은 고기 중에서 쫄깃한 씹는 식감이 나는 부위와 삶거나 찌는 음식을 즐긴다. 돼지고기 수육의 껍질 부분은 남편 것이고, 살코기는 아들 것이다. 생선의 머리는 남편, 몸통은 딸 것이다. 돈가스는 아들 것 생선가스는 딸 것이다.
남편의 하루는 퇴직 후에도 이른 새벽에 시작된다. 새벽잠을 줄여 가며 장거리 출근을 하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출근 대신 운동을 하러 간다는 것이다. 나의 아침식사는 운동가기 전에 남편이 차려 놓고 간 삶은 감자와 삶은 달걀, 그리고 사과 한 개다. 여유 있는 아침시간으로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날아간 새들이 남긴 빈 하늘과 자식들이 제 짝을 찾아 떠난 빈 둥지는 우리 부부만의 풍경으로 채워졌다.
책장을 주르륵 넘기며 오월 편지를 찾았다. 시간이 그려낸 갈색 그러데이션이 액자처럼 둘러 있다. 밑줄 친 구절을 되뇌어 본다. 살아온 날 동안 깊이 사랑하며 살았는지 자문해 보았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이라는 시 앞에 멈추었다. 연필로 표시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 전에 만나는 시간이 짧았던 만큼 문득문득 남편의 마음이 궁금했다. 결혼하면서부터 시집에 들어가서 살았기에 신혼 생활이라고 특별한 것도 없었다. 남편의 부모는 물론이고 한집에 사는 남편의 동생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느라 마음 쓰기에 바빴다. 일상은 분주한데 지루하기만 했다.
일요일 아침이다. 익숙하지 않은 집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과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 옥죄어 드는 마음에 약속 있다는 핑계를 만들었다. 마음 쉴 곳이 필요했다. 동화사 가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생각 없이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종점이다. 사찰 경내를 둘러보고 나와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돈이 없어서 그렇지 그 집 사람들 인심이 참 좋다.’고 한 남편을 만나게 해준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 집에는 출근할 때 춥다고 목도리를 둘러 주던 시어머니와 혼자만 먹으라고 창문으로 과일 통조림을 넘겨주던 시아버지, 넉살 좋은 입담으로 웃겨 주는 시동생과 살갑게 따르는 시누이가 있었다. 꽃샘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목탁 소리가 평온하다. 입구에서 파는 손 두부 두 모를 사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왔다.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도 티가 났나 보다.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없으면 한 시도 살 수 없는 것이 공기라고 한다. 남편은 그러한 공기 같은 사람으로 항상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를 위로하듯 표시했던 구절이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평온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는 것입니다/ ‘조용히’라는 말과 ‘평온한 마음’에 동그라미가 처져 있다. 남편이 준비해 주는 선물 같은 아침이 떠오른다. 남편은 그렇게 조용한 사랑으로 평온한 일상을 가꾸며 살아왔구나!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앞서간 아내의 영전에 다하지 못한 말을 바치는 마음으로 쓴 시인의 시어가 가슴속에 콕콕 박힌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라는 ‘유월이 오면’ 시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오월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고맙고, 함께 살아갈 날이 귀하다. 그리고 언젠가 혼자 남을 한 사람의 시간이 아프게 다가온다. 그 남자가 주었던 오월 편지의 구절은 이제 나의 바람이 되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빛바랜 책 표지 위로 젊은 날 그 남자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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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 2023년 제14회 달서 책사랑 전국 주부수필공모전 금상
- 초등교사 재직 중 학생 글쓰기 지도교사 다수 입상. 교육감상 3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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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승숙 선생님 반갑습니다.
비단풀, 오월편지 잘 읽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이 영남수필 회원이 돼주셔서 참 좋아요.
함께 문정을 나누며 남은 세월 행복하게 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