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장수 斷想
이태호
오늘도 사방팔방이 그늘이다. 구름이 햇볕을 몽땅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17일은 만리포 그늘장수들이 장사를 시작하는 날이다. 매년 같은 날이다. 제헌절이기도 하다. 60년째 이어왔다. 절기상으로도 그늘장수 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한 선배들의 예지다.
그늘장수 중에서 가장 연장자는 朴氏 아주머니다. 연세가 80이다. 그늘장사 정관에는 정년이 없다. 그 때문에 움직일 수 있으면 퇴출할 수 없다. 대신 근무시간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사장에 파라솔을 꼽는 것은 힘도 들지만, 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술이야 그분의 경력이 대변하겠지만, 힘은 쇠퇴했다. 그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대신한다. 회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사람은 62세다. 그러니까 70이 안 된 회원은 젊은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나 또한 팔팔한 나이다. 자주 들을수록 신나는 명사(名詞)다.
회원 모두는 본토박이로 이루어졌다. 이리저리 엮어보면 초등학교 선후배 간이거나 먼 친척들이다. 그 때문에 행동에 제약이 있다. 불편하지만 언행을 함부로 했다가는 큰코다친다. 호래자식이라고 조상까지 욕을 잡수신다.
오늘도 박씨 아주머니는 먼바다만 바라보신다. 손님이 오셔서 그늘을 달라거나 튜브를 주문해도 아랑곳없이 수평선에 눈을 고정하고 있다. 고막에서 떨림을 언어로 풀이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마치 앙상한 나무 밑에서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사람과 같았다. 아들만 오면 기다림이 끝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오늘도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분의 장손은 30년 전에 죽었다. 죽은 나무로 만든 통통배에 목숨을 걸고 바다에서 삶을 낚던 어부였다. 그러니까 바닷속에서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주머니에게 아들은, 신이며 구원이고, 희망이자 행복인 셈이다.
사무엘 베케트 작 ‘고도를 기다리며’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린 것은 45년 전이다. 아직도 그 작품이 계속 흥행에 성공한다니 우리도 할머니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기다림의 대상은 다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 기다림이란 어차피 숙명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기다리고 있다. 나를 닮은 손자는 물론, 아내와 둘이서 여행 떠날 9월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올가을에 꽃 종자를 나눠준다는 친구의 방문도 기다린다. 이런저런 기다림은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오늘도 나는, 박씨 아주머니처럼 기다림이 배달할 행복한 만남의 기쁨을 연상한다.
하늘이 무겁게 꾸물거린다. 금방 빗방울이 하늘을 그을 것 같다. 사방팔방이 그늘이지만, 파라솔을 꼽고 튜브를 늘어놓았다. 그늘은 안 빌리더라도 물놀이 기구를 찾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 자리는 특별하다. 그늘을 세 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늘 중에 가장 멋진 놈이다. 플라스틱 의자 두 개를 다리 길이로 벌려 놓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길게 앉았다. ‘키에르케고르’와 독대할 시간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만나자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말여~ 진짜 친구가 딱 하나 있다네. 그의 이름은 ‘메아리’여. 그 친구는 내가 슬픔을 노래하거나 기쁨의 환호를 외치면 고스란히 나에게 돌려준다네. 그뿐인가? ‘심복’도 하나 있다네. 그의 이름은 ‘정적’이라네. 정적이라~ 얼마나 믿음직한 이름인가. 언제나 떠들지 않고 잠자코 있기 때문일세.”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박씨 아주머니를 건너다보았다. 며칠 전 아주머니 또래 한 분이 세상을 등졌기 때문이다. 절망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주머니의 눈빛을 보면 절대로 절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혼자 사시면서도 주어진 삶 앞에 당당하다. 그분은 속으로 이렇게 외칠 것이다. ‘실패할 수 없는 인생’이라고. 아울러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야!” 라고 외친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옳은 말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은 절망이니까.
종일 빌려준 그늘은 고작 두 개다. 금액으로 치면 2만 원이다. 박씨 아주머니는 나보다 더 벌었다. 튜브를 네 개나 빌려줬기 때문이다. 총무가 돈 통에 담긴 오늘의 수입금을 가지고 갔다. 그늘장사가 다 끝나는 8월 20일에 적립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회원 10명에게 고루 분배된다. 40일이 채 안 되는 기간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다. 자연과 가장 가까이 지낼 수 있고, 그늘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조건을 보고 느낄 수 있으니까.
성급한 젊은이들이 폭죽을 터트린다. 아직 노을빛이 남아 있는 하늘에다 마구 쏘아댄다. 저들도 어둠이 두려운 것이다. 세상이 저들에게 용기보다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기 위하여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보게 젊은이들, 두려움의 크기는 용기의 크기에 반비례한다고 들었네.” 나 또한 용기가 커지면 두려움은 작아지고, 용기가 작아지면, 두려움은 커진다는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아까보다 구름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갈매기들의 날갯짓이 부산하다. 피서객들이 버리고 간 과자부스러기나 통닭, 삼겹살도 좋다. 녀석들도 자생의 법칙을 잃어가고 있다. 이 또한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존을 위한 진화의 법칙에 따른 결과일까?
타박타박, 백사장 위에 찍힌 할머니의 발자국이 힘지다. 그분의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막연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아주머니에게도 아들이 돌아온다는 뚜렷한 희망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내일도 빗방울이 오락가락 한다는 예보다.
예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주책없이 매미가 떼거지로 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일은 ‘공자’와 독대할 준비나 해야겠다.
아! 나는 야, 행복한 그늘장수!
* 회원여러분 8월 20일까지는 자주 뵙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자연의 심부름을 해야 되거든요^&^ 가끔 그늘 속에서 벌어지는 삶dml 풍경을 글로 담아 드리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게 보내십시오.
첫댓글 그늘장수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고 부자이면서 행복한 장사입니다.
그늘을 만드는 적당한 체력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기력만 있으면 장사가 되거든요.
거기다가 여름 패션 쇼가 펼쳐지는 무대이고, 글밭을 일구시고.......
그나저나 가고는 싶지만, 가서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아는 척 하면 지난 여름처럼 특별대접 받을 것이 뻔하고....
그늘을 팔아가며 낭만을 즐긴다는 것도 삶 중에서 멋진 삶이지요.
필요로 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나발 불러 달라는 주문에 어제도 하룻밤 신나게 놀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