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 연중 19주일 설교
기억으로 살아있는 빵
요한 6:35, 41-51. 열왕상 19:4-8. 에페 4:25-5:2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엘리야 시대 당시 이스라엘 왕 아합은 하느님을 멀리하고 풍요와 축복의 상징인 바알신을 섬겼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저버린 이스라엘과 아합왕에게 경고를 보낸 후 엘리야는 가르멜산에서 대결을 벌이고, 승리합니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워져 피신하다가 기력이 다한 엘리야가 죽기 직전 하느님의 천사를 통해 말씀을 듣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마음속에 새기고 그리며 예수님의 일생은 물론 우리 인생의 여정을 묵상합니다. 목숨이 위태로워진 엘리야는 시종까지 내치고 혼자서 길을 갑니다. 더 이상 힘이 없었는지 “이제 다 끝났습니다. 저를 죽게 해 주십시오.” 절망의 벼랑 끝에서 부르짖습니다. 가슴을 치며 읽고 또 읽는 대목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바로 직전 아합왕의 바알 사제 450명과 대결하여 승리하고 그 잔당을 쓸어버렸습니다. 그 대가는 살해의 위협이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절망과 공포, 그리스도교에서는 바로 이 지점이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신앙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놀랍도록 신비하고 깊이 묵상해야 할 주제입니다. 고통이 극심하여 절망의 끝자락에 섰을 때, 바로 그때가 탄생 즉 ‘성탄’입니다. 절망의 끝에서 더 이상의 해결책 없을 때 엘리야는 야훼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나의 어려움을 그분께 드러낼 때, 그때가 신앙의 시작 즉 우리에게 성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잠든 엘리야를 천사가 흔들어 깨우고 먹을 것을 주십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우리를 굶게 두지 않으신다는 믿음의 묵상으로 이끕니다. 기진맥진한 엘리야에게 첫 번째 음식을 주셨고, 머리맡에 놓인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죽음의 위협으로부터는 벗어납니다. 이를 교회에서 행하는 ‘세례’의 모습으로 묵상합니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자신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가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 여정 가운데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릴 것이다’라는 약속을 보여 주십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이제 완전히 죄에서 벗어나 그리스인으로 살고, 공동체의 일원이 되겠다는 다짐과 확인의 성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야에게 죽지 않을 만큼 음식을 주셔서 그가 절망 가운데 포기하지 않도록 응급처치를 해 주십니다. 사막에서 울부짖는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 만나와 메추리를 주신 하느님의 은총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았으니 이 거룩한 성사를 통해 결코 죽게 두지 않으시는 주님의 언약을 새겨야 합니다. 세례의 은총을 늘 간직하고 살겠다고 다짐합시다. 우리를 고통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기억하며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런데 음식을 먹고 죽음의 위기를 넘긴 엘리야는 길을 나서지 않고 다시 잠에 듭니다. 이 역시 우리 인생의 모습과 같습니다. 위기를 넘겼으나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 인생입니다.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도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무엇을 할지 모를 때가 태반입니다. 막막하기만 한 그때, 천사를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고되다.” 그는 40일을 주야로 걸러 호렙산에 다다릅니다. 바로 ‘생명의 빵’을 먹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처럼 광야에서 먹고도 죽은 육신의 빵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의 빵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동시에 묵상합니다. 죽음 없이 부활 없듯이 우리 인생에 고통 없는 축복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우리가 원하고 갈구할 음식은 바로 엘리야가 다시 먹고 길을 나선 그 영원한 음식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가 죽지 않을 영원한 음식을 누릴 축복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많지만,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기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먼저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사막에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모세의 간절한 기도로 만나를 얻습니다. 하느님의 이끄심대로 살았지만, 그들은 모세에게 너무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걸핏하면 화를 내고 분노했습니다. 자신의 의지가 강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합니다. 만나를 먹고도 죽어 간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합니다.
오 천명을 먹이신 이야기도 기억합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가 굶주리고 고통받도록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자주 이런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신앙이란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부귀영화나 바라는 바를 이루는 소원 성취를 위함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배불리 먹은 오 천명은 다음 날도 예수님을 따라다닙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참된 배부름은 육신의 양식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약속도 기억합니다. 우리를 결코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가슴에 품고 삽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와 칭찬에 골몰하지 말고(이런 것은 썩어 없어질 육신의 양식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빵을 추구합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희생 즉 빵을 기억합시다. 그분은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빵으로 뜯어 먹히셨습니다. 흔히 우리도 그 만큼 희생을 해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희생은 그분의 단 한번의 희생으로 족합니다. 다만 우리는 그분께서 내어 주고 쏟으신 사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니다.
우리는 지금 부르심을 받았지만 어렵고 힘든 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아무 성과도 없는 것처럼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썩어 없어질 세상의 빵, 육신의 빵을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빵을 먹으며 이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고 동행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으로 주님은 살아있는 생명의 빵이 되실 것입니다. 그 팁이 오늘 2독서인 에페소서에 있습니다. 함께 성서를 펴서 5장 1-2절을 읽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닮으십시오. 그리스도를 본받아 여러분은 사랑의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셔서 하느님 앞에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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