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레교회 김진홍 목사가 지난 7월 25일 회원들에게 발송하는 아침묵상에서 ‘두레수도원을 세우려는 꿈’이라는 글을 통해 두레수도원을 세우려는 평소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김목사는 두레수도원을 세우려는 생각을 몇 년 전부터 품어왔으며, 지난 봄 터키와 그리스의 수도원 유적지들을 여행하고 다녀와서는 이를 놓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사를 더듬어 보면 3세기 들어 성안토니에서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이 4,5세기 간에는 전성기를 이루었다가 그 후에도 면면히 이어져 교회에 활력을 불어 넣는 활력소 역할을 하여” 왔으나, “한국교회는 불과 120여년 된 역사에 일제강점기, 해방 후의 혼란기, 6.25 전란, 산업화를 위한 몸부림, 민주화 투쟁 운동기 등의 격동기를 지나오면서 교회의 바람직한 영성(靈性)을 심화(深化) 시킬 수 있는 여유를 지니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두레마을을 세워 더불어 살며 땅과 사람을 살리자는 운동을 나름대로 펼쳐 왔으나 시행착오가 많았는 데다가 깊은 영성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공동체 운동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면서 목회자로서의 정년을 3년 반여를 남겨둔 시점에 “한 교회를 시무하는 목회자로서는 정년이 있겠으나 한국교회 전체를 섬기는 일꾼으로써는 정년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땅 위에 남은 세월이 얼마런지는 알 수 없으나 남은 기간을 두레수도원을 깊숙한 산 속에 세워 나 자신과 한국교회의 영성을 한 단계 더 깊게 하는 일에 쓰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고 하였다.
1971년 ‘활빈교회’를 중심으로 병든 자, 가난한 자, 무의탁자, 고아 등을 대상으로 한 빈민선교의 기치를 내걸고서 두레공동체운동을 펼쳐온 김진홍 목사. 지난 2월 평생을 바쳐 일한 두레공동체운동에 성령이 부족했다며 소회를 밝힌 그가 이번에 꺼내든 카드는 수도원운동이다. 성령을 마치 그릇에 채워 넣는 물이나 연료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성령이 부족했다’는 그 상투적 표현은 그가 보기에 채워지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영성에 대한 미흡한 표현일 것이다. 김목사는 두레수도원으로 한국 교회의 영성 심화에 조력하려는 개인적 소망을 품고 있지만, 그에게는 수도원운동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실로 부족하다 하겠다.
개신교계는 수도원운동이 바람직한 영성운동을 주도하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는 카톨릭적 입장을 수용하고 있다. 교회와 카톨릭을 구분하지 못하고 교회가 아닌 카톨릭이 해석한 교회사를 그대로 가져다 쓰기에 수도원운동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여과없이 가르치고 있지만, 수도원운동의 내면적 본질은 ‘타협’과 ‘비굴함’임을 알아야 한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A.D. 314년에 이교도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자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별과 교리(고후 6:16,17, 막 4:17)를 지키기 위해 담대히 나설 용기가 없는 지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의 명령에 의해 형상과 우상들을 “예배보조기구”로 사용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예배를 “희생 제사”라고 부르는 이교도들과 교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들은 성경적인 분리(고후 6:17)를 정면으로 직시할 용기가 없었고, 당시 카톨릭적 풍토 속에서 성경적으로 올바른 소리를 했다가 “이단”으로 정죄될 용기가 없었다.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지만 카톨릭에 대항할 만큼 충분한 용기를 갖지 못했던 그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되었는데, 그 방법은 “절반만 분리”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교회사가들이 말하는 수도원제도(monasticism)이다.
수도원이라고 하는 피난처는 거룩하게 살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카톨릭 감독들에게 복종할 정도로 용기가 없는 자들에게 두 주인을 섬기게 해주는 편법이었다. 이것은 카톨릭 공회에서 결정한 사항들에 고분고분 순복하여 “이단”으로 낙인찍히지 않음과 동시에 “카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고후 6: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들은 당대의 모든 세상과 단절하고 수도원에 파묻혀 “분리되어” 살았다. 그러나 얼마 안가 그곳에서는 동양의 초월명상, 영지주의적 영성이 실행되었고, 입으로만 고백하는 기독교가 틀을 잡았으며, 헬라철학의 누룩덩이가 형성되었다. 무엇보다도 금욕주의(asceticism)가 영적인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버렸고, 그곳 수도원들에 기거하던 승려들에 의해 특히 “성경 변개”라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 자행되었다.
수도원제도의 근거는 신약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골로새서 2:20-23은 수도원에서 행해지는 일들을 경고하고 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죽었을진대 어찌하여 마치 세상에서 살아 있는 것같이 법령에 복종하느냐? (손대지 말라, 맛보지 말라, 만지지 말라 하는 것이니 이것은 사람의 계명들과 교리들에 따른 것이라. 이런 것들이 의지 숭배와 겸손과 금욕에는 지혜 있는 것처럼 보이나 육체를 만족시키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신앙에 있어서의 타협과 비굴함으로 시작된 수도원운동은 결국 금욕주의와 영지주의, 동양철학, 변개된 성경을 기독교 내로 유입시키는 산실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카톨릭식 교회사에 세뇌된 목사들은 올바른 신약교회사를 모르기에 성경적 근거가 없는 수도원운동을 현실타개를 위한 전환점으로 삼으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나, 그것은 그들이 성경도, 교회사도 모르기에 내놓는 비성경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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