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
오늘의 역사
① 수양대군 왕위에 오른 날(1455) : 이조 제4대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제6대)을 지지하는 신하들을 죽이고 1455.7.19. 왕의 자리에 올라 세조(7대)가 되었다.
향후 13년 간 나라를 다스린 세조는 정치․군사․문화면 등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 6월 11일.
② 고종 강제퇴위(1907) : 양위조칙 발표.
양위(讓位)의 핍(逼).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일본은 한국 지배의 강화를 꾀하고자 황태자로 하여금 국정을 대리케 하는 황태자 국정대리(國政代理)의 조칙(詔勅)을 내렸으나, 이에 만족하지 못한 이토오는 대리는 곧 양위(讓位)라 주장, 마침내 광무11년 오늘 양위의 조칙을 내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20일에는 고종이 재위43년만에 물러나고, 고종의 둘째 아들 척(坧)이 제위에 오르게 되니, 이가 대한제국(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제 융희(순종)이었다.
⇨4월 25일
⇨2월 8일.
* 칠적(七賊) : 조선26대 고종황제를 강제로 폐위시키고 국권을 일본에 게 넘겨 주는 칠조약(七條約)을 맺게한 일곱 사람의 대신.
곧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내부대신 임선준(任善準)・탁지 부 대신 고영희(高永喜)・군부대신 이병무(李秉武)・법무 대신 조중응(趙重應)・학부 대신 이재곤(李載崑)・농상공부 대신 송병 준(宋秉畯)을 말한다.
③ 소학교령 제정 공포(1895) : 7월19일 소학교령이 제정, 공포됐다.
현재 초.중학교는 의무교육이다.
의무교육은 국가가 모든 국민에게 사회.종교.정치적 신분이나 배경의 차이와 관계 없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무상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초.중학교 교육이 무상이라고 믿는 학부모는 별로 없다.
공짜라고 좋다고 넋 놓고 있다가는 애들 바보 만들기 십상이다.
따로 공부시키지 않고는 대학 갈 꿈도 꾸지 못한다.
실제로 초등학생 중 76%가 학교 공부 이외에 개인.그룹과외나 학원수강, 학습지 및 통신과외를 받고 있다.
서울의 경우 무려 84.3%가 과외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외비 또한 장난이 아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돈을 내더라도 좀 더 내실 있는 공교육을 받겠다는 학부모들이 많다.
내실 없이 일방적이고 형식적인 의무교육은 외면당하게 마련이다.
수업연한은 5~6년, 학령은 8~15세. 소학교령에 의해 우리나라 근대교육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인 소학교가 만들어졌다.
장동.매동.정동.계동.주동의 관립 소학교가 1895년 8월 문을 열었다.
개교 때 학생 수는 장동소학교 23명, 정동소학교 76명, 계동소학교 40명, 주동소학교 48명이었다.
또 한성사범부속소학교가 있었는데 당시 학생 수는 136명이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서울에 관립 10개, 지방에 공립 50개교가 설립됐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재정적 뒷받침을 충분히 해주지 못했다.
소학교는 1906년 보통학교로 개편됐고 1938년 소학교로, 1941년에는 국민학교로 바뀌었다가 일제의 잔재라며 1997년 초등학교로 개칭됐다.
그로부터 100 년이 지난 2005년 현재 전국 초등학교는 5,541개로 100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재정적 뒷받침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하다(서경신,2005) .
④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 개막(1980) : 레닌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제22회 모스크바올림픽 !
인류최대의 스포츠제전인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대회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 미국을 위시한 세계 약 60개국이 불참한 가운데 레닌 스타디움에서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브레즈네프 소련 당서기장은 올림픽에 참석한 선수들과 관람객들을 통제하기 위해 레닌 스타디움 주위를 경찰과 군인들로 벽을 쌓은 뒤 개막을 선언, 동서 냉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이 대회는 1896년 근대 올림픽경기가 시작된 이래 사상최초로 공산권에서 개최되는 것이었다.
전해인 79년 12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 서방국가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철퇴하려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자 이에 미국을 위시한 서독 일본 등 스포츠 강국이 올림픽대회를 보이콧함으로써 스포츠제전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반쪽짜리 올림픽이 되고 만 것이다.
당초 소련은 최고 최대의 올림픽을 준비했지만 모스크바올림픽은 1952년 핀란드 헬싱키올림픽 이후 가장 적은 81개국 선수 5326명만이 출전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 대회 스타는 소련의 남자체조 선수 디디아틴이었다.
그는 금메달 3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얻어 가장 많은 메달 획득수를 기록했다.
이로써 소련은 6백30개의 메달 중 1백95개, 1백27개의 금메달 중 80개를 따내며 1위를 차지했다.
⑤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발발(1880) : 7월 19일 발발했다.
보불전쟁이라고도 한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을 격파함으로써 황제의 명예를 회복하려 했고, 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는 남독일 국가들을 끌어들여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독일 제국을 형성하려고 했다.
프랑스가 전쟁을 선포했으나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이 이끄는 독일군은 바젠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야전군을 요새에 가둠으로써 전쟁은 독일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마크 마옹 원수가 지휘하고 나폴레옹 황제가 가담한 프랑스의 주력부대가 바젠 구출작전을 펼쳤던 스당 전투는 프랑스 군대의 항복으로 끝났다.
결국 휴전을 위해 프랑크푸르트 조약이 체결되었고, 프랑스는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지불했다.
프로이센의 왕 빌헬름 1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의 황제로 선포됨으로써 비스마르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프로이센의 독일 지배는 확고해졌다.
⑥ 美여교사 우주비행사 선발(1985) : 우주비행사로 뽑히기 전까지 그의 삶은 평범했다.
30대 중반에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여교사. 이것이 크리스타 매콜리프(1948~1986)의 자기소개서였다.
굳이 특별한 걸 찾으라면 학창 시절 아폴로 계획을 보며 유난히 감동을 받았다는 점과 매우 열정적이고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인기 교사라는 점 정도였다.
어릴 적부터 여성으로선 드물게 우주에 관심이 많았다.
우주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지구상의 무엇이 중력에서 벗어나 우주 궤도에 올라가는 것에 매료됐다.
하지만 꿈도 꾸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 여성은 우주비행을 하지 않았으니까.
고교에서 미국사와 법, 경제학을 가르치던 그는 1984년 교사를 우주왕복선에 태워 우주로 보낸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우주에서 진행하는 강의를 지구상으로 중계한다는 게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계획이었다.
매콜리프는 지원했고, 1985년 7월 19일 첫 민간인 우주비행사로 선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쟁률은 1만1000 대 1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1986년 1월 28일. 그가 탑승한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이륙 후 75초 만에 폭발했다.
매콜리프는 9세 된 아들 스콧이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빌려 준 개구리 인형과 함께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후 매콜리프는 래리 킹과 자니 카슨 등이 진행하는 TV 토크쇼에 잇따라 초청됐다.
유명인사가 됐다.
그만큼 챌린저호 참사는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가장 상심한 건 역시 가족이었다.
그들은 딸을, 아내를, 엄마를 잃었다.
가족은 그가 떠난 후 몇 년간 추수감사절도, 크리스마스도, 신년 행사도 챙기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했던 누군가가 없는데 기념일을 챙길 기분이 아니었다.
매콜리프는 수업 시간에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곧잘 얘기했다.
왕이나 정치가, 장군만 중요한 게 아니라면서.
그는 자신이 첫 민간인 우주비행사가 돼 우주에서 수업을 하면 사람들이 교사라는 직업의 중요성을 새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후 미국 곳곳에 매콜리프라는 이름을 붙인 학교가 여럿 들어섰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2006)
⑦ 佛작가 에밀 졸라 英망명 : 에밀 졸라(Emile Zola;1840.4.2-
1902.9.29)는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지고 출판사 영업부에서 근무했다.
이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비참한 시대상을 소설에 담았다.
‘목로주점’(1877년)에서는 파리 노동자의 비참한 삶을, ‘나나’(1880년)에서는 고급 창녀를 통해 상류계급의 부패상을, ‘제르미날’(1885년)에서는 광부의 노동쟁의를 다뤘다.
그는 사회현상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소설에 적용해 ‘자연주의’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소설은 과학이다’라는 이론을 ‘실험소설론’(1880년)에 정리했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해 1898년 1월 13일 ‘나는 고발한다’는 글을 발표해 프랑스를 들끓게 만들었다.
드레퓌스는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넘겼다는 혐의로 반역죄로 기소돼 종신 유배형을 받은 장교였다.
군부는 프로이센-프랑스전쟁 패전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유대계인 드레퓌스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에밀 졸라는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했거나 방조한 인물을 하나하나 거론했다.
“나는 뒤 파티 드 클람 중령을 고발합니다.
그는 법적 오류를 야기한 악마적인 장본인이었습니다.
나는 펠리외 장군과 라바리 소령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극악무도한 편파적 수사를 펼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나는 1894년 제1차 군사법정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불법적으로 전달된 비밀 자료에 근거하여 피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림으로써 법을 위반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대통령 각하,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그리고 이 무시무시한 진실은 당신의 통치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길 것입니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간단하면서도 도발적인 제목의 이 글로 프랑스는 양분됐다.
진실을 밝히라는 요구와 터무니없다는 주장이 맞섰다.
에밀 졸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상징이 됐지만 1898년 7월 19일 영국으로 망명했다.
군부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직후였다.
그는 드레퓌스가 사면받자 이듬해 고국으로 돌아왔다가 1902년 9월29일 의문의 질식사로 세상을 떠난다.
프랑스 최고재판소가 재심에서 드레퓌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기 4년 전이었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2008)
⇨ 1월 13일.
⇨ 1월 17일.
⑧ 기타 오늘의 역사⑨⑩⑪⑫⑬⑭⑮
1075(고려 문종 29) 요 나라 사신과 국경조사 획정
1799 로제타 스톤 발견
1848 美 뉴욕주 세니카폴스서 '여성권리대회' 개막
1864 태평천국의 수도 남경의 함락으로 태평천국의 난 종식
1878(조선 고종 15) 김수로왕릉 재실에 숭선 사액
1882(조선 고종 19) 임오군란 일어남
1898 독립협회 활동중 정부 전복혐의로 감옥에 갇혔다가 7년만에 풀려남
1899 미서(美西) 전쟁 종전
1902 도량형기 제작 검정
1904 일군, 여순 총공격 개시
1905 경성상업회의소 설립
1907 대한자강회에 해산령
1911 프랑스-일본 통상항해조약 조인
1914 남감리교 한국선교연회 발족
1920 코민테른 제2회 세계대회 개최
1924 조선일보, 편집방침을 변경(1면에 뉴스를 게재)
1926 상해 교포 200여명, 임시정부경제후원회 조직
1933 계초 방응모, 조선일보사 사장에 취임
1934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란체스카와 결혼
1938 장개석, 공산당계 단체에 해산명령
1938 최초의 우리말 사전(문세영) 발간
1939 독-소 통상협정, 베를린서 조인
1945 조선기독교단 발족
1945 조선기독청년동맹 창설.한국기독교 청년의 연합조직.해방이 후 건국.전교.봉사활동의 연합적 성취를 목적으로 결성.
1947 대한성서공회 재단법인 인가 받음
1949 프랑스, 라오스 독립 승인
1950 미국 국무성, 한국사태에 미국정책(한국백서) 발표
1951 국민방위군사건 김윤근소장 등 5명에 사형 판결 (8월13일 집행)
1952 헬싱키에서 제15회 올림픽 열림
1956 미 국방성, 재일 극동군사령부를 폐지하고, 유엔군사령부를 한국에 설치한다고 발표
1956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한국 등의 유엔가입 촉구에 관해 언급
1960 소련, 개 2마리 태운 인공위성선 2호 발사
1960 장면, 제2공화국 총리에 피선
1962 美 건물 13층 높이의 '맘모스'기구 발사에 성공
1962 미국 나이키제우스 미사일, 가상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요격 성공
1964 한국, 국제의원연맹(IPU) 가맹
1971 서울대 문리대 교수들, 대학 자율화등 요구
1975 세계 최초의 국제해양박람회,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림
1977 중국의 등소평 복권
1979 김진호(女), 세계양궁선수권대회서 60m 더블라운드 세계신 기록 수립
1979 소련 유인위성 살류트 6호 우주 체재 175일 기록세우고 귀환
1980 제22회 모스크바 올림픽 개막
1980 은행-보험-증권기관 임직원 431명 숙정
1980 국보위, 사학 운영쇄신책 발표
1981 김환진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1981 미국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야구대회에서 우승
1981 제11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루마니아에서 열림
1982 국방부, 북한주민 이현주 귀순을 발표
1982 한국-자메이카 경제기술협력협정 체결(킹스턴)
1985 부산 지하철 1호선 개통 (동래구 청룡동~부산진구 범7동 광장간)
1988 납북-월북작가 1백여명의 해방전 문학작품 출판 허용(해금)
1988 홍명희 등 5명 제외한 월북작가의 해방전 작품 해금
1989 야루젤스키, 폴란드 대통령에 선출
1991 한-미, 미8군 용산기지를 오산과 평택으로 옮기기로 합의
1991 구소련 보수강경파 쿠데타 발발. 고르바초프 크리미아 별장 연금
1992 북한의 김달현 부총리 겸 대외경제위원장, 서울 방문
1995 일본, 대북 제공 쌀 8천톤 첫 출항
1999 대우그룹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구체적 실천방안 발표'(그룹 해체 시작)
2001 헌법재판소, 전국구 선출방식 위헌 결정
오늘의 인물
① 이승만(李承晩 ; 1875.3.26 - 1965.7.19) : 해외에서 독립 운동을 한 애국자.
대한 민국 건국의 아버지.
초대․2대․3대 대통령을 지냈다.
6․25전쟁 때는 휴전을 반대하였다.
4.19의거로 하와이에 망명중 서거.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5월 29일.
② 여운형(呂運亨 ; 1886.4.22(양5.25) ~ 1947.7.19) : 독립운동가․정치가.
호 몽양(夢陽).
경기도 양평(楊平) 출생.
⇨8월 3일.
⇨4월 22일.
[요약] 한국의 독립운동가·정치가.
초당의숙(草堂義塾)을 세우고,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발기하였다.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가입하여 한국의 사정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2005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호 몽양
활동분야 독립운동, 정치
출생지 경기 양평
주요수상 건국훈장 대통령장(2005)
[본문] 호 몽양(夢陽).
경기도 양평(楊平)에서 출생하였다.
우무학당(郵務學堂) 등에서 한학(漢學)을 공부한 후 1907년 고향집에 광동학교(光東學校)를 세우고, 1908년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강릉에 초당의숙(草堂義塾)을 세워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중 국권이 피탈되고 학교가 폐쇄되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선교사 클라크를 따라 서간도(西間島)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견학하며 국외에서의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학교를 중퇴, 1913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난징[南京] 진링대학[金陵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가 상하이[上海]로 가 1918년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발기하여 김규식(金奎植)을 파리평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하였다.
1919년 4월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조직되자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이 되었는데, 일본정부는 이를 자치운동(自治運動)으로 회유하고자 그 해 11월 그를 도쿄[東京]로 초청하였으나 오히려 장덕수(張德秀)를 통역관으로 삼아 일본의 조야(朝野) 인사들에게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역설하였다.
1920년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에 가입, 192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원동(遠東)피압박민족대회에 참석, 한국의 사정을 세계에 호소하였다.
1929년 제령(制令)위반죄로 3년간 복역하고, 1933년 출옥, 조선중앙일보사(朝鮮中央日報社) 사장에 취임하였는데 1936년 신문이 일제에 의하여 정간되자 사임한 후 1944년 비밀결사인 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였다.
8·15광복을 맞아 안재홍(安在鴻) 등과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 9월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우익진영의 반대와 미군정의 불인정으로 실패하였다.
12월 조선인민당을 창당, 1946년 29개의 좌익단체를 규합하여 민주주의민족전선(民主主義民族戰線)을 결성하였으나 반대하여 탈퇴하였다.
또, 근로인민당을 조직하였으나 극좌·극우 양측으로부터 소외당한 채 좌우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극우파 한지근(韓智根)에 의하여 1947년 암살되었다.
체육인으로서의 그는 덴마크체조를 보급하였으며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의 전신) 제11대(1946∼1947) 회장을 지냈다.
2005년 3·1절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두산백과사전.2009)
이윤영 [李允榮, 1890.7.19~1975.10.15]
요약
교육자이자 목사이다. 3·1운동 때 독립선언 강연회를 갖고 시위를 했다. 제헌국회의원(制憲國會議員)에 당선되었다. 초대 국무총리 서리와 무임소장관·사회부장관을 거쳐 5·16군사정변 후 군정연장 반대투쟁위원회 의장, 국민의 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③ 드가(Hilaire-Germain-)Edgar Degas ; 1834.7.19 - 1917.9. 17) : 프랑스의 화가.
라모트(1822-1869)의 제자.
「무용의 화가」로 불릴만큼 무희(舞嬉)를 모델화한 작품이 많다.
어느 작품이나 신선․생동감이 넘치며, 그의 예술적 천품을 엿볼 수 있다.
드가는 발레리나들의 그림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프랑스의 화가이다.
은행가이면서 미술 애호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법률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1855년 미술학교에 입학했고,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제자 루이 라모드의 화실에 들어갔다.
1854년 이탈리아에 가서 정교한 인물 소묘로 유명한 안드레아 만테냐, 산드로 보티첼리, 한스 홀바인, 니콜라 푸생 등의 그림을 자세히 관찰하고 묘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에 돌아와 친구들의 초상과 역사적인 주제를 주로 그렸다.
1862년 클로드 마네를 만나고 카페 게르보아를 출입하면서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곡예사', '세탁부', '무희', '말'과 같이 움직이는 소재를 뛰어난 데생에 의거해 사실적으로 표현한 소묘의 대가로 평가받는다.
말년에는 시력을 잃어 촉각에 의존해 조각 작품을 제작했다.
④ 콜트 출생(1814) : ⇨1월 10일.
⑤ 디캠프(Edward Otto Decamp ; 1911.7.19 - 1976.5.3) : 무보수 자원 선교사로 우리 나라에서 17년동안 봉사했던 디캠프(Allengerd
E. Decamp) 목사의 아들로, 우리 나라 최초의 민간방송인 기독교방송국(HLKY)을 창설(1962)한 미국인 선교사이다.
우리 나라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으며, 미국 연합장로교 외국선교부 한국선교사로 40년간 활약, 정년으로 1976.5.3. 귀국했다.
⇨12월 15일.
⑥ 언더우드(Horace GranUnderwoodt ; 元杜尤 ; 1859.7.19 - 1916.10.12) : ⇨10월 12일.
미국인 선교사․교육자.
1885년 26세의 나이로 미국 북장로교회의 초대 한국선교사로 와 제중원(연세대 의과대 전신)에서 화학・물리학을 가르치고 경신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영신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15년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워 국내 대학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근대 한국 교육의 선구자이다.
1916년 건강이 악화돼 요양차 미국에 머물다 세상을 떠났고,1999.
7.19 서울 마포구 외국인 공원 묘지내에 이장되었다.
* 1대;원두우 ⇒ 2대;원한경 ⇒ 3대;원일한 ⇒ 4대;원요한.
⑦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 1953.7.19 - ? ) : ‘왜?’
27세 청년 하워드 슐츠의 호기심으로 작은 커피점이 세계적인 거대 기업으로 커졌다.
스웨덴계 주방회사의 뉴욕지사 부사장으로 일하던 중 시애틀의 커피점이 전국적 커피 체인점보다 많은 커피추출기를 주문한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기고 1981년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찾아간 커피점의 이름이 ‘스타벅스’. 커피 애호가인 교사 2명과 작가가 1971년 개점해 지역 내에서는 고급 커피점으로 명성을 날리던 스타벅스의 커피 맛에 매료된 그는 1년 후 연봉 7만5,000달러를 포기하고 스타벅스로 직장을 옮겼다.
그는 의욕적으로 확장을 추진해 현상유지를 원하던 설립자들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지친 슐츠는 1985년 ‘일 지오날레’라는 커피점을 차리며 원하던 대로 체인망을 확대해나갔다.
결과는 대성공.
시장을 석권하자 스타벅스도 1987년 380만달러에 사들였다.
인수 당시 점포 11개에 직원 100여명이던 스타벅스는 21년이 흐른 오늘날 45개국 1만6,000여개 점포에서 17만2,000여명이 매출 94억달러(2007년)를 올린다.
극적인 성공을 거둔 슐츠의 성장기도 극적이다.
1953년 7월19일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의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당초 진로는 ‘보다 나은 인생으로 가는 입장권’으로 여겼던 미식축구. 노스미시간대학에 축구장학생으로 들어간 그는 운동으로 크게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졸업 후 ‘제록스’사에 취직,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들였다.
남다른 혜안으로 스타벅스 제국을 이룬 그는 2000년 일선에서 물러나 인생을 즐기다 최근 복귀했다.
감원과 점포정리에 나서야 할 만큼 어려워진 영업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불경기에도 그의 경영능력이 통할지 주목된다.
(서경.2008.인터넷한국일보)
⑧ 기타 오늘의 인물⑨⑩⑪⑫⑬⑭⑮
1646 헨더슨 출생. 스코틀랜드 장로교도.
1662 프랑스 사상가 파스칼 사망
1686 코텔레리우스 사망.프랑스 고전학자.1648년 소르본느대학에 서 박사학위 받고.1676년 그는 프랑스 대학의 희랍어 교수로 임명되었다.
1686 코텔레리우스 사망.프랑스 고전학자.1676년 그는 프랑스 대 학의 희랍어 교수로 임명되었다.
1692 버로우즈 출생.세일램에서 마술에 미혹당한 사람들 중 가장 두드러진 희생자.처형되기 직전 군중을 향한 연설은 청중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감동을 줌
1695 샤름므 출생.프랑스의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한자명 손장.자 는 옥봉.17세때 예수회 회윈이 되었고 1728년 북경에 도착하 였다.
1800 패티슨 출생.설교와 연설로 유명한 미국의 침례교 목사.그는 탁월한 신앙심을 가진 겸손한 인물.
1819 증기기관 발명자 제임스 와트 사망
1840 칠레의 대통령(1889-91) 발마세다 출생
1846 최초의 광도성표인 하버드 광도측정법을 확립한 미국의 물 리학자 피커링 출생
1864 로빈슨 출생.장로교도.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하고 베를린과 라이프치히의 대학교 등지에서 연구함.
1870 미국정치가 버나드 바루크 출생
1871 항공기개발 선구자 오빌 라이트 출생
1883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 출생
1890 함석은 출생.기독교인 독립운동가,교육자.자는 치옥.평양의 숭덕학교 교사로 재직.3.1운동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임.
1895 하워드 출생.감리회 한국 여선교사.한국명 허길래.1955,4,26, 대전보육학원 초대원장으로 취임.초급대학으로 인가를 얻어 초대학장 취임.
1896 영국 소설가 조셉 크로닌 태어남
1896 이원철 출생. 기독교인,천문학자,교육자,성서번역가. 호는 우 남.이원모의 동생.1919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제1회).
1902 미국 유머작가 오그든 내시 출생
1919 미국 출판업자 맬컴 포브즈 출생
1967 김도연 박사 별세
오늘의 세시①②③④⑤⑥⑦
오늘의 샘터
① 에드가 드가의 말 : "전문가들의 대화를 듣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멋진 일이다."
② 오늘의 문답 ③④⑤⑥⑦⑧⑨⑩⑪⑫⑬⑭⑮
제01문 : 당신, <부전자전><모전여전>이란 말 아십니까?
제02문 : 당신은, “나의 아버지는 좋은 분이었다.“라고 생각 하십
니까?
제03문 : 당신, <아버지><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04문 : 당신, “암탉이 울면 새벽이 온다<날이 샌다>” 그리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 아십니까?
제05문 : 당신은, 불<물>같은 <시>아버지<어머니><장인><장모>를
아십니까? <만났습니까?>
제06문 : 당신, 모든 <남자><여자>가 모두 당신의 <아버지><어머니>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제07문 : 당신, <홀아비><아버지><홀어미><어머니><생각><마음><속>
아십니까?
제08문 : 당신, 아이는 <어린 아이>와 <어른 아이>가 있고, 어른 또한 <어린 어른>과 <늙은 어른>이 있는 것 아십니까?
제09문 : 당신, <당신 아이>와 <나의 아이>는 어떻게 다른 가요? <씨><성><성씨>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제10문 : 당신, <아이><i><I ><유><U><You>는 무엇인가요?
제11문 : 당신, <I & U> <I and U> <I & You>는 어떻게 다른가요?
제12문 : 당신, 당신과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요?
제13문 : 당신, 당신과 나는 어떤 <관계><사이><처지>입니까?
제14문 : 당신, <너와 나><당신과 나>는 어떻게 다릅니까?
제15문 : 당신, <I M F> <imf> <아이 엠 에프> <I am F.>는 어떻게 다릅니까?
제16문 : 당신, <시><친><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와 당신과 어떤 관 계<사이>입니까? <원수>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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