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루아, 김화영 역, 현대문학, 2003
<내 생애의 아이들>
학교란 뭘까
특히나 난생 처음 집과 가족을 떠나 맞닥뜨리게 되는
낯설고 거대하고 딱딱한 공간, 이를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없음을,
그 속에 어떤 식이든 자기를 맞춰가고 적응해야 함을 알아차린
조그맣고 동그란 아이들에게 비치는 학교는 어떤 존재일까
이 책에서 소개되는 학교는 지금, 여기, 우리의 학교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니 이 책을 애써 교육적 관점에서 읽을 필요는 없겠다
이 책은 1930년대 캐나다 북부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드넓은
평원지대를 배경으로, 이들의 삶과 함께 엮어진 학교와 아이들의 모습을
신출내기 앳된 교사의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과 애정의 눈을 통하여
그리고 있다.
상상해 보시라
눈덮인 설원 저 너머에서 눈썰매를 타고 학교로 오는 아이들의 그림,
눈보라를 헤치며 스키를 타고 아이집을 방문하는 열아홉 처녀선생의 그림,
온갖 자연의 들썩이는 생명감을 온 몸에 걸치고 봄 들판을 가로질러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과 자연의 그림, 일찌감치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마치고 저 평원 너머로부터 점처럼 찍혀져 보이는 아이들의 등교하는
모습을 온갖 감회로 바라보는 애송이 여선생의 그림, 때로 그 점으로
보이는 것이 한 마리 말의 모습으로, 그 말을 타고오는 제법 머리가
굵은 사춘기 남자 아이의 모습으로 다가올 때 그 풍경의 크기.
그리하여 오로지 대자연의 품에서만 느끼고, 공감하고, 이루어질 수 있는
순수와 신뢰와 연대와 자유의 느낌, 그 끝에서 서로를 느끼며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애틋한 풋사랑의 감정, 그 환희와 고통에 쩔쩔매는.
물론 글 속에는 이 곳 사람들의 곤궁한 삶과 찌든 생활의 모습이 간간이
드러나 보이지만 이에 가닿기에는 아이들의 천진하고 재기발랄한 눈빛과
자연이 만들어낸 크고 아름다운 정경이 너무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니 이 책은 우리에게 동화이고 그림이다. 한 번도 느끼거나 가닿을 수
없는 어떤 것, 그러면서 동경해 마지않는 어떤 세계에 대한.
하지만 글읽기가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
앳된 교사의 눈을 통하기는 하지만 60대의 노작가가 쓴 회고조의
이야기고 보면 문체나 표현은 때로 까다로워 보이기도 하는데,
싱싱하고 생생한 펄쩍 뛰는 생동감으로 와닿기보다 오래 묵히고
익힌 원숙하고 그윽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덧붙여 끝에 붙인 역자의
자로 잰 듯한 해설은 이야기를 대하는 것이기보다 무슨 논문에
밑줄치는 느낌이다. 잰 체하는.)
더하여 이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끝내 동화나 그림에 머물 수
없음은 다시 ‘교육이 무엇인가’, ‘학교가 무엇인가’에 대한 저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물음들이 고개를 내밀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여전히 생것과 날 것으로 서늘하게 와닿는 ‘우리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떨칠 수 없는 숙제로 돌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리라
특히나 이제 갓 낯설고 기이한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어린 아이들,
“이 지상에서 가장 새롭고, 섬세하고, 가장 쉽게 부서지는” 존재로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일, "‘낯선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 (풋내기) 교사로서
이 귀한 아이들을 위탁받은 가슴 뭉클한 감동"과 무거운 책임감을
새롭게 더하는 일. (신참이든 고참이든 새 아이들을 대하는 일이라면
모두 낯설고 서툰 풋내기 아니겠는가)
지금 여기 우리는 얼마나 기쁘고 두렵게, 작지만 더 큰 것으로 여기며
‘내 생애의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첫댓글 다시 ‘교육이 무엇인가’, ‘학교가 무엇인가’에/////지금 여기 우리는 얼마나 기쁘고 두렵게 ‘내 생애의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내 생애 아이들...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요 아이들을 맞는 일, 참 쉽지 않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