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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기억으로 남을 고군산열도 섬 트레킹
1. 일자: 2017. 8. 26 (토)
2. 장소: 무녀도/선유도/장자도
3. 행로 및 시간
[무녀 2구(10:32) -> 해안/도로 갈림(11:00) -> 선유초교(11:26) -> 선유교(11:35) -> 명사십리해수욕장(11:58)) -> 장자교(12:09) -> (중식) -> 대장봉(13:00) -> 장자교(13:30) -> 선유봉 밑(13:40) -> 명사십리 해수욕장(13:55~14:10) -> 선유교(14:43) -> 무녀 2구(15:42) / 17km]
< 선유도 섬 트레킹을 준비하며 >
선유도 고군산열도, 가끔 산악회에 올라오는 공지를 눈 여겨 본 적이 없다. 약간의 호기심이 동한적은 있지만 굳이 찾아가 살필 만큼 흥미가 당기지 않았다. 모처럼 한가한 평일 저녁 다음 산행지를 검색하다 선명한 지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신선이 노닐다 간 섬.’무녀도, 선유도, 대장도와 그 주변에 무수히 많은 작은 섬, 구불구불 길게 이어질 해안. 열도(列島)이자 군도(群島), 예사롭지 않게 굴곡진 해안선의 다이나믹함. 거기에 무녀봉/선유봉/대장봉/만주봉/남악산대봉…. 산봉우리들이 섬을 따라 도열해 있다. 속된말로 훅 간다. 섬의 범상치 않은 형상만으로도 매력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이 먼 섬과 나지막한 산에 열광하는 이유가 비로서 이해된다. 섬 산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 조망의 화려함을 알기에 두말없이 마음을 정한다.
등산 vs 섬트레킹. 내가 경험한 섬 산은 높이로만 산의 격을 논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음을 늘 깨우쳐 주었다. 사량도 지리망산, 거제 망산, 홍도 깃대봉. 섬 산에서 바라보는 바다 조망은 육지 끝에서 바라보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멀리서 바라봄과 현장에서 살피는 것의 차이일 게다. 섬, 그 현장에서 산을 올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
트레킹 코스를 어림잡아 본다. 바다 건너 도로는 무녀도의 초입 무녀2구까지만 나 있다 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다 선유교를 건너 선유봉에 오른 후 대장봉, 망주봉을 오르내린다. 봉우리 사이가 해변이라 볼거리, 먹거리의 유혹이 넘치는 여정이 될 듯하다. 16km 길지만 왠지 부담이 없다. 실제도 그러리라 믿는다.
< 희망사항 >
흔히들 산을 오르고 걷는 행위를 클라이밍 > 하이킹 > 트레킹 순으로 난이도를 매긴다. 갈수록 심해지는 벼랑 울렁증과 타고난 몸의 뻣뻣함으로 클라이밍은 엄두도 못 내고, 그저 이곳 저곳을 오르며 하이킹을 한다. 트레킹, 자연을 감상하는 여행, 등반과 구별되는 건 정상을 탐하는 법 없이 산길을 마냥 걷는 행위이다. 산과 대화를 나누는 등산인 셈이다. 오늘은 그 트레킹을 간다.
여름의 끝자락 섬에서 눈이 즐거운, 높이 부담을 던, 바다와 벗하는, 고운 모래를 밟으며 트레킹을 하고 싶다. 먼 전라도 서해안 갯벌이 간척되어 육지가 넓어지더니만 바다 위에 다리가 놓이고 섬들이 연결된다. 이 인위적 변화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몰라도, 활시위는 떠났다. 변화가 시작된 게다. 공과(功過)의 평가는 뒷일을 하는 사람들 몫이다. 몇몇 육지사람들의 시각으로 환경보호 운운하는 걸 다수의 섬사람들은 마땅치 않게 여길 게다. 육지와 연결되는 꿈은 섬사람들의 로망이리라. 변화에 긍정적 에너지를 더해 주고 싶다. 가서 보고 걷고 뒹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신선이 노닐던 곳과의 인연이 기대된다.
(여기까지는 산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 산행은 이와는 달랐다.)
< 무녀도 가는 길에 >
멀다. 허나 생각보다는 아니다. 220km, 그 끝에는 육지와 섬을 잇는 바다대교가 있었다. 날이 참 좋다. 하늘도 구름도 바다도 색채가 모두 연하다. 어디에도 한여름 뜨거웠던 강렬함은 없다. 하늘에는 양털 구름이 가득하다.
10:30, 바다와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너자 시설공사로 복잡한 섬에 도착했다. 버스는 6시간 후에 다시 올 거라 하고는 회차해 육지로 가 버렸다. 인파, 교통정리, 파헤친 길, 호객행위….. 무녀도의 첫 인상은 어수선함이다.
< 무녀 2구 ~ 명사십리 해수욕장 >
화장실을 다녀 온 사이 일행들은 눈에서 사라졌다. 초장부터 길이 헷갈린다. 대장의 코스 안내를 듣지 않는 게 나을 뻔했다. 장황하기만 하고 너무 많은 정보를 주입하듯 쏟아내어 머리 속에 정리가 되지 않는다. 좌우 측이 헷갈린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향한다. 좁은 해안 길에 차와 자전거 오토바이 등산객이 뒤엉켜 길은 아수라장이다. 와중에 회집으로 손님을 실어 나르는 봉고차들은 연신 경적을 눌러 된다. 가뜩이나 번잡함을 싫어하는 성격에, 화가 잔뜩 난다. 첫 인상이 잘못 각인된다. 속된 말로 찍혔다. ㅋㅋ
물 빠진 갯벌에 배들이 정박해 있고 그 뒤로 작은 섬들이 병풍처럼 도열해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육지야 번잡하든 말든 바다는 고유하다. 구름과 하늘과 바다가 하나된 모습이다. 은은한 풍광이 매력적이다.
15분 정도를 걷자 등대가 있는 작은 포구를 지난다. 번잡함이 잠시 덜해진다. 길이 넓어져 사람들이 흩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해안 절벽에 새로 길을 내었나 보다. 위태롭게 차와 사람이 교차한다. 여기저기서 불만에 찬 소리가 들려온다.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어수선함이 극에 달한다. 이 섬은 등산객을 맞을 준비가 덜 돼있다.
< 무녀 2구에서 본 풍경 >
해안과 바다 풍경은 볼수록 근사하다. 배들이 포말은 그리며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길이 나뉜다. 도로 좌측으로 해안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 데크가 나 있다. 옳거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데크에 올라선다. 잠시 화려한 풍광이 보여지더니만, 해안 산책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대신 산으로 올라선다. 작은 봉우리에 올라 내려다 보는 바닷가 풍경도 근사하다. 숲으로 들어선다. 길이 어수선하다. 별 생각 없이 가고 있는데 대장이 그 길은 무녀봉 가는 길이란다. 돌아 나온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차라리 무녀봉에 다녀 오는 게 나을뻔했다.) 희미하고 어두운 숲을 뚫고 나오니 도로와 만난다. 언덕 하나 넘을 거리를 멀리 돌아왔다.
< 선유도 가는 길에서 본 풍경 >
다시 도로에 들어서니 햇살이 쏟아진다. 섬을 연결하는 도로 공사로 길이 번잡하다. 땡볕을 안고 공사중인 도로를 따라 걸었다. 자전거, 오토바이 등 탈 것으로 이동하는 이들이 내뿜는 먼지가 장난 아니다. 불만이 쌓여간다.
갯벌 넘어 망주봉이 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암괴 두 개가 서로 마중보고 있는 모습이 마이봉을 연상시킨다. (당시엔 그곳이 망주봉인지 몰랐다. 나눠준 지도는 섬 트레킹 안내도로 등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축적이 잘못돼 있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 긴 갯벌이 인상적이다.
도로를 돌아들자 마을이 시작된다. 공사가 끝나고 관광 명소로 이 섬이 변모되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민박과 팬션들이 어지럽게 이어진다. 선유도초등학교를 지난다. 잔디가 곱게 깔린, 작지만 아름다운 학교다.
갈림이 나타난다. 좌측은 공사중인 도로가 이어지고 우측으로는 굴다리를 지난다. 휘어진 표지판은 안내 기능을 못한다. 망설이다 일행들을 따라 우측으로 향한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선유봉을 가려면 좌측으로 갔어야 했다.) 이내 선유도로 연결되는 다리가 나타난다. 차량 출입이 통제된 작은 다리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발 밑으로 유람선이 지나간다. 작은 포구에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출발 후 처음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바라보는 풍경이 근사하다. 바다는 멀리까지 이어진다. 좋다. 맑은 날 바다를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선량하다.
< 선유도에서 본 망주봉과 대장봉 >
선유도에 들어왔다. 처음 눈에 들어온 풍경은 훨씬 가까워진 망주봉의 모습이다. 우람하고 특이해 주위 시선을 확 끈다. 그 다음은 드넓은 해안과 갯벌. 머지 않아 횟집이 들어선 너른 해변에 닿는다. 이곳이 선유도의 다운타운인가 보다. 너른 백사장이 명사십리해수욕장임을 말해 준다. 약 1시간 30분이 걸렸다. 어찌 왔는지 모를 만큼 오는 등로가 번잡했다.
< 명사십리 ~ 대장봉 ~ 명사십리 >
걷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시속 3.5km가 넘는다. 5km를 넘게 왔다. 우측으로 명사십리란 이름답게 이국적 풍취가 확 느껴지는 해변이 길게 이어진다. 여러 해 동안 보아온 해변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로프가 메어진 스카이라인 탑승장을 지나 직진해 얼마 가지 않으니 다리가 나타난다. 장자교다. 그 넘어 대장봉이 우뚝 솟은 장자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다리 위에서 본 풍광은 선유교와 비슷했다. 선유봉은 대체 어디지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일단 눈에 보이는 게 우선이다. 장자교를 건넌다. 마을을 돌아들어 숲으로 향한다. 여름 햇살이 강렬하다.
언제부턴가 ‘구불길’이라는 안내 표지가 자주 눈에 띤다. 무심코 따라 갔는데 길이 끊긴다. 대장봉을 바라보았을 때 긴 나무 계단이 선명했는데 웬 암릉이 나타난다. 바위를 기어 오른다. ‘이 섬은 도대체 등산객을 위한 배려는 조금도 없네’ 하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 그저 감으로 정상으로 향한다. 머지 않아 대장봉에 오른다. 높이 142m, 오늘 지나온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를 통틀어 가장 높은 봉우리다. 최고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무척 근사하다.
< 대장봉 정상에서 본 풍경 >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신구 두 개 다리가 선명하고, 거쳐온 길이 손에 잡힐 듯 분명하다. 원색의 지붕이 이국적 정취를 자아낸다. 한참을 서서 고군산열도 섬들을 조망한다. 길 없는 등로를 헤매던 기억은 벌써 잊었다. 일행 중 한 분은 드론을 날리고 있다. 조작기까지 포함하면 무게가 꽤 나갈 텐데 대단하다. 잠시 드론의 비행을 감상한다.
하산은 나무 계단이 쭉 이어져 빠르게 내려갈 수 있었다. 경사가 가파르다. 이 길로 올랐어도 고생깨나 했겠다. 길을 내려서며 상세히 지도를 살핀다. 명승지 중심으로 안내되어 있고 축적도 실제와 다르지만, 선유봉은 장자교를 건너자 마자 우측에 있다. 다리 우측으로 볼품 없게 생긴 봉우리가 선유봉이다. 이상했다. 부근 섬 봉우리 중 풍광이 가장 좋다 하여 붙여진 이름일 텐데 대장봉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별로다. 그저 펑퍼짐한 언덕이다. 어찌되었건 목표가 정해졌으니 간다. 새로 건설중인 대교를 건너면 바로 접근 가능하지만 혹시나 길이 끊길까 하는 불안에 옛 다리를 다시 건넌다. 예상대로 올 때는 지나친 작은 안내판이 있다. 옳거니 하고 따라 오른다. 한참을 가다 보니 길이 끊긴다. 다리 건설로 절개지가 생기고 등로가 폐쇄되었다. 선유봉은 절개지 바로 위로 올려다 보인다. 돌아선다. 미련을 버린다. 경험은 무리가 가져올 후폭풍을 경계한다.
< 대장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이내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돌아온다. 그새 더 번잡해졌다. 커피 한 잔 사서 해변 벤치 위에 앉는다. 시원스레 펼쳐진 해변, 길게 이어진 모래해변 명사십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그 뒤로 해변을 호위하는 쌍봉(망주봉)이 든든하다.
< 명사십리 해수욕장에서 본 풍경 >
생각에 잠긴다. 오늘은 어차피 산행보다는 트레킹 하러 오지 않았던가?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비록 사람이 아닌 탈 것에 맞춰진 길이지만 섬들을 잇는 도로가 완공되면 등로도 정비될 것이다. 적어도 1년 후면 이 섬에는 등산객을 위한 제대로 된 길이 생길 게다. 선유봉, 대장봉, 망주봉을 잇는 트레팅은 분명 매력적이다. 주변에 볼 게 너무도 많다.
새 길로 무녀도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다. 갔던 길을 되돌아 온다. 선유교를 다시 건너고 무녀초교를 또 지나 무녀 해변으로 왔다. 배가 고팠지만 유원지 음식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날머리 편의점 탁자에서 마시는 맥주의 목 넘김이 무척 좋다. 산꾼에겐 산행 후 마시는 맥주나 막걸리 한 잔이 보약이다.
무녀도 포구 계단에 앉아 곰곰이 지나 온 길을 복기해 본다. 훗날 제대로 된 산행을 위한 초석을 다진다. 기다려라 선유봉아 그리고 망주봉아! 내 다시 오마!!
< 돌아 오는 길 해변과 바다 풍경 >
집에 돌아와 산악회 사이트에 올라온 기막히게 멋진 사진을 바라본다. 명사십리 해변 풍경인데 아마도 선유봉에 올라 내려다 보며 찍은 것 같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멋진 모습을 담은 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듦과 동시에 선유봉의 이름 값은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풍광 때문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에는 역시 그만의 이유가 있구나. 가보지 않고 그저 밋밋한 봉우리라 폄하한 것이 후회된다. 다음에 선유봉을 가야 하는 분명한 이유 하나가 더 생겼다. 우물 안 개구리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 일행이 찍은 선유봉에서 찍은 명사십리 해변 >
< 에필로그 >
출발 전‘신선이 노닐던 곳과의 인연이 기대된다’했는데 현실은 기대에 비치지 못했다. 현장에선 여러 일들이 불만스러웠는데 자고 나니 안 좋았던 기억들은 무뎌진다. 그저 기분 좋은 노곤함에 익숙해져 간다. 긴 여행을 끝내고 나면 소소한 작은 일들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등산이 주는 매력 중 하나다.
산행기를 쓰며 사진에 이름을 붙이나 보니 유독 ‘~~ 에서 본 풍경’이란 표현이 많다. 여느 산처럼 봉우리나 바위, 계곡, 들꽃이 사진의 주인공이 아니고 해변과 봉우리 위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대부분이다. 오늘 여정이 섬 트레킹이었음을 증명하는 모습이다.
내가 경험한 고군산열도의 최고봉은 대장봉, 가장 인상적인 봉우리는 망주봉 그러나 모두들 이 섬의 주인공은 선유봉이라 한다. 그 봉우리는 오르지 못했다. 망주봉도 현장에서는 이름도 알지 못했다. 준비를 꽤 많이 하고 갔는데 머릿속 정보와 지도 그리고 현실은 서로 맞지 않았다. 길은 산꾼이 아니라 트레킹을 위해 만들어지고 안내되어, 지도와 실제를 연결하기도 쉽지 않았다. 다음에 제대로 된 섬 트레킹을 하러 다시 오게 되리라.
오늘 여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어수선’ 이다. 도로 정비가 주된 이유다. 더 나은 고군산열도 관광을 위한 과도기라 여겨진다. 준비 없이 도로와 길이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진 않는다. 시간이 많은 것들을 정돈시키리라 믿는다.
< 고군산열도 트레킹 지도 >
첫댓글 글을 읽으며 신선이 되어
선유도를 노닐다 왔네요~~~
담번엔아름다운 풍경안에서
삼식세끼 계획 한번 추진해 보셔요~~~
기대만 못했어요.
삼시세끼, 벽소령 처럼 동지 규합해 볼까요?
기회가 있겠죠~~
@느리게 동지규합 좋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