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그리파(Agrippa BC63 ~ BC12)
‘마르쿠스 빕사니우스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 황제도 아니고 귀족 출신도 아닌
그는 세계사 책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 美大의 데생 대상으로 항상 교실에
비치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보통은 그를 싸움 잘하는 장군이고 ‘아우구스투스’의 사위 겸,
친구 겸, 최고의 보좌관으로만 알고 있으나 그는 판테온을 비롯한 대단한 건축물을 세우고
세계지도를 작성한 인물이다. 지도는 실제로 이집트나 기타 중근동의 전문가, 기술자들을
모아 만들었다.
선구안(選球眼)이 뛰어난 ‘카이사르’에게 17살에 발탁되어 ‘옥타비아누스’의 군사부문 협력자
로 ‘아우구스투스’가 이긴 모든 전쟁은 이 사람에 의한 것이다. 시골의 이름없는 집안 출신이
라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으나 열등감 없는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 아그리파의 얼굴 조각상이다. 美大生들이나 그림을 배우는 초보자들의 데생 자료로 쓰이는
얼굴이다. 왜 그의 얼굴이 선택되었는지는 모르나 대단히 남자답다. 그로테스크한 특징 때문
이라고 추정되지만 그의 일생은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그의 군사적 안목과 재능으로 로마의 방어망은 아주 훌륭한 체계를 갖추었다. 현재 독일의 大
도시 중 하나인 ‘쾰른’의 옛 이름은 “콜로니아 아그리피넨시스”인 바 “아그리파 의 식민지”라
는 뜻이다. 즉 아그리파가 건설한 로마의 군단기지였다.
그는 문명도가 높았던 東邦(아테네 포함, 시리아, 유대, 소아시아, 파르티아 등)에 神殿을 정비
하고 문화적, 사회적, “팍스 로마나”를 수립했다. [*이 책에는 시종일관 동방(동양이 아님.)의
富와 문화가 로마를 제외한 서방세계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온다. 이들은 당시 동양세계를
알지 못하고 동쪽에 있는 위의 나라들을 동방 이라고 칭했다.]
그의 공적 중 유명한 “판테온 신전(萬神殿)”은 지금도 로마 시내에서 이탈리아에 돈을 벌어
주는 관광상품(Tourist Attraction) 중 하나인데 로마제국 시대의 온전한 건물 중 유일한 것이
다. 공중목욕탕(*그냥 목욕탕 크기가 아님)을 짓고 물을 대기 위해 수로를 만들었는데 그 수로
가 지금도 “트레비 분수”와 로마 시내에 물을 대주고 있다.
그는 제국 전체에 훌륭한 건축물을(水路 포함) 숱하게 건설했으나 그의 개인 집이나 별장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죽을 때 전 재산을 ‘아우구스투스’ 에게 남기고 죽었다 (26년
먼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능 있는 노예나 외국인을 모아 들여 공공사업을 완성했다(주로 그리스人- 그리스인들이 재능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는 공공사업도 잘 했지만 ‘아우구스투스’의 외동딸 ‘율리아’가 자식도 없이 젊어서 과부가
되자 핏줄에 집착하는 황제의 의도를 기꺼이 받아들여 멀쩡하게 잘 살던 마누라와 이혼하고
‘율리아’와 결혼해서 3남 2녀의 풍성한 결실을 맺어 동갑내기 친구이자 상관이고 장인인 ‘아우
구스투스’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었다. 워낙 건장해서 ‘아우구스투스’의 임시 후계자가 될 것으
로 믿었던 그는 51살의 나이에 어이없이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반대로 타고난 허약한 위장과 약골의 체질로 골골대던 황제는 먹는 것, 자는 것, 운동하는 것,
전투 등 무엇 하나 씩씩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나 자연에 몸을 맡긴 채 자고 먹고(아주
적게 먹었다고 한다.)하며 불굴의 의지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버티다 보니 70이 넘도록 장수했
다.
‘카이사르’는 뭐든지 잘하는 천재적인 쾌걸 남아이고 ‘아우구스투스’는 지성적이고 냉철하고
공명정대하지만 내성적이고 몸으로 부대끼는 것은 피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죽일 때 죽이는
냉철함은 양부 ‘카이사르’보다 강했다.
● 마이케나스(BC70~BC8)
‘가이우스 마이케나스(Gaius Maecenas)’. ‘아그리파’가 ‘아우구스투스’의 오른 팔이라면 그는
왼 팔이다. ‘아그리파’ 보다는 나은 지방의 유서 깊은 “기사계급” 집안 출신이다. 이 사람은
‘아우구스투스’가 발탁한 인물이다. 그는 한 마디로 뛰어난 외교관으로 또 협상의 달인으로
황제를 받쳐주었다.
20대 초반에 ‘카이사르’를 죽인 ‘부르투스’를 토벌하기 위해 필리피 들판에서 두 사람이 만났
다. 10년 후 ‘안토니우스’를 격파할 때까지 그는 물 밑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다. 결론적으로
‘아그리파’와 ‘마이케나스’가 없었다면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통치자가 될 수 없었다는 얘기
가 된다.
혼란할 때는 비밀교섭 등 맹활약을 했지만 이제 공식적인 절차에 따르는 로마 에서는 황제는
그에게 공식적 직함을 주지 않고 자문역을 맡겼다. 그래야만 항상 곁에 둘 수 있었기 때문이
다. 그래서 그의 조각상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공식 적으로 문화, 홍보 담당이었다. 그는
아그리파가 죽고 4년 후 세상을 떠났다. 저런 참모들이 그렇게 일찍 죽다니…
첫댓글 나이나 출신 성분에 상관 없이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는 카이사르 식 실용주의가 인상적이네. 한국에서 계속 지연, 학연 따지다가는 망할 것이네. 지금 적폐 청산인지 지랄인지는 조선시대의 사색 당쟁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네. 정권이 바뀌면 또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 같아서 걱정이고. 여든 야든 그리고 국민 모두 이번 시장 선거가 준 교훈이 뭔지 잘 따져 봐야 할 것이야. 유불리만 따져서 정치 공학적으로만 생각한다면 백년하청일세.
그러게... 지구가 전부 그렇게 돌아간다고 또 미국도 민도가 예전만 못하다고 할 정도로 시끄러운 세상이지만 하여튼 도덕 과 윤리에만 죽자고 매달리는 우리네 사람들은 제발 좀 정신차리고 합리적으로 판단해 주었으면 ... 나도 그러고 있겠지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