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백석공소
설립일: 1977년 11월 21일
백석리에 전교가 된 것은 1970년대 초반으로
이주영, 박현경(안드레아), 박혜신(수산나)등 교우들의 공로가 컸다.
1977년 11월 21일 백석리, 양우리를 관할 구역으로
신합덕본당 백석리공소가 설립되었다.
현재의 공소 건물은 1977년에 시멘트벽돌조(연면적 66㎡)로 건축된 것으로
이주영 회장이 부지를 희사하고, 본당의 지원과 교우들의 모금으로 이루어졌다.
건물 수리로는 1990년대 초 건물의 주출입구 상부에 위치했던 종탑구조물 철거가 있었다.
2015년 순성성당 설립으로 관할이 이관되고
공소는 공동체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관할 본당: 순성성당
충남 당진시 순성면 백석길 71
82. 율사리(남산)공소
남산공소는 신앙의 자유를 맞이한 후
합덕성당 크램프 신부의 사목 담당 공소로 재개되어
초대 조익환 프란치스코 회장집에서 신자 44명이 공소예절을 했다.
6.25한국전쟁 이후 임재인 안토니오가 2대 회장을 맡아보았고,
1956년 폐가옥을 해체하여 얻어진 목재로 25.92㎡ 규모의 한옥식 공소를 건립하였다.
토지와 공사비는 임 회장이 봉헌하였다.
2000년경 공소가 폐지되고 주택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소유권도 몇 차례 변경된 상황이다.
관할본당: 순성성당
충남 당진시 면천면 오봉대길 65-31 (율사리 370번지)
83. 원머리(한정)공소
설립년: 1876년
충청도 관찰사 박종악의 수기(1791~1792년)에 의하면
이미 이존창이 내포에 복음을 전할 때부터 신평의 엄도(음섬)와
신당쪽에 복음이 전해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수 차례의 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이곳으로 피난 오면서
자연스럽게 교우촌이 형성되었지만
병인 대박해(1866-68년)시기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때 원머리 지역에서 잡혀가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치명한 분이 20명이다.
1873년 박해가 진정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던 신자들이 되돌아와
신앙공동체가 서서히 복원되면서
이 지역 최초의 원머리공소(1876년)가 설립되었다.
1883~4년 두세 신부의 첫 방문으로 신앙 공동체가 활기를 띄면서
더욱 공소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두세 신부에 의해
내포지방 최초로 언문과 경문을 가르치는 교리 소학교(1891년)가 설립되었다.
신자들이 교리교육 및 냉담자 권면, 예비자 교리교육 등도 이곳에서 실시되었다.
원머리공소가 1914년 행정개편에 의해 ‘원머리’를 ‘한정’으로 사용하여 왔으나,
옛 원명 찾기 일환으로 2016년 교구의 승인을 얻어
공소 명칭을 ‘원머리’로 변경하여 현재 사용 중에 있다.
옛 공소는 1930년경 건립된 토벽집 초가지붕 형태의 공소였으나 현재는 멸실되었고
1962년 현 공소(강당)를 봉헌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관할본당: 신평 성당
충남 당진시 신평리 한정길 4-20
84. 새터(매산)공소
설립년: 1886년
새터공소는 원머리공소라는 명칭아래
한 지역안에서 음섬 등과 함께 신앙 활동을 해 오다가
빠른 속도로 교세가 늘어나면서 새터공소(1886년)로 분리, 설립되었다.
당시 간척사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와
새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기에 ‘새터’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박해시대인 1854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성영회(聖孾會)를 도입한 이후
지속적으로 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실시해 왔다.
1929년에는 성탄구유 헌금을 모아 서울 고아원에 보내는 등
다양한 활동으로 중흥기를 이루는데
일제강점기 이후 더욱 활발한 활동으로
1970년대까지 새터공소에서는
매우 엄격한 교리교육과 공소예절 등을 실시해 왔다.
현재 이농 현상으로 공소의 교우 숫자가 현격히 줄어들어 고령화 되면서
인근 맷돌포공소를 합쳐 구역과 공소의 기능을 함께 병행하고 있다.
‘새터‘공소가 1914년 행정개편에 의해 ’새터‘를 ’매산’으로 사용하여 왔으나,
옛 원명 찾기 일환으로 2016년 교구의 승인을 얻어
공소 명칭을 ‘새터’로 변경하여 련재 사용 중에 있다.
새터 옛 공소(강당)는 1917년 이전에 지어진 한옥 목구조 초가 형태의 건물이었다.
현 공소는 보드뱅 신부가 설계하고 1956년에 착공하여
1960년 6월 15일 원형근(라리브)주교의 집전으로 봉헌되었다.
충남 당진시 신평면 샛터길 13-4
85. 음섬공소
‘음세미‘ 혹은 ’음섬이‘ 라고도 불리는 음섬 지역은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3면이 바다로 둘려싸여 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음섬 공동체는 충청도 관찰사 박종악의 수기(1791~1792)에 의하면
이미 이존창이 내포에 복음을 전할 때부터
신평의 엄도인 이곳에 복음이 전해져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고
병인 대박해 때에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박해가 끝난 후 피난갔던 신앙인들이 돌아오면서
음섬의 ‘피아티’라는 공소가 시작되었는데
이는 ‘피난처’를 일컫는 말이다.
행정 구역상 음섬과 같은 마을에 속해 있던 새터의 교세가 점점 증가하면서
1915년 이래 바닷가 안쪽인 음섬 공동체가 별도의 집회를 갖게 된 것이
음섬 공소의 기원이 되었다.
1929년 정식으로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 후 성장을 거듭하여 1988년, 맷돌포지역에 공소를 분리해 주었다.
음섬 옛 공소(강당)는 1930년경 지어진 흙벽돌조 초가형태의 건물이었다.
현재의 공소는 1957년 7월 10일 원 안드레아노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 축성된 건물로
이 지역내 3개소의 공소 중 가장 먼저 건립된 공소이다.
충남 당진시 신평면 음섬이길 12
86. 산성리공소
설립년:1902년
1967년 서산성당 관할에서 당진성당에 편입.
1898년에 세워진 염솔공소가
1902년부터 산성공소로 대체됐다고 전해진다
1996년 공소 주변에 위치한 사성·마중·천의·도산·
봉성공소들과 함께 돌마루공소로 통합됐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 317-1
87. 봉성리공소
설립년: 1952년
초대 공소 회장 선출 전에는 1953년까지는 도산리공소로 미사 참례하려 다녔고,
이후 이영교, 윤석우, 박영식 교우 가정집에서 공소예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4대 박영식(토마) 공소 회장 집에서 공소 예절을 끝으로
공소 건물이 신축되어 신축한 공소 건물에서 공소 예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1996년 돌마루 공소 봉헌식을 기점으로
6개 공소(봉성리, 마중리, 산성리, 도산리, 천의리, 사성리)가
돌마루 공소로 통합되고
6개 공소 신자들은 돌마루 공소로 미사 참례를 하려 다닌다.
봉성리 공소 사용 했던 건물은 현재 개인의 소유로 되어 있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 봉성리
88. 마중리(마새)공소 터
마중리에 자리한 자리한 이 공소의 본래 이름은 마새(馬沙)였다.
조선시대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온 순교자들의 후손들이
논농사와 화전을 일구어 정착하면서
교우촌을 이루어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곳이다.
1884년 41명의 교우들이 있었다는 첫 기록이 있은 이후
성장을 거듭한 이 공동체는
1897년 첫 공소 건물(3월 5일 상량)을 이 자리에 마련하였다.
당진과 서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공소 중 하나로서 지역 복음화에 큰 역할을 하며
1950년대 말에는 200여 명의 교우를 헤아릴 정도로 번성하였다.
지금은 산업화로 교우들이 지역을 떠나가면서 교세가 약해져
공소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고,
남아있는 교우들은 현재 돌마루공소로 미사참례를 하고 있다.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마중리 337번지
89. 도산리공소(터)
설립년:1947년
도산리공소는 1945년 강 아가다(애칭 인천 할머니, 마중리), 계숙원(마리아),
최종옥, 이이동(벨라도), 김숙자(아가다)의 병자방문,
교회서적(교리강령,십이단,교리문답)을 무료로 보급하는 등
헌신적인 선교 활동으로 4명의 일가족을 영세 시키고,
지금의 이길성(베드로)의 사랑방에서 주일 공소예절을 지켰으나
장소가 협소하여 1948년 계숙원(마리아)할머니 댁으로 옮겼고,
이즈음 계원숙(마리아)할머니 아들 박찬경(비오)이 입교하여 영세받으면서
신자수는 6세대 20명이 넘게 되었다.
또한 당시 항곡리 공소회장이었던 장동훈(방지거)은 20리길이나되는 이곳을
주일마다 찾아와 경향잡지를 보급하고
교무금 납부에 대한 설명을 하는 등 많은 홍보를 하였다.
1950년 동네 이장을 보던 박찬경(비오)은 지식과 재능을 갖춘 재력가로서
전교에 많은 힘을 모아 마침내 도산리공소를 신축하여
1960년 4월 10일에 유인성(하비에르)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축성식을 가지게 된다.
1996년에 돌마루공소 봉헌식을 기점으로 6개 공소
(도산리, 봉성리, 산성리, 천의리, 마중리, 사성리) 통합 때에
돌마루공소로 통합되었다.
공소건물은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지붕이 날아가버리는 등
복구가 어려운 파손으로 인해 2011년 3월 말 철거했다.
충남 당진시 정미면 도산리 산 95번지
90. 돌마루공소
1994년 12월 1일 고산공소를 당진포공소로 개칭
1995년 개축 준공
1996년 11월 14일 강당 봉헌
돌마루공소기 봉헌 되는 날 부터 인근 6곳의
마중리공소, 산성리공소, 도산리공소, 천의리공소, 봉성리공소, 사성리공소들이 통합됨.
관할본당: 당진 성당
충남 당진시 정미면 충장로 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