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 68
그들이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온 시간은 벌써 밤 아홉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진철은 피곤한 몸으로 술을
마신 탓인지 적지 않게 취한 것 같았고 진우는 이미 늦어버린 출근 시간이지만 가능한 빨리 업소로 가야한
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서두른다.
그들이 택시를 타기 위해 식당 골목을 지나 모텔 골목으로 접어드는데 그들을 앞질러 두 남녀가 무엇인가
조잘 거리면서 웃으며 지나가다가 어느 모텔 앞에서 작은 실랑이를 시작하였다. 아마도 남자가 모텔로 들
어가자고 하는 것인지 모텔 입구를 등지고 여자의 팔을 잡고 있었고 여자는 싫다는 듯 발을 뻗대고 있는 모
습이었다. 그렇게 잠시 실랑이를 하는 것 같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여자가 남자의 팔에 이끌려 안으로 들
어갔다.
진철과 진우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다가 마침 택시가 저만치서 오기에 손을 들어 택시를 불렀고 택시는
그들의 앞에 와서 정차한다. 그런데 진우가 택시의 문을 열고 막 타려는데 조금 전 모텔로 들어갔던 여자가
후다닥 뛰어 나오더니 진우를 밀치고 택시에 올라타면서
-죄송해요
하고는 문을 닫아버린다.
어이가 없어진 진철과 진우였지만 순간 그 상황을 눈치 채고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내리라 할 수는 없겠기
에 그냥 놔두었다. 택시 안에서 여자가 기사에게 어디로 가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 때 여자를 끌고
들어갔던 남자가 뛰어 나오더니 막 출발하려는 택시를 가로막고 서서 여자더러 내리라고 한다.
남자의 눈치를 살피던 여자는 할 수 없는지 택시에서 내렸고 여자가 내리자마자 남자는 여자를 붙잡더니
-너 정말 이럴 꺼야!?
-싫다 그랬잖아!
-그렇다고 들어갔다가 다시...... 정말 창피해서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였다. 택시를 잡았다가 여자 때문에 타기를 포기했던 진철이 남자와 여자의 실
랑이를 잠시 보더니 눈매가 치켜떠지고 얼굴이 굳어지더니 두어 걸음 앞에서 여자를 붙잡고 말하는 남자
의 어깨를 확 잡아채면서
-이것 봐!
말을 하는 동시에 주먹으로 남자의 얼굴을 쳐 버린 것이었다. 남자가 억! 하면서 주저앉아 버리고 여자는
어머! 하면서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앞에 앉아서 남자의 얼굴을 보더니 이거, 피잖아! 하면서 벌떡 일어서
서 진철을 쏘아본다.
그 사이 남자도 일어섰고 남자의 코에서는 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택시는 진철과 남자의 싸움이 벌어
지는 것을 보더니 다른 손님을 태우기 위해서 떠나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명보원님!
진우가 진철의 팔을 잡아 당겼지만 진철은 진우의 손을 뿌리치면서 눈길을 그 남자에게서 돌리지를 않는
다. 남자가 손으로 코를 팩! 푸는데 핏덩어리가 발 앞에 툭! 떨어진다.
-당신 뭐야!?
남자의 목소리가 험상궂게 나오자
-당신, 조심해!
진철이 험악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면서 으름장을 놓는다. 그러자 남자가 주먹을 쥐더니 진철에게 날리
는데 진철이 남자의 주먹을 피하면서 발로 남자의 무릎 밑을 강하게 차 버렸고 남자는 다시 헉! 하더니 주저
앉아 버린다.
그러자 여자의 앙칼진 소리가 튀어나오는데
-아저씨는 뭐예요!?
자기들의 일에 왜 상관없는 사람이 끼어들었냐는 여자의 항의였다. 그렇게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는 데 경
찰차가 앞으로 다가오더니 섰고 경찰관 두 명이 그들에게로 다가오더니
-신고 받고 왔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한 명이 정중하게 경례를 하면서 묻는다.
그러나 주저 앉아있던 남자가 일어서면서
-다짜고짜 이 남자가 저를 이렇게
하면서 코피가 나는 얼굴을 경찰관 앞에 들어 보이는데 피는 그런대로 멈추었지만 코와 입술 까지 피가 묻
은 채 굳어 있었고 코를 중심으로 입술 주변까지 부어있었다.
-글쎄 말입니다. 우리가 저녁을 먹고 나는 조금 더 놀다가자 그러고 제는 집에 가야 한다고 하면서 실랑이를 하
는데 저 남자가 이유도 없이 다가와서 나를 이렇게 개 패듯 했단 말입니다.
지구대 안에서 남자는 열심히 자기의 정당성을 말하고 있었고 여자는 뒤에서 말없이 서 있다.
남자의 설명을 다 듣고 난 경찰이
-그래요? 그렇다면 당신 말대로라면 저 분은 폭행죄가 성립되는데
하더니 진철을 보면서
-이 분 말이 맡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진철이
-그러게요. 어떻게 노느냐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분명 남자는 더 놀고 싶어 했고 여자는 싫어 한 것은 맞지요.
하면서 여자 쪽을 보면서 비웃는 것 같은 웃음을 보낸다.
경찰은 다시 여자에게 물었다.
-이 말이 다 맞습니까?
그러자 여자는 우물쭈물 하더니
-예!
하고 간단하게 답을 하는데 진우가 곁에서 보니 꼴 볼견이다. 한 마디 하려고 한 걸음 경찰 가까이 떼는데
진철이 슬쩍 가로 막는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보니 큰 상처는 아니겠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 같은데, 피해자 분이 치료비
정도 받으시고 합의 하시지요. 아니면 고소를 하셔야 하는데 그거 보통 복잡한 거 아닙니다.
하면서 은근하게 합의를 종용한다. 하긴 경찰 입장에서도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는 한 이런 일로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을 테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양쪽 다 좋겠다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진철은 언젠가 대리로 차를 몰았던 손님이 생각난다.
그 날 진철은 병점에서 손님을 태웠다. 배웅 나온 친구가 요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건네주면서 잘 데려다 주
라는 부탁을 하였지만 이미 취할 대로 취한 손님이었기에 친구에게 대강의 주소를 듣고 출발을 한 것이다.
수원 구치소 바로 앞 쪽의 골목에 있는 빌라라고 하였으니 그 근처에 가서 찾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출
발을 한 것인데, 편하게 생각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을 수도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이! 어디로 가는 거야?’
하면서 시작된 주정은 구치소 앞까지 가는 동안 계속 되었고 심지어 주먹으로 진철의 어깨를 툭툭 치기까
지 하였는데 문제는 근처에 도착해서도 집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술에 취한 손님을 차에 그대
로 두고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집이 어딘가를 여러 번 묻자 알아서 갖다 놓으라면서 주먹을 휘두른다.
그런데 마침 경찰 순찰차가 지나간다. 진철은 내려서 경찰에게 부탁을 하니 경찰이 바로 차량 번호로 주소
를 조회하고는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하는데 손님의 집은 바로 그 안 골목의 빌라였던 것이다.
진철은 내려서 손님에게 집으로 들어가라고 문을 열어주었고 차에서 내리던 손님이 무턱대고 주먹을 날리
는 바람에 진철은 아무 준비 없이 맞고 말았다. 화가 나서 쥐어 박으려는데 경찰이 그만 참으라고 말린다.
그래서 진철은 경찰관이 분명 내가 맞는 것을 보았으니 폭행으로 고소 하겠다고 하자 복잡하게 만들지 말
고 요금을 받았으면 나머지는 자기들이 해결할 테니 얼른 가서 일이나 하라면서. 돌아서는 진철은 그 사내
가 경찰에게 시비 거는 소리를 들으면서 혀를 찾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잠시 하는데 갑자기 진우의 목소리가 지구대 안을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