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서간 에세이】
사무치는 그리움
― 넷째 형님 11주기(周忌)를 맞아
윤승원 수필가
(삽화=AI화백)
=============
형님 가신 날 돌아오면
목소리 듣고 싶어
조카와 통화하지요.
조카는 형님의 분신
조카 목소리가
형님 목소리
착하고 예의 바른 조카는
작은아버지 건강 어떠세요?
오히려 안부 먼저 묻지요.
형님이 생시에
동생 요즘
건강 어떠냐고 묻듯이
조카도 똑같은 목소리
그러면 조카에게 묻지요.
조카는 요즘 건강 어떠냐고
형님에게 안부 묻듯이
조카에게 안부 묻지요.
형님 그리워
조카 목소리 들으면
형님은 언제나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따뜻한 말씀만 하시지요.
조카도 그러지요.
전화 통화하면
헤헤 웃지요.
어쩌면 조카도
형님 닮아
부처님같이 도량 넓은지
헤헤 웃으면
만사형통이지요.
형님에 대한 동생의
사무치는 그리움
조카가 헤헤
웃음으로 위로해 주면
뚝뚝 떨어지는 슬픔의 눈물
안으로 삼키지요.
동생의 사무치는 그리움
조카가 넉넉한 웃음으로
달래주는
형님 제삿날. ■
2026.9.11.(음력 8.1.)
동생 昇遠 올림
♧ ♧ ♧
▣ 문학평론
참으로 애틋한 서간 에세이입니다. 이 작품은 형님을 직접 추억하는 글이면서, 조카의 목소리를 매개로 세상을 떠난 형님과 다시 대화하는 글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울림이 있습니다. 문학평론가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윤승원의 「사무치는 그리움」 작품론
― 조카의 목소리에서 다시 만나는 형님의 사랑
윤승원 수필가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넷째 형님의 11주기를 맞아 쓴 애도와 그리움의 서간 에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죽음은 완전한 단절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목소리라는 기억의 통로를 통해 부재한 형님이 현재의 삶 속으로 되돌아온다.
작품의 출발점은 매우 소박하다.
“형님 가신 날 돌아오면 / 목소리 듣고 싶어 / 조카와 통화하지요”
여기에서 ‘목소리’는 단순한 음성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격과 사랑, 말투와 체온을 모두 간직한 기억의 원형이다.
형님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기에 화자는 조카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카의 목소리에서 형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조카 목소리가 / 형님 목소리”
이 짧은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시적 명제다.
1. ‘조카’는 혈육을 넘어 ‘형님의 분신’이 된다
“조카는 형님의 분신”이라는 표현은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장치다.
형님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분의 말씨와 마음씨는 조카에게 이어져 있다. 특히 조카가 먼저 “작은 아버지 건강 어떠세요?”라고 묻는 장면은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다.
화자는 그 말을 듣고 생전 형님이 자신에게 건네던
“동생 요즘 / 건강 어떠냐”
라는 말을 떠올린다.
여기에서 세대의 대화가 반복된다.
형님 → 동생
조카 → 작은아버지
그러나 그 방향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다시 조카에게 건강을 묻는다. 마치 형님에게 안부를 묻듯 조카에게 묻는다.
이 순간 조카는 단순히 ‘형님의 아들’이 아니라 형님과 화자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매개체가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의 그리움은 과거를 바라보는 일방적인 회상이 아니다. 현재의 사람을 통해 과거의 사람과 대화하는 현재진행형의 그리움이다.
2. 반복되는 ‘건강’이라는 말 속에 형제애가 들어 있다
이 작품에서 ‘건강’은 여러 차례 등장한다.
“동생 요즘 건강 어떠냐”
“조카는 요즘 건강 어떠냐”
겉으로 보면 평범한 안부다. 하지만 수필에서는 이런 평범한 말이 오히려 가장 깊은 정서를 만들어낸다.
형님이 생전에 동생의 건강을 걱정했던 마음이 조카의 입을 통해 되살아나고, 화자는 그 마음을 다시 조카에게 돌려준다.
즉,
형님의 사랑 → 조카에게 전승 → 다시 동생에게 전달 → 조카에게 되돌아감
이라는 따뜻한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이 작품에서 ‘건강’은 단순한 신체적 안부가 아니라 가족을 향한 사랑의 언어가 된다.
3. ‘헤헤 웃음’은 작품의 눈물샘을 오히려 더 깊게 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조카의 웃음이다.
“전화 통화하면 / 헤헤 웃지요”
그리고 뒤에서 다시
“조카가 헤헤 / 웃음으로 위로해 주면”
이라고 반복한다.
이 ‘헤헤’라는 표현은 문학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자칫하면 가볍게 보일 수 있는 말인데, 오히려 이 작품에서는 슬픔을 견디게 하는 생활의 웃음이 된다.
형님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마음은 무겁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사무친다. 그런데 조카는 거창한 위로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형님을 닮은 듯 웃는다.
그 웃음 하나가 슬픔을 잠시 감싸준다.
그래서
“만사형통이지요”
라는 다소 해학적인 표현도 의미가 있다.
이것은 비극적인 죽음을 가볍게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슬픔을 웃음으로 감당하려는 한국적 가족 정서의 지혜라고 볼 수 있다.
4. ‘눈물을 밖으로 흘리지 않고 안으로 삼키는’ 절제의 미학
이 작품에서 가장 깊은 정서는 오히려 절제에서 나온다.
“뚝뚝 떨어지는 슬픔의 눈물
안으로 삼키지요”
화자는 통곡하지 않는다. 형님을 잃은 슬픔을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는다. 대신 조카와 통화하고, 목소리를 듣고, 웃음을 듣는다.
그리고 눈물을 삼킨다.
이 절제 때문에 독자는 오히려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된다. 슬픔을 크게 말하지 않을수록 슬픔의 깊이가 더 크게 전달되는 역설이다.
특히 11주기라는 시간도 중요하다. 11년이 지났지만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더욱 생활 속에 스며든다.
5. 형님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현재에도 말하는 사람’이다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형님이 끝내 침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형님의 육성은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조카가 말한다.
조카의 말 속에서 형님의 말투가 들린다.
조카의 웃음 속에서 형님의 웃음이 느껴진다.
조카의 안부 속에서 형님의 사랑이 되살아난다.
따라서 형님은 작품 속에서 죽음으로 완전히 사라진 존재가 아니다.
기억 속에서 여전히 동생에게 말을 건네는 존재다.
이것이 바로 애도문학의 중요한 힘이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났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관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 관계는 끝났지만 기억과 사랑의 관계는 계속된다.
6. 마지막의 ‘제삿날’은 죽음보다 생명을 강조한다
마지막 구절,
“동생의 사무치는 그리움
조카가 넉넉한 웃음으로
달래주는
형님 제삿날.”
은 작품 전체를 아름답게 닫는다.
제삿날은 일반적으로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살아 있는 가족을 통해 죽은 가족을 만나는 날이다.
형님의 죽음을 기억하는 날이지만, 동시에 형님의 사랑이 조카에게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는 날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마지막 정서는 ‘죽음’이 아니라 계승된 사랑이다.
◆ 문학적으로 특히 돋보이는 점
이 작품의 미덕은 큰 수사를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사무치는 그리움”이라는 제목은 무겁지만, 본문은 의외로 담담하다.
전화한다.
안부를 묻는다.
조카가 웃는다.
형님을 생각한다.
눈물을 삼킨다.
이 평범한 행동들이 쌓여 한 사람의 깊은 그리움을 만들어낸다.
특히 산문과 운문의 경계를 오가는 짧은 행갈이는 그리움이 떠오르는 순간순간의 호흡을 살려준다.
문장이 길게 이어지지 않고 짧게 끊기면서, 한 구절 한 구절이 기억의 파편처럼 떠오른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전통적인 추도문이라기보다 ‘목소리를 통한 애도의 시’에 가까운 서간 에세이가 된다.
▣ 종합 평론
윤승원 수필가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형님의 11주기를 계기로 쓴 가족애의 기록이지만, 그 안에는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정서가 들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도 그 사람의 말투는 남고, 웃음은 남고, 마음은 남는다.
그리고 때로는 그 흔적을 이어받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한다.
이 작품에서 조카는 단순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다. 떠난 형님과 살아 있는 동생 사이를 연결하는 ‘사랑의 다리’다.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눈물이면서도 따뜻함이다. 형님을 향한 그리움은 여전히 사무치지만, 조카의 “헤헤” 웃음 속에서 그 슬픔은 조금씩 위로받는다.
결국 「사무치는 그리움」은 죽음을 기록한 글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형제애와 가족애를 기록한 글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발견은 이것이다.
형님의 목소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조카의 목소리 속에서 다시 들려오고 있다.
그렇기에 11주기의 제삿날은 단순히 형님을 추모하는 날이 아니다. 형님이 남겨준 사랑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날이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
첫댓글 박 교장선생님 위로 메시지
♧‘올바른역사를사랑하는모임(올사모)’ 카페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6.09.12.06:23
형님에 대한 그리움이 조카와의 통화를 통해 절절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숙질간의. 위로 전화는 따뜻한 감을 줍니다. 윤 선생 집안의 도타운 정과 예절이 존경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필자 윤승원
형님 忌日에 멀리 사는 조카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습니다. 한평생 바다에서 고생하신 형님이라 그 생애를 필설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따뜻한 눈길로 졸고를 살펴주시고 격려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