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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손들지 않는 기자들.질문이 교육이다 / 질문하는 인간 Homo interrogatorius
ysoo 추천 0 조회 76 15.07.22 15:3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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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ipe For A Journalist

 

 

질문하는 인간 Homo interrogatorius

 

손들지 않는 기자들

 

늘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질문이 사무(事務)이며 생업(生業)인 사람은 누구인가? 학생은 배우기 위해 질문하고 판사와 검사·경찰은 어떤 사실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심문·신문한다. 그런 이들에게도 질문은 사무이며 생업이자 학업일 수 있다.

 

제대로 된 언론 보도, 정확하고 좋은 질문이 우선

 

그러나 질문으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 첫 손가락에 꼽을 존재는 역시 기자, 언론인이다. 기자는 질문을 토대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고 확인하고, 그 사실을 보도하고 논평하고 해설한다.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충격적 특종은 물론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소소한 사실의 의미에 대한 정밀 분석이나 심층 논평은 모두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상과 사람의 일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고 논평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 정확한 질문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제대로’가 결코 쉽지 않다. ‘제대로’는 어떤 사실을 왜곡이나 오해 없이 편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세상과 사람의 일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고 논평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 정확한 질문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제대로’가 결코 쉽지 않다. ‘제대로’는 어떤 사실을 왜곡이나 오해 없이 편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언론의 전통적 지향점은 빠르고 바른 것, 신속과 정확이다. 미디어의 존재가치가 크고 언론이 오피니언 리더로서 굳건히 작동하던 시기에는 특히 신속성이 강조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언론의 정보 독점이나 배타적 지위가 허물어진 시대에는 신속성보다 더 중요한 게 정확성이다. 마찬가지로 정보의 넓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깊이이다. 좋은 질문은 그 깊이를 획득하는 바탕이다.

 

나는 기자로서 10년째가 된 1985년 5월 남북적십자회담 취재를 맡은 일이 있다. 그때 안기부 직원들이 북한 사람들을 취재할 때의 주의사항 몇 가지를 미리 교육한 적이 있다. 기자라고 완장을 단 사람들도 사실은 기자가 아니라 기관원이니 말조심하라는 당부는 으레 그러려니 했지만 취재의 요령을 알려준 게 인상적이었다. 아침에 북한 사람들을 만났을 때 “식사하셨습니까?” 하고 묻지 말고 “아침 식사에선 뭐가 맛있던가요?” 하고 물으라는 것이었다.

 

식사 여부를 물으면 “예, 아니오” 밖에 대답이 나오지 않지만 뭐가 맛있었느냐고 물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취재를 처음 익히던 견습기자 시절에 선배들도 이야기해준 바 없는 코치였다. 그 뒤 나는 이 말을 후배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해주곤 했다.

 

나는 신문기자이므로 신문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방송에 대해 모른다. 그러나 본질은 같을 것이다. 신문 만드는 일을 취재와 편집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한다면 취재는 질문이고 편집은 해석이다. 좋은 지면은 좋은 질문이라는 온상과 못자리에서 배양돼 나온다.

 

한국일보 파리특파원으로 일하는 동안 프랑스의 문화예술인과 철학자들을 많이 인터뷰했던 언론인 김성우는 자신의 책 ‘프랑스 지성기행’에 이렇게 썼다.

 

“나는 이들에게 묻기 위해 불면했다. 그 결과 당대 사상계의 귀재였던 롤랑 바르트는 회견이 끝난 뒤 자신의 저서에 ‘당신의 훌륭한 (그리고 까다로운) 질문에 감사하면서’라고 사인해 주었고, 세계 미학계의 거두였던 에티엔 수리오는 ‘당신 질문이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으며, 화가 조르주 마튜는 ‘질문 준비를 참 잘했다’고 칭찬했다. 나는 이들의 격려를 신문 기자의 훈장으로 늘 가슴 속에 달고 있다.”

 

이런 치밀한 준비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일에 대한 철저성과 열정, 프로의식이다. 그분이 1996년 신문기자 40년을 맞아 행사를 할 때 나는 회사로부터 기념패의 문안을 쓰라는 명을 받았다.
고심 끝에 내가 쓴 것은 ‘영원한 질문자, 열정의 문화인’ 이렇게 열두 자였는데, 한눈 팔지 않고 언론 외길을 걸어오면서 명예 시인·명예 배우라는 영예까지 얻은 삶에 대한 헌사였다.

 

 

 

질문 못하는 기자들

 

논어 자장(子張)편에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라는 자하(子夏)의 말이 나온다. ‘널리 배우고 배우려는 의지를 돈독히 하며 간절하게 질문하고 가까운 문제부터 생각하면 인이 그 가운데 있다’는 뜻이다. 이게 언론인들에게는 아주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하의 말 중에서 핵심은 절문이근사다. 널리 공부하고 준비해서 절실하게 묻고 가까운 문제부터 생각하라는 것이다. 가까운 문제가 뭘까? 언론인의 시각에서 해석하면 뉴스의 가치 요소로 꼽는 시의성·근접성·저명성·영향성·예외성·유용성 등을 갖춘 문제가 가까운 문제다. 즉 최근에 일어난 일로서 누구나 궁금해 하고 파급과 영향력이 큰 사건, 사람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삶에 도움이 되는 뉴스를 말한다.

 

바둑에서는 한 수 한 수 놓을 때마다 맥이 바뀐다. 그 국면에 딱 맞는 ‘이 한 수’를 찾기 위해 기사들은 노심초사한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그 경우에 딱 맞는 말을 찾아서 보도해야 하며 그 경우에 딱 맞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우에 가장 잘 어울리는 리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요즘 기자들은 질문을 잘 할 줄 모른다. 기자들은 어느새 받아쓰기 글꾼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이고 아직도 관료적이고 여전히 권위적이다. 그 틀을 깨는 공격적이고 비판적인 질문을 하는 기자를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2010년 11월 12일 서울에서 열린 G20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 행사를 훌륭하게 치른 한국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차원에서 한국기자에게 질문권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영어 때문이라면 통역을 써서 질문해도 좋다고 했지만 그날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질문권은 아시아 대표를 자처한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다. 우리 언론사에 길이 기록될 창피한 장면이었다.

 

 

 

 

공격적·비판적 질문 쏟아내야

 

2013년 7월 93세로 사망한 미국 여성언론인 헬렌 토머스는 70년을 현직기자로, 그 가운데 거의 50년을 백악관 출입기자로 활약한 사람이다. 그녀는 백악관 브리핑 룸의 맨 앞자리를 지킨 반세기 동안 10명의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통령들은 그녀에게 첫 질문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질문이 너무 거칠어 몇 년 전 뉴욕타임스가 인터뷰를 하면서 따지는 질문과 무례한 질문의 차이를 물은 적이 있다. 이에 대해 그녀는 “무례한 질문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기자에게 본질적으로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질문은 공격적이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사실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다만 보도는 냉정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기자는 대체 무슨 권리로 질문을 하는가? 기자의 질문권은 대체 누가 언제 부여하거나 일임한 것인가? 이런 생각과 자기점검을 잊으면 안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헬렌 토머스가 사망했을 당시 성명을 통해 “ 그녀는 나를 포함해서 대통령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 기자는 질문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회 감시 역할을 할 수 있는 존재다. 정직하고 적확한 질문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다.

 

 

 

 

 

질문하는 인간 Homo interrogatorius

 

질문이 교육이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질문하거나 손을 들지 않고, 기자들이 기자회견에서 질문권을 준다는데도 나서지 않는 이유는 질문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질문은 왜 어려운가?
질문에는 개인의 지식과 생각, 생을 살아가는 태도가 담겨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니 어떤 문제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갖추고 있거나 보편타당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손을 들어 질문하기가 쉽지 않다.

 

정답 맞추기 교육 벗어나야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정답을 알아맞히는 교육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질문도 정답을 찾아가거나 유도해 내는 과정이라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정답에 근접하지 못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거나 남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을 하는 게
어려운 것이다. 우리의 교육시스템과 사회는 정답 찾기를 궁극적인 학습목표나 옳은 행동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법 전문가인 롤랜드 크리스텐슨 교수는 사례 연구법을 채택한 교사의 임무는 학생들이 정답을 말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의문을 품고, 남의 말을 듣고, 일정한 문제에 대해 반응을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NIE(신문활용교육) 특임강사로서 한 달 동안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새로 마련한 ‘인생나눔교실’의 멘토로 선발돼 교육을 받은 일이 있다.

 ‘인생나눔교실’의 경우는 강의 초빙을 받은 일이 없지만 중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들과의 수업을 통해 요즘 학생들의 생각과 행동을 알 수 있었고, 그들 세대, 더욱이 남녀공학을 하는 아이들과 소통하려면 어떤 화제를 꺼내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이 우리말을 잘 모르고 특히 한자를 배운 바가 없어 단어의 개념 파악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대안 없는 제한형 질문 피해야

 

질문에는 ‘예, 아니오’ 식의 단답을 요구하는 제한형(폐쇄적) 질문과 폭넓고 자유로운 대답을 유도하는 확장형(개방적) 질문이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중에서는 확장형 질문이 교육적으로 더 효과가 있다고 말하지만, 제한형도 적절히 섞어야 강의나 교육의 효과가 살아난다.

 

예컨대 현재 화제가 되는 영화가 소재일 경우 첫 번째 질문은 “이 영화 본 사람?”일 것이다. 학생들의 반응을 기다려 “이 영화 보다가 어느 대목에서 웃은 사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이어 “이 영화 보다가 어느 대목에서 웃을 때 주위 사람들이 몇 명이나 웃었는지 아는 사람?” 이렇게 질문을 재미있게 심화시킬 수도 있다.

 

대안 없는 제한형 질문을 남발하면 학생에게든 고객에게든 불편하고 형식적이며 따분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학생들이라면 수업을 잘 따라오지 않을 것이며 고객이라면 상품을 사지 않고 가버릴 것이다.

 

나는 대학에 다닐 때 교직과목을 이수해 1급 정교사 자격을 얻었다. 교사는 되지 못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교직과목 강의 중에서 ‘수업의 실제’던가, ‘교육과정’이던가 하는 과목의 교수는 학생들을 지루하게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바로 그렇게 지루하게 만드는 사람이어서 실소를 한 기억이 난다.

 

어떤 50대는 고교 시절을 회상하며 문학수업을 하던 국어 교사가 시나 소설을 혼자서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다가 아이들이 조는 것 같으면 그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이런 질문은 학생들의 사고력 향상에 기여하는 게 아니라 문학수업을 따분하게 만든다.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지 않고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도록 노력한다. 고객이 어떤 서비스가 안 된다고 불평하면 “현재 가능한 지점은 두곳인데요”보다는 “현재 가능한 지점은 OO지점과 OO지점인데 어디로 안내해 드릴까요?”로 바꾸어 물어보라는 것이다.

음식점의 경우 “재료가 떨어져 쌈밥정식은 안 됩니다”라고만 하지말고 “재료가 떨어져 쌈밥정식은 안 되지만 물 좋은 생선구이는 어떠세요?” 식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좋은 질문의 핵심적 요소

 

강의실에서의 질문은 교수-학습자 간의 대화라는 점에서 몇 가지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이 있다.

①한 번에 한 가지만 묻고 ②답변할 시간을 주고 ③답변자에게 감사하고 격려하며 ④전원에게 고르게 질문하되 ⑤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은 삼가는 것이다.

 

강의를 하는 사람이 갑이라는 점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것은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수준 낮은 질문, 왜곡된 결과를 가져오는 유도형 질문, ‘자백’을 강요하는 닫힌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학생들은 특히 주의가 산만하고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거나 떠들고(차라리 조용히 잠자는 학생들이 낫다) 멋대로 이동을 하는 바람에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특히 중학교 1~2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더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교사들은 사탕 같은 걸 갖고 다니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거나 정답을 알아맞히는 학생들에게 나눠 주고 어르고 달래서 가르치는 중이다.

 

그래서 질문이 더 중요해졌다. 앞서 말한 크리스텐슨 교수는 질문의 유형을 열 가지로 나눴다.

 

1)오픈 질문(이 영화에서 뭐가 가장 기억에 남나?)

2)진단 질문(이 데이터에서 얻은 결론은?)

3)정보추구형 질문(올해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은?)
4)테스트형 질문(왜 그렇게 믿는데?) 5)행동에 대한 질문(그래서 이제부터 뭘 할 거지?)

6)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우리 예산이 얼마 안 되는데 뭣부터 해야 할까?)

7)예측형 질문(연말에는 환율이 얼마나 될까?)

8)가정형 질문(만일 회사가 이 문제의 대책을 수립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9)확장형 질문(우리 회사의 교육프로그램을 협력사까지 확대해서 제공하면?)

10)일반화 질문(컴퓨터와 이동통신 산업에 대한 당신의 연구 결과를 볼 때 기술 혁신을 강화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무엇인지?)

 

사실 이런 유형은 엄밀하게 나누기 어렵다. 좋은 질문은 이중 여러 요소를 두루 담고 있다. 무슨 질문을 어떻게 해야만 잘 질문하는 학생들을 길러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궁리하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자의 역할이다. 우리 교육에서는 특히 이 점이 중요하다.

 

 

글_임철순 이투데이 이사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

고려대 독문과,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1인가구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THE SCIENCE & TECHNOLOGY

과학과 기술 2015. 06 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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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 내용의 이미지는 임의로 첨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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