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게시판에 있는 글과 사진을 옮겨옴
2007년 다녀왔다. 사진은 직접 찍었구 글은 인터넷에서 정리함
오산에서 20분 거리
원균의 평가는 항상 이순신과 함께입니다.
이순신이 훌륭한 장수이니 원균은 열등한 지휘관..
물론 싸워서 패한 적이 없다는 이순신은 정말 한국인들이 자랑할만한 장수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균은 항상 폄하의 대상만이 되어야 할까요?
임진왜란이 지난 후 공신들을 기록했지요.
호성공신과 선무공신.
호성공신이란 聖, 즉 임금을 호종했던 신하이고 선무공신은 전쟁에서 무예를 떨쳤던 신하입니다.
다시말해 호성공신이란 전란 중 선조와 함께 도망다닌 사람들이지요.(백사 이항복 같은 분)
당시는 충군이라는 것이 절대적이었으니 같이 도망다녔다고 하여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 전투에서 공을 세운 선무공신들이야말로 민족의 등불이 아닐까요?
그런데 선무공신 1등에는 단 세 사람만이 올라가 있습니다.
권율, 이순신, 원균.
뭔가 이상하지요?
권율이나 이순신은 위인전에 당연히 실릴만큼 훌륭한 장수로 알고 있는데 원균?
이순신을 모함했으며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이어받은 후 대부분 함선을 잃어버린 사람이?
여기서 잠시 원균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아주 간단히 적겠습니다. 실록을 보시면 다 아실테니까요)
원균은 무과 급제가 이순신보다 훨씬 빨랐던 사람이었죠.
그리고 여진 토벌에 상당한 공을 세웠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그는 주로 육군을 지휘했었어요.
아무래도 무과 후배인 이순신 밑에서 활동하긴 좀 그러했겠지요.
이순신이 수군통제사에서 물러나고 원균이 이어받는 과정을 정사에 근거해서 본다면..
원균의 간계가 아니라 당시 중앙조정 당파싸움의 결과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보통 조선왕조실록은 한 임금에 대해선 하나의 실록이 나오게 되는데 선조의 경우는 <선조실록>이 있고 <선조수정실록>이 있어서 둘입니다.
그런데 <선조실록>에는 원균이 이순신과 나란히 명장으로 기록되어 있거든요?
이순신 장군은 충신이고 원균이 간신이라는 건 <선조수정실록>의 흐름입니다.
국사에 관심있으신 분들 한번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두 실록의 관점이 왜 그렇게 달라졌을까?
당시 극심했던 당쟁으로부터 한번 유추해 보시지요.
그건 그렇고...
이순신 장군이 단 12척의 함선으로 왜선 200여 척을 상대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든 원균의 칠천량 해전 패배를 보면..
이 칠천량 해전은 원균이 반대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무모한 전투라는 거죠.
이에 도원수 권율이 부하들 앞에서 원균에게 곤장을 치면서까지 출전을 강제합니다.(실록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 원균은 많은 함선을 잃고 자신도 전사를 합니다.
이로부터 무슨 생각이 드시는가요?
원균이 간신이고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바빴으며 보신만 꾀하던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지요?
* 이순신은 위대한 장군이지만 그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다른 한 명의 장수를 간신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첫댓글 이번 겨울에 다시 한번 다녀오고 책도 한번 읽을 예정
그렇군요~ 왜곡된 역사일 수 있으니, 이제는 원균을 미워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아직 논란은 끝이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 더 공부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