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도 지쳐 울지 않던 지지난 여름이었지.
흙마당 덮어버린 친정집 앞마당에선
햇살 튀어올랐지 콩크리트 바닥의
아버지 휠체어 자국 지워낸 소내기
서산 너머 꽁무니를 감춘 뒤부터였던가
단풍따라 절룩이며 나다니던 산책 길
아버지, 접 질러진 오른쪽 다리
두동강 났을 때도 온 몸은 단풍이었지
하루에도 몇번씩 병실안에서
속 깊은 단풍잎 붉다 못해 검어졌지
부러진 다리에 체워놓은 보도 사이
단죄처럼 단풍씨 날아들더니
폐혈 빛 떡잎으로 순을 피워내었지
아버지 붉은 울음 부엉이를 닮아가고
단풍보다 붉어진 아버지 다리께로
친정집 저녁 고요 병문안을 왔는지
올 가을 단풍 품고 이른 잠을 재웠지
~* 아버지는 10년째 중풍으로 왼쪽 다리만으로 의지하고 사십니다. 그런데 2년 전, 산책을 다녀 오시던 길에 넘어져서 오른 쪽 발목이 부러졌습니다. 수술 후 1년만인 올 봄에는 폐혈증의 전단계로 보이는 병명이 기존의 서너 개 병명 뒤에 추가되었지요. 저는 아버지와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가까스로 위험한 순간을 넘기신, 코끼리 다리처럼 붉게 부어 오른 아버지의 다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한시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는 데 5개월만인 얼마 전에 또다시 그 증상이 나타나 부랴부랴 병원으로 모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쓴 시입니다.
2.
멸구들을 조심해
여름을 지나온 바람이 어깨에 집을 지었다 푸릇 하긴 하지만 아직은 순한 볏잎 몇장 물어다 주고 돌아간 각다귀, 애벌레, 며루, 멸구들.....
북쪽으로 난 덧문을 닫아 걸면서 마음 뒷켠으로 난 작은 문가에 얼핏 서성이는 바람을 본 것도 같다
사실 바람의 그림자쯤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내겐 그지없이 반가운 은밀함이었다 밤이 되길 기다리는 낮동안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댄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어깨에 바람의 집이 다 지어진 이후였다
붉은 쇼울을 걸치고 나날의 징검다리를 건너 뛸 적에도 마음 뒷켠으로 난 문틈으로 내가 웃자라길 기다리고 있는 멸구들이 바람의 형상으로 나를 노리고 있었다
~* 바쁘게 살아서인지 늘 피곤하던 차에 얼마전 심한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때는 여기저기 문이란 문을 다 닫아도 춥기만 해서 무엇 때문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확장형 아파트라서 겨울이면 유난히 춥기도 하지만 북풍을 막아 줄 건물 하나 없는 위치에 있는 집이라서 일찍 겨울바람을 만나고 보니 마음이 먼저 쓸쓸해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누구나 이 나이에 한두 번 쯤은 했을 법한 그런 사소한 가슴앓이를 좀 했겠지요. 이런저런 일상에서는 모든 것들을 늘 가슴으로 먼저 만나니까요.
3.
번데기 딸
아이가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성충을 지나 회색 번데기의 몸으로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이
17살 나이에 인화되기 시작한다
등에 짊머진 진 작은 가방 속에는
접질러진 날개가 들어 있을까
오른쪽 손아귀엔
세계를 담은 가방을 든 채
기울어진 어깨가 지구의 축 같다
왼손에 들린 신발주머니가 유난히
흔들린다 나의 눈엔 잠시 파키스탄을
강타한 지진이 지나간다
날은 아직 여명에 멈춰 서 있는데
서늘한 바람의 끝이
아이의 몸을 후리며 파고든다
몸을 사리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더워진다 나는 사랑에 겨워 그만
아이의 이름을 불러 본다
교문은 아득히 멀리 있는데
아이는 여전히 등교길을 달린다
인화가 끝난 사진에는
한 떼의 어린 나비들
폴짝이는 모습이 찍혀 있다
그들 사이로 나의 번데기가 보인다
가슴에 엇갈리게 멘 아이의 빨간 가방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 올해 그 유명한(?) 대광여고에 들어간 아이를 날마다 단잠을 깨워 새벽이면 데려다 주곤 합니다. 아이 아버지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아이는 자유롭게 자라 어떤 틀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그런 아이가 서너 개의 가방을 등에 메고 손에 들고 가파른 등교길을 오를 때 대광여고 윗쪽에 자리잡고 있는 서진 여고생들도 함께 오르는 것을 봅니다. 그애들에게서 왠지 지금 막 껍질을 찢고 나오려는 어린 나비를 느꼈습니다. 그 만큼 교복차림이나 머리 모양이 자율적이였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편견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려운 과정을 거뜬히 넘겨 가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언젠가 그런 모습을 시로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촌평: 시도 산문도 정밀하고 정확한 문장을 써야 합니다. 정밀하고 정확한 문장은 언제나 활기 있는 리듬을 동반합니다. 하나의 문장에 너무 많은 내용를 담으려고 하지 마세요. 내용에 대한 욕심이 과하면 제대로 된 문장을 쓰기 어렵습니다. 문장을 짧게 쓰고 늘 소리내어 읽으며 리듬을 닦으세요. 아직 한참 더 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