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목 교서
+찬미 예수님!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그리고 수도자, 성직자 여러분,
좋으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화가 여러분 마음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지난 5월 2일 의정부 교구 제3대 교구장으로 착좌한 이래로 여러분의 따뜻한 성원과 꾸준한 기도 덕분에 저의 임무를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저와 우리 교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제가 부임한 후에 장기적인 사목 계획을 수립하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저는 그 요청에 기꺼이 응답하여 장기간 지속되는 교구의 사목 지침을 마련했습니다‘미사에서 주님을 만난 기쁨으로 서로 친교를 나누고 이웃에게 선교하며 세상에 봉사하는 교회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사목 지침으로 7년간의 신앙 여정을 함께 걷고자 합니다. 아래에서는 이 사목 지침의 배경을 설명하겠습니다.
1. 구약의 하느님 백성은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광야를 걸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광야 여정에 함께 하시면서 당신 백성에게 힘과 희망이 되어 주셨습니다. 신약의 하느님 백성인 교회도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갑니다. 구원이 완성되는 하늘나라에 이르기까지 이 지상에서 순례 여정을 걷는 것입니다. 이 여정에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서 힘과 희망이 되어 주십니다. 그분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동행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교회는 이 약속이 실제로 실현되었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쁘게 체험하지만, 특히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체성사를 통하여 이러한 현존을 매우 강렬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 1항) 가톨릭교회는 그 시작부터 성체성사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믿어왔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를 재확인합니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곧 우리의 ‘파스카’이시며 살아 있는 빵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안에 계십니다.” (<사제 생활 교령> 5항)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 헌장> 11항)입니다.
2. 우리는 성체성사, 곧 미사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선 미사 중에 봉독되는 성경 말씀을 통해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 당신 친히 말씀”(<전례 헌장> 7항)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하면서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전례 헌장> 7항)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교회 공적 신앙 고백인 ‘사도 신경’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 친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서 머무른다.”(요한 6,56)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3.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 비탄에 빠졌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뵙고 슬픔에서 벗어나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합니다(요한 20,11-18 참조). 사도들은 스승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주시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맡기십니다(요한 20,19-23 참조).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기쁨으로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세상에 나갈 용기와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던 토마스 사도는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동료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 주님을 직접 만나 뵙고 의심을 버리고 믿게 됩니다(요한 20,24-29 참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루카 24,13-35 참조)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을 전해줍니다. 그들은 스승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하고 크게 낙담하여 절망 속에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길에 나그네의 모습으로 다가오신 주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는 고난을 겪고서 영광에 이른다는 것이 이미 성경에 예고되어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저녁 무렵에 목적지인 엠마오에 도착하여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는데, 그 나그네가 빵을 떼어 나누어 줄 때 비로소 제자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 뵙습니다. 그 순간 주님은 그들에게서 사라지셨지만,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다른 제자들에게 주님을 만났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주님을 만난 기쁨이 복음 선포, 곧 선교로 이어진 것입니다.
4.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두려움이나 의심 그리고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서 기쁨에 가득 차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아울러 그 기쁨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나누면서 함께 신앙 여정을 걸어갑니다. 이런 모습은 첫 신자 공동체인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잘 드러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 …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곤 하였다.”(사도 2,42. 44-45)
예루살렘 첫 신앙 공동체에서 드러나듯이 주님께 기쁨을 선물 받는 사람들은 서로 친교를 이루면서, 주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주님의 뜻대로 기꺼이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밉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되는 모습은 그리스도 신앙인들을 통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가장 탁월하게 현존하시는 미사에서 그분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미사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곧 성경 말씀, 기도와 찬양, 교회의 신앙 고백, 성체를 통해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본 사람은 한마음 한뜻의 공동체를 이루고, 주님을 세상에 전하며, 그분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곧 친교와 선교와 사랑의 봉사는 그리스도를 만난 기쁨의 열매인 것입니다.
5. 저는 우리 교구민 모두 미사에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그 기쁨의 힘으로 친교와 선교와 봉사하는 교회를 이루어가기를 희망합니다. 2025년부터 2028년까지는 순차적으로 우리가 미사에서 주님을 만나도록 인도하는 성경 말씀, 기도와 성가, 교회의 신앙 고백, 성체성사를 중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 성경 말씀에서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기쁨
∙ 기도와 성가를 통해 주님의 손길을 느끼는 기쁨
∙ 교회의 신앙 고백을 통해 주님을 아는 기쁨
∙ 성체로 주님과 하나 되는 기쁨
이렇게 4년을 지내고 그다음 3년 동안은 주님을 만난 기쁨의 열매인 친교, 선교, 사랑의 봉사에 역점을 두는 교회 공동체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 형제적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
∙ 힘차게 선교하는 공동체
∙ 활기차게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에 봉사하는 공동체
6. 7년 여정의 첫해인 2025년에는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체험하기 위해 성경 말씀에 초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합시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면, 성경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최후 만찬 중에 제자들에게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라고 약속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예수님의 계명은 사랑의 계명으로서 성경의 핵심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계명을 지키고자 열심히 성경을 읽는 이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당신이 약속하신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그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성경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고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는 것은 더욱 좋습니다. 자주 성경 말씀을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 말씀이 내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때가 바로 문자로 된 성경 말씀이 살아 있는 주님의 말씀이 되는 순간이고, 그분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되는 순간입니다.
특별히 미사의 말씀 전례 중에 봉독되는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날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미리 읽고 미사에 참례하면, 말씀 전례 때 성경 말씀이 귀에 더 잘 들어와 우리 마음을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영성체를 하면 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훨씬 더 가까이 느끼면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치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나그네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고, 빵을 나누면서 주님을 알아 뵙고 기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을 만난 기쁨은 우리가 친교를 이루고 선교하며 사랑의 봉사를 하는 데에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7. 예수님은 당신의 발치에 앉아 당신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있던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루카 10,42)라고 칭찬하십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그분 말씀을 귀 기울여 듣도록 합시다. 어린 사무엘 예언자가 주님 앞에서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0)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경청의 자세를 갖추도록 합시다. 그리고 성모님처럼 주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입시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그리하여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루카 8,15)이 되면 좋겠습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우리 모두 성경 말씀을 경청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기쁨의 힘으로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합시다. 무엇보다도 우리 청년들이 성경 말씀에 맛 들이면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체험하고 그분께 희망을 두며 그분과 함께 자신의 인생 여정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2025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포하신 ‘희망의 희년’이기도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세상 만물을 지어내신 창조주 하느님을 믿으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약의 하느님 백성인 우리 또한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을 죽음에서 부활하게 하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큰 능력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올 한 해 동안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을 믿으면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로마 4,17-18) 살아가는 ‘희망의 증인’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4년 11월 24일 성서 주간을 시작하면서
천주교 의정부 교구장
손희송 베네딕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