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거대한 산 한라산을 두고 어딜가느냐는 남편의 잔소리를 뒤로한채 드디어 새벽 6시 30분 비행기 트랙을 밟았다. 새벽 2시까지 청소하고 내가 없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반찬도 준비하고 부산을 가기위해 진짜 부산을 떨 수 밖에 없었다. 준비하면서 문득 남자들은 이럴때는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당신 혼자의 몸만 챙기면 되니까-- 나도 다음에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야지 라는 야무진 생각을 하였다.
아무튼 제주를 떠나 40분 후 드디어 부산공항에 도착했다. 우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지 날씨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그야말로 쾌창한 날씨였다. 운봉가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배를 든든히 채우기 위해 공항내 식당으로 갔다. 순두부 한그릇을 밥 한 알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웠다. 평상시 내 지론(밥이 보약이다)처럼 말이다. 먹고 나면 그 다음 할 일은 무엇일까? 비우는 일이죠. 화장실도 다녀온 뒤 25인승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트로트 메들리가 무척 친숙하게 들려왔다. 달리는 차 안에서는 누가 뭐래도 간드러진 뽕짝이 최고임을 실감하면서---
배내고개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우리를 태운 버스는 쉬지 않고 부지런을 떨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산들의 모습을 보며 역시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임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1시간 쯤 이동하여 9시 50분쯤 배내고개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요즘 전국이 걷기 열풍이라는데 역시 이 곳도 예외는 아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는 모습에서 나름대로의 여유를 찾아 보았다. 비행기 타고 온 감귤이랑 삼다수를 일행과 함께 나누고 운봉에서 준비한 맛있는 잡곡밥을 하사 받아 드디어 등산 준비 완--료
첫째날인 24일의 산행일정은 능동산을 지나 천황산을 지나 재약산을 지나 표충사로 내려오면 끝이라고 하는 데 육지부의 제대로운 산행은 익숙하지 않은 지라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골찌라도 좋다. 천천히 가다보면 도착하겠지라는 느림의 미학을 생각하며 마음을 편히 먹기로 하였다. 제법 쌀쌀한 기운이 산은 산인가 보다. 산을 오를 때매다 느끼는 것은 처음에 오를 때가 무척 힘들지만 결국은 마음을 편히 먹으면 완주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 부회장님의 도움을 받으며 1차 관문인 능동산을 능동적으로 오를 수 있다. 주황색으로 물든 단풍을 보았을 때는 진짜 넘넘 신기하였다. 늘 빨간옷을 입은 단풍들만 보았는데 내가 아끼는 색 중의 하나인 주황색 단풍을 보았을때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기념 촬영도 하고 잠시 대화도 나누었다. 너는 어찌 그리도 예쁘게 물들 수 있었니? 라고 질문도 하면서---
2시간 30분쯤을 딸이이가 챙겨준 MP3를 들으며 올라왔다. "엄마!, 귀가 즐거우면 발이 괴로운 줄을 모르는 거 알지? 하면서 빌려준 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딸아이의 말처럼 생각보다 쉽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문득 어느새 자라버린 딸 아이가 무척 보고 싶어진다. 능동산 자락에서 딸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택배로 배달시켰다. 내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10분 뒤에 문자가 왔다. :엄마! 산행은 잘 하고 있죠. 넘어지지말고 꼭 성공하세요."라는 짧은 응원의 메세지를 말이다. 그 메세지를 받으니 다시 기운이 펄펄 난다. 이제는 천황산을 향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후미에는 정회장님께서 꼴지들을 챙겨주고 계셨다. 가는 도중 마시는 삼다수 한 모금이 그렇게 맛좋을 수가 없었다. 뭐니뭐니해도 물은 삼다수가 최고이다. 한 모금 마시면 정신이 말끔해짐을 느꼈으니----
금강산도 식후경 우리 일행도 샘물산장에서 점을 찍고 가기로 했다. 하사 받은 잡곡밥, 김밥, 맛있는 전, 묵은지, 족발 등 순식간에 풍성한 식탁이 마련되었다. 배낭에 지고 올때는 몰랐는데 펼쳐 놓으니 뷔페식당이 따로 없었다. 대화와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으면서 쌓아두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 속에 타들어가는 우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모르겠다. 배낭은 가벼워졌는데 배가 무거워서리 잘 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찍으며 한발 한발 나아갔다.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말을 평상시 믿어왔는데 오늘도 여지없이 그 진가는 발휘되었다. 당장은 숨이 차고 당장은 다리가 아프고 당장은 쉬고 싶어도 마음 추스리고 한발 한발 조금씩이라도 가다보면 어느새 정상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런 마음으로 가니까 재약산도 코앞이다. 그러는 사이 얼굴에선 몇방울의 소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짠 맛을 느끼며 이제는 하산길로 접어 들었다. 곳곳에 돌들이 많아 보여주는 풍경은 제주도에서 보는 자연의 모습과는 또 다른 정경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줄 알았더니 층층폭포에 도착하였다. 전체가 모여 기념촬영도 하고 구름다리를 어린애마냥 깡총거리며 건너기도 하였다. 오르막길은 숨이 차서 힘들고 내리막길은 다리가 아파서 힘든 것은 인지상정이겠지.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내심 위안하며 무조건 앞을 향해 전진하였다. 신세대 가수들이 불려대는 노래를 감상하며 다리 아픔을 잠시 잊어본다. 하산할 수록 계곡의 단풍은 저마다의 빛깔을 잘 내고 있었다. 특히, 생강나무는 노란 빛이 참 곱기도 하였다. 층층폭포에서 흑룡폭포를 지나자 누군가 고지가 바로 저긴데를 외친다. 내 몸이 무척 무거워졌는지 내딛는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다. 손대면 툭 넘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단련된 나의 의지가 이긴 모양이다. 한번의 미끄러짐도 없이 드디어 마지막 목적지인 표충사엘 도착하였다. 표충사 가는 길이란 표지판을 보는 순간 날아갈 듯이 기뻤다. 맥이 빠지고 거의 골찌로 도착한지라 가보고 싶은 약수터에는 가보지 못해지만 일행이 떠온 약수터물을 마시며 아쉬움을 달랜다. 언제가 다시 오게 되면 표충사 경내도 천천히 돌아보고 약수물도 직접 떠서 먹겠노라 다짐아닌 다짐을 하며 오늘의 산행을 마쳤다.
버스 안에서는 한국시리즈 마지막 7차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9회말 5:5 동점에서 기아의 나지완이 마지막 끝내기 홈런을 치면서 역전, 그리고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환호하는 팬들을 보면서 순간 난 속으로 눈물을 감추고 있는 SK선수들의 모습이 왔다갔다 했다. 우리네 인생과도 유사한 모습이 아닌가한다. 희노애락은 늘 공존하는 것이기에--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고, 1등이 있으면 꼴등이 잇듯이---
부산운봉산악회 낙남정맥 2차 완주 기념 축하연에 우리 일행도 함께 했다. 스태미너가 넘쳐나는 장어구이 정식집에서 에너지를 보충하였다. 오늘 영남알프스 산행은 이렇게 마무리 되어 갔다. 서로 인사를 주고 받으며 산을 좋아하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무척 친근한 생각이 들었다. 워낙 걸음이 빨라서(?) 무려 7시간 30분을 산에다 투자하였다. 이번 산행은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행의 길이었지만 오르고 나니 나의 마음은 산봉우리보다 훨씬 커졌음을 느낀다. 산은 우리의 의지를 시험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실을 잊지 않으리라-- 아울러 운봉가족의 따뜻함도 함께 보관하리라.
첫댓글 예전에 통도사 영축산에서 배내골을 지나 표충사까지 산행하던 생각이 납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