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제주도에서 시를 쓰고 있는 시인이
제주도의 자연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초인에 대한 삶의 의지를
시간과 공간의 시학으로 들려준다.
<출판사 서평>
인간에게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퇴적되는 것이다. 그 퇴적의 시간은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지나간 것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어 미지의 시간에 대한 길을 제시하기도 하고 해답을 주기도 한다.
시간이 축적되어갈수록 인간은 예전에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과, 한쪽의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쳐 이해했거나 알게 된 것들을 새롭게 작성하기도 하고, 보지 못하고 지나쳤든 것을 세월이라는 무형의 공간 속에서 찾아내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큰 의미의 되돌아봄일 수도 있고, 하나의 시간을 토막 내어 하나의 공간 속에서 새롭게 조명하여 전체적인 자신의 삶을 아우르는 퇴적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작업이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있든지 인간이 시간을 그냥 흘러가는 존재, 과거의 기억으로만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 동물과 인간과의 차이를 구분하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인간이 가지는 시간의 퇴적은 육체가 쇠퇴해지는 것에 반비례하여 영적 기운은 더욱 상승하여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고, 느끼지 못하던 것을 느끼게 되고, 말하지 못하던 것을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그냥 느낌만으로, 깨달음만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하나의 역사로 기록하여 남겨 놓아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시인이다.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시간을 관통하는 시안과 시간을 넘나드는 사유와 낱낱의 사건과 사물을 하나의 큰 틀로 만들어 내는 능력은 이러한 시간의 퇴적 속에서 건져 올리는 지난한 작업이지만 그 고된 작업의 수고가 있기에 더욱 빛을 발하여 인간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역사가 되는 것이다.
김수호 시인의 역사가 될 <노인과 눈> 역시 시인의 작은 역사 하나하나를 새롭게 규명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고된 작업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이루는 하나의 고리로 우리 앞에 그 면목을 들어내고 있다. 큰 역사는 밀알 같은 개인의 작은 역사가 밑그림이 되어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수호 시인의 <노인과 눈>은 개인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더 미루어 보면 이 시대 큰 역사에 속하는 하나의 장인 것이다. <노인과 눈>을 이루고 있는 시 편 역시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따로 그 존재의 의미를 하고 있지만 종래에는 김수호라는 역사를 총체적으로 규명하고 규정하는 하나의 분자로써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소개>
1940년 제주 한림읍에서 출생
2010년 1월 월간 한비문학 시 부문 등단
<시인의 말>
평생에 시집 펴내는 일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한강변에 살면서 간간히 그 정취를 넷 동호회에 올린 것이 내 글쓰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세기만에 제주도로 환고향하자 소설가가 꿈이었던 죽마지우가 홀연히 세상을 뜬 것이 내 글쓰기를 촉발시켰다.
긴 글 쓰는 게 이젠 힘에 부칠 것 같아 시 창작으로 맘을 굳혔다. 물론 시 쓰기가 짧아서 쉽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머리로 쓰기를 넘어 가슴으로 쓰는 함축된 글의 묘미를 맛보고 싶었다는 게 내 거짓 없는 마음이다.
문학수업을 받은 적도 없고 지난날 사무적인 글쓰기의 관성 탓에 쉽지 않겠다는 회의에도 빠졌다. 그러나 백세시대를 누리는 선배들의 시를 보면서 부족한 대로 세상에 자신을 들어내어 얻는 가르침을 내 일생 마지막 활력소로 삼자고 마음을 다잡으니 용기가 생겼다.
2010년 1월 월간 한비문학의 시 부문에 등단, 다섯 해가 흐르는 동안 습작이나 등단지에 발표했던 졸시 중에서 120편을 골라 부족한 데는 많이 손도 보았다. 코앞이 팔순(八旬)인데 앞으로 다시 시집을 어찌 내랴 싶어 눈 딱 감고 좀 과하게 실었다.
문학평론가 김시태(金時泰) 교수의 우정과 아낌없는 격려에 감사드린다.
늘 첫 번째 독자인 내 처 문화자(文和子) 데레사의 내조에 고맙다는 뜻도 남긴다. 쉽게 읽히도록 끝까지 살펴 주어 큰 도움이 되었다.
끝으로 발표의 길을 열어준 월간 한비문학과 시집을 펴내 주신 시인 김영태(金榮泰) 한비출판사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蘭汀 김 수 호
2016년 봄 제주시 노형동 미리내 마을에
<목차>
1부-털머위와 함께
아침안개/성당가는 길/춘래불사춘春來不思春/靑보리/장마 소식/철없는 것/직박구리1/직박구리 2/직박구리 3/직박구리 4/직박구리 5/꽃댕강나무 1/꽃댕강나무 2/백일홍나무 1/백일홍나무 2/한여름날의 저녁/기울어진 소나무/털머위와 함께/가을 하늘의 유혹/늦가을의 단풍잎/낙엽 쌓인 길목에서/마지막 대설/눈과 비/겨울비는
2부-가장 큰 이유
내가 걷기 운동을 하는 건/쌍무지게 뜨는 저녁/해로偕老/두 마디/내 아내의 감사 기도/두뇌의 시세/봄을 기다리다/태풍이 오려나/묵계黙契/애기동백 꽃길 걸으며/또 한 해를 이긴/운동과 산책/제주올레길을 찬양함/올레길 하루/고향에 돌아와/가장 큰 이유/가을 달밤이면/조개껍질로 깐 한길/전설이 싹트는 섬/비양도飛陽島의 일출/제주도의 삼월/안개와 구름/배신背信/얼굴 없는 전쟁/길조吉鳥란 훈장 때문에/제주도島를 보면
3부-바다를 보며
고향 바다의 마음/밤섬 갈매기/넉넉히 물러앉아/원래 집주인이 누군데/바다를 보며/아버지가 기다리는 집으로/잠깐 나와 봐/부모의 마음 1/부모의 마음 2/내 베개/별과 소나무의 이야기/가톨릭 성가 407/사샤 줄 파퍄 줄/막정情/그때는 정말 몰랐다네/마지막 죽마지우/말벗/대자代子를 앞세우며/내 곁에 오신 주님/문상/헤어질 때는/빗방울
4부-노인과 눈
내 노년의 삶/노안소고老顔小考)재고 정리/커대버(cadaver)/노인과 눈/고질병/그림자를 벗삼아도/무답/객기客氣/얼마나 더 곰삭아야/내가 잘한 것은/인생 이모작/덧쓰는 일기장/나이를 물구나무세우고/가슴을 파고들어/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가끔은 별도 보며 살자/입김/참 오래 살았다 한다/꽃도 시들면/아침 식탁에서/늦든 생각/망령亡靈/내 아내의 변신은/부부 밑천
5부 평화의 얼개
인수봉 아랫동네에 살적에/손끝에게/도루말馬/불발탄/다 사정이 있었겠지요/천국 맛보기/누굴 탓할까/다행이다/누가 울타리를 헐어도 좋다고 했나/평화의 얼개/도전과 응전/문명의 맨얼굴/안개 속 운항/진짜 바보/항공사진을 보다/정작 큰일 맡기면/도야지를 키우는 이웃/담쟁이도 넝쿨/떼~한민국/주인 없는 우산/성차별/암탉의 울음은/어제의 사람 오늘의 가요
<작품 소개>
잠 깨어 보니
창밖은
어젯것 다 지워진
회칠한 담벼락
그라피티
맘껏 그리다 남을
그 캔버스
맞대하고도
살아나는
지난날
얼룩이며 눈초리에
붓놀림 망설이다
새 삶 가름할
한 줄마저
끝내 긋지 못한 채
스러지는 꿈
-아침 안개-
먼저랄 게 없는
생일이며
겉모습, 하는 짓도
너무나 다른
구름의 한배 새끼
덮으면 씻고
쌓이면 덮고
다시 씻어내고
제각각
덮고 씻기만 하다
끝내 한 몸 되어
생명은 살리고
쓰레기는 쓸어버리는
공의로운
하늘의 쌍둥이
-눈과 비-
고향에서 걷기 운동하는 길가에
한강 둑에서 낯익힌 예쁜 꽃
언뜻 떠오르지 않는 이름
끝 글자가…화花, 또
꽃에 얽힌 전설을 실마리로
걷는 내내 ㄱ에서 ㅎ까지 꿰맞춰 봐도
끝내 못 나눈 재회의 인사
집에서 명함 철 들추듯 넷 검색
'궁녀가 죽은 자리에 핀 꽃'…엔터…‘능소화’
100만 원짜리 컴퓨터에게 완패한
140년도 넘는 부부의 메모리
이젠 기억 잡아먹으며 버티는 골동품
어느 누가 그 값을 후하게 쳐줄까
-두뇌의 시세-
첫눈 내리면
함박눈 내리면
설렌다
강아지처럼
밤새
소복단장한 공원으로
노인은
산책을 나선다
미끄러지면
크게 다치겠지
잘못하다
영영 갈 수도 있어, 그래도
걷는다
눈길에 끌려
먹잇감에 다가가는
고양이처럼
-노인과 눈-
무얼 더 쓸 게 남았다고
새삼 깨끗한 백지만 찾겠나
색 바랜 지난 삶의 일기장
물정 모르고 잘못 쓴 것투성이지만
지워도 남는 연필 자국
잘못 손대다 찢어지면 허망하겠지
잉크나 볼펜 쓰던 시절은
화이트로 몇 줄 지운다 쳐도, 어차피
온장 고치는 건 무리일 터
그 위에 더 굵고 진한 매직펜으로
요점만 덧쓰는 게 좋겠지
어릴 적 할아버지 앞에서
신문지에 붓글씨 연습하듯이
-덧쓰는 일기장-
졸아들다 마칠 노구에
넉넉히 덮을 것은
수의 한 벌로 족할 텐데
아내가 고르는 옷은
대개 한 치수 더 큰 것
물자 귀하던 시대
내리 물림의 관성 탓인가
아직도 우리 집엔
평생 브레이크 안 듣는
전쟁과 보릿고개
그 망령의 문단속에
한다는 패션도
신문 사이에 숨어서
'나 어디 있게'
혼자 예쁜 짓을 할 뿐
-망령亡靈-
갓난아기도
물속에선
숨 참고 고개 쳐들며
휘적휘적
살겠다 개헤엄을 치는데
환갑 진갑
다 지나도록, 여적
이 이치理致를
못 깨쳤다면
개헤엄도 못 치는
갓난아기만도 못한
진짜 바보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목숨 끊는 판국에
감투 큰 게
도리어 욕될 뿐이네
-진짜 바보-
아파트 지하실 문손잡이에
일주일 넘게
가출한 소녀처럼 흔들리고 있는
물방울무늬의 패션 우산.
찾지도 치우지도 않고
새것인데,
아이가 싫증나서 버렸나
편하라고 애엄마가 걸어 두었나.
마침내 쓰레기통에 처넣는
청소아줌마, 흉볼 일 아니라며
일회용은 딱 한 번 쓰고
버린다는 걸 깨우쳐나 주듯.
대나무살의 종이우산 쓰다
비닐우산으로 해 넘기던 시절을
살았던 고질 탓이라네
소비라면 두드러기 돋는.
-주인 없는 우산-
모든 욕망이 폭약으로 장전되어
제 목표로 발사되는 포탄
까맣게 하늘 가리며 삶의 전쟁터를 날다
남모르는 곳에서 보란 듯이 터지네
목표 맞히는 게 부서지는 보람일진데
변죽치거나 과녁 벗어난 건
화려한 불꽃잔치의 아쉬운 그을음일 뿐
목표에 화살처럼 꽂힌들
펑 터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 하지만
겉은 녹슬어가도 끈적한 욕망이
제 몫 다하는 그날을 기다릴 수나 있지
맨땅에 박힌 채 해묵은 건 어쩌랴
이건 터져도 그만 안 터져도 그뿐이니
-불발탄-
사람 되라 서울로 보내진
난 삼다도 시골 외양간의 망아지
마방 꾸릴 만큼 자라며
젊은 황소로 거듭난 서방님
금의환향 앞둔 어느 봄날
안팎으로 몰아친 회오리
폭탄 맞고도 세균처럼 버틴 목숨에
사금파리로 박살난 신줏단지
그 너절한 꿈 조각들을
미련 없이 한강물에 수장하고
고희란 꼬리표 하나 달랑
객창 반세기에 돌아온 도루말馬
용서할 게 너무 많아
용서받을 경황없이 하늘에 맡긴 여생
결단코 못 지울 낙인烙印
내 젊음 바친 ‘조국근대화의 기수’祖國近代化의 旗手
-도루말馬-
분류 : 문학>시/에세이
제목 : 노인과 눈
지은이 : 김수호
출판사 : 한비
출판일 : 2016.4.5.
페이지 : 164
값 : 10,000
ISBN : 9791186459270 04810
9788993214147(세트)
재제 : 반양장 길이 210 넓이 130 두께 9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수고 많으셨네요.
[걷는다 눈길에 끌려 먹잇감을 다가가는 고양이 처럼]
저 역시 그렇네요 공감합니다. 함 뵙고 싶네요. 한비월례회에꼭 한번 오세요.
저도 익어가는 중이랍니다...[조정향올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구구절절 글귀마다 깊이 있는 고운 시 잘 읽었습니다드립니다
한비에 출판하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시집출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