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교수의 북한문예산책] 블로그에 통경산 석굴암 발견과 관련된 글이 게재됐음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 글은 <미디어붓다>가 통견산 석굴암 발굴이 우리 민족문화와 불교문화사에 관련해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인터넷을 통해 관계자료를 검색하던 중 찾아낸 것이다.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석굴암이 발견되기는 처음’이라는 제목의 이용웅 교수의 글과 그가 참고자료로 게재한 북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장철만 박사의 관련글을 인용해 게재한다. 이 글에 따르면 통경산 석굴암 발굴보도는 지난 4월 26일자 북 <로동신문>에 처음 보도됐다. <편집자>
남한에서 ‘석굴암’ 하면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 정상 가까운 곳에 있는 국보 제24호 통일신라시대의 절, “석굴암[石窟庵, 석불사]”가 대명사이다. 북한에서 2007년에 발간된 <조선말대사전> 도 ‘석굴암(石窟庵)’을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 중턱에 있는 동굴형식의 절, 다듬은 돌을 쌓고 그우에 흙을 덮어 만든것인데 751년에 세웠다. 원형석굴암굴실, 40개의 조각상, 14개의 수호신 조각, 8각기둥문, 3m 높이의 석가여래상, 11면관음상 등과 그리고 석굴의 구조를 통하여 당시 우리 인민의 높은 건축술과 예술적재능을 잘 보여준다.”(691쪽)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북한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최근 새로운 석굴암을 발견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2009년 4월 26일자 <로동신문>은 “슬기로운 우리 민족의 자랑-독특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통경산석굴암”라는 기사에서 평안북도 곽산군 초장리에서 동북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곳에서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석굴암”이 처음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로동신문>은 “이번에 조사발굴된 통경산석굴암은 고려말~리조초기에 자연동굴을 리용하여 만든것이다. 석굴암주변에는 고구려시기의 릉한산성과 고려시기의 장경사 5층돌탑, 절간유적들인 개원사터와 미륵당터 등 중세시기의 문화유적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남한의 <두산백과사전>의 ‘곽산군’ 설명에는 “곽산군에서 약 1km 떨어진 초장리의 통경산 기슭에는 통경산 석굴암이 있다>”고 했다. 어쨌든 이런 기사가 난 것만 해도 다행이다. 북한 당국이 남한 전문가에게만이라도 조속히 공개해서 석굴암 연구를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음은 “슬기로운 우리 민족의 자랑-독특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통경산석굴암”(全文)이다.
※주체98(2009)년 4월 26일 《로동신문》
슬기로운 우리 민족의 자랑-독특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통경산석굴암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한 강토에서 하나의 피줄을 이어받으며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며 화목하게 살아온 지혜롭고 애국심이 높은 민족입니다.》세계에는 수많은 민족들이 있지만 우리 민족처럼 고대시기에 벌써 자기의 국가를 세우고 하나의 피줄, 하나의 언어에 기초하여 민족사를 꽃피우며 발전하여온 민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우리 선조들이 남긴 석굴암유적이 조사발굴되여 내외의 커다란 관심을 끌고있다. 공화국북반부지역에서 석굴암이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일명 통경산석굴암으로 불리우는 이 석굴암은 평안북도 곽산군 초장리에서 동북쪽으로 3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이곳의 지세는 《호좌형국》 즉 범이 앉아있는 모양을 이루고있다. 석굴암이란 자연적 또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동굴안에 꾸려놓은 작은 절간을 말한다. 석굴암을 만든것은 불상 등 우상물들을 신비화하고 영구보존하는것과 함께 나쁜 일기조건에서도 종교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으로 력사유적들가운데서 석굴암은 특별한 주목을 끌고있다. 리유는 그 특이한 구조와 생김새에도 있지만 기본은 석굴암을 통해 당대시기의 건축술과 조각술, 신앙관계 등을 립체적으로 잘 알수 있기때문이다. 이번에 조사발굴된 통경산석굴암은 고려말~리조초기에 자연동굴을 리용하여 만든것이다. 석굴암주변에는 고구려시기의 릉한산성과 고려시기의 장경사 5층돌탑, 절간유적들인 개원사터와 미륵당터 등 중세시기의 문화유적들이 적지 않다.
석굴암의 입구는 길죽한데 그 높이는 3. 3m정도이다. 입구 왼쪽에는 높이 9m, 너비 7m가량 되는 두터운 돌이 경사지게 세워져있고 오른쪽에도 2개의 덩지 큰 돌이 세워져있다. 여러개의 자연바위로 이루어진 석굴암내부는 동, 남, 북쪽벽이 수직으로 되여있고 서쪽벽이 경사져있는 삼각형모양으로서 남북길이가 5. 4m, 동서너비는 2. 1m정도이다. 굴안의 동, 남쪽벽면에는 3존상과 4천왕상 등 7개의 불상조각들이 부각되여있다. 이중에서 특히 조각솜씨가 우수한것은 아미타3존상이다.
엄엄한 얼굴표정과 섬세하게 묘사된 두손가짐새 등 인물형상은 말그대로 살아숨쉬는 것만 같다. 물우에 활짝 피여난 꽃송이들을 보는듯 한 련꽃받침대 등도 그 조각수법이 참으로 생동하고 섬세하다. 모든 조각들은 이전시기의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난 대담한 수법으로 형상되였다. 인체해부학적으로 정확한 비례관계에 따라 대상의 각이한 인상과 자세의 개성적특성을 잘 살려낸 불상조각들은 그 하나하나가 다 우수한 걸작품들로서 우리 선조들의 독특한 예술적재능을 엿볼수 있게 한다.
통경산석굴암은 단지 그 우수한 조각술뿐만아니라 우리 민족문화의 단일성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이전에는 석굴암이라고 하면 남반부지역에 있는 경주석굴암과 군위석굴암 등만이 알려져있었다. 이번에 북반부지역에서도 석굴암이 조사발굴됨으로써 우리 민족의 유구한 문화적공통성이 다시한번 명백히 확증되게 되었다.
력사유적과 유물은 민족의 넋과 슬기의 상징이다. 민족의 력사와 문화는 력사유적과 유물을 통하여 후세에 전해지게 된다. 유구한 세월 자기의 고유성을 살리며 발전해온 우리의 우수한 민족문화는 민족의 자랑이며 조국통일의 기초이다. 옛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우리 선조들의 높은 조각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통경산석굴암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길이 전해질것이다.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박사 장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