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판장은 떡을 잘 안 먹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간식거리가 귀해서 그랬는지 제법 떡을 좋아했었는데 요즘은 떡보기를 무지 달디구리한 수입산과자같이 합니다. 절편이나 가래떡 말고는 요즘 시판되는 떡집(혹은 떡공장)의 떡들은 이런저런 모양과 맛을 내는 과정에서의 가당이 지나쳐 싸구려틱한 단맛 때문에 떡 한 개를 온전히 다 먹기가 싫습니다. 게다가 저작감은 또 왜 그리 후진지...
수림원표 인절미
그런데 알고보니 갑판장이 떡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떡들 대부분이 맛이 형편없어 입맛에 안 맞았던 것 뿐이라는 사실을 어제서야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그 자초지종은 아래와 같습니다.
갑판장네 식구(食口)인 짝퉁창렬군이 처가에서 이런저런 먹거리를 넉넉하게 올려 보내주셨다며 강변옥으로 식구들을 초대했습니다. 역시나 기대에서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상다리가 부러질 지경으로 푸짐하게 한상 잘차렸습니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갑판장이 사용중인 똑딱이 카메라와 크기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큼직한 쇠머릿고기수육를 필두로 잘 숙성된 광어회와 우럭회, 반투명한 키조개관자회, 수림원의 장맛으로 새콤달콤하게 무친 간재미회, 각각 매콤한 닭고기와 고소한 새웃살로 속을 가득 채운 제수씨표 춘권 등 가히 육해공을 넘나든 버라이어티한 상치림이었습니다. 잘 차려진 음식의 격에 맞춰 식구들이 준비한 술 역시 카뮤 엑스트라를 필두로 싱글몰트위스키인 야마자키 18년과 글렌드로낙 15년 등 어느 것 하나 빠지거나 모자름이 없이 훌륭했습니다.
막판에는 이것 만으로도 성이 안 찼는지 아니며 끓어 오르는 흥을 주체하지를 못했는지 서래마을의 와인바 맘마키키로 순간이동을 하여 오붓하니 휴일을 즐기시는 쥔장 내외를 소환하여 한바탕 와인파티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온종일 쫄쫄 굶고 있는 아이가 있었으니 라말씨와 하린아빠 부부의 딸아이인 하린양이었습니다. 요 며칠 앓은 탓에 볼살이 쏙 빠질 지경으로 입맛을 잃어 어른들 만의 주지육림의 세계를 강건너 불구경 하듯 하던 하린이가 그나마 입에 댄 것은 인절미였습니다.
인절미는 '찹쌀을 쪄서 떡메로 치거나 절구에 찧은 후 네모진 꼴로 적당히 모나게 썰어 고물을 묻힌 떡'입니다. 짝퉁창렬군의 빙모님께서 정성껏 찹쌀을 불리고 쪄서 지은 찰밥을 빙장어른께서 손수 떡메를 치셔서 장만한 찰떡에 콩고물을 묻혀 만든 인절미라 그 맛이 더욱 각별했습니다. 인절미 한 점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씹으니 고소한 콩고물의 아련한 단맛 사이로 간혹 밥알갱이가 씹히는 찰떡의 저작감에 이것이 진짜 인절미로구나!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단 한모금 만으로도 황홀감에 흠뻑 빠져들게 했던 까뮤 엑스트라보다, 입안 가득 넘실대는 리치한 육즙을 선사했던 쇠머릿고기수육보다 갑판장은 이 인절미가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고 보니 갑판장이 서두(書頭)에서 언급했던 '갑판장은 떡을 잘 안먹습니다.'라는 말은 순 엉터리였습니다. 알고보니 갑판장은 떡을 참 잘 먹습니다. 단 제대로 잘 만든 떡 만....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따로 챙겨준 보따리(?)에서 인절미 한 봉지를 발견하곤 기쁨에 겨워 새벽글을 쓰는 갑판장입니다.
첫댓글 그야말로 "장인"이 만든 인절미 아니겠습니까. ㅋㅋㅋㅋ
된장, 고추장도 '장인'께서 직접 담그시면 마케팅에 더 유용하겠구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