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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무관심한 자가 진리를 대적자가 된다.
본문/디모데후서3:1-8절
오늘날 목사와 신자라고 하면서 진리를 대적하는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이 구절에 대한 두 가지 대표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것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말세에”라는 말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세지말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말세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에수님의 재림 직전에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사도행전2:17절에 보시면 말세가 어떤 때인 것을 자세하기 보여주고 있습니다.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러므로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셨을 때 이미 말세가 시작되었습니다. 히브리서1:1-2절에서 말세라는 말의 뜻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벧전1:20절에도 나옵니다.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이 구절에 대한 두가지 대표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것이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세에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세지말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말세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사도행전2:17절에 요엘2:18절에 예언한 것이 말세에 일어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제 일어났습니가?
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러므로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셨을 때 이미 말세였습니다.
이처럼 더 거슬러 올라가서 예수님의 초림으로 말세가 시작되었습니다.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기간을 말합니다. 고전10:11절에 그 사실을 자세하기 말씀해 줍니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또한 야고보서에도 똑같이 말세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약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바울과 사도들이 이 글을 쓸 당시 이미 말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뒤에서 “네가 돌아서라”는 현재적인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열거하고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바울 당시뿐 아니라. 교회 시대 전체가 말세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바울이 열거하고 있는 이 지독한 악들이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이들을 보면 기독교의 시각에서는 물론이고 세상의 시각에서도 악인들입니다. 그래서 타락한 세상에 대한 묘사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충격이겠지만 그들은 크리스천들입니다. 예에배 참석하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고, 봉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서 돌아서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바울이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덧붙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죄인들과의 모든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죄인과 세리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모데가 그들과 전혀 사귀지 않으려 한다면 그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고전5:9-12)바울은 오히려 디모데가 교회 내에서 종교적 죄인들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는 지금가지 일종의 이교적 기독교에 대해 묘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 증거가 4-5절입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놀랍게도 이들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경건하지는 않지만 경건의 모양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 때문에 교회가 몸살을 앓고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말세는 바울이 말한 대로 고통을 당하는 때입니다. 그 고통은 단지 외부의 핍박하는 세력들 때문이 아니라. 교회 내부의 악인들 때문에 일어납니다. 즉 이들의 악해으이 결과로 일어납니다. 바울은 이들의 특징에 대해 먼저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라고 지적합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과도하게[ 자기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고통의 가장 주된 뿌리입니다. 실제로 목사들 속에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있는 지독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교단 이기주의와 개교회이기주의 때문에 현재 우리 교회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 전체가 얼마나 몸살을 앓고 있습니까?
그 뒤에 바울이 묘사한 악을 보면 “모함히며”(3절) 라고 말이 나옵니다. 문자적으로 “마귀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불렀던 사람들과 같은 부류들입니다. 실제로 교회안에 형제를 참소하는 자인 마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직업적인 이단 사냥군들과 그들에게 조종당하는 정치목사들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전체 교회의 주된 고통의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주목할 것은 바울이 교회 안의 악인들의 첫 번째 특징을 “자기를 사랑하는것”이라고 말하고 마지막 특징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라”(4절)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의 고통은 잘못된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성도라면 그리고 목회자라면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만 그리고 목회자지만 악인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전체에 고통을 유발 시키는 것입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악인들 중의 일부는 목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는 자들일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왜곡된 진리를 전하는 자들입니다.(6절) 이런 거짓 목사들에게 아무래 배워도 잔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7절)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옳바른 진리를 전하지 않는 이런 거짓 목사들이 적반하장으로 바울과 디모데와 같은 참 종들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딤후3:8)
안네와 얌브레가 누군지 아십니까? 그들은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바로의 궁전에서 활역한 두 술객장 이었습니다. 탈굼(아람어 성경번역)들 가운데 하나가 툴애굽기 7:11절에서 그들의 이름을 삽입하고는 있지만 구약성경 원본에는 그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니다.
“바로도 현인들과 사물사들을 부르매 그 애구 ㅂ요술사들도 그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되”
그런데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했던 것처럼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 진리를 대적하는 악한 목사들이 많습니다. 그런 자들이 소수가 아니기 때문에 성경적인 교회는 매도를 당하고 이단으로 매도를 당하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왜 외형적이로는 목사요 신자들인 사람들이 이렇게 진리를 대적합니까? 그것은 바울이 다른 곳에서 지적한 대로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아니라 불의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롬1:18절에 불의를 쫓아가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데살로니가 후서2:12절에도 불의를 좇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바울이 열거한 그런 악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이고 겁 없이 진리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신자는 물론 목사들 중에도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권영경 교수는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편파보도가 사태를 자기 입장에 맞게 변조하는 기술인 것처럼 취사선택은 성경의 거친 메시지를 내 임맛에 맞추는 기술의 하나다. 애초부터 성경을 우습게 아는 자유주의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겨으이 권위에 죽고 산다는 보수주의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경의 권위에 죽고 산다는 보수주의 자들 역사 하도 다르지 않다. 물론 우리는 감히 성경의 귄위를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성경의 날카로운 메시지를 그냥 삼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무시하기로 한다.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지 않음으로써 질문을 피하려는 심사처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구절들과 눈길을 마주치지 않음으로서 상황을 무마하려고 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구절들을 더 열심히 읆어대는 경건함으로 우리의 구린 침묵에 연막을 치기도 한다. 겉모습이 아무리 경건해 보인다 하더라도 여기서 최종적인 선택의 기준은 나 자신의 입맛이다. 나의 입장이 먼저 있고, 이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의 권위가 필요할 것이다. 고백적으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만 실용적으로는 그 권위를 부인하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은 부인하는 삶의 또 다른 방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의 귄위에 거품을 무는 모습은 종종 방귀 뀐 놈이 화내는 상황과 다르지 않을 때가 많다.]
이 글에서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성경에서 자기의 견해와 맞는 것에만 집중하고 다른 성구들은 애써 외면하면서 진리들과 정직하게 대면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무관심, 결국 이것이 수많은 목사와 신자들을 진리의 대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즉 진리에 대한 무관심이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경고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여기서 “거룩한 것”과 “진주”는 진리를 뜻합니다. 그리고 “개”와 “돼지”는 진리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개”가 “거룩한 것”에 관심이 있을가요? 있을 턱이 없습니다. “돼지”가 “진주”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짐승이 아닌 사람인데도 “거룩한 진주”인 진리에 관심이 없는 개와 돼지 같은 목사와 신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바른 진리를 말해주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찢어 상하게 하려고 합니다. 참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찢으려고 합니다. 이것이 많은 목사들이 우리 참 진리를 전하는 종들을 핍박합니다. 그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칭찬받고, 존경받는 교회나 목사는 어떤 면으로는 비 정상적인 교회라고 볼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성경에는 이런 여자들이 나옵니다. 우리는 요한8장에서 그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나 진리에 무관심한 자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리에 무관심한 그들에게 가자 필요한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진리를 차근차근 설명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덯게 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8:40절)
이 말씀은 예수님 시대나 오늘에도 똑 같이 일어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진리를 말해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진리에 대한 무관심 때문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통해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요8:37절입니다.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그들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잘못된 성경 해석을 정통교리로 믿었습니다. 게다가 교만까지 하여 무조건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고 무엇이 참 진리인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예수님과 바울을 핍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유대인들은 물론 요한8장에 나오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그들의 가르침에 세뇌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를 말씀하실 때 받아들이지 않고 죽이려 든 것입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은 모두 천국에 들어간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진리를 통해 자유케 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진리를 사랑했다면 이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을 통해 분별 할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 보면 출애굽한 유대인들 중에도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바울이 자세히 설명한 것처럼 죄로 인해 멸망한 자들이 많았고, 할례를 받은 유대인 전부가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신명기30: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성경에 보시면 할례를 ㅊ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하례를 받아야하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4:4절과 9:25절 이하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거하여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은 자들에게라 대저 열방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예레미야9:25-26절)
더구나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모든 자가 다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사야10:22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진리를 사랑했다면 이런 구절들에 반대되는 랍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하지 않고 거절했을 것입니다. 결국 진리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에 사람의 계명에 속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사랑하고 성경적인 참 진리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마태7:21절, 야고보서2:14절. 고전9:27절.고전14:1절과 5절 그 외의 성경 말씀에 주목했을 것이고, 다수의 목사들이 가르치는 이 시대의 사람의 계명에 세뇌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추구햇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진정한 구원론에 눈을 뜨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구원론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고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라. 회개와 믿음이며 그 믿음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함게 하는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수 많은 목회자와 신자들이 성경적인 진정한 구원론을 제대로 아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교회는 떠나지 않지만 유대인들도 한평생 유대인으로서 배교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자들입니다만 그러나 결국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버림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비극의 주인입니다. 그것이 요한16:1-3절 말씀처럼 진짜 더 큰 비극을 만들게 됩니다. 어덯게 됩니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하리라
3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그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결국 적그리스도에게 미혹되고 쓰임 받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압잡이 노릇을 하다가 적그리스도를 환영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2:1-12절에 그 사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처럼 지닐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 혹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표현된 진리에 무관심하고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결국 적그리스도엑 미혹되고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수년전 wcc부산 총회를 통해서 그 사실을 보게되었습니다. 지금 wcc의 주장은 지금 주사파 세력들이 주장하는 북한을 두둔하고 그들이 갖고 있는 원자탄에는 말이 없고 오직 평화를 위해 평화선언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시대에 반드시 다음과같은 선언문을 만들고 교회가 연합하여이 사실앞에 함께 행동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우리는 종교다원주위를 비격한다.
1)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이 없음을 천명한다.
2)우리는 예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주라고 고백하는 자들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릴수 있는 해우이임을 고백하고 그러므로 초혼제와 같은 비성경적인 종교 혼합주의의 예배 형태와 함께 할수 없음을 천명한다.
2.우리는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선연애 등 복음에 반하는 모든 사상을 반대한다.
3.우리는 개종 전도 금지주의에 반대하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행1:8)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세대와 지역과 나라와 종교를 막론하고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4.성경 66권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 무오하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임을 천명한다.
이 네가지는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wcc와 ncck는 여기에 동의할수 없다며 공동선언문을 파기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명백한 이단입니다. 그런데도 통합을 비롯한 한국교회의 일부 교단들과 저명한 목회자들은 끝내 과거 wcc를 강행하여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적그리스도를 위해 길을 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처럼 성경적인 참 진리가 무엇인가에 관심이 없는 목사들은 얼마든지 적그리스도의 하수인이 될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무관심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제발 진리를 사랑하는 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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