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일까!
솔향 남상선/수필가
금년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여름은 더운 맛으로 산다지만 정도가 지나친 무더위였다. 낮은 불볕더위에 시달리고, 밤은 열대야로 잠자기가 어려웠다. 에어컨을 틀고 싶어도 전기세 폭탄이 두려워 틀지 못하는 가정이 십중팔구는 됐으리라.
30℃를 오르내리며 괴롭히던 폭염도 한 풀 꺾였다.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중복 말복 다 지나고 입추 처서까지 뒤로 해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하다. 가을전령사가 무턱에까지 와서 들여다보고 노크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못살게 굴던 더위가 물러갔다. 솔로몬의 명언 <이것 또한 지나가리로다.>가 실감난다. 어쩌면 주역에 나오는 <달도 차면 기운다.>의 물극필반(物極必反)이 나를 깨우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든 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차 한 잔을 마시더라도 새록새록 생각나고, 맛있는 음식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며칠 전부터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 생각났다. 부인은 알츠하이머(치매)란 기억력, 사고력, 행동상의 문제를 야기하는 뇌 질병에 걸려 오매불망 노심초사를 달고 사시는 분이다. 너무나 상황이 안타까워 <가족들 알아보실 수 있을 때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말을 자주 해드렸던 분이다. 나처럼 만시지탄(晩時之歎)의 후회를 안고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있을 때 잘 해드리라>고 만날 때마다 주문 외듯 해 드린 분이다.
생각난 김에 점심 한 끼 같이하고 싶다며 전화를 걸어 날짜를 약속했다. 사모님 동반하고 같이 나오시라 했다. 나의 그 알량한 측은지심이나 동정이었던지 위로라도 해 드리고 싶은 심정에서 나온 처사였다.
날짜가 되어 수통골‘황금코다리’란 음식점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시래기 갖은양념 코다리에 오징어까지 추가시켜 주문을 했다.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난 맛집이어서 나도 출근부에 날인을 할 정도 자주 갔던 음식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누구든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아, 그런데 부인은 황금코다리 음식은 수저도 대지 않고 미역국만 드시는 거였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사전에 알았더라면 다른 맛집으로 뫼셨을 텐데 후회막급이었다. 누구를 초대할 때에는 상대방이 즐겨 드는 음식이나 그 취향을 꼭 물어 음식점을 정하고 주문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는 시간이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따로 없었다.
식사 중에 가슴 아픈 일을 목격했다. 내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님이, 아니, 그 선생님이 오른손 동작이 예사롭질 않았다. 수저를 든 오른 손이 미동으로 떨고 있는 거였다. 물어보니 수전증이라 했다. 또 사모님께도 말을 건넸다. 사모님은 대전 중앙시장에서 한복디자이너 전문가로 한복을 잘 만들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그래서 나도 사모님 솜씨를 빌어 한복 한 벌을 해 입었다. 사모님께서 만들어주신 그 예쁜 한복 지금도 입고 있다 했더니 전혀 기억을 못하시는 표정이었다.
존경하고 좋아했던 분이, 아니, 가슴까지 따뜻하고 인자했던 그런 분이, 부인 때문에 의기소침해 하는 모습이 너무 안 돼 보였다. 거기다 그 건강했던 모습은 어디가고 초췌한 모습에 손까지 떨고 있는 수전증까지 생겼으니 가슴이 미어지고 있었다. 그 활달하시고 상냥하시던 사모님까지 기억을 잘 못 하시고 있으니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 아닐 수 없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또 가슴 뛰는 얘기를 들었다. 대개의 치매환지들은 가족들이 수발들기가 어려워서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시대적 추세이다. 위의 사모님도 주변에서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어떠냐는 제안도 했던 모양인데 <남편인 내가 의식이 있는 한은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사랑하는 아내인데 내가 곁에서 지키고 수발들겠어요.>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뭉클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사람 냄새 풍기는 그 따뜻한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있었다.
나는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그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할 수 있다는 게 새벽기도로 사모님의 기적 같은 쾌차를 빌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의 유한성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물극필반(物極必反)에서 <달이 차면 기운다 >했지만
기울어진 달은 다시 서서히 커져서 보름달이 되지 않던가?
하지만, 우리 인생은 한 번 기울어지면 그것으로 그만이 아니겠는가!.
치매부인은 날로 기억을 잃어가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달라지고 있는데,
만 년 건강할 줄 알았던 남편도 수전증 환자라니…
왜 이리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일까!
이게 인생숙명이란 말인가?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네요
요즘 주변에 이렇게 치매 증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부모님으로 인해 마음 아픈 지인분들이 몇몇 분 계시네요.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끝까지 존엄함을 지켜가며 장수하는게 모두의 바람인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인생은 안타까움 인것 같습니다.
치매 참 무서운 병이네요.. 그래도 꿋꿋이 간호하시는 남편분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아내가 건강할 때 더 많이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살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