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4월호
[202304]이달의 훈화
부활 제2주간 - 부활 제6주간
송동림 레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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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림 레오 신부는 제주교구 사제로서, 평소 교회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레지오 단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레지오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소망하는 서귀복자성당 주임신부이다.
부활 제2주간(4월 16-22일)
의심
시대를 진단하는 사회학자들이 종종 지금의 시대를 ‘불신의 시대’라고 정의합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사실 주위에서 보게 되는 수많은 감시도구, 도청장치, CCTV카메라, 비밀번호, 보안시스템 등 이러한 도구들이 불신의 시대를 상징하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도구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주고,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해결해준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어쩌면 종종 씁쓸함을 느끼곤 합니다.
예전에 ‘천하영웅’이라는 중국영화를 본 적 있습니다. 영화 대사 가운데 가슴 아팠던 장면은 남자아이를 입양했던 어느 양아버지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아무도 믿지 말라”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술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지붕에 올라간 아들에게 밑으로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받아주겠다. 아이가 뛰어내리는데 양아버지는 그 아이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땅에 곤두박질쳤는데, 아파서 힘들어하는 그 아이에게 양아버지가 말합니다. “나도 믿지 말고, 가족도 믿지 말고, 아무도 믿지 말라, 너만 믿어라.”
오늘은 부활 제2주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쌍둥이라고 불리던 토마스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고 말합니다. 나중에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토마스가 고백하지만 주님은 말합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특별히 레지오 단원에게 있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성모님에 대한 믿음은 그 어떤 마음가짐보다도 중요합니다.(교본 제3장 레지오 정신 참조) 무엇보다도 레지오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성모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러한 믿음을 갈망해야 합니다. 부디 사회 분위기는 불신으로 가고 있지만 교회에서 레지오 단원들의 믿음은 더욱 충만해져 가길 소망합니다.
부활 제3주간(4월 23일-29일)
후유증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은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대부분 심각한 우울증, 불안증, 대인기피증, 분노 등의 심리․정신적 후유증을 겪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주목할 점은 80%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고, 10% 사람들은 사건을 경험한 이후에 그 고통과 시련을 넘어 더 성장하고 성숙하는 모습을 보이고, 반면 10%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 후유증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 심리․정신적으로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저의 어머니와 대화하다 보면 과거 15살 때 친지분과 관련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십니다.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 안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는 내용입니다. 제자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갈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주목할 사실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공생활을 같이 했던 제자들이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고, 그 충격이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눠주자 그때 비로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됩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그 후유증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절대 낙심하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교본 제38장 레지오 사도직의 주요점 19항 참조) 때로는 장기간에 걸쳐 헌신적인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좌절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아시고, 또한 성모님께 나아가면 성모님께서 보듬어 주십니다. 앞이 캄캄하고 때론 길이 안 보일 때, 세상 풍파에 시달릴 때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부활 제4주간(4월 30일-5월 6일)
양
지금은 늦은 나이가 아닐 수 있지만, 당시는 늦은 나이라는 27세에 신학교에 입학해 1997년 서품을 받았습니다. 첫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사목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 성당에는 어린이들이 많았습니다. 미사 강론 때 어린이들과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건네곤 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자그마한 어린양 인형이었습니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인형 한 개를 저의 자동차 눈에 띄는 곳에 놓고 다니는데 그 인형을 볼 때마다 서품받고 처음 본당 생활을 할 때의 좋은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 자동차를 탈 때마다 차에 있는 어린 양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목자이시면서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생각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의 비유를 들면서 양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목자는 양들을 부르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목자를 따른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목할 점은 양들은 낯선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목소리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목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부르거나 외쳐도 양들은 두려워하면서 낯선 사람에게서 도망치려고 합니다.
레지오 단원은 그 활동에 있어서 식별력이 필요합니다. 따라가야 할 대상과 따라가면 안 되는 대상, 가야 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대해 분별력을 갖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칫 무분별한 행동과 활동으로 인해 후유증을 겪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교본 제7장 예상되는 반대의견 참조)
따라서 봉사활동을 할 때 우선적으로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잘 숙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교본 자체에 너무 집착하거나 얽매이는 것도 유의해야 할 자세이지만 그렇다고 레지오 활동의 실천적 배경이라 할 수 있는 교본의 내용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활 제5주간(5월 7-13일)
길에서 만난 부자(父子)
산책을 좋아합니다. 제게는 유익한 시간이며 특히 영적인 감각, 순수한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 걷습니다. 보통 하루에 1~2시간을 걷곤 하는데 지난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인상적인 모습은 아버지가 앞서 걸으며 나무 막대기로 좁은 길의 풀들을 툭툭 치면서 걷기도 하고, 주위를 살피기도 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한여름이어서 뱀들이 나올까봐 또는 뒤에서 걷는 아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말없이 걸어가는 그 부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일순간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느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그 아들은 아버지의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 토마스가 예수님께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저희는 알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라고 하시면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고 덧붙이십니다. 놀라운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사실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길이다.”라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어떤 위인도 성인도 내가 길이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특별히 레지오는 교회의 그 어느 공동체보다도 강력한 질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교본 제8장 레지오의 기본 요소 2항 참조) 조직화되었고, 단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방식과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레지오는 기본 규칙을 바탕으로 질서체계를 만들어 그 규칙의 세부사항까지도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의 배경은 단원들이 좀 더 그리스도교적 완덕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즉 믿음, 성모님에 대한 사랑, 대담성, 자기희생, 형제적 사랑, 기도, 신중성, 참을성, 복종심, 겸손, 기쁨을 성장시키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원은 자신의 내적 성장과 성숙을 위해서 길 자체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뿐만이 아니라 성모님을 온전히 닮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레지오 기본 규칙들을 잘 수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활 제6주간(5월 14-20일)
고독사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2년도 우리나라 고독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사망자가 31만7680명이고 그 가운데 3378명이 고독사 형태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성별로는 남성이 2817명, 여성이 529명으로, 여성보다 남성이 4~5배 정도 높고, 연령별로는 50~60대가 가장 많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우리 주위에서 외롭게 살다가 쓸쓸하게 홀로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고독사란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혼자 임종을 맞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이라고 정의하는데 가슴 아프게도 고립된 공간에서 질병과 생활고로 외롭게 죽음을 맞는 고독사가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홀로 사는 세상도 힘들었을 터인데 마지막까지 홀로 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마음 아픈 사회 현실인 듯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그리고 복음 서두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도 제자들을 고아처럼 놔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 이 말씀은 세상에서 종종 혼자라고 느낄 수 있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레지오 단원은 가장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교본 제37장 활동의 예와 방법 2-3항 참조) 특히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가장 미소한 사람들을 위해 즉각적으로 활동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선 것처럼 레지오 단원들도 그 활동에 있어서 불우한 계층의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파악하고 찾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모쪼록 레지오 단원들을 통해서 우리 주위의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이 위로받고, 동시에 레지오 단원들은 보람과 함께 성모님의 은총을 느끼는 여정으로 이어지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