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시픽 베이 브릿지(Chesapeake Bay Bridge) 앞에서
안녕하세요. 오늘은 세계 100회 강연 중 49번째 강연이 노스캘로라이나(NC) 랄리, NC 주립대학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오늘강연이 열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랄리는 NC주의 주도이며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로서 인구가 약 41만명 정도이고(2010년기준) 이중 한인교민과 유학생은 2,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특히 이 지역에는 30분 거리에 3개의 유명한 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는데,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NCSU)가 위치한 랄리, 듀크대학교가 위치한 더램(Durham),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가 있는 채플힐로서 이 지역은 연구삼각지대(Research Triangle)로 불리워지며,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연구단지 중의 하나로 꼽힙니다. 따라서 이 세 지역을 중심으로 한인 교민 및 유학생들은 약 만명정도 있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더램의 듀크대학교에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었고 올해는 랄리의 NC주립대학교에서 강연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전 6시 30분 식사를 하시고 원고 교정 등의 업무를 보셨는데, 스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스님 일행이 묵은 숙소는 윤학순, 이영범 부부의 댁이었는데, 윤학순님은 인근의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식사 후 스님께서는 강연 준비와 스님 일행의 숙소와 음식을 제공하느라 수고해 준 두 부부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하셨습니다. 근처에 북미에서 가장 긴 다리인 체사픽 베이 브릿지(Chesapeake Bay Bridge)와 버지니아비치를 둘러본 후 강연장으로 가기로 해서 8시 40분에 숙소를 출발하였습니다.
체사픽 베이 브릿지는 체사픽만과 대서양이 만나지는 지점에서 메릴랜드와 버지니아를 연결하는 총 연장 23마일(약 37km)의 대형 다리로서, 북미에서 가장 길며 다른 교량과는 달리 바다 한 가운데서 곧바로 두번이나 해저터널로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심이 깊은 곳을 해저터널로 만들어서 큰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였으며, 다리 위를 달리다 바로 해저터널로 진입하여 반대편 육지로 갈 수 있도록 되어있고,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다리와 해저터널의 연결지점에는 식당과 낚시터가 있는데 이곳에 잠시 하차하여 전망대 피어에 서서 다리와 해저터널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 북미에서 가장 긴 다리인 체시픽 베이 브릿지(Chesapeake Bay Bridge)
이후 버지니아비치의 해안가를 차로 둘러본 후 비치로 내려가니 파도가 심한 대서양의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스님께서는 “바다가 성이 난 것 같다”며 웃으셨습니다. 이후 비치에서 나와 차를 타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랄리로 오는 내내 장대비가 쏟아져 오늘 강연장에 사람들이 제대로 올 수 있을런지 걱정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중간에 휴식도 취할 겸 휴게소에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계속된 비 속에서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를 지나는 도중에는 수많은 목화밭과 콩밭이 펼쳐져서 목화산업으로 유명했던 남부 지역의 흑인노예시대가 생각났습니다.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를 지나는 길에 펼쳐진 목화밭
장대비를 뚫고 랄리 지역으로 들어서니 어느덧 비는 멈추고 햇살이 밝게 비추기 시작하여 오늘 비 때문에 행사를 할 수 있을까 하던 걱정이 금새 사라졌습니다.
오늘 강연장인 NC 주립대학교에는 오후 3시 40분경에 도착하였는데 NC의 주립대학교 답게 도시가 대학건물들과 함께 어우려져 있고, 건물이 많고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곧이어 워싱턴정토회 유주영 총무님과 NC 주립대학교 물리학과에 재직 중이신 지창룡 교수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께 반가운 인사를 하였습니다. 지창룡 교수님은 이번 강연장을 빌리는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인데, “작년에는 스님께서 듀크대학교에서 강연을 하였고 이번에는 NC 주립대학교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며 학과 주임교수와 동료 교수들에게 스님을 소개하여 주셨습니다. 이후 스님께서 업무를 보실 수 있도록 교수님이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스님께서는 강연이 있기까지 편안히 업무를 보셨습니다. 도중에 강연 준비를 한 김홍재님이 스님 일행의 도시락을 가지고 와서 강연 전에 간단히 김밥으로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 NC주립대학교 물리학과 지창룡 교수님(가운데)과 동료 교수님(왼쪽)
스님께서는 지창룡 교수님과 함께 행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행사장으로 가는 도중에 한 학생이 스님께 인사를 하면서 한국에 계신 아버님이 스님의 팬이라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작년 행사를 준비했던 더램 듀크대학의 정상희님, NC에 살고 있는 김홍재님과 김성현님 등이 스님께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또한 원불교 교무님들이 찾아와 스님과 잠시 환담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 스님과 환담을 나누고 있는 원불교 교무님들
오늘 랄리의 NC 주립대학교 강연은 약 150명 정도가 참여하였습니다. 7시에 강연이 시작되자 지창룡 교수님은 “스님께서 이곳 NC 랄리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고 하면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적은데 스님을 모시고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고, 이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 되길 기원 드린다” 며 인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곧이어 연단에 오른 스님께서는 ‘고뇌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청중들이 생각해보도록 안내하면서 여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낮에 비가 엄청 나게 쏟아져서 오시는 길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다시 날이 개어서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아주 좋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얘기치 못했던 불행한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로 남 탓을 하죠. 부처님이나 하나님한테 기도 했는데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이루어지면 ‘기도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더라’ 하면서 하나님과 부처님도 탓하죠. 그래서, 이제는 밖으로 향하던 마음을 안으로 돌이켜서 모순의 근원을 찾아가 보았으면 합니다. 주제에 제한 없이 고뇌하고 있는 것이 있거나 궁금한 것이 있으면 같이 얘기를 해 봅시다."
그러면서 청중들이 편안하게 질문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오늘은 총 6명이 스님께 질문했습니다. 딸이 결혼적령기가 넘었는데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묻는 분, 종교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천국에 가거나 좋은 곳으로 환생하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 스님은 그것을 믿는지 묻는 분, 결혼을 해야 할 시점인데 여기는 한국 사람이 적어 만날 기회가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든다는 분,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혼자 사시는데 제가 한국에 들어가셔 모시는게 나을지 고민이 된다는 분, 한국에서 산 세월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더 많아졌는데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안주하지 말고 뭔가를 했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후회를 하게 된다는 분, 아들이 얼마 전 과속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히고 남한테 돈을 빌리고는 안 갚는 일이 계속 벌어져서 아들을 어떻게 다시 가르쳐야 할지 묻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남들 도우면서 살고자 각오를 했는데 현실은 쉽지 않을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저는 사람들을 좀 도우면서 살고자, 그리고 희망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자 행정학 석사과정을 선택한 학생입니다. 저는 이 길을 선택할 때 앞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은 물 건너갔다는 생각은 이미 했었습니다. 또, 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별로 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각오하고 선택했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의 인권과 행복을 위해 일해오신 스님의 열정의 원천은 무엇인지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 비영리 단체를 이끌고 싶은데, 이 길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남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낫지만 오십보 백보입니다.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 끼치는 것은 가장 나쁜 것에 속하고, 남의 이익을 위해서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그 다음에 나쁜 것에 속합니다. 이건 중간도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헤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고, 자기 이익을 버리고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반짝 할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합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손해보는 것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참는 데는 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남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여야 오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출발부터 내가 희생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중에 인생이 억울해집니다. 나는 이렇게 희생해서 나라를 위해서 헌신했고, 세상을 위해서 헌신했고, 가족을 위해서 헌신했는데, 나한테 돌아온 것은 무엇이냐? 이렇게 해서 오히려 세상을 원망하고 나라를 원망하고 가족을 원망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원망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행정학을 전공했다면, 그걸 가지고 제도적인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고, 노력을 해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되도록 하면 됩니다. 해도 해도 안 되면 포기하고 다른 것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것이 더 보람이 있고 재미가 있다’ 이런 마음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결과적으로 성공을 했다면 그것도 괜찮고, 또 결과적으로 성공을 못 해도 내 인생이 실패냐? 그렇지 않습니다. 실패란 것은 없습니다. 어떤 일은 내가 두 단을 만들어 놓고 죽으면 다음에 내 후배나 후손들이 와서 또 두 단을 만들어가고, 또 죽으면 그 다음에 또 누가 와서 두 단을 만들어가고, 이렇게 나가는 것이지 바른 길에는 실패란 없어요.
역사를 한번 보세요. 4.19는 당시에 실패했고 5.16은 당시에 성공했잖아요?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평가가 됩니까? 헌법 전문에 4.19는 나와 있지만 5.16은 없어요. 4.19는 당시에는 실패했지만 역사 속에서는 성공한 것입니다. 5.16은 당시에는 성공했지만 역사 속에서는 실패한 것입니다. 5.16 이후에 결과적으로 좋아진 것도 많이 있는데도 왜 5.16을 헌법 전문에 못 넣을까요? 5.16은 헌정 질서를 중단시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헌법에 넣으면 앞으로 누구든지 헌정 질서를 중단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짧게 보면 안돼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당시에는 실패한 거였어요. 그러나 역사에서 보면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문자는 “실패를 하더라도”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어요. 변화를 가져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만약 10단을 쌓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나는 2단까지만 쌓고 가는 것이고, 나 이후에 5대에 걸쳐서 이 일은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개혁의 목표를 좀 더 근원적이고 크게 세우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고, 개혁의 목표를 아주 작게 세우면 내일이라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위한다는 생각이 있으면 결국 그 사람과 원수가 됩니다. 왜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원수가 되었습니까?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할 때 ‘너도 나를 사랑해라’ 하는 요구도 따라옵니다. 이 요구가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섭섭해지고 미움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요구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 요구가 불행을 자초합니다. 요구가 있기 때문에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설악산을 좋아하거나 바다를 좋아할 때는 요구가 있어요? 없잖아요. 요구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랑에는 요구가 있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마라는 것이 아니라 이 요구를 버려라는 것입니다. 요구를 가지고 사랑한다는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거래입니다. ‘내가 너 이만큼 좋아하니까 너도 이만큼 좋아해라’, ‘내가 전화 세 번 했는데, 너는 왜 전화 두 번 밖에 안하니?’, ‘내가 술값 세 번 냈는데, 너는 왜 한 번 밖에 안내니?’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돈도 더 많이 벌고, 집안 일도 내가 더 많이 하고, 애도 내가 더 보고 있는데, 너는 도대체 뭐하니?’ 이렇게 계산을 하기 때문에 부부가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입니다. 거래를 좀 하지 마세요. 부부 사이에 왜 거래를 해요?
세상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반드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착한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착한 사람이 더 무섭습니다. 왜 그럴까요? 착한 사람은 자기가 고집 센 줄을 몰라요. 나쁜 사람은 자기가 성질이 더러운 줄을 알아요. 착한 사람은 늘 착하다는 소리만 들었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자기가 100% 옳은 줄 압니다. 착한 사람은 착하다는 관념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남의 얘기를 잘 귀담아 들을 줄 몰라요. 부부 지간에도 성질이 좀 있는 사람은 불평이 있으면 불평을 자꾸 얘기하니까 상대가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를 아니까 조절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착한 사람은 절대 말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 일도 없는 줄 알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보따리 싸서 가버리고 없어요. 혼자 속으로 참다가 터지거든요(청중들 웃음).
제가 질문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질문자는 착한 병에 걸린 사람이예요. 그러면 질문자는 자기가 자기한테 속습니다. 인생을 너무 과대평가하면 안돼요. 인간이란 별거 아니에요. 산에 사는 토끼 한 마리나 인간이나 나고 죽는 것은 똑같습니다. 인간을 너무 위대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이 괴로운 겁니다.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지 말고, 내가 행정학을 했든 무슨학을 전공했든 그 일을 해서 밥 벌어 먹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첫째, ‘아이고, 내가 일을 조금 밖에 안 했는데도 밥을 많이 주니까 고맙다’ 이렇게 고맙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일한다 자꾸 그러지 말고요. 결혼해서도 ‘내가 너를 위해서 산다’ 이러면 자꾸 싸우게 됩니다. ‘아이고, 나와 같이 살아줘서 고맙다’, ‘나 같은 사람과 누가 살아주겠노.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면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너무 큰 얘기 하지 마시고요. 밥 먹고 사는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고, 아침에 눈 떠보고 안 죽은 것만 해도 감사할 줄 알고 이렇게 살면서, ‘이왕지 살아 있을 바에야 남한테 좋은 일 좀 하자’ 이렇게 가볍게 생각해야지 너무 사명감이 크면 인생이 고달퍼 집니다. 인생에 너무 큰 무게를 두지 마시고 조금 가볍게 사는 게 좋아요.“
“저는 사회 문제를 보고 화딱지가 나는 것이 동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이제 그만해야 하나요?”
“화딱지가 나는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문제다 라고 할 때 내 속에서 분노가 있으면 파괴적인 에너지가 나옵니다. 역사에서는 때론 파괴적인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파괴적인 에너지가 혁명을 불러오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나 미국 사회가 과연 혁명의 시기인가 이걸 살펴봐야 합니다. 지금 있는 걸 다 때려 부수고 완전히 새로 건설해야 하는 혁명의 시기인가요? 아닙니다. 혁신, 즉 개혁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세상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비판의식이 있으면 혁신을 가져오지만, 부정적 시각 위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면 파괴적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래서 역사를 살펴보면 혁명을 할 때 뒷수습에 대부분 실패를 해요. 그 이유는 파괴적 에너지만 갖고 있지 창조적 에너지는 못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실패를 합니다. 열에 아홉은 실패를 하고 열에 하나 정도가 혁명을 해서 성공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그럴 때는 그 혁명 세력 안에 세상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는 창조적 에너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 혁명 같은 경우에 주은래(周恩來) 같은 사람은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굉장한 애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혁명이 극단적으로 안 흘러갑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면 극단으로 흐르기가 쉽고, 자기가 너무 속이 상해서 자기를 다치게 됩니다. 세상이 뜻대로 안되니까 자꾸 세상을 미워하거나 한탄하게 되거든요. 지금 대한민국에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고 부정적인 요소도 있잖아요. 다 합해서 종합점수를 매기면 어떻게 될까요? 49대 51이 되어서 다만 1이 많다 하더라도 저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혁명을 할 시기가 아니고 혁신을 할 시기입니다.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바탕 위에 그러나 아직 민주주의가 부족하다, 복지제도가 부족하다 등 여러 가지 부족한 것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보고 접근을 해야 개선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화딱지가 나서 사회운동을 하면 자꾸 때려 부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혁명적 시기의 주역들이 혁명만 성공하고 약간 뒤로 빠져주고, 혁명의 시기에는 별로 역할을 못했던 사람들이 건설의 시기에는 중요한 역할들을 할 수 있는데 혁명에 성공한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해 버리면 건설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배제해 버리기 때문에 실패로 끝나게 되거든요. 테크놀러지 계층은 혁명의 시기에는 굉장히 이중적입니다. 여기 붙었다가 저기 붙었다가 배신자처럼 보이기 쉬운데, 이 사람들은 이념적이지 않기 때문에 건설의 시기에는 방향만 딱 바로잡아 주면 거기에 다시 자기 재능을 투여합니다. 이런 것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노해서 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 에너지를 승화시켜 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분노를 해소시킬 수 있는 마음공부를 좀 하고 그 강력한 분노를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중에는 친일 후손도 있고, 극보수도 있고, 분단 세력도 있고, 온갖 사람들이 다 있지만, 그 사람들도 다 한 표의 투표권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그들마저도 포용하는 마음을 내어야 긍정적 에너지가 되지 누군가를 미워하는 쪽으로 자꾸 치우치면 에너지가 오래 못 갑니다. 반짝 빛나다가 안되면 포기해 버리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승화시키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네, 앞으로 마음에 잘 새기고 살아가겠습니다.”
“마음에 분노가 많으면 절을 좀 많이 해야 돼요. 분노가 많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생각에 치받쳐 있는 것이거든요. 절을 많이 해서 땅에 머리를 숙여야 ‘내가 옳다’는 것을 좀 내려놓을 수 있어요.”
조금 긴 문답이었지만 가슴에 새겨들을 말씀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질문자도 지혜롭고 명쾌한 답변을 듣게 된 것을 기뻐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어느덧 강연 시간이 2시간 30분이 넘어갔음에도 청중들은 움직이지 않고 스님의 답변에 때론 웃으며 때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습니다. 끝까지 경청해준 청중들에게 스님께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보다 더 행복에 이르는 길인지 마지막 정리 말씀으로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들려주셨습니다.
“금강경에 마음을 항복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이 있어요. 진정으로 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물으니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을 구제하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남에게 도움을 얻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도움을 못 얻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우리는 남에게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데, 너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남을 도와주라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너가 도와줬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보살이 아니다“ 이런 말도 나옵니다. 즉, 보상 심리를 가지면 다시 미움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베푸는 것은 베푸는 것으로 끝나야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이것을 ‘무주상보시’라고 합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어떤 일을 할 때는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합니다. 공부를 누구를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공부는 하기 싫고 박사는 따야 하고 그래서 억지로 공부하니까 지금 힘든 겁니다. 자꾸 재미를 붙여야 합니다.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보고 유용하게 쓰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공부가 끝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에요. 나이 든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에요. 이민 온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니에요. 지금 주어진 이 상황에서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해요. 행복은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왜 사는가?’ 라고 질문하지 마세요. 우리는 어차피 던져진 존재이고 지금 여기 살고 있어요. 이왕지 사는데 어떻게 살거냐? 괴롭게 사는 것보다는 행복하게 사는 게 낫고, 속박 받고 사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사는 것이 낫잖아요. 그럼 어떻게 하면 자유롭고 행복해지느냐? 이것은 우리 마음의 작용을 잘 살피면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다 알 수 있고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행복하게 만들어가며 사시기 바랍니다.”
참가한 모든 분들이 스님의 정성스런 답변에 감사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책 사인회가 마련된 곳으로 자리를 옮겨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분들에게 사인을 해주며 눈을 맞추고 인사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을 위해 자원봉사를 한 많은 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워싱턴정토회 유주영 총무님과 워싱턴정토회 신도님들을 비롯하여 NC주립대학교의 대학원 한인학생회에서 많은 학생들이 합심하여 홍보도 하고 강연준비를 도맡아 주었습니다.
기념촬영 후에는 오늘 공동으로 행사를 주관한 NC주립대학교 대학원 한인학생회장 왕계원님께 금강경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리고, 이곳 랄리 지역에 살며 행사준비를 함께 한 김홍재님께는 반야심경이야기 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렸습니다. 아울러 강연장 선정과 행사 준비에 도움을 주신 지창룡 교수님께 인생수업을 사인하여 선물로 드리고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NC주립대학교 대학원 한인학생회장 왕계원님(왼쪽)과 지창룡 교수님(중간), 김홍재님(오른쪽)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모두에게는 한국에서 선물로 가지고 온 단주를 손목에 끼여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뒷마무리 후 묘덕법사님은 유주영 총무님과 함께 봉사자들과 마음나누기를 하였고, 스님께서는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하여 멀리 워싱턴정토회에서 이곳까지 와서 강연준비를 도와준 워싱턴정토회 신도님들에게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하신 후 숙소로 출발하셨습니다.
▲강연 준비를 함께 도와준 워싱턴정토회 신도님들
20여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지만, 모두들 학업에 바쁜 유학생들이라 행사를 마치자 마자 가신 분들이 있어서 묘덕법사님과의 마음나누기에는 13명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번 랄리 NCSU 강연은 이 대학교의 대학원 한인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강연을 준비하였는데, 대학원생들이 중심이 되다보니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랄리 강연 행사를 책임 맡아서 준비했던 김홍재님은 깨달음의장 수련을 한 인연으로 행사를 맡았는데 "강연 장소를 찾기가 힘들었고, 나중에는 대학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선뜻 장소를 구해주신 지창룡 교수님과 학생들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직장 생활과 병행하면서 강연 준비를 하다보니 홍보가 조금 부족했었던 것 같다"고 아쉬워 하였습니다.
▲ 강연을 마치고 묘덕법사님과 마음나누기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마음나누기를 함께한 많은 분들이 작년에 듀크대학교에서 스님 강연을 들었는데, 올해는 스님께서 랄리 NCSU까지 직접 방문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또 자원봉사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유튜브를 매일 듣고 있는데 유학생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에 스님 강연이 지속적으로 유튜브에 제공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이 대학교 학생은 아니지만 지인을 통해서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함께 해서 좋았다고 하면서도 "대학교에서 강연이 있다보니 주차장과 강연장이 멀어서 불편했는데 홍보할 때부터 주차장 안내가 함께 이루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아쉬워하였습니다. 또한 한 학생은 4년 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스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이번에 NCSU 대학원에 다니게 되어 강연도 듣고 자원봉사도 하게 되었다면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4년 전의 모습과 비교하여 현재 나의 변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스님 일행이 묵는 숙소는 잭슨빌로 내려가는 95번 길목에 있는 작은 도시 Inn을 정했었는데, 내일 잭슨빌까지 7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해서 랄리에서 1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와 다시 숙소를 정했습니다. 행사 후에 숙소에 도착하니 10시 40분이 되었고, 수속을 마치고 숙소에 들어가니 11시가 넘었습니다. 숙소에서 스님께서는 원고교정 업무를 보셨습니다.
이렇게 오늘도 많은 분들의 정성과 자원봉사로 49번째 랄리(Raleigh)에서 열린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강연도 잘 끝났습니다. 내일은 50번째 강연이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열립니다. 내일은 잭슨빌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 지난 날짜 소식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