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예수는 역사다>에 대한 변증전도 관점의 영화평... '의심 없이는 확신도 없다... 어느 순간에는 믿음의 도약이 필요하다'
무더운 8월의 첫날. 가족과 함께 잠실에 있는 롯데 시네마 월드 타워점에서 영화 ‘예수는 역사다’를 관람했다. 한창 ‘중2병’ 증상을 보이는 딸아이에게도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싶어 함께했는데, 꽤 진지하게 영화에 몰입하는 눈치였다. 아내와 나도 가족 이야기를 배경으로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에 공감하며 영화에 쭉 빨려들었다.
이 영화는 무신론자이자 시카고 트리뷴 지의 법조 전문 기자로 일하던 리 스트로벨의 회심의 여정에 대한 실화를 극화한 것이다. 트리뷴 지의 최연소 기자로 입사한 후 승승장구하던 리는 어느 날 저녁 가족과 외식하던 자리에서 껌사탕을 잘못 삼켜 질식사할 뻔한 딸을 한 크리스천 간호사의 도움으로 구해낸다. 이 일을 계기로 아내 레슬리가 크리스천이 되자 무신론자였던 리 스트로벨은 아내의 신앙심에 반발하며 하나님의 존재 또한 더욱 강하게 부정한다.
마침내 그는 아내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예수의 부활 사건이 허구라는 걸 입증해낼 결심을 굳히게 된다. 이후 영화는 리가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데 필요한 증거들을 수집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자로서 리는 기독교변증가를 비롯해 고고학자, 신약 신학자, 의사, 심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취재한 끝에 도리어 기독교 신앙의 진실성을 발견하고 극적으로 회심하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다.
미국에서 지난 4월 개봉 당시 박스 오피스 9위에까지 오르고, 한국에서도 개봉 2주차에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아 세간의 주목을 받은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비신자와 신자 모두에게 기독교의 진실성을 감동적으로 일깨워준다는 호평에서부터 선교영화라기보다 간증영화에 가까워 비기독교인들에게는 호소력이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평소 변증전도에 관심 있는 사역자로서 나는 변증전도의 관점에서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나 분위기를 눈여겨보았다. 이 영화에서 참고할 만한 변증전도 포인트를 3가지로 요약해 간략하게라도 나눠보고 싶다.
변증전도 포인트 하나: “한 마디로 뻔하지 않고 재미있다”
이 영화는 우선 재미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혹시 사실을 추적하는 다큐 위주로 전개되진 않을까 염려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기독교변증의 콘텐츠를 전달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탄탄하고 속도감 있는 스토리 라인으로 영화다운 재미를 더했다. 기독교가 가진 답 자체보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최대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예를 들면, 먼저 신자가 된 아내와 남편의 심각한 갈등, 리가 아버지와 겪어온 불화와 같은 불편한 가족관계의 이면에 남편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기도하며 기다려주는 아내의 배려, 표 나지 않게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응원했던 아버지의 부성애를 통해 삶의 제반 여건 가운데 은밀하게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형상화한다. 또한 주인공 리가 기자로서 선입견으로 오보 기사를 내는 바람에 재판에서 한 사람이 무고하게 정죄받는 과정을 통해서는 예수님의 존재를 그렇게 각자의 편견으로 오해하고 지나쳐버리는 무심한 세태를 복선 처리해서 보여준다.
기독교 진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요한복음 3장 16절로 충분하다. 그러나 그 한 구절을 생생한 역사 가운데 감동적으로 보여주려고 성경에는 수많은 등장인물과 스토리, 플롯이 동원된다. 어쩌면 이미 성경 속에 변증전도에 참고할 만한 수십, 수백 편의 영화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변증전도에서도 이런 재미있고 생생한 서사적 감동을 더하려면 답을 너무 빨리 내놓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라는 답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은 어떻게 이미 그분이 세상에 베풀어주신 창조질서와 사랑의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 그분이 없이는 왜 사람들 각자의 삶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통째로 빠져버리게 되는지를 다각도로 현실감 있게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성경 속의 예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라는 그 답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지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며 이끌어줘야 한다.
변증전도 포인트 둘: “정말 사실을 통해서만 진실로 갈 수 있다”
“사실을 통해서만 진실로 갈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내가 특별하게 느낀 대사다. 영화에서는 초반부와 후반부에 두 번 반복해서 이 대사가 등장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실 확인, 즉 팩트 체크를 통해 진실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의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2천 년이나 지난 과거사의 진실을 지금에 와서 무슨 수로 확인할 수 있을까.
시카고 트리뷴에서 법정 사건들을 기사로 많이 다뤄본 리는 다행히도 법정에서 특정 사건을 재판할 때 다양한 범주의 증거들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주로 목격자들의 증언, 기록상의 증거, 확증적 증거, 반증, 과학적 증거, 심리학적 증거, 정황 증거 등을 다루는데, 동명의 책 <예수는 역사다>(두란노)에서도 이 순서를 따라 예수 사건의 단서를 찾아간다.
먼저 부활 사건이 기록된 성경의 권위가 얼마나 신뢰할 만한가에 대해 추적한다. 특정 사건을 보도한 매체의 권위가 얼마나 믿을 만한가에 따라 그 사건의 사실성 여부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지금도 직접 눈으로 어떤 사건을 보아서가 아니라 그 사건을 보도한 언론 매체의 권위를 믿고 사실 여부를 판단한다.
이렇게 보면 여러 객관적 근거들로 볼 때 독보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될 만한 성경의 기록을 중심으로 리가 추적해낸 부활 사건의 그럴듯한 단서들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사실성을 갖춘 역사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 속에서도 팩트 체크의 과정을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않는데, 주로 주인공 리가 끈질기게 의심하고 질문하고 비신자들의 입장에서 반박하는 대사들을 활용한다.
“그럼 사실은 어디 있나요? 부활 이야기는 역사보단 전설 같은데….”
“그래요? 부활을 목격한 기록들이 있어요.”
“전부 예수의 추종자들이었잖아요.”
“다는 아니죠. 사울을 봐요. 원래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죠. 근데 결국 사도 바울로 순교하잖아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다가….”
"까놓고 얘기해서 속아서 죽는 일은 늘 있었잖아요.”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차이는 이거예요. 속는 걸 알면서 기꺼이 죽진 못해요.”
변증전도 역시 사람들이 하나님이나 기독교 진리에 대해 가진 의문이나 오해, 걸림돌들을 먼저 제거해주는 데 초점을 둔다. 합리적인 의심의 과정 없이는 사실성을 드러내는 증거들의 가치를 몰라볼 뿐 아니라 그에 따라 의미 있는 확신도 품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이러한 변증전도의 공식을 충실하게 스크린에 담아낸다.
변증전도 포인트 셋: “변증만으로는 2퍼센트 부족하다”
이 영화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들로 제시되는 것들은 모두 확실한 물적 증거라기보다 ‘정황 증거’에 속한다. 그래서 리 역시 이 영화에서 “기독교인들은 사실처럼 보이는 증거들을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식으로 에둘러서 비판한다. 그의 말이 옳다.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완전히 확실한 증거는 찾기 어렵다. 어느 순간에는 믿음의 도약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실마리 이상의 증거들을 헤프게 보여주시지 않는다. 확고한 정황 증거의 단서들을 확인하고 나서는 하나님을 떠나 있던 자신의 삶을 돌이켜 그분께로 향해야 한다. 그럴 때만 맛보고 누릴 수 있는 은혜, 가장 좋은 것이 뒤에 남아 있다. 이 은혜를 무시하면 아무리 많은 증거들을 본다 해도 못 믿을 만한 이유가 막판에 꼭 하나씩은 더 남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준비한 믿음의 선물은 진정 어린 회심을 통해 주어진다.
이 영화에서도 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토록 처참하게 죽으신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아버지와 아내의 사랑을 떠올리며 결국 진심으로 마음문을 열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문을 열기까지 하나님이나 기독교 진리에 대한 그의 의문은 그의 기질이나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먼저 처리되어야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리가 거쳐 온 방식대로 회심을 경험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양한 경로로 하나님을 만나는 만큼 각자의 개별적인 체험을 섣불리 절대화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합리적인 납득의 과정이 먼저 필요하고, 그런 연후에야 회심의 은혜가 유의미하게 작동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신의 형상인 지성, 감정, 의지를 가진 존재로 지으셨다. 우리의 이성으로 먼저 납득되어야 마음이 열리고 손발이 움직이게 된다. 변증전도는 지성, 감정, 의지를 골고루 중시하는 전도다. 한국교회 안에도 이제 어느 한 쪽에 치우친 일방통행식 전도가 아니라 쌍방향 소통의 전인적인 전도가 좀더 본격적으로 시도되어야 할 때다. 영화 <예수는 역사다>는 바로 이러한 시도를 격려하고 확산시키는 감동적이고도 ‘기-승-전-예수’의 자체 논리가 치밀한 ‘변증전도용’ 영화다.
-안환균, <빛과소금>(두란노) 2017년 9월호 영화평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