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그릇 천한 그릇 (딤후2:20~21)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창1: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그런데 사람만 흙으로 직접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흙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을 토기장이라고 말합니다.
롬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람을 지으시면서 귀한 그릇과 천하게 쓰일 그릇을 만드시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모양을 결정하여 만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어떤 그릇이고 나는 어떤 모양일까요?
스스로 보기에도 천한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자신에 대하여 대체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세상에 있는 모든 동식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고전12: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한가지로 동일하게 존재할 수 없고 필요에 따라 재능에 따라주어진 일이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천한 그릇과 귀한 그릇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자신이 담고 있는 것에 따라 구분됩니다.
보석을 담으면 보석함이 되고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이 됩니다.
사람이 무엇을 마음에 담고 있느냐에 따라 귀한 그릇이 되고 천한 그릇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창3:6]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여자가 탐욕을 담고 있어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으므로 저주를 불렀습니다.
말씀을 담고 있었으면 그는 절대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나무의 열매를 천하게 보는 눈과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아주 작은 탐욕이 사람을 천한 그릇이 되게 한 것입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 선택함을 받은 귀한 그릇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자신의 욕심을 따랐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천한 그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께서도 버리셨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비록 예수님을 거역하고 핍박하는 천한 그릇이었지만 은혜를 받고 난 후 회심하여 예수님의 일에 자기 목숨을 걸어 자칭 사도라 칭하는 귀한 그릇이 된 사울이라는 청년을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극찬하셨습니다.
[행9:15]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구약에 나오는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귀한 그릇으로 택함을 받았으나 천한 그릇으로 버림을 당하였고 신약의 사울은 예수님을 훼방하는 천한 그릇이었으나 복음을 전하는 귀한 그릇이 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어떤 일을 하느냐로 구분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일을 하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일을 하고 유교를 믿는 사람은 유교의 일을 합니다.
자기 신앙에 따라 자신의 행동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마27:31]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하나님 아들 예수님을 영접할 기회를 희롱하며 비웃으며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집착하는 유대인 무리가 있고,
예수님이 무죄인 줄 알면서 십자가 사형을 선언한 빌라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한 그릇이 스스로 천한 그릇으로 만든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삼손이나 세례 요한은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순교를 자청함으로 귀한 그릇이 되었지만 삼손을 잡아 죽이는 블레셋 방백들과 세례 요한의 목을 벤 헤롯왕과 그의 일당들은 천한 그릇이 되어 저주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하나님을 믿어 계명은 지켜 귀한 그릇이었지만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여 천한 그릇이 된 청년의 일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막14: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기생으로 천한 그릇이었던 여인이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는 헌신으로 귀한 그릇이 되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그 이름도 같이 전파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세 번째로 무엇을 바라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율권을 주셨습니다.
신11:26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신30:19]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라고 말씀합니다.
생명을 선택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막9:43]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9:45]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영생이 얼마나 중요하면 손을 찍고 다리를 찍어 버리고 라도 가야 한다고 말씀할까요?
사람은 사망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사망의 저주를 어떻게 해서든지 풀어서 아담이 범죄 하므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영생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내 목숨을 버려서라도 부활에 이르는 것이 그의 소망이 된 것입니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에게 사망을 이기고 영생하는 길을 주신 것을 바라고 믿는 삶이 되는 것이 귀한 그릇이 되는 길입니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마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세상의 욕망을 쫓아 사망에 이르는 수고의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귀한 그릇이요 영생이 담긴 그릇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https://youtu.be/CIf0SwEHh7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