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5일째
아침 일찍 짐을 챙겨 호텔을 나와 이동하는데 841번 서울버스가 보였다. 사당역과 잠실을 다니는 버스인데 쿠바에서 보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다. 동남아와 블라디보스톡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는데 아바나에서 그런 모습을 보다니... 마탄사스로 향했다. 오래된 작은 석유채굴과 정유공장이 보인다. 화력발전소도 보인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다. 2006년에 바라데로로 가는 길에 들렀던 곳이라 반갑기도 하다. 파인애플에 빨때를 꽂아 돌리니 모두 시원하게 마신다. 4인조 혼성밴드가 관광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준다. 기념사진도 한 컷 찍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처음 가는 길이라 낮선 풍경들이 나오면 틈틈이 설명을 해 주는 가이드 이반의 수고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드디어 마탄사스 신학교에 도착하니 김선기선교사가 반갑게 맞아 준다. 예장 통합 측에서 쿠바교회협의회와 협력해 선교사로 파송된 유일한 분이라고 하셨다. 1946년에 설립되었으며 25개 교단이 가입한 쿠바교회협의회의 에큐메니칼 신학교이다. 4만평의 대지에 일부 농장이 운영중인데 지역에서 일꾼들이 수고를 해 주고 있다고 했다. 연간 20만불이 소요되는데 유럽교회와 한국교회가 도와주고 있다고 하셨다. 1994년 헌법개정으로 종교의 자유가 확대 되었는데 기독교인도 공산당원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특히 요한바오로 2세 교종의 방문도 있었고 2006년 베네딕토교종 그리고 올 9월에는 프란치스코교종이 방문할 예정이란다. 한국의 다른 교단 교회가 공식적으로 쿠바교회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필요한 방법을 알려 주셨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짧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음을 아쉬워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가톨릭 요한바오로 2세 교종의 쿠바방문을 계기로 쿠바는 세계로 문을 열고 카톨릭은 쿠바에 문을 열게 되는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마탄사스는 쿠바의 아테네라고 불리며 한인 후손들이 200여명 살고 있고 에네껜 농장이 있는 근처 까르데나스에 300여명이 살고 있단다. 1921년 멕시코에서 3백명이 사탕수수 농장의 근무조건이 좋아 이곳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주 직후 사탕수수 값이 폭락해 버림으로 인해 다시 에네켄농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전체 1천명 중 절반이 모여사는 중이라고 했다. 2011년부터 이사가 가능했다고 한다.
다시 마탄사스 시내를 거쳐 시엔푸에고스로 향했다. 오후 2시가 넘어 해안가 요트장이 있는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따가울 정도의 날씨에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로 시엔푸에고스 시내에 도착했다. 이 곳 출신의 1950년대 전설적인 국민가수 베니 모레(1919-1953)의 동상이 보이는데 사진을 찍었다. 아직도 그의 인기를 넘어서는 가수가 없다고 한다. 거리를 걸으며 가게도 둘러보고 쿠바인들의 소비생활도 짐작해 본다. 거리에서 복제된 음악CD를 구입하면서 베니 모레의 CD도 한 장 구입했다. 농업(사탕수수) 과 관광 작은 공장이 근간 산업이다. 씨엔푸에고스만에는 베네수엘라와 합작인 석유정제 공장이 있다. 주인구는 50만 시에는 14만이 거주한다. 쿠바의 진주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곳이고 프랑스식 건축물이 많다. 1519년에 부유한 귀족 루이스테 돌레도가 프랑스 40인 규모의 마을을 조성했고 초기에는 백인촌을 구성하려했으나 태풍으로 마을이 파괴되면서 주변의 백인들이 동의하지 않아 나중에 흑인들에게 개방하게 된다. 도로중간에 인도와 벤치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 프라도는 3km이며 아바나보다 길고 잘 정비되어 있다. 쿠바의 진주라고 불리운다. 예전의 프랑스 건축양식외에 아파트 등 구 쏘련식 건축물이 공존하게 된다. 쿠바의 음악역사에서 거리의 음악인 출신이면서 리듬의 황제인 베니모레가 씨엔푸에고스 출신이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해지기 직전 안콘해안의 호텔에 도착했다. 지난 해 1월 왔던 곳이라 익숙하면서 반가웠다. 짐을 풀고 잠시 바다에 뛰어들어 시원하게 수영을 해 본다. 이어서 뷔페식 식당에서 마음껏 식사도 하고 맥주나 와인도 마시면서 하루의 피로를 푼다. 그리고 9시부터 시작되는 공연도 보고 일부는 지하의 디스코텍에도 가 보았다. 가족단위로 와서 놀기도 하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 썰렁했다.
13일 6일째
아침에 일어나 수영하러 바닷가에 들어갔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고요한 아침바다가 좋다. 조식 후 예정대로 트리니다드로 이동했다. 20분 거리라 금방 도착해 먼저 도자기 공예점을 들렀다. 쿠바에서는 유명한 장인이라고 소개되는데 다양한 작품들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찌 몇 개를 사고 다시 여러 곳을 차례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ICAP의 현지 가이드가 안내해 주었다. 노예무역과 사탕수수 공장 등으로 번창했던 도시였으나 사탕수수 가격 폭락과 노예무역의 쇠퇴로 1870년대부터 도시가 정체된 상태로 유지되어 왔다. 19세기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1990년대 고난의 시기에 쿠바의 관광개방정책에 따라 독특한 관광지로 각광을 받으면서 다시 부흥되고 있다. 마요르광장을 중심으로 가톨릭성당 그리고 의사였던 부자의 집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전망대를 올라가며 사방을 둘러 볼 수 있고 당시 노예탈출을 감시하는 감시탑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손으로 짜는 망사자
켓 하얀천에 수를 놓은 작품을 많이 제작해서 거리에서 판매하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성당에 마련된 제대로 하얀 천 수공예품으로 만든 것이라 인상적이었다. 16세 성인이 되는 성인식의 예쁜 아가씨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오후에 안콘호텔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바다로 뛰어들었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해 파고라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음껏 마시면서 여유롭게 바다를 즐긴다. 젊은 청년그룹이 함께 어울려 노는 모습이 귀여워서 인사도 나누고 사연을 들어보니 여러 나라에서 함께 행사에 참여한 후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소개했고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공연장에 앉아 관람을 했다.
14일 7일째
아침 일찍 주일예배로 모였다. 조용한 해변가에서 이진형목사가 손주보를 만드셨고 정해빈목사께서 설교를 하셨는데 유대인 랍비가 쓴 책을 소재로 ‘전지전능한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하셨다. 이렇게 함께 예배한다는 것이 참 좋다. 산책삼아 앙콘 해변을 걸었다. 호텔이 있는 구역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해변에는 가족단위로 또 아이들이 그룹으로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에 익숙하다 못해 적극적으로 찍으라는 포즈까지 취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정리해 버스에 몸을 싣고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하루 장날이 열리는 모습도 차창밖으로 보였다. 시간을 절약하느라 지름길로 가기 위해 산길로 가는데 캠핑장같은 시설도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산타클라라 체게바라 혁명기념관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이 마침 체게바라의 생일에 왔으니 행운인데 좀 일찍 왔더라면 축하기념식에 참석하며 3백인용 빵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내년에는 생일에 맞춰오라고 권유해서 고려하겠노라고 응답했다. 현지가이드의 안내로 기념관 내부를 돌아보았다. 체의 유품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고 산악지대 전투중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 체게바라가 함께 찍은 사진이 인상적이다. 전시관을 나오니 시인이 안치된 무덤 형상의 영원의 불꽃이 타고 있었다. 전태일기념 그림 등이 중간에 전시되어 있어 반가웠다. 1988년 개관하였다. 1958년 산타클라라에서 혁명군이 정부군을 패퇴시키는 커다란 성과를 거둠으로써 바티스타 정부군을 몰아내고 쿠바혁명을 성공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이후 체게바라는 볼리비아 혁명을 위한 게릴라전을 전개하기 위해 39명과 산악지대에 잡입했고 얼마되지 못해 정부군과 미국CIA의 추적 공격으로 전원 사망했다. 볼리비아 공산당의 비협조와 주민들과의 협력관계 구축의 실패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볼리비아에서 체게바라의 시신을 찾아 쿠바로 이송해 왔고 이 곳에 안장하였다. 쿠바에는 사람이 죽으면 2년간 매장후 시신의 뼈만 추려서 공원묘지에 안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쿠바혁명투쟁의 승리의 분기점이 되었던 전투장이었던 산타클라라에 기념관을 세운 뜻이 이해되었다. 이 곳에 체게바라 도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시장의 구상이라고 소개했다. 기념품가게를 돌아보다 작은 흉상을 하나 구입했다. 부지런히 달려 이동하면서 중간에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비속을 발려 아바나에 도착해 예약해 둔 까사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 살사경연대회장을 갈 수 없어 아쉬웠자. 중심가 아파트에 여러 층에 분산된 각 가정의 방 2개 숙소였는데 깔끔했다. 옥상의 풍경들이 폭격맞은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퇴근길 합승하기 위해 분주해 하는 쿠바노들, 한끼 식사를 간단히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졌다. 까사앞 리어카 좌판에서 망고를 푸짐하게 샀고 맥주와 특식으로 라면을 끓여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후 말라콘으로 이동해 함께 따로 걸으며 비안날레 작품도 보고 해안가 풍경을 즐기고 쿠바노들의 모습에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 여유를 즐겨 보았다. 1세우세에 3개하는 싱싱한 망고를 마음껏 먹으면서 그동안 먹지 못했던 한이 풀렸다고 해 한참을 웃었다. 숙소는 깔끔했고 모두들 만족해 하는 분위기 였다.
6월 15일 8일째
새벽 5시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내려왔는데 자물쇠가 잠겨 잠시 갇히는 신세를 즐기기도 하다가 버스로 출발해 공항으로 이동했다. 이반과 기사에게 감사하고 헤어졌다. 특히 이반에게는 메일로 접촉을 계속하자고 했다.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후 탑승구역으로 이동했다.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면세점에서 이것저것 쇼핑과 구경도 해보고 마침내 탑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