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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창박물관
거창의 역사 유물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거창박물관은 한옥구조의 2층 건물로 거창읍 김천리에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의 규모는 2,600평의 부지에 1, 2층 250평의 전시실과, 강당 및 전시실을 갖춘 120여평의 별관, 그리고 야외전시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물관을 만들게 된 배경은 이 지역의 독지가인 계림농원 최남식 대표와, 제창의원 김태순 원장 두 사람이 평생 수집한 귀중한 자료들을 당국에 기증하고, 직접 건립운동에 앞장서면서 1988년 5월20일 거창유물전시관으로 개관되었다. 당시 군(郡)단위 최초로 개관한 공립박물관이다. 이후 2009년 3월 30일 리노베이션(Renovation)으로 재개관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새롭게 변신하였다.
소장되어 있는 유물의 수는 1,200여 점으로 중요소장품은 대동여지도(유형문화재 제275호), 송림사지석조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311호), 정온선생 관복(중요민속문화재 제218호), 이보흠선생 실기책판(유형문화재 제248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다수의 중요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본관 1층에는 선현유품, 안방, 사랑방, 한약방, 농기구 민예품,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본관 2층에는 거창군 연혁ㆍ년표 , 둔마리 벽화고분 모형, 대동여지도, 가야 및 삼국유물, 금속유물, 고려자기, 조선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별관에는 시청각실, 자료실, 특별전시실(2층), 학예연구실이 갖춰져 있다.
거창박물관은 둔마리고분벽화 자료를 비롯하여 소장된 자료들의 대부분은 거창 지역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어 지역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 건계정(建溪亭)-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57호로 지정(2009년)
*1905년 건립. 거창 장씨 정자. 1970년 중수.
*거창 장씨 시조인 장종행이 고려 충렬왕(1240년)때 중국에서 귀화 했으며 그의 아들 장두민은 홍건적을 몰아내어 공을 세우면서 고려 공민왕이 장두민을 아림군으로 봉했다. 建溪亭(건계정)의 ‘건계’는 시조인 장종행이 중국 ‘건주’에서 건너 왔으며 ‘건주’의 다른 이름이 ‘건계’라고 한다. 후손이 선조의 고향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면우 곽종석선생이 붙인 이름.
*거북이가 엎드려 있는 형상의 바위위에 정자를 지음.
*정자 뒤 장두민의 사적비-->면우 곽종석 선생의 글
건계정 계곡은 거창읍에서 서북쪽으로 약 3km에 있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영강의 물줄기가 옛 원학동을 지나 건계정 계곡에 이르러 심하게 굽어 돈다. 앞뒤 좌우로 깍아지른 듯한 벼랑을 끼고 거창 ~ 진주 간의 국도 3호가 물길의 굽이처럼 지나고 있다.
절벽 위의 산 고스락에는 거열산성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격전을 연상시켜준다. 신라 장수 천존과 흠순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당나라군을 섬멸하였던 거열주 대감 아진한과 신라군의 함성이 잠겨 있는 곳이다.
또 후백제 견훤을 물리쳤던 고려 왕사 희랑 대사의 발길도 이곳을 지났을 것이며 홍무란 때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구들을 무찔렀던 태조 이성계의 승전의 깃발이 이곳을 지났을 것이다. 이토록 건계정 계곡은 역사, 지리, 군사상의 요충지로 자리하였으나 지금은 "거창"하면 건계정을 생각할 만큼 고풍스런 정자와 맑은 물이 굽어 도는 물길과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명소로서 자리한다. 예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거창을 소재로 하는 글이나 문학소재의 대상에서 으뜸이 되었던 곳이다. 건계정은 영천의 맑은 물 위에 꼬리를 담그고 거열산성을 향해 기어 오르는 거북바위 등 위에 지어진 거창 장씨의 정자이다. 정자가 지어진 바위를 구백석이라 한다. 주위의 노송과 백일홍들 자연과 잘 어울린 정자이다.
계곡의 상류는 양쪽 산 사이로 한줄기 물이 휘어 돌면서 일단 멈추어 뱃놀이를 즐길 수 있고, 여울져 흐르는 물길은 크고 작은 바위들을 다스리며 세차게 흐른다. 지금 한창 거창에서 건계정에 이르는 산책용 간선도로와 인도를 가설 중이다.
일찍이 퇴계 선생은 1543년 정월 영승촌에 머물다가 안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을 지나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1543년 정월 초 7일)
양산이 한 줄기 물로 묶여
빠져 나갈 문 없는 듯한데
쌓이고 쌓인 바위 절벽 속에서
차고 찬 물이 솟아난다
흥솟아 노래도 하고 싶고
그윽한 곳 낙원 열어 살고파라
흐르는 강 막일길 없노니
흐르는 물 임하여 누구와 의논할까.
건계정 곁에 아림군 공적비가 있다.
3. 수승대-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50-3
3-1.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53호
수송대, 수승대, 요수대, 암구대 등으로 알려져 있다.
수송대(愁送臺)-삼국시대때 신라와 백제의 접경지대로 사신을 다른 나라로 보낼 때 근심을 안고 보낸다 하여서 붙여진 이름
수승대(搜勝臺)- 주변 경치가 뛰어나게 아름다워서 찾아봐야 할 곳이라고 퇴계 이황선생이 고친 이름
요수대(樂水臺)- 요수 신권선생이 자리 잡았다는 의미로 신권을 의미하는 이름
암구대(岩龜臺)- 바위 모양이 거북이를 닮았다는 의미의 이름
搜勝臺(수승대)-퇴계 이황
搜勝名新換 (수승명신환) 수승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니
逢春景益佳 (봉춘경익가)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겠네
遠林花欲動 (원림화욕동) 멀리 숲 속 꽃들은 피어나려 하고
陰壑雪猶埋 (음학설유매) 응달의 눈은 녹으려 하는데
未寓搜尋眼 (미우수심안) 수승을 찾아 구경하지 못했으니
惟增想像懷 (유증상상회) 속으로 상상만 늘어 가누나
他年一樽酒 (타년일준주) 뒷날 한 동이 술을 마련하여
巨筆寫雲崖 (거필사운애) 커다란 붓으로 구름 벼랑에 쓰리라
3-2. 구연서원
1694년 구연서원으로 명함. 서원 뒤 사당에는 요수 신권,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이 위패 배향후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냄.
3-3. 관수루
1740년에 건립하고 무변루라는 이름을 지었으나 안음현감인 조영석현감이 관수루라는 이름으로 고침. 틀어진 나무로 누하부 기둥 사용.
관수루- 맹자의 진심장구편에 나오는 ‘관수유술’에 나오는 글귀를 인용.
흘러가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다음 물길로 흘러갈 수가 없다. 이곳은학문을 하는 곳으로 공부를 할 때 채우고 넘치면 다시 채워야 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치도 물의 흐름과 같다는 것을 의미.
3-4 요수정(樂水亭) -수승대 경내에 있음
*도 유형문화재 제 423호
*거창 신씨인 요수 신권이 1542년 구연재(현 구연서원)와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고 후에 다시 큰 물난리로 유실 된 후 1805년 현 위치로 이건 중수했다.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마루에는 방을 두었고 누하부에는 아궁이를 두어 방 안은 온돌이 되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창의 추운 날씨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정자 기둥은 기단을 따로 만들지 않고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초석으로 활용했으며, 정자 뒤에는 낮은 담을 두었고 이는 경사진 배면에서 물이 흐를 때 정자 기둥에 물이 닿지 않도록 배려를 한 선조들의 지혜를 볼 수 있고, 담장에 같이 설치한 낮은 굴뚝이 앙증스럽다.
*거창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자로 손꼽는다.
국립공원 덕유산이 거창에 빚어 놓은 거창 제일의 유서 깊은 명소이다.
거창에서 서북으로 16km 떨어진 곳으로 위천면 황산리 흔히 "구연동"이라 이르는 곳에 자리한다. 덕유 영봉에서 솟아난 성천, 산수천, 분계천과 덕유 지봉 송계의 갈천이 위천으로 모여 구연폭을 이루고 구연을 만들면서 빚어 놓은 커다란 천연 바위 거부대가 수승대이다. 대의 높이는 약 10m, 넓이는 50m에 이르며 그 생김새가 마치 거북과 같아 구연대 또는 암구내라고도 한다. 또 수 많은 현인들과 은사들이 찾았던 대라 하여 모현대라 불렀다. 옛날 삼국시대 백제에 속해 있을 때 사신들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근심 수, 보낼 송자를 써서 수송대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 정원 퇴계 이황 선생이 거창을 지나며 영승촌에 머물다 떠나면서 그 내력을 듣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고 수송과 수승이 소리가 같으므로 "수승"으로 고친다고 이른 사율시에서 비롯됐다.
수승대 북쪽에는 퇴계 선생과 갈천 선생의 시가 새겨져 있다. 이는 사림 한부연이 두 선생의 시와 갈천장구지대와 퇴계 명명지대를 새겼다 한다. 대에는 시회를 열며 즐겼던 장주암이 있다. 곁에 척수대를 거느리고 있는 수승대에는 옛 원학동의 제일가는 명소로 남명 선생이 두 번이나 찾았으며 요수 선생이 퇴계 선생을 암구대에서 기다리며 읊은 오언절구가 전한다.
그 밖의 많은 문인들의 시가 전하는데 동계 정온, 관찰사 유홀, 삼연 김창흡, 신경직, 일포 이양희, 조세환, 낙천 송명흠, 백윤 이병연 선생들의 시가 있다.
<퇴계별집>에 있는 수승대 명명 시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수송을 수승이라 새롭게 이름 하노니
봄을 만난 경치 더욱 아름답구나
먼산의 꽃들은 방긋 거리고
응달진 골짜기에 잔설이 보이누나
나의 눈 수승대로 자꾸만 쏠려
수승을 그리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언젠가 한 두루미 술을 가지고
수승의 절경을 만끽 하리라
수승대는 멀리 덕유의 흰 구름을 이고 탈속의 경지에 자리한다. 바람소리, 산새소리, 물소리들이 한데 어울려 대자연의 교향곡을 연주한다.
시와 정담을 나누었던 옛 선현들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둘레에는 거창 신씨 문중에서 관리하는 요수정과 유림에서 관리하는 구연서원, 관수루 "산고수장비"가 솔숲과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다. 또한 대 위에 있는 자고암에는 고란초가 자생한다. 지난 1986년 8월 국민관광휴양지로 지정되었다.
4. 황산 전통 담장과 전통고가마을-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전통 한옥마을 7호>
1. 황산 전통담장-국가 지정 문화재인 등록문화재
이 지역의 기후를 고려한 메쌓기와 부(富)가 들어간 찰쌓기 형식, 기와 꽃담 등으 로 아름다운 전통 돌담이 잘 어우러져 있다.
2. 황산 전통고가마을- 거창 신씨 집성촌으로 옛 전통 한옥이 민가의 형식으로 잘 남아 있으며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원학고가는 1927년에 건축되면서 궁궐이나 사찰등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다. 동계 정온선생가옥과 함께 한국관광공사에서 명 가로 지정해 주었으며 한옥 숙박을 할 수 있다.
3. 이 마을에서는 조선말까지 과거 시험에 급제한 사람이 7명이나 나왔다고 한다.
5. 정온선생 생가 (鄭蘊先生 生家) - 중요민속자료 제205호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동1길 13(강천리 50-1)
*국가중요민속문화재 제 205호 /*동계 정온(1569~1641)/시호(문간공)/ *1820년 중수
광해군에게 영창대군의 죽임이 부당하고 인목대비폐출이 부당한 것은 정항의 잘못이 크니 정항을 죽이고 동계선생 자신도 죽여달라는 상소문을 올리면서 광해군에게 미움을 받고 제주도에 10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함. 제주도 3천리 유배, 절도안치, 위리안치라는 최고의 유배길에서 덕변록, 망백두시, 망백운가를 짓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제주 사람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침.(후에 같은 곳에 유배를 온 추사 김정희선생이 이 사실을 듣고 동계선생의 후손인 야옹 정기필선생을 찾아와서 ‘충신당’ 편액을 써주고 감)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 척화를 주장했으나 삼전도에서 인조임금이 청 태종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에서 자결을 시도하나 다행히 목숨을 건진 동계 선생은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낙향한다. 고향의 산골인 북상면의 깊은 골에서 시동만 데리고 조를 키우면서 고사리와 미나리만 먹고 살다가 1641년 73세로 생을 마친다.
사후 효종 8년인 1657년 굳은 절개를 지킨 선비라는 의미의 ‘문간공’이라는 시호를 받고, 1694년 숙종20년에 종1품인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증직되면서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의 남계서원에 제향 되고 있다.
국가중요민속자료인 동계 정온선생가옥은 눈썹지붕, 눈썹기와, 두줄박이 겹집, 높은 대청마루등에서 남부지방의 기후와 북부지방의 기후가 다 보이는 거창의 기후 특징이 잘 보완된 가옥이다.
안채 뒷마당에는 불천위사당이 있으며 그 옆에는 종가를 대표하는 장독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고택은 조선시대 충절로 이름난 동계 정온 (1569~1641) 선생의 종택으로 후손들이 1820년 (순조 20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생은 대사간, 경상도 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병자호란(1636)때 척화(斥和)를 주장하다가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자결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덕유산 모리(某里)에 은거하다가 여생을 마감하였다. 둘아가신 후에는 영의정과 홍문관 대제학에 추증되었고, 광주 현절사, 제주 귤림서원, 함양 남계 서원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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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국장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미리 읽어 보고 가야겠습니다.^*^
고마워요. 취정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