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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루나 칼럼 >
광어가 무슨 인연으로 내 밥상에
글 | 조성내 (법사,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닥터 조, 안녕하십니까. 내가 광어를 몇 마리 잡았는데, 와서 한두 마리 가지고가세요.”
최철용 선생의 다정스런 전화 목소리다. 광어를 잡았을 때마다 최선생은 친구들을 전화로 불러서 광어를 가져가라고 한다. 광어는 가자미하고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가져온 광어를 아내가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잘게 잘라서 회감을 만들어놓는다. 고추장에 초를 치고, 참기름을 부어넣고, 설탕을 넣어 만든 고추장 양념에다 회를 쳐서 먹는다. 어떤 때는 와사베 간장에 찍어서 회를 먹기도 한다. 참치는 붉지만 연어는 오렌지 색깔이다. 광어 살은 하얗다. 일본사람들은 참치 회를 최고로 치고 있지만, 내 입에는 광어회가 더 나은 것 같다. 참치나 연어 못지않게 광어의 살은 부드럽다. 입에 들어온, 잘게 썰어놓은 광어회는 슬슬 녹아서 삼키기가 아까울 정도다.
“여보, 우리도 멋 좀 내보자. 어떤 포도주로 할까?”
소나 돼지 같은 붉은 고기에 비해서 물고기는 하얗고 부드러우니까 하얀 포도주가 적격일 것 같다. 다행이도 집에 샤르도네(Chardonnay)가 한 병이 있다. 아내도 나처럼 포도주를 가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광어회를 맛있게 먹는다는 기분을 내기 위해서, 아내는 얼른 식사 전 기도를 한
다. 나는 포도주를 한 모금 마셔본다.
“여보, 포도주 맛이 좀 시지만, 그래도 마실만하지?”
아내도 한 모금을 입에 넣고 입맛을 다신 다음에 삼켰다. 아내는 가톨릭신자이면서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을 가히 좋아하지 않고 있다.
“여보, 가톨릭에서는 식사 전에 무어라고 기도를 드리지?”
가톨릭의 식사기도는,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이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음식을 주셨으니까 당연히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개신교에서는 정해진 식사기도가 없다. 각자 알아서 기도를 드린다.
나는 불교인이다. 절에서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치료하는 약으로 알아, 보리(菩提)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하고 공양기도를 드린다.
불교의 공양기도는 “이 음식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하고, 음식이 내 밥상까지 오게 된 원인과 경로 그리고 인연을 살펴보게끔 해준다. 동시에 내가 이 음식을 먹을 만한 덕행을 행하고 있는가를 또한 반성하게끔 해준다.
가톨릭에서는 식사와 함께 술이 허용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술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스님들과 일부신도들은 술을 ‘곡주’라고 이름을 바꾸어서 ‘곡주’를 마시기도 한다. 사실 술은 곡식으로 만들어졌으니까 대부분의 술은 곡주인 것이다.
지금 내가 즐기고 있는 이 광어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내 밥상까지 오게 되었을까? 최선생이 낚시를 가서 잡아왔었기 때문이다. 최선생이 낚시밥을 던졌을 때, 그때 수많은 광어들이 바닷물 속에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바닷물 속에는 광어 밥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내 밥상위에 놓여있는 이 광어는, 왜 하필이면, 최선생이 던져준 바로 그 낚시 밥 앞에 있다가, 최선생이 던진 바로 그 낚시밥을 먹게 되었을까. 다른 낚시꾼들이 던진 낚시밥도 많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최선생이 던진 낚시밥을 먹었단 말일까? 최선생이 여러 마리 광어를 잡았었는데, 여러 마리 중에서 왜 하필 이 광어를 골라서 나에게 주었을까, 그리고 지금 내 밥상에 나오게 되었을까?
광어의 환청:
갑작스럽게 광어의 목소리가 환청(幻聽)처럼 들리는 것 같다.
“닥터 조, 나도 살았었을 때는 많이 먹었죠. 당신도 살아있을 때 많이 먹어놓으세요. 나 광어를 먹을 때, 이왕 먹을 바에야, 맛있게 잡수세요. 즐기면서 잡수세요. 포도주 샤르도네도 한 잔 더 드시면서 말이죠. 언젠가는 당신도 죽게 될 터이고, 당신이 죽으면 땅에 묻힐 것이고, 땅에 묻히면 당신도 벌레들의 좋은 음식이 될 것이요. 벌레들이, ‘와, 오늘 맛있는 음식이 생겼구나’하고 축제를 벌일 것입니다."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을까?
김종필 씨의 <증언록>에 보면, 흥미 있는 얘기가 나온다.
백운학 관상가가 5.16혁명 (1961년) 전에, 김종필 씨에게 ‘혁명은 성공할 것’이라고 미리 말해주었다. 혁명 후, 우연히 식당에서 다시 만난 백운학 씨는 김종필 씨에게, “박정희씨는 20년 정권을 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퍽 험하게’ 돌아가실 명운”이라고 김종필 씨에게 일러주었다. 박정희 씨는 1979년도 김재규가 쏜 총알에 맞아 암살당했다. 박정희 씨는 18년간의 정권을 누렸다. 그러니까 ‘험하게 죽을 것’이라는 그 예언이 들어맞았다.
‘험하게 죽을 것’이라는 예언이 들어맞았다는 사실! 그렇다면 죽음이라는 것도 운명적으로 이미 결정되어져 있었단 말인가? 태어날 때 어느 날,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죽을 것이라는 것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는 말일까? 박정희 씨에게 죽음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죽음이 이미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가 있다.
사실, 어떤 사람은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자동차에 치어 죽는다. 어떤 사람은 지하철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어느 누가 밀어서 철로에 떨어져 죽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집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비행기가 자기집 지붕에 떨어져서 즉사한다. 어떤 사람은 뜻하지 않게 테러리스트의 총에 맞아 죽는다. 어떤 학생들은 큰 나무 밑에서 텐트를 치고 자고 있는데 나무가 넘어져서 깔려 죽는다. 어떤 사람은 웃다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걸려서 죽는다. 그렇다면 모든 이런 죽음들이 운명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는 말일까?
죽음이 인간에게 운명되어 있다면, 인간은 물고기를 거쳐서 진화되어 왔다. 그렇다면 물고기에도 죽음이라는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이 광어가 바로 최선생이 던진 낚시 밥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운명, 그리고 이 광어가 바로 내 밥상에 올라온다는 게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전생에, 광어가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했었기에, 나하고 무슨 연관이 있었기에, 오늘 날 내 밥상에 올라와있단 말일까?
운명이라는 게 있을까?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도대체 운명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는 걸까?
오늘 이 광어를 먹음으로 해서, 이게 인연이 되어, 다음에는 어떤 운명이 새로이 나에게 만들어 주어질까? 만약 모든 게 운명적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결정된 운명이 우리 삶을 속박하고 우리의 생명을 좌우한다면?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물론 운명이라고 해도 우리의 행실에 의해서 우리의 앞으로의 운명이 바뀌어 질 수가 있다고 부처는 말을 했다. 운명이 우리의 행동에 의해서 바꾸어지니까, 스님들은 매일 수도를 닦아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스님들은 수도를 닦음으로 해서 운명을 바꿈과 동시에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왜 낚시를 좋아하시죠?
최철용 선생은 뉴욕지구 서울대학교 동창회 낚시회 회장이다. 지난 30여 년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바다낚시를 즐겨오고 있다. 나처럼 롱아일랜드에서 살고 있다. 물고기들도 먹이를 따라 그리고 물의 온도변화에 따라서 이동을 한다. 옛날 인간들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면서 살고 있는 식으로 말이다. 인간은 그래도 1만 년 전에 농사를 지으면서 한 곳에 정착해서 살고 있지만, 어류 중에 인간처럼 정착해서 살고 있는 물고기들은 아직은 한 종(Species)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계절 따라 바다낚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선생은 여름에는 광어를, 10월 초에는 시바스(Sea Bass)를, 10월 중순에는 블랙 피시(Black fish)를, 그리고 겨울에는 대구(Cod)를 잡으러 간다. 대구는 기생충 때문에 회로 먹지를 못하지만, 다른 바닷 물고기들은 횟감으로 좋다고 최선생은 말한다.
“낚시를 대개 어디로 갑니까?”
최선생은 주로 로드아일랜드 (Rhode Island)의 포인트 주디스(Point Judice)로 가서 바다낚시를 즐긴다. 어떤 때는 롱아일랜드 끝에 위치한 만톡 (Montauk)에 가기도 한다. 대구를 잡기 위해서는 매사추세츠 (Massachusetts)의 하이네스 (Hynese)까지 간다. 로드아일랜드까지 가려면 적어도 5
시간 운전을 해야만 한다. 만톡에 가는 것도 3시간이 걸린다.
나루터에 도착하기 위해서, 적어도 밤 1시에 출발한다. 밤 한시라? 정말 낚시를 즐기는 낚시광이 아니고서는 새벽 1시에 어떻게 낚시를 간단 말인가? 최선생은 배낚시를 즐긴다. 특히 광어낚시를 아주 좋아한다.
1980년 중반, 최선생의 선배 한 분이 낚시를 좋아해서 요트를 한 대 샀었다. 낚시를 할 수 있게끔 요트를 개조했었다. 최선생은 선배의 배를 타면서 낚시를 즐기기 시작했었다.
최선생한테 물어보았다.
“왜 낚시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최선생은 빙긋이 웃는다.
“그냥 좋아하게 되었어요.”
왜 좋아하느냐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취미가 다 다르듯 왜 좋아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답변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골프를, 어떤 다른 사람은 정구를, 축구를, 보트타기를, 스키를, 태권도를, 어떤 사람은 등산을, 다 다른 취미를 갖고 있지만 왜 좋아하는가에 대한 만족스런 대답이란 있을 수가 없다. “왜 산에 등산을 하느냐”는 질문에 어느 등산가는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왜 낚시를 즐기느냐고 묻는다면 “물고기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 답변을 할 수는 있겠지만 듣기 좋은 답변은 아닌 것 같다.
정인호 씨는 그의 책 <대서양 바다낚시 가이드>에서, “왜 낚시를 하느냐구요?” 하고 자문을 했다. 그러면서 “차라리 왜 사느냐고 물으시구려.”라고 자답을 했다. “왜 좋아하느냐”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왜 사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정씨는, 낚시 가는 날이 예정되면, 큰 고기 잡아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출세하는 것도 아닌데도, 마치 첫사랑님과의 데이트하는 날을 기다리는 마음과 같은 기분으로, 밤잠을 설치며 설렌다고 했다.
승산스님의 말씀:
1970년, 롱아일랜드의 어느 모임에서 우리 다 같이 수박을 먹고 있었을 때, 숭산 스님이 저한테 물으셨다.
“닥터 조, 수박 맛이 어때요?”
나는 그 당시 그게 선문답 시간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웃으면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수박 맛이 어떠하느냐고요? 아주 달고 맛있는 데요.”
숭산스님은 고개를 저으셨다.
“몽둥이로 30대를 맞아야 하겠는데?”
나는 숭산스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숭산스님은 그 당시 미국에서 미국인들에게 한국의 선불교를 홍보하고 계셨을 때다. <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베스트 셀러 책을 쓰신 현각스님도 이때 숭산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한국불교인이 되었었다.
“30대의 몽둥이를 맞아야 한다니요? 왜요?”
숭산 스님은 수박 맛이 달고 맛있다고 했는데 그게 수박 맛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는 것이다. 달고 맛있는 게 수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과일들이 다 달고 맛이 있다. 우리가 마시고 있는 음료수들도 다 맛이 있다. 그러면서 승산스님은 나한테 수박 한 조각을 집어주면서 맛보라고 했다. 맛을 보고 있으니까 그게 바로 수박 맛이라고 답변해주셨다. 수박 맛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없다. 그러니까 맛을 직접 맛보라는 것이다. 선불교에서는 만약 누가 물맛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물 한잔을 떠서 주면서, 당신이 직접 잡숴보세요 하는 것이 진짜 답변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승산스님은 개구즉착(開口卽錯)이란 말도 설명해주셨다.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하면. 입에서 나온 말은 이미 다 그릇된 말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사실 우리가 다 수박 맛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으로, 말로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듯이, 실은 우리가 낚시를 즐기고 있는 것을,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다 알고 있으면서도, 실은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왜 낚시를 즐기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왜 낚시를 즐기시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묻는 이에게 “직접 낚시를 해보세요.” 하고 말을 해주는 것이 옳은 응답인 것이다.
민물회는 무섭다:
한국인들은 광어를 잡으면 회감으로 먹지만, 미국인들은 광어를 회감으로 먹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광어를 요리해서 먹는다.
한국인들은 생선회를 좋아하는데, 요새 생선회 공급이 부족해지고 있으니까, 악덕 상인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바다고기에다 민물생선을 몰래 섞어서 팔기도 한다는 것이다.
민물고기에는 기생충이 많다. 사람의 뇌를 갉아먹는 아메바를 비롯해서 어떤 기생충은 간이나 췌장에 침투해서 불치의 병을 일으켜 사람을 죽게도 한다. 민물고기는 꼭 삶아서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한다. 헌데 이런 위험한 민물고기를 회로해서 바닷물고기 생선회에 섞어 판다니! 무서워서 더 이상 생선회를 먹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이게 근거 없는 소리니까 믿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전연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다. 타임 주간지(2016/9)에서 읽었는데, 세계적으로 2만5천 샘플 조사에서, 우리가 먹고 있는 물고기의 20%가 실은 다른 물고기였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최근 50 스시(Sushi) 식당을 조사해보았다. 하얀 참치 (White tuna)라고 내놓은 스시(Sushi) 고기가 실은 하얀 참치가 아니고, 에스코랄 (Escolar) 고기였었다고 했다.
에스코랄 고기는, 맛이야 진미이고 별미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통과 구토, 설사, 배탈, 복통을 일으키고 있는 어종으로서 잘 알려진 고기이다. 이런 고기를 하얀 참치인 것처럼 스시로 팔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과 이태리에서는 1977년부터 판매를 금지해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1990년경에는, 에스코랄이 유독하다(Toxic)고 해서 수입 금지를 시켰던 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유독하지도 않고 치명적이지 않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먹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하지만 설사나 복통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어주기 바란다.
그래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바닷고기라도 활어로 먹지 못하도록 2015년도에 법을 제정해 놓았다. 바다고기라도 적어도 48시간을 냉동해 놓은 후에 먹게끔 했다. 냉동해놓은 고기 맛은 아마 맛이 떨어지는가 보다. 그래서 일본식당이 울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물고기들끼리 사랑을 할까요?
“최선생, 헤밍웨이 아시지요?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셨어요? 그 책에 보면, 재미있는 얘기나 나옵니다.”
“노인이 언젠가 마알릴(청새치) 한 쌍 중 암놈만을 낚을 일이 있었다고 해요. 암놈이 잡혔으면 수놈은 다른 곳으로 꺼져버려야 하는데, 수놈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암놈 곁을 떠나지 않고 있더랍니다. 암놈은 낚시줄에서 도망을 치려고 절망적으로 투쟁을 하고 있는 동안, 수놈은 암놈 주위에서 맴돌고 있더랍니다. 암놈은 금방 기진맥진해졌지요. 암놈이 배 가까이 끌려오니까 노인은 몽둥이로 암놈의 대가리를 갈겼지요. 그리고 소년의 도움으로 암놈을 배 안으로 끌어 올려놓았대요. 이때까지 수놈은 뱃전을 떠나지 않고, 암놈이 어디 있나하고 찾고 다니더랍니다. 노인이 낚싯줄을 챙기고 작살을 준비하고 있는데, 자기 짝이 어디 있나 보려고 수놈이 배 옆 공중으로 높이 뛰더랍니다. 배안에 죽어있는 암놈을 보고 난 후, 수놈은 물 속 깊이 모습을 감추었답니다.”
최선생한테 물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글쎄요”
최선생의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나는 최선생이, “아마 물고기들도 사랑이 있는가 보지요.” 라고 말해주기를 바랬었다. “암놈이 잡히고 그리고 암놈이 죽어있는 것을 보았을 때 수놈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물고기들은 눈물이 없어서 그렇지, 눈물을 갖고 있다면 이네들도 슬피 울었었을 것입니다. 아마 지금도 수놈은 암놈의 죽음을 보고서 가슴아파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러면서 “아마 어떤 종류의 물고기들한테는 사랑이 있는 모양이라고, 사랑이 있다면 연애도 할 테고 ---,” 라고 말해주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최선생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말을 이었다.
“위의 얘기는 아마 헤밍웨이가 지어서, 만들어낸 말인 것 같아요. 마알린은 돌고래나 고래처럼 포유류가 아닙니다. 마알린은 서로 교미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니 연애같은 그런 로맨스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물고기들은 알을 낳기 위해서 교미를 하는 물고기들도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만약 교미를 한다면, 인간처럼, 짝을 찾아서 할까요?
물론 물고기한테는 결혼이라는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서로 눈이 맞아 교미를 하자는 신호를 서로 보낸 후에 교미가 이루어지지 않았겠습니까?”
최선생은 아무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 얘기가 흥미 있다는 듯 빙긋이 웃고 있었다.
오늘은 당신이 이기시오, 내일은 내가 이기겠소. $10
인생은 가지고 와서 갖고 간다. $10
저승에 가지고 갈 것을 지금부터 준비해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12
내 죽음을 한국에 알리지 말아다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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