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파리 북서쪽으로 27 km 떨어진 곳에 있는 자그마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19세기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를 비롯하여 폴 세잔(Paul Cezanne),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
(Charles Francois Daubigny),카미유 피사로 등과 같은 유명 화가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예술 활동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는 특히 고흐가 아를(Arles)의 정신병원을 나와 2개 월여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머물렀던 여인숙
오버즈 라부(Auberge Ravoux=라부 여인숙)가 있다.
-노르망디 평원-

**오베르 수르 우아즈로 가면서 차장 밖으로 한없이 펼쳐진 밀밭(추수 후).
-옛 정취를 간직한 오베르 수르 우아즈 마을-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만난 화가의 동상-

**부근에 고흐의 동상은 없어도 이 화가의 동상이 서 있는 의미를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Charles Francois Daubigny)의 동상-

** 도비니(Daubigny)는 자연주의 화풍의 화가들의 모임인 바르비종파(Barbizon, Ecole de)의 일원이며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와 폴 세잔느(Paul Cezanne)와 같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상주의의 선구자적인 화가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오베르 교회(L'eglise d' Auvers Sur Oise)-

**도비니(Daubigny)의 동상 뒤 성벽은 실은 오베르 교회의 축대였다. 오베르 교회는
퇴락해 보이는 자그마한 교회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고흐로 인해 유명해진 "성모승천 노트르 담(Notre-Dame de L'Assomption)" 성당-

** 이 성당을 그렸던 고흐의 작품 판넬이 성당 입구 오른편에 서 있다.
-성당 실물과 고흐의 그림-


** 교회 주변의 모양은 달라져 보이지만 교회 모양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그림 속에는 빠빳하고 깨끗한 흰 머리 수건을 쓴 수녀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 오베르 언덕 위 평원의 밀밭-

**성당 잎길에서 언덕 위로 이어지는 달구지 길을 조그만 따라가면 밀밭의 평원이 나온다.
- 고흐의 이젤이 세워졌던 네거리 -

** 고흐가 이젤에다 캔버스를 세워 놓고 밀밭을 그리던 장소의 한 곳이다. 고흐의 작품 패널이 서 있다.
-까마귀 날으는 밀 밭-

-까마귀는 날아갔지만 여전한 모습의 그 때 그 밀밭-

**이곳 어디 쯤에서 고흐는 자신의 복부에 권총을 쏘았다고 한다. 그리곤 이틀 후 이곳을 영원히 떠났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고흐의 주변에서 동네의 장난꾸러기들이 가지고 장난하던
권총의 오발탄에 고흐가 맞은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다.
자살할 사람이 머리가 아닌 복부에 총을 쏜다는 말을 필자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마을 공동 묘지-

** 넓은 밀밭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석관과 생화들로 가득한 공동묘지가 나온다. 근래에 돌아간 망자의 묘 뿐만 아니고
오래되었지만 싱싱한 생화 화분이 놓여 있는 묘소는 잊지못할 추억 어린 성묘가 계속되어 왔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기가 게양된 공동묘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함께 묻혀있어 국기가 게양되고 있다.
묘지 입구에는 "영연방 전몰자 묘지"라는 팻말도 붙어있다.
-고흐(Vincent)와 그의 동생 테오(Theodore)의 묘지-

** 공동묘지 왼쪽 담장 밑에 나란히 붙어 있는 형제의 묘는 주변의 거창하거나 화려한 대리석 석관과는 달리
담쟁이 넝쿨로 덮여 있다. 자살한 두 형제의 "조촐한 장례식"이 었던 만큼 묘지도 당연히 초라했을 것이기에
담쟁이 넝쿨로 가려버린 것은 아닌지? "두 사람의 애정을 굳게 이어주기 위해 담쟁이 넝쿨로 덮었다"는
어디에선가 읽은 설명이 설득력이 있는 것일까?
-밀 밭-

-오베르 교회의 옆 모습-

**고흐의 그림으로 첫 대면을 했기에 조용한 마을의 자그마한 성당의 이미지가
갑자기 웅장한 중세의 건물로 다가왔다.
-성당의 내부-

**12~13세기 어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선입관 때문에 초라하게 보였지만 내부를 보면
전형적인 중세풍의 웅장한 기상을 지니고 있다. 1915년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국을 위한 죽음(Morts pour la Patrie)-

** 성당을 들어서면 왼편 벽, 세 개의 벽감 중 가운데에는 1차대전 종전 일인 1918년 11월 11일을 기념하는
대리석 조각이 있고 그 양옆에는 "1914~1918" "조국을 위한 죽음(Morts pour la Patrie)"이란 제題하에
1차대전 중 이곳 교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명단이 붉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다.
놀라운것은 같은 성性씨가 두 개, 세 개 심지어 네 개까지 나란히 보인다.
- 성당 회랑 벽에는 몇 점의 고흐의 그림이 걸려 있다.-

-고흐의 피에타(Pieta)-

-술 레 빠 드 도비니(Sur les pas de DAUBIGNY, 도비니의 자취를 따라서)-

** 앞의 도비니의 동상에서 언급했듯이 인상주의의 선구자 도비니(DAUBIGNY)의
200 주년 기념 전시회 포스터가 길거리 담벽에 붙어 있다.
-도비니(DAUBIGNY) 기념관-

** 성당에서 아랫 마을로 내려오면 바로 도비니의 기념관을 만날 수 있다.(방문계획이 없어 pass).
-"계단이 보이는 오베르의 길"(작품의 현장)-

** 작품 현장이 무성하게 자란 나무가지에 가려 전체는 잘 보이지 않으나 계단은 어렴풋이 보인다.
-고흐의 "계단이 보이는 오베르의 길"-

-고흐의 집-

-라부 여인숙(Auberge Ravoux) 스켓치-

** 고흐가 마지막 날들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라부 여인숙(Auberge Ravoux)의 고흐의 방은
스켓치의 2번 다락방이다. 미신에 따라서 이 방은 "자살자의 방"으로 여겨졌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임대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흐의 일대기-

** 고흐의 방 옆, 담쟁이 넝쿨로 뒤덮힌 건물의 벽에는 고흐의 일대기를 적은 판넬이 붙어 있다.
1853년 3월 30일 생--1890년 7월 27일 가슴에 총을 쏘다.--7월 29일 오전1시30분 사망--1890년 7월 30일 매장
-1866년의 고흐-

-고흐의 방을 보여주는 홍보용 판넬-

** 고흐의 방에는 작은 의자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 여행 동반자가 촬영한 고흐의 방-

-고흐의 꿈-

** 텅 빈 고흐의 다락방 한구석에는 고흐가 캔버스를 메워 그림을 그리려던 그림틀(frame)이 걸려있고
그 위에는 1890년 6월 10일 그의 동생 테오(Theo)에게 보낸 편지의 한구절이 적혀있다.
"언젠가 나는 카페에서 내 작품전을 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어"
고흐 연구소는 1988년 이후부터 고흐가 살았던 이 방에 그의 작품 한 점을 걸어놓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있다.
-고흐의 자화상-

** 친구 고갱과 그림에 대한 심한 논쟁으로 친구를 잃고 실의에 빠진 고흐는 어느날
자신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고 전해진다. 우리 여행팀을 안내한 현지 코디는
"친구와의 다툼 중에 친구에 의해 당한 부상을 자신이 저지른것이라고"
변명 했을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해 주었다.
-고흐의 자화상-

** 화염에 휩싸여 있는듯이 보이는 새빨간 수염의 고흐.
-아델린 라브(Adeline Ravoux)의 초상화-

** 아델린 라브(Adeline Ravoux)는 라부 여인숙의 13세된 딸이다.
고흐는 3점의 아델린 라부의 초상화를 그렸다.
-오베르 교회(L'eglige d'Auvers-sur-Oise)-

**오르세(Orsay) 미술관에서 촬영(오베르에서 그린 작품).
-꼬르데비유의 짚더미(Chaumes de Cordeville)-

**오르세(Orsay) 미술관에서 촬영(오베르에서 그린 작품).
-정원의 가세 아가씨(Mademoiselle Gachet dans son jardin)-

**오르세(Orsay) 미술관에서 촬영(오베르에서 그린 작품).
-1890년의 로버즈 라부(L'Auberge Ravoux =라부 여인숙)-

**판독하기 어려운 설명의 첫줄이 "고흐는 1890년 5월 20일 오베르에 도착했다"로 시작된다.
-오늘날의 라부 여인숙(Auberge Ravoux)-

**이 사진에서는 차양 밑이 어두워 보이지 않으나 1층 식당 이름 COMMERCE de VINS RESTAURANT 라는 글자와
레이스 커튼, 식당내의 식탁이나 의자 등도 1890년 당시와 같이 복원해 놓았다.
-고흐가 살았고 사망한 집-

** 2층 창문 사이에는 소박한 하얀색의 팻말이 붙어있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1890년 7월 29일 별세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고흐가 그렸던 시청 청사-

-길 건너 고흐의 방 맞은편, 2층 창문에 국기가 걸려있는 시청청사-

-고흐가 그린 시청 청사-

-고흐가 머물던 여인숙 앞 풍경-

** 고흐가 머물던 라부 여인숙 앞 시청 광장 노천 카페에는 많은 사람들이 7월의 따가운 햇볕을 즐기고 있다.
시청 앞 광장은 꽤나 넓지만 라부 여인숙 앞에만 사람들이 모여있다.
-여인숙 인근의 상점-

**고흐의 작품들이 유리창 안에 보인다.
-고흐의 동상-

** 여인숙에서 행길을 따라 서쪽으로 약 200 m 쯤 가면 5,000 평방 m 정도 크기의 공터가 있고
그 한편에 남루한 모습의 동상이 서 있다. "반 고흐 공원(Van Gogh Parc)"에 서 있는 고흐의 동상이다.
말년에 그의 작품에 사용된 '선線 의 집합' 처럼 동상도 선으로 뭉쳐 놓았다.
-지베르니(Giverny)외곽 시가-

** 인상파 화가 끌로드 모네의 생가를 찾아 가는 길에 지나는 시가지이다.
-숙소(Domaine de la Corniche= 절벽 위의 집/?)-

** 센(Seine)강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위에 고풍스런 작은 호텔이다. 마치 귀족의 저택이었던 것 같이 보인다.
-테라스에서 보이는 센 강 # 1 (북쪽)-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 -

-테라스에서 보이는 센 강 # 2 (남쪽)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