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공시가 불복'] 5일 의견청취 마감인데 강남권서만 벌써 5,000건 수도권 외곽 아파트에도 연명부...역대급 기록 예고 국토부 수용률 고작 2%대 그쳐 조세저항 부를 수도
서울의 한 주택단지 전경/연합뉴스
[서울경제]
# 한국부동산원 서울강남지사에 지난달 말까지 접수된 주민들의 공동주택 공시가격 이의신청이 5,000여 건에 달했다. 서울강남지사는 강남·서초·송파·강동·동작 등 5개 구를 관장한다. 통상 마감일(4월 5일)에 접수가 몰리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공시가격 이의신청 건수는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14년 만에 최대로 오른 가운데 오는 5일 의견 청취 기간 마감을 앞두고 예상대로 이의신청이 쇄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공시가격이 크게 오른 주요 아파트 단지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도해 집단 이의신청을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서울뿐 아니라 세종 등 지방 주요 도시와 수도권 외곽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초구는 자체 검증 결과 1만여 건에서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정부에 수정을 요구할 계획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붙은 ‘조세저항 연명부’=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열람 기간에 제출된 의견은 총 3만 7,410건이다. 지난 2019년(2만 8,735건)에 비해 30.2% 증가한 것으로, 이 가운데 집단 민원 제출 건수는 1만 5,438건에서 2만 5,327건으로 64.0%나 늘었다. 올해는 역대 최다인 2007년의 5만 6,355건을 넘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주민들은 공시가격 인상 반대로 의견을 모았고, 역삼동 역삼2차아이파크도 집단 이의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과 상일동 고덕아르테온 등 인근 5개 단지 입주자대표회의연합회도 공시가 부당 인상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강북 지역 역시 성북구 래미안길음센터피스와 서대문구 홍제센트럴아이파크아파트 등 다수의 단지가 집단 이의신청에 나선 상태다. 웬만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정부에 공시가격 재조정을 요청하는 연명부가 붙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대응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서초구와 제주도다. 조은희 서초구청장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5일 정부의 불공정한 공시가격 정상화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개최한다. 서초구는 지난달 ‘공시가격검증단’을 출범하고 구내 전체 공동주택 12만 5,294가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1만여 건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제주도는 앞서 표준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오류를 지적한 데 이어 5일에는 제주도 내 공동주택 공시가격과 함께 강원도 등 전국의 공시가격 오류를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시는 올 이의신청이 2,000여 건에 이른다. 지난해(200여건) 대비 10배가량 급증했다.
◇결국 조세저항으로 연결되나=이의신청이 역대급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의신청 가운데 수용한 비율은 고작 2.4%에 불과하다. 국토부는 5일까지 이의신청을 마감하고 내용을 살펴본 뒤 29일 공시가격을 결정·공시한다. 이후 추가 이의신청을 받지만 29일 가격이 결정·공시되면 거의 변하지 않는다. 정부의 수용률을 고려해볼 때 이번에도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 및 전문가들은 공시가 사태가 조세저항으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고 본다. 당장 이번 공시가격을 토대로 7월에는 주택분 재산세(50%)가 부과된다. 11~12월에는 종합부동산세 고지 및 납부가 이뤄진다. 껑충 뛴 공시가격 기준으로 산정되는 보유세 폭탄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공시가격 폭등으로 종부세 대상이 되는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전국 공동주택은 올해 21만 가구가 늘어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2019년 기준 가구 평균 소득은 1.7% 증가에 그쳤는데도 공동주택 공시가격 급등으로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셈”이라면서 “조세 반발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공시가격 현실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면서 “정부는 세율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필요가 있으며 세금을 통해 주택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