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십칠선생의 아호 雅號
이 중부는 궁금한 점을 묻는다.
“촌장님, 그런데 십칠 선생이라니 아호 雅號가 특이한데, 그 사유를 아세요?”
강 촌장의 설명은 이렇다.
세상의 모든 방위는 동서남북 네 방위로 나뉜다.
사방(四方)을 세분화하면 팔방(八方)이 된다.
팔방(八方)을 한 번 더 나누면 16방(十六方)이 된다.
16방위 정도로 세분화시키면 세상 만물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관찰이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그 16방위에서 중앙의 1을 추가 하면 17이란 숫자가 도출된다.
그러니 17이란 수는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參羅萬像 = 16방)을 중앙에서 포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중심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쉽게 얘기하자면
무소불위(無所不爲 : 하지 못하는 그것이 없음)
무소불능(無所不能 :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음)
무소부재(無所不在 : 어디에나 다 있음)
무소부지(無所不知 : 알지 못하는 바가 없음. 매우 박학 박식함)의 대단한 인물이란 뜻이다.
십칠 선생은 특히 주변의 최근 정보나 전해 내려온 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십칠 선생의 본고향은 대릉하 부근인데, 이번 이주 문제로 동이족의 안전과 부여와 한군(漢軍)과의 경계 지점인 조선하, 이곳에서 ‘한군 漢軍의 동향을 살피고자 당분간 거주하는 것으로 하였다’라고 한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사로국에서 ‘높은 벼슬을 지낸 분’이란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중부와 한준이 놀라 날뛰는 나귀를 잡고자, 주위를 서너 바퀴 뛰어 돌았던 것은 16방위를 발로 바쁘게 내디딘 것이며,
중앙에서 가만히 서서, 이를 관찰하는 것이 16방위의 중심인 17이라는 것이다.
가만히 한자리에 서 있으면서, 이중부나 한준의 체력과 인내심 그리고 성정 性情까지 모두 시험해 본 것이다.
이중부는 십칠 선생 아호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나름 해석을 한다.
“그러니까 일반 원두막은 기둥이 네 개인 4각 角인데, 그보다 더 고급스럽고 규모가 큰 정자 亭子는 대부분 8각 정 八角亭인 이유를 이제 조금 알겠네요.”
“그리고 그 8각을 다시 나눈다면 16방위가 되니, 건물로 치면 규모가 대단하겠네요”
그러자 한준이 옆에서 거든다.
“16방위를 다시 나누면 32방위, 이를 한 번 더 나누면 64방위가 되네요”하고 아는체를 한다.
그러자 강촌장은
“한준 이 녀석 이해력이 제법이네, 그런데 64방위를 주역에서는 64괘 卦라 칭한다. 64괘는 주역 周易의 모든 괘로써, 순서대로 풀어가면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 吉凶禍福은 물론 우주의 모든 질서와 규칙을 설명할 수 있다.”라고 설파 說破한다.
“더는 나도 한계가 있으니 자세한 것은 다음에 십칠 선생을 만나게 되면 직접 여쭤봐라”
9. 금성부 金城府
사흘 후, 이중부는 한준과 다시 땔감을 하러 가기로 약속했다.
지난 번, 강가에 떠내려온 큰 나무를 발견했는데 고목의 굵기가 한 아름 가까이 되어 운반하기가 곤란하였다.
나무를 자르는 거두(큰 톱)가 있으면 좋은데 당시, 톱은 일반인들은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귀물 貴物이었다.
톱의 날 즉, ‘톱니’를 철 중에도 아주 단단한 강철로 만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단단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단단하면서도 인장력이 좋아야 잘 부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려면 선철과 연철의 합금 비율이 적절하여야 하는데, 그 야금술이 말이 쉽지 워낙에 난해 難解하여 당시에는 일반 대장간에선 만들 수가 없다. 또 한 개의 톱에는 수십 개의 날을 하나하나 크기와 각도 角度를 일정하게 맞추어, 톱날을 한 개씩 만드는 데는 세밀함과 정교함이 요구된다. 그러니 고난도의 기술력과 제작 시간이 매우 많이 소요되는 귀물 貴物이다.
그래서 도끼를 준비해 가기로 했다.
도끼로 완력을 사용하는 방법 외에 도리가 없다.
당시 도끼의 질 質도 여러 가지다. 크게 강철, 연철, 일반철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 중의 일반 철제를 주로 사용하는데, 일반철도 세분화하면 그 강도가 여러 계층이 있다.
대장간마다 다 다르다.
단단하지만 인장력이 약한 선철 銑鐵을 만들어 사용하는 대장간은 파리를 날리고 있고, 인장력이 강한 연철 軟鐵을 잘 다루는 대장간은 문전성시 門前成市다.
이중부는 한준과 함께 촌장댁에 도끼를 빌리러 갔다.
다른 이웃집 중에도 도끼가 있는 집이 몇 집 있긴 했으나, 도끼날이 물러서 몇 번 사용하면 도끼날이 잘 망가져 毁損되는 관계로 작업하기가 곤란하였다. 도끼날이 망가지면 작업에도 지장이 생기지만, 연장을 빌려 간 사람도, 빌려준 사람도 서로 간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촌장댁은 얼마 전 새로 장만한 도끼가 단단해 일하기가 아주 수월하다고 동네 소문이 자자했다.
강 촌장은 마침 집에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술이 덜 깬 상태로 아침에 장작을 패다, 실수로 마당의 자갈돌을 두어 번 내려쳐 날이 망가져, 사흘 전에 대장간에 맡겨놓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침 오늘 찾아가기로 한 약속 날짜인데.” 하더니 이중부에게
“대장간에서 도끼를 찾아서 사용한 후 집에 가져다 놓으라” 한다.
“네, 쓰고 헛간에 갖다 놓을게요” 하고 촌장이 가르쳐 준 대장간을 찾아갔다.
대장간을 찾기는 쉬웠다.
멀리서부터 쇠 담금질하는 망치 소리가 요란하다.
마을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대장간은 제법 큰 저택의 서쪽 담벼락을 기준으로 하여 양쪽으로 흙과 돌을 번갈아 쌓아 별도로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택의 대문 위에는 ‘金城府’ ‘금성부’라는 현판이 크게 걸려있었다.
대문 서쪽으로 돌아 쇠 두들기는 소리를 따라 대장간으로 가보니 안에는 풀무질을 4곳에서나 하며 일하는 사람들만 20여 명이 넘었다.
대규모 대장간이다.
대장간 내 모든 사람이 바쁘다.
이중부와 한준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괭이와 호미, 낫만 만드는 일인다역 一人多役의 조그마한 동네 대장간만 보아왔던 두 소년에게는 충격이 상당하였다.
세상의 모든 대장간은 혼자서 한 사람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큰 대장간이 있다니’ 게다가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열심이다.
마당 북쪽의 흙담 한쪽에는 곱게 친 강모래(-아니 모래라기보다는 아주 부드러운 흙에 더 가깝다)가 사람 키보다 더 높게 쌓여있다.
모래 더미 옆에는 그 고운 모래를 몇 삽씩 떠서 칼처럼 긴 모양의 틀을 수십 개 만들어 놓았다. 사형 沙型이다. 모래로 만든 틀 즉, 거푸집이다.
사형 틀은 처음으로 청동기를 제조할 때부터 개발하여 사용하던 방식으로 땅바닥을 평평하게 고른 후, 모래를 이용하여 만든 거푸집이다.
아주 곱게 친 모래를 바닥에 깔고, 만들고자 하는 도구나 병장기 모양의 나무를 깎아 모래에 찍어 틀을 만든다. 원하는 모양을 만든 그 틀에 쇳물을 부어 식히면, 원하는 모양의 연장이나 도구 형태가 만들어진다.
거푸집으로 만들어진 병장기나 연장이 처음 모래 틀에서 나올 땐 깨끗하진 않다. 그걸 일일이 손으로 다듬고 담금질을 한 후, 숫돌에 갈아 날을 날카롭게 벼루어야 완성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아마 이 긴 모양의 거푸집 틀은 도검용 刀劍用 틀인 거 같다.
아직 이른 봄철인데도 불구하고 장정들 태반은 웃통을 벗고 이마와 등에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망치질을 하고 있다.
‘따다~땅! 따당~땅!’ 규칙적인 쇠망치 소리가 여러 곳에서 겹쳐 들리니, 신기하기도 하고 귀가 따갑다
이런 모습을 난생처음 보는 소년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조차 잊어버리고 구경하기에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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