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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이끄는 위원회
12월 2일 금요일, 프랑스에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의 첫 회의가 파리에서 열렸다.
전 세계에 걸쳐 이런 위원회가 존재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30년 이상 된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그룹을 만들려고 하는 생각은 1991년 제1차 걸프전에 대한 대응으로 영국의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이는 전쟁에 대한 반대를 평화주의의 막다른 골목으로 전환하는 것이 본질적인 기능이었던 자본의 좌파가 조직한 "전쟁을 멈추라"라는 동원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대응이었다. 실제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구호는 켄 로치의 1975년 시리즈 "희망의 날들"의 첫 번째 일화에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군대에서 탈영한 사회주의 군인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전쟁에서 싸우겠지만, 단지 중요한 전쟁에서 싸울 것이며, 그것이 계급전쟁이고, 이 모든 것이 끝날 때 일어날 것이다.“
새로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그룹은 1993년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1999년 코소보 전쟁, 2001년과 2003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에 대응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부르주아 좌파에서 국제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이질적인 진영을 함께 모으는 이러한 위원회에 개입했다.
코뮤니스트좌파의 또 다른 그룹인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도 2001년부터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에 개입했다. CWO는 처음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보기를 들어 셰필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그룹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리는 소방관, 철도 노동자, 그리고 스트라스클라이드의 운송 및 병원에서 노조 외부의 행동을 포함한 파업 행동이 상당히 많이 증가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우리에게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고 계급투쟁을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저항과 연결하고자 하는 세력들과 국제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한다[1].
관련하여, 2002년에 우리 ICC는 다음과 같은 글을 작성한 바가 있다.
"이것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가 계급투쟁의 부활이나 우리가 '가입'해야 하는 계급의 확실한 정치 운동의 전조라고 우리가 절대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다. 기껏해야 자본주의 군국주의와 그에 수반되는 평화주의 적이며 이념적인 거짓말에 대해 질문하던 극소수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노동자의 힘'과 같은 좌파들의 반동적 공격에 대항하여 비록 제한적이지만 계급적 입장을 옹호하고(「세계혁명」 제250호 참조), 토론의 장으로서 집단의 중요성을 처음부터 주장하며, '직접 행동'과 이 그룹을 혁명 조직들과 일치시키는 두 가지 경향에 대해 경고한 이유였다."[2]
이러한 그룹에 대한 ICC의 개입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과 자본주의와 평화주의의 좌파로부터의 명확한 구분의 필요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치적 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실제로는 "전쟁을 멈추라"라는 시위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행동주의 경향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 20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그룹은 처음에는 글래스고에서, 그다음에는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때로는 아나키스트 조직의 주도로 다시 등장했다. 일부 다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그룹은 ICT가 직접 출범시켰다.
국제주의 방어의 약화
12월 초에 우리는 파리에서 열린 첫 번째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진정한 국제주의적 호소를 시작했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혁명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를 한쪽으로, 나토와 미국을 다른 한쪽으로 배치함으로써 세계정세를 변화시켰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마찬가지로 국제주의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전쟁과 그 전선은 어떤 식으로든 가능한 한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과 민족주의에서 노동계급은 잃을 것이 없고 얻을 것도 없다. 그것이 직면한 진정으로 유일한 선택은 오로지 자신의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에 기초한 대안을 구축하려는 관점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 대안은 이미 전쟁 경제와 우리가 그것을 위해 해야 할 모든 희생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연락이 가능한 사람들이 이 회의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회의 서두에서 의장단은 토론을 제국주의 상황에 대해서 분석하고 그 다음에 위원회가 채택할 행동 수단의 두 부분으로 나눌 것을 제안했다.
토론을 시작하기 위한 의장단의 소개는 모호함 없이 국제주의적 입장을 분명하게 유지했다. 또한, 현재의 제국주의 야만의 현실을 묘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공유하지 않는 관점인 세계대전에서 블록의 대립으로 이끄는 동력과 함께 일반화된 전쟁의 관점을 옹호했다.
전체 토론의 첫 번째 부분이 다소 혼란스러웠다. 일부 사람들은 제국주의 상황에 대한 논의를 단호히 거부했고, 그들은 제국주의 상황 분석에 대한 어떠한 노력도 시간 낭비로 거부했으며,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그들은 "이론적"이라고 간주하는 개입을 조롱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나이를 조롱했으며, 지난 세기의 역사적 언급에 대해 웃음을 터뜨리고, 다른 참가자들을 방해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의장단은 반복적으로 토론에서 서로를 존중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 후 회의 참가자 중 일부는 토론이 한창일 때 떠나기로 했다.
"이론"에 반대하고 "즉각적 행동"에 찬성하는 이러한 분위기는 이 회의의 구성과 초대에 응한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초대는 "함께 상황에 대해서 논의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공동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라는 말로 끝이 났다! 모든 국제주의적 계획은 고려하고 홍보할 만한 가치가 있다." 가능한 계획은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러시아 탈영병들을 위한 숙소를 제공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공격하기 위한" 제안이 있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이는 우리가 첫 번째 개입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주어야 했던 이유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의 본질은 완전히 제국주의적이다. 노동계급은 자신이 주요 희생자인 이러한 대학살에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말아야 한다.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실화한 자본주의 제국주의 전쟁의 현 단계는 인류의 멸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을 통해서만 제국주의 전쟁을 끝낼 수 있다.
■ 전반적인 상황이 소규모 개인 그룹에 의해 수행되는 극적인 행동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망상에 빠져 행동주의에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 이는 노동 대중의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행동만이 자본주의의 야만을 종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혁명가들이 역사의 중요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게 됨에 따라 계급의식의 일반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이러한 지속적인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관한 질문이다.
국제주의와 혁명가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타협 없는 방어는 확실히 충분하지 않았다. 반대로, 무엇보다도 이러한 논의의 첫 부분에서 나타난 것은 혼란, 국제주의 방어의 약화였다. 왜냐하면, 행동주의와 함께 노동자들이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투쟁할 가능성을 지지하는 개입도 있었기 때문이다. 트로츠키주의 그룹인 마티에르 혁명의 대변인은 극좌파의 고전적인 테제를 옹호했다. 의장단은 강력한 반응을 자극하기는커녕 전혀 반응이 없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입장을 비난하고 위원회가 왜 트로츠키주의 그룹을 특별히 초대했는지 묻는 일이 그 방의 누군가에게 일어났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초대장을 보낸 ICT 성원 중 한 명이 머뭇거리면서 마티에르 혁명이 트로츠키주의라고 엄밀하게 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는 그들의 성원들이 "아, 그래, 나는 트로츠키주의자야!"라고 외치도록 만들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정말로 코믹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이러한 새로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위원회 출현의 원천인 ICT 성명은 11항에서 이 "국제적 계획"은 사회민주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 정치를 모두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의 혁명가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트로츠키주의 및 스탈린주의 정치는 어떤 것이 '악의 근원'인지 결정하는 기초 위에, 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고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함으로써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을 시작하는 것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장 해제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적 계획”과 관련하여 그것을 더 좋게 말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것은 "노동계급을 혼란스럽게 하고 무장해제" 시킨다!
빈껍데기
우리의 첫 번째 개입에서, 우리는 또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계획에 대해서 우리가 주요하게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991년, 1993년, 1999년, 2001년, 2003년과 마찬가지로 노동계급이 전쟁에 대해서 많은 대응을 할 수 있거나, 이러한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는 반응 또는 첫 번째 단계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는 환상이 있다. 이 테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파업에 큰 중요성이 부여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노동계급의 전투성이 약했다. 반면 민주주의 강대국들이 모두 직접 참여한 제국주의 야만성에 대한 진정한 반향이 있었다. 자본의 좌파 정당들이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대규모 평화주의 시위를 조직하는 데 협력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전쟁을 멈추라"는 슬로건으로 표현된 이러한 함정과 막다른 골목에 반대함으로써, 그들의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위원회는 적어도 좌파와 평화주의의 국제주의적 대안을 찾는 요소들로부터 오는 특정한 운동을 대표했다. 그리고 ICC가 이러한 위원회에 개입함으로써 가능한 한 멀리까지 추진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이었다. 한편, CWO는 계급과 이 위원회들의 잠재력에 대해서 환상을 갖고서 이들 그룹의 활동을 매개로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사회적 분노가 증가하고 계급의 전투성이 발전하고 있다. 영국에서 2022년 6월부터 계속되고 있는 파업은 국제적 차원에서 현재 우리 계급의 역동성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의 원인은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반응이 아니다. 이러한 파업을 유발하는 것은 경제 위기, 생활 조건의 악화, 물가상승 및 낮은 임금이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이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국민을 지원한다"라는 명목으로 부르주아지가 요구하는 희생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 거부는 우리 계급이 그들의 함정에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가 아직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행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노동자가 아직 의식적으로 이 모든 연결고리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동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번 파리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회의 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이는 명목상의 "위원회"일 뿐이다. 실제로 이 그룹은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이라고 불리는 기생주의 그룹의 지원을 받은 ICT가 만들었다. 그 방에는, 거의 전적으로 그들의 대표자들과 이 두 그룹에 끌리는 몇몇 정치화된 개인들이 있었다. CNT-AIT 파리, 로빈 굿펠로(Robin Goodfellow), 마티에르 혁명, Asap, 그리고 몇 명의 개인, 일부 자율주의 성향, CGT 출신 또는 혁명적 생디칼리즘 출신이 있었다. 특정한 순서가 아닌, 트로츠키주의자, 아나키스트, 자율주의자, 스탈린주의자, 코뮤니스트좌파 성원. IGCL 스스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ICT 성명이 시작되자마자, 프랑스에 있는 성원들과 우리 자신은 사실 지난 6월 파리와 다른 도시에서 있었던 시위 동안 전단을 통해 첫 번째 개입이 일어난 위원회를 구성했다."[3]. 그러므로 그것은 모두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완전히 인위적으로 설립된 것이다. 위원회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1989년에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는 노동계급 내 여기저기에서 투쟁위원회가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글을 썼다. 이 현상은 1988년 초 프랑스 국유철도(SNCF)의 거대한 투쟁의 여파로 프랑스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프랑스의 여러 부문(PTT, EDF, 교육, 보건, 사회보장 등)에서 전투적인 노동자들을 한데 모으는 여러 위원회가, 심지어 부문을 기반으로 점점 더 많이 구성되었다.
계급투쟁의 일반적인 발전과 그것이 창출하는 인식이 성숙하게 되는 징후로, 이 위원회들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점점 더 넓게 느껴지고, 그들 자신의 계급 지형, 그리고 이것은 부르주아지(좌파정당, 좌파그룹,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조)에 의해 부과된 틀 밖의 것을 반영(과거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교훈을 끌어냄)하고 함께 행동하기 위해 (발생하는 모든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 재편성할 필요성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1988년 가을의 투쟁 운동에 여러 차례 개입한 적이 있는 바로 그러한 위원회(다른 부문으로부터 공공 부문의 노동자들을 모아놓고 ICC가 정기적으로 개입한 '확대된 투쟁위원회')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계급에 대한 삶과 구체적인 경험이 있었다. 분명히 혁명적인 조직은 이러한 위원회의 창설을 장려하고, 스스로 투자하고, 계급의 조직과 의식을 발전시키도록 그들을 밀어붙여야 하지만, 계급적 동력의 현실과 연계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그것을 만들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적 상황에 밀접하게 따라야 한다. 전쟁의 문제는 노동계급이 움직이는 출발점이 아니고 어떠한 투쟁위원회도 아니다. 반면에, 경제 위기의 악화와 생활 조건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에 직면하여 노동계급의 전투력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토론회나 투쟁위원회의 구성은 정말로 가능하다. 그리고 혁명가들은 국제주의를 옹호함으로써 전쟁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기 위해 개입해야 할 책임이 있다. 게다가, 이는 코뮤니스트좌파의 모든 그룹이 이미 그들의 언론과 전단 배포로 하는 것이다. 만약 이 모든 집단이 합창하고 하나의 같은 국제주의 메시지를 함께 보낸다면, 이 목소리는 더 멀리 전달되고 훨씬 더 심오한 역사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오노라토 데이먼 조직, 국제주의자 목소리, ICC가 의견 차이를 넘어 동일한 국제주의 유산을 옹호하고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때, ICT는 코뮤니스트좌파 내에서 그러한 접근을 거부했다. 대신 기생주의 IGCL과 함께 토론토, 몬트리올, 파리에서 빈 껍질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들을 위원회라고 부른다. 이 그룹은 트로츠키주의자, 자율주의자 및 아나키스트 그룹들과 함께 어떤 종류의 저항도 옹호하고 이것이 계급 내 국제주의적 기반의 확대라고 믿고 싶어한다.
1991년 이래로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맑스는 역사가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고 썼다. 실제로 회의장에서 누군가가 1991년 이후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경험에 대한 위원회의 평가가 어떠한지 세 번이나 물었다. ICT 성원인 의장단의 반응은 "그런 검토는 필요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은 파업과 같으며, 그들은 그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에 실패하게 된다. 계급 전체와 마찬가지로 혁명가들은 분명히 정반대의 행동을 해야 한다. 항상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 토론해야 한다. 1915년 로자 룩셈부르크[4]는 "무자비하고 가혹한 자기비판, 사물의 근원에 도달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그것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기이자 빛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음으로써 ICT가 실수를 직접 바라보는 것을 시작하게 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두 번째 개입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고 방에 있는 한 사람이 코뮤니스트좌파의 국제주의 깃발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혼란을 확산시킬 뿐인 명목상의 위원회는 이러한 재편성에서 원칙의 부재를 강조할 때 그것을 종파주의의 형태로 보고 오해를 한 것이다.
재난을 초래하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책략
이 회의에서 의장단의 ICT 성원은 코뮤니스트좌파 세력이 고립되어 "우리끼리 대화"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위원회가 홀로 있지 않게 만들고 계급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하여 실질적인 원칙이나 근거 없이 재편성을 요구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것이 가장 순수한 기회주의의 인정이라는 사실을 넘어 - "네, 저는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누구나 그리고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것이다" - 그리고 이 "영향력"이 환상적이라는 사실을 넘어, 이 단어들은 무엇보다도 ICT가 이러한 위원회를 만들고, 자기 자신과 계급 사이에서 "중개자"로 그들을 도구로 활용하려는 실제 동기를 드러낸다.
2001년 영국의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TCW)’ 위원회에 가입했을 때 이미 그러한 일이 있었다. 이미 2001년 12월에 우리는 계급의 지지를 얻고 심지어 투쟁을 "조직"하기 위하여[6] "당의 기구"로 규정된 "공장 그룹들"의 국제코뮤니스트당(현재 ICT에 소속된 이탈리아 그룹)이 개발하고 나중에 CWO가 채택한 생각에 반대하기 위해 "토론 그룹의 방어"[5]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우리는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계획이 1920년대 "볼셰비키화" 단계에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 옹호하고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가 강하게 반대했던 정치조직의 기반으로서의 「공장 그룹」의 개념에 대한 퇴행이라고 믿는다. 최근 「공장 그룹」이라는 개념이 영토 그룹, 그다음에 전쟁 반대 그룹의 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변형되면서 실제로 내용이 아니라 그 형태가 바뀌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가 전쟁에 대항하는 계급 저항의 조직적 중심이 될 수 있다는 CWO의 생각은 자본주의 쇠퇴기에 계급의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특정한 오해를 담고 있다. 물론, 정치조직 자체와 함께, 직장 투쟁과 자본주의 전쟁에 반대하여 더 많은 비공식 그룹이 형성되는 경향이 있지만, 코뮤니스트 정치조직에 속하지 않는 그러한 그룹은 자신을 명확히 하고 계급에서 이러한 명확성을 전파하고자 하는 소수의 표현으로 남아 있으며, 자신을 대체하거나 더 넓은 계급 운동의 조직가인 척할 수 없으며, 우리는 ICT의 입장이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원회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ICT의 현재 관행은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코뮤니스트좌파가 옹호하는 국제주의에 대한 혼란을 일으키고, 코뮤니스트좌파와 자본의 좌파 그룹 사이의 계급 경계를 흐리게 하며,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수의 연구하고 성찰하는 활동가들의 에너지를 막다른 골목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후에도 ICT에 의해 행해진 이 모든 모험은 항상 재앙으로 이어졌고, 계급적 입장을 찾기 위해 소수를 분비하는 현재 프롤레타리아트의 엄청나게 어렵고 가치 있는 노력을 좌절시키거나 낭비했다.
따라서, 우리는 ICT에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코뮤니스트좌파의 다른 모든 그룹과 협력하고, 프롤레타리아 깃발을 올리기 위해 함께하고, 코뮤니스트좌파의 전통을 옹호하고 유지할 것을 촉구한다.
2023년 1월 11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전쟁 운동에 반대하는 코뮤니즘
[2] "혁명적 개입과 이라크 전쟁", 「세계혁명」 264호
[3] 파리에서 열린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의 공개회의
[4] 1915년, 「유니우스 팸플릿」
[5] 「세계혁명」 250호
[6] ICT가 몬트리올에서 IGCL과 함께 만든 위원회의 행동에 대해 발표한 보고서는 이 주제에 대해서 발표하고 있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97/committee-leads-its-participants-dead-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