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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여 년 전 대한제국 군인들이 입었던 근대 서양식 군복들의 국가등록문화재 지정 절차가 조만간 완료될 전망이다. 군복들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할 때 향후 보물급으로 격상될 가능성도 있다. 육군사관학교(육사)는 13일 “육사 내 육군박물관이 소장한 총 9건, 51점의 대한제국군 군복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예고 고시가 지난 11일부로 완료됐다”며 “다음 달 중 후속 지정절차가 끝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가등록문화재란 국보와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등 기존 지정문화재가 아닌, 근대 이후 제작·형성된 문화재 중 그 보존·활용을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화재를 말한다. 글=최한영/사진=조종원 기자
대한제국 고종 황제(왼쪽)와 훗날 순종 임금인 황태자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사진 제공=국립고궁박물관
대원수 상복 등 총 51점 다음 달 지정 완료될 듯
120년 전 군복 특징 한눈에 …군 역사 연구도 탄력
역사적 가치 고려해 향후 보물급 격상 가능성도
문화재청은 지난달 12일 이긍연 을미의병 일기, 대한제국 애국가, 동해 북평성당과 함께 육군박물관이 소장 중인 대한제국군 군복들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관계 법령에 따라 30일간의 지정예고 기간을 두고 지난 11일까지 의견을 수렴했으며, 이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지정이 확정된다.
등록 절차를 밟고 있는 문화재들은 대원수 상복(평상복)과 참장(장관급, 현 기준 장군) 예복, 보병 부령(영관급) 상복, 보병 정위(위관급) 예복, 보병 부위(위관급) 예복 및 상복, 기병 정위 예복 및 상복, 헌병(현 군사경찰) 부위 예복 및 상복, 군의 부위 예복 등이다. 군복 외에 대한제국 문장인 이화문(李花紋·오얏꽃 문양)이 새겨진 예모(禮帽·모자), 금사광직(금실로 짠 직물)으로 제작한 대·소례견장 등도 문화재 지정 대상에 포함됐다.
대원수 상복고종 황제가 대한제국군 대원수 자격으로 착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대원수 상복(평상복)
11줄의 수장대원수 상복에 11줄의 수장이 새겨져 있다. 대한제국군 군복 수장 줄 수는 참위(參尉) 1개를 시작으로 대원수의 11개까지 순차적으로 늘어난다.
별 5개 의령장대원수 상복 의령장(목 부위 계급장)에 별 5개가 자수된 모습. 대한제국군은 위관급 1개, 영관급 2개, 장관(장군)급 3개의 의령장을 부착했다. 의령장에 별 5개가 자수된 것은 대원수의 표시다.
의령장·수장 차이로 계급 확인
이 중 대원수 상복은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 대원수 자격으로 착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흑색 융(絨·면사를 평직이나 능직으로 짠 뒤 보풀이 일게 한 직물)으로 제작한 근대 서양식 군복으로, 좌우에 각각 별 5개가 자수된 의령장(衣領章·예복 상의 옷깃에 관등을 표시하기 위한 것. 장관급은 3개, 영관급은 2개, 위관급은 1개의 별을 각각 부착함)과 소매에 11줄의 수장(袖章·군인이나 경찰관 등이 정복 소매에 관등을 표시하기 위한 것으로 참위(1줄)부터 대원수(11줄)까지 구분), 9개의 앞여밈 단추 등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군복들도 의령장 별 개수와 수장 줄 수 등을 구분해 당시 병과와 계급에 따른 차이를 알 수 있다. 현 육군 모표 내 무궁화가 대한제국군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등 120여 년 전 대한제국군 군복의 구체적인 특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관계기관과 협의 여부에 따라 일부 대한제국군 군복의 가치가 향후 보물급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등록문화재 등록이 이뤄진 이후 협의가 된다면 (보물급으로의 격상 등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대한제국군 계급, 조선경비대로 이어져
육군박물관의 대한제국군 군복 국가지정문화재 등록 노력은 최근 활발해지고 있는 우리 군의 독립군·광복군 역사 연구와도 연관된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2017년 펴낸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에서 “광복군은 대한제국군의 군 통수체계와 인맥, 계급, 복제를 계승했다”며 “이를 독립전쟁기의 군사적 전통과 결합시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동시에 출범한 대한민국 국군에까지 그 정신과 전통을 이어갔다”고 밝혔다.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 해산 후 많은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했으며 이들은 대일 독립전쟁 과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군-독립군-광복군-국군으로 우리 군의 역사가 이어지고, 대한제국군·광복군의 계급체계가 1946년 조선경비대 창설 당시까지 이어진 점을 감안할 때 대한제국군 관련 연구는 필수다.
육사는 이번 대한제국군 군복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토대로 가치가 높은 군사 관련 유물을 발굴·연구하는 노력을 계속할 계획이다.
● 인터뷰 - 조성식 육군박물관장
“우리 군 역사적 근원 재조명… 유물가치 향상 위한 연구 지속”
“육군사관학교(육사)는 국군의 창설지이자 건군 초기 독립군·광복군 출신 장교를 양성해 우리 군의 정통성을 확립한 터전입니다. 조국을 지키고자 전사한 생도들의 호국혼이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 수호의 요람’이기도 하지요. 대한제국군 군복의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이 대한제국군-독립군-광복군-국군으로 이어지는 우리 군의 역사를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조성식(대령) 육군박물관장은 국방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한제국군 군복들의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놓고 “일제에 의해 단절된 시기를 넘어, 대한민국과 우리 군의 역사를 대한제국 시기까지 연장해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대한제국군이 이후 독립군·광복군으로 이어지는 우리 군의 뿌리라는 점을 감안할 때 육군박물관이 보유한 대한제국군 군복들은 우리 군의 역사적 근원을 보여주는, 실증적인 예가 된다는 것이다.
1960년대부터 군복 수집 지속…
육군박물관이 지난 1960년대부터 대한제국군 군복을 수집해온 가운데, 이번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으로 유물들의 가치가 재조명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조 관장은 “우리나라 근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국토방위 임무를 수행한 대한제국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가치 있는 유물들”이라며 “우리 군과 육사의 위상을 높이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절차를 밟고 있는 군복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고종 황제가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원수 상복이다. 대원수 상복은 지난 1968년 이강칠 당시 육군박물관장이 인사동에서 구입했다. 이 관장은 대원수 상복의 고종 황제 착용 여부를 확인하던 중, 영친왕(고종 황제 아들)의 비(妃) 이방자 여사에게서 ‘대한제국 당시 궁에 있었던 성옥념 상궁을 통해 고종 황제가 (대원수 상복을) 직접 착용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조 관장은 “의령장(목 부위 계급장)이 별 다섯 개인 것은 대원수의 표시”라며 “대한제국 시기 대원수 계급에 있었던 것은 고종 황제뿐이었다”고 부연했다.
조 관장은 육군박물관이 많은 대한제국군 군복을 소장하기까지 많은 분들의 기증이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대한제국 육군 진위대 부위·강릉재무서장을 지낸 황석(黃淅·1848~1938)의 종손 황일주 씨는 조상의 군복과 석지(石芝) 채용신이 그린 황석 초상, 문중에서 전해 오던 각종 진귀한 고문서를 기증했다. 조 관장은 “육군박물관이 오늘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대한민국과 우리 군을 아껴주시는 많은 분들의 숭고한 기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특별전시 등 대국민 홍보 계획도
조 관장은 이번 국가등록문화재 지정을 토대로 관련 기관과 연계해 대한제국군 군복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연구를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되는 대로 대한제국군 군복, 나아가 육군박물관이 보유 중인 유물들을 활용한 대국민 홍보에도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조 관장은 “육군박물관은 다양한 특별·상설전시를 통해 국민들의 문화 수요를 충족하고 우리 군과 육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될 대한제국군 군복들을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특별전시도 계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최한영/사진=조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