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의 첫 신자, 강현실 〈下〉
#통일교 전도사가 된 장로교 전도사
장로교 전도사였던 강현실은
“이단을 개종시키겠다”며 부산 범내골 초막에 살던 문선명을 제 발로 찾아갔습니다.
강 전도사의 날 선 질문과 문 총재의 답이 숱하게 오갔고, 결국
그녀는 통일교의 1호 신자가 되었습니다.
신자만 된 게 아닙니다. 통일교의 ‘제1호 전도사’이기도 했습니다.
강현실의 전투력은 막강했습니다.
문 총재는 그녀에게 “전국에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3년,
강현실은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대구에 가서 통일교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합니다.
온갖 고생 끝에 대구 교회의 기반을 구축한 다음에는
전주, 광주, 대전으로 옮겨 다니며 통일교 교회를 세웠습니다.
강현실의 전도 일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게 ‘파고다 공원(현 탑골공원) 전도기’입니다.
서울로 올라온 그녀는 종로의 파고다 공원에서 약 7년 동안, 그것도
매일 같이 전도를 했습니다.
파고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과 지식인, 실직자들을 붙들고
통일교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통일교 측에 따르면,
당시 파고다 공원의 강현실을 통해 신자가 된 이들이 수천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훗날 통일교의 핵심 간부가 된 이들도 여럿입니다.
통일교 사람들이 강현실을 “전도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강현실은 나중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통일교 전도사들을 훈련했습니다.
또 ‘순회사(巡廻師)’라는 직함으로 전국의 통일교 교회를 돌면서
‘범내골 시절’을 간증했습니다.
‘통일교 1호 신자’였으니 강현실의 간증은 늘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사회주의가 붕괴한 러시아에 들어가 선교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33세 통일교 전도사, 17세 여고생 앞에 무릎 꿇어
1960년 문선명 총재는 17세 여고생 한학자와 결혼했습니다.
당시 강현실은 33세의 베테랑 전도사였습니다.
강현실과 한학자의 나이 차는 16세였습니다.
그렇지만 강현실은 문 총재의 지침에 따라 한학자 총재를
‘참부모이자 우주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습니다.
문 총재가 “이제부터 한학자가 너희의 어머니다”라고 선포했을 때,
강현실은 공식 석상에서 한학자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를 올렸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강현실은 부산 범내골 판잣집 시절부터,
통일교의 출발부터 함께한 ‘고참 중의 고참’이니까요.
강현실이 16세나 더 어린 한학자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은 교단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통일교 신자들이 모두 쳐다보고 있었을 테니까요.
강현실은 그 후에도 전국을 돌면서 간증을 할 때마다
한 총재의 권위를 세워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문선명 총재의 사망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문 총재는 세상을 떠나기 전 막내인 문형진에게 교회를 물려주었습니다.
교회의 후계자로 택한 셈이었습니다.
막상 문 총재가 사망하자,
한학자 총재는 아주 빠른 속도로 교단을 장악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면에 대두된 게 ‘독생녀(獨生女)’ 교리였습니다.
강현실은 그동안 “문선명 총재만이 메시아이며, 한학자 총재는
그를 통해 완성된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한 총재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원죄 없이 태어난 독생녀라고 규정했습니다.
다시 말해 문 총재가 독생자이듯이, 자신은 독생녀라는 논리였습니다.
문 총재처럼 한 총재도 메시아라는 주장입니다.
#통일교 1호 신자, 한학자 총재와 갈라서다
강현실은 문선명 총재에 대한 종교적 신뢰와 믿음이 아주 컸습니다.
문 총재가 교회의 후계자로 7남 문형진을 택했고, 그것이야말로
하늘의 뜻이라고 믿었습니다.
교단 내부의 회의나 공식 석상에서 이런 우려를 표했다가,
통일교 간부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습니다.
결국 강현실은 한학자 총재와 갈라섰습니다.
한 총재에게 강하게 반발하던 문형진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강현실은 문 총재의 유언에 따라 7남 문형진에게 통일교를 승계하지 않고,
교단을 장악한 한 총재의 행동을 ‘배교(背敎)’라고 보았습니다.
그렇게 강현실은 60년간 몸담았던 통일교를 떠났습니다.
#90세 신부의 영혼결혼식
문형진은 미국에서 생추어리 교회를 세웠습니다.
통일교의 핵심 교리도 공유했습니다.
대신 문 총재의 유언에 따라 자신에게 통일교의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통일교 교리에 따르면, 구원을 받으려면 합동결혼식에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축복을 주는 주체는 참부모인 문선명 총재와 한학자 총재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문형진은 한학자 총재와 등을 돌린 상태였습니다.
참부모의 한 축, 우주의 어머니 역할을 해줄 여성이 필요했습니다.
문형진은 강현실을 설득했습니다.
처음에 한사코 거절하던 강현실은
“통일교를 위해 필요하다”는 설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90세의 강현실은 세상을 이미 떠난 문선명 총재와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영혼결혼식 집례는 문선명 총재의 7남 문형진이 맡았다. 제미나이, 백성호 기자
2017년 9월 2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뉴파운드랜드의 생추어리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문선명 총재와 90세 고령인 강현실의 영혼결혼식이었습니다.
생추어리 교회 안에는 붉은 카펫이 깔렸습니다.
카펫 끝에는 두 개의 옥좌가 놓였습니다.
한쪽 옥좌에는 문선명 총재의 사진이 놓여 있고, 오른쪽 옥좌는 신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복을 갖춰 입은 생추어리 교회 신도들 중 일부는 총기를 휴대하고 있었습니다.
총알로 만든 왕관을 쓴 모습도 보였습니다.
65년 전 부산 범내골의 초막에서 문 총재를 처음 만났던 강현실. 그녀는
생의 끝자락에서 문 총재의 영혼결혼식 배필이 돼 있었습니다.
주례는 문형진 목사가 맡았습니다.
문형진은 자신의 친모인 한학자 총재를 “타락한 이브”라고 불렀고,
강현실을 “승리한 여인”이라 칭했습니다.
결혼식의 피날레는 왕관을 쓴 강현실이 문 총재의 사진 옆 옥좌에 앉을 때였습니다.
교회 신도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영혼결혼식을 치르고 1년6개월 후에 강현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92세였습니다.
장례식에서 문형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현실 순회사는 아버님(문선명)에 대한 정절을 끝까지 지킨 승리한 여인이다.”
장례식의 타이틀은 ‘천주천부 참어머니 강현실성화식’이었습니다.
물론 그녀를 바라보는 통일교의 입장은 전혀 다릅니다.
통일교는 강현실을 “불행한 배교자”라고 봅니다.
60년 넘게 지켜온 신앙을 말년에 저버리고,
문형진에게 이용당한 비극적 최후라는 겁니다.
어쨌든 ‘강현실’이라는 이름 석 자는
문 총재의 사후 통일교의 분열을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