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연인」
Posted by 마르그리트 뒤라스 on 2008-07-10 00:00:00 in 2008 김연수, 문장배달, 문학집배원 | 2 댓글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한번은 그가 학교 앞에 오지 않았다. 운전기사 혼자 검은 승용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 기사는 작은 주인님이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사덱에 갔다고 나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운전기사인 자기는 사이공에 남아서 나를 학교에도 데려다 주고 기숙사에도 데려다 주라는 분부를 받았다고 했다. 그 작은 주인님은 며칠 후 돌아왔다. 여전히 검은 승용차 뒤편에 앉아 시선을 피하기 위해 불안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바로 거기서, 학교 앞이라는 것도 잊은 채 키스를 했다. 키스를 하면서 그는 울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더 오래 사실 것 같아. 그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에게 애원했다. 계속 그녀를 품에 안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아버지도 이런 걸 이해하시겠지요. 오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 역시, 적어도 한 번쯤은 저처럼 이런 열정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으실 테지요.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그는 아버지에게 빌었다. 그러니 저의 이런 열정을, 이런 광기를, 백인 소녀에 대한 이런 미칠 듯한 사랑을 가질 기회를 단 한 번만 허락해주세요. 그는 아버지에게 요구했다. 그녀를 프랑스로 돌려보내기 전에 그녀를 사랑할 시간을 주세요. 1년만 더, 더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전 아직 이 사랑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랑은 아직도, 처음 사랑을 시작할 때만큼이나 새롭고 또 강렬해요. 지금 그녀에게서 멀어진다는 건 저에게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아버지가 잘 아시다시피, 저에게 이런 일은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차라리 네가 죽는 걸 보는 편이 낫다고 거듭 그에게 말했다.
우리는 항아리에 담긴 차가운 물로 함께 목욕했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울었다. 사랑은 아직도 죽고 싶을 만큼 열렬했고, 그것은 이젠 위로할 길 없는 희열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후회할 건 없다고 말하며 그가 했던 말을 생각나게 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데라도 떠나 버려야겠다고,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젠 모든 것이 힘겹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의 아버지와 같은 생각이고,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 출처 :『연인』, 민음사 2007
● 작가 : 마르그리트 뒤라스- 1914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태어남. 작품으로『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모데라토 칸타빌레』『부영사』『연인』등이 있으며 이후 영화를 발표함. 장 콕토상, 공쿠르상 및 파리-헤밍웨이상 등을 수상했으며 1996년 3월 작고함.
● 낭독: 남명렬- 배우. 연극 <에쿠우스> <바다와 양산> <이디푸스와의 여행>, TV <스포트라이트> 등에 출연.
정희정- 배우. 연극 <철로> <쥐> <관객모독> 등에 출연.
동물에 대한 글을 쓴 시튼이 제일 먼저 키운 동물은 새끼 까마귀였지요. 새끼 까마귀를 얻어 와서는 30분 간격으로 먹이를 줬어요. 다음날 아침에도 학교 가기 전까지 그렇게. 그리고 학교에 다녀왔더니 그 새끼 까마귀는 죽어 있었답니다. 물론 어린 시튼은 대성통곡을 했지요. 새끼 까마귀는 계속 어미가 주는 먹이를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시튼은 그 때 처음 배운 것입니다. 유사 이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이 충분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은 3D업종이에요. 30분에 한 번씩 먹이를 주는 일과 같아요. 사랑하듯이 우리가 공부하거나 일했다면 세상은 정말 달라졌을 겁니다. 만약 사랑하는 게 죽을 만큼 힘들다면, 그건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죽지는 않을 거니까 걱정하진 마세요. 대부분은 노인으로 죽지, 연인으로 죽진 않으니까. 차라리 나중에 울지 말고 30분에 한 번씩 먹이를 주는 게 더 옳을 거예요.
2008. 7. 10. 문학집배원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