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내가 지켜내려 했던 것들이 나를 지키고』(푸른사상 시선 186).
시인은 물질주의와 비인간화가 심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역사와 사회로부터 희생된 자들의 손을 잡고 연대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2023년 12월 31일 간행.
■ 시인 소개
5월문학상을 수상하였고, 2017년 『월간 시』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3년 강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시집으로 『헬리패드에 서서』가 있다.
■ 시인의 말 중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무사히 돌아가게 하는 일
강이 있는 그대로 흐르게 하는 일
(중략)
어둠 속 작은 빛으로 이어져 있어
일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
■ 작품 세계
현대사회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업재해자, 외국인 노동자, 국가폭력 희생자, 역사 희생자 등인데, 시인은 그들 중에서 노동자들을 우선 호명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노동자의 수가 2천만 명에 이를 정도로 사회적인 비중이 높아졌지만, 열악한 노동 조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 등 고용불안이 크게 확산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에는 물론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간의 임금 격차도 심화하고 있다. 노동시간도 길고, 산업재해도 많이 일어난다. 시인은 이와 같은 노동 환경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그들을 품는 것이다. (중략)
김용아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사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염원하며 그들의 손을 잡는다. 시인의 행동은 자본주의 시장의 가치 기준으로 보면 이윤이 없다. 기회비용으로 보면 손해가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그들을 부르며 포옹하고, 그들의 귀가를 가로막는 세력에 맞선다. 개인적인 슬픔을 토로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사회적 존재성을 인식시키고, 그들의 불귀에는 국가와 역사의 책임이 있다는 것도 제시한다. 시인의 자세는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질서를 이루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적 존재자들에게 귀서는 의무이기도 하지만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그 권리를 박탈당했고, 지금도 빼앗기고 있다. 시인은 그들을 인간적인 도리로는 물론 사회적인 책임감으로 껴안는다. 아픔에 함몰되지 않고 귀가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연대하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해설 중에서
■ 시집 속으로
먼 길
김용아
서울에서 151번 버스를 타고
다니던 소녀상
영월까지 내려왔다
라디오스타 야외 박물관
동해 바다를 뒤로한 채
앉은 소녀는
곧 건너야 할 바다의
깊이를 알지 못하는 듯
의자에 앉아 있다
그날 이후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먼 길 돌아
이곳에 다시 앉은 이유는
단 하나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