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 24,1-2ㄱ.15-17.18ㄴㄷ; 에페 5,21-32; 요한 6,60ㄴ-69
오소서 성령님
우리를 유난히 힘들게 했던 여름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는데요, 많은 호흡기 질환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건강 유의하셔서 건강히 여름과 작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스켐’에 모이게 하고 계약을 갱신합니다. 여호수아가 갱신하는 계약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과 맺었던 계약으로서, 그 내용은 ‘이스라엘은 야훼를 하느님으로 모시고, 야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계약을 갱신하며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묻습니다. “만일 야훼를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야훼를 섬기겠다.” 그러자 백성들은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야훼를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오기까지 우리를 지켜 주신 그분만이 우리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수아기의 이 말씀은, 전례 중에 계약을 갱신할 때 봉독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례에 참례하는 사람들은, 직접 이집트를 탈출하지는 않았지만, 전례를 통하여 자신들도 이집트 탈출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도 전례 중에 이렇게 계약을 갱신하는 일이 있는데요, 파스카 성야 미사 중에, 세례 때의 서약을 갱신합니다. 우리 또한 죽음으로부터 탈출하여 생명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자유를 누리고자 죄를 끊어 버리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않도록 악의 유혹을 끊어 버리고, 죄의 근원인 마귀를 끊어 버린다.”고 서약을 갱신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과의 계약 갱신은 이처럼 부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 미사 중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살과 피는 한 사람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를 영하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모시게 됩니다. 성체를 영하면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됩니다. 그러는 한편, 우리는 예수님께서 맺어주신 계약을 갱신합니다. 그 계약은 ‘나에게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예수님의 언약과 ‘나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성찬의 삶을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계약’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요, 영어로는 ‘커버넌트’covenant와 ‘컨트렉트’contract로 구분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계약은 ‘커버넌트’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계약으로서, 한쪽이 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유지됩니다.
다른 한편, ‘컨트렉트’는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맺는 법적 계약을 의미하는데요, 한쪽이 조건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 계약은 파기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사면서 약정을 맺으면, 일정기간 동안 특정 요금제로 사용하겠다고 계약을 맺는 것이고, 이를 어길 경우 위약금을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계약’이라고 하면, 이런 경제적, 법적 계약이 떠오르기 때문에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계약은, 즉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를 변치 않고 사랑하시겠다고 세례 때에 하신 약속은, 우리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 해서 파기되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에 맺는 가장 숭고한 계약은 혼인 계약이라 하겠는데요, 바오로 사도는 제2독서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저는 혼인예식을 주례할 때 신랑과 신부가 서약하는 것을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게 되는데요, 내용은 이러합니다.
“나는 당신을 아내로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기억이 잘 안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서로 이렇게 서약을 하셨습니다. 세 가지를 서약하셨는데요, 신의와 사랑과 존경입니다. 살다 보면 존경스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존경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한 약속입니다.
또한 즐거울 때, 성할 때 뿐만 아니라 괴로울 때나 아플 때도 이 세 가지를 지키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이 서약은 그래서 매우 숭고하게 여겨집니다.
내가 상대방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은, 뒤집어보면 상대방이 나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에 대한 신의와 사랑과 존중을 지켜나가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복음 6장의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이 마무리되는데요,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는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결국 많은 제자가 되돌아가고 열두 제자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우리는 무어라 대답할까요? 내가 떠나겠다고 대답한다 해서 예수님께서는 ‘그래, 너와는 이제 계약 해지다. 잘 가거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나는 그분을 떠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분께서는 나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컨트렉트’가 아니라 ‘커버넌트’ 계약을 우리와 맺으셨습니다.
우리 편에서는 계약을 어길 때도 있습니다. 차마 입으로 꺼내기도 불경스럽지만, 가끔 하느님께 ‘실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이것 밖에 안 되시나’ 의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분께서 최선을 다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비록 아이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계신 것을 믿고 있듯이 말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항상 선하시고 그분의 계획이 우리를 위한 것임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예수님께 신의와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겠습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신의와 사랑과 존경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입니다.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라고 물으시는 예수님께 베드로 사도와 함께 대답합시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 성체성사의 제정, 1441-1442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