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는 정치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이들은 딱딱한 경제지표를 들여다 볼 틈이 없다. 그러나 물가는 다르다. 주머니 형편은 그대로인데,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줄어든다면, 누구나 정부를 욕하게 된다. 정통성 없는 정부, 군홧발로 국민을 짓밟았던 정부가 물가만큼은 잡으려 했던 것은 그래서였다. 보통사람들에게 물가는 정부의 경제정책 성적표나 다름없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물가가 위기면, 경제도 위기다. 다른 지표는 소용이 없다.
그런데 '경제를 살리겠다'며 들어선 이번 정부는, 참 특이하다. 물가에 별 관심이 없다. 현 정부의 '고환율 저금리'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정권 초기부터 나왔었다. 수출 대기업에게는 이롭지만, 서민에게는 물가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게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고집스럽게 밀어붙인 '고환율 저금리' 정책은 4대강 사업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상징이 됐다.
결국,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 당국자들도 뒤늦게 위기를 인정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9일 처음으로 '안정 성장'이라는 말을 꺼냈다. 현 정부에선 '금칙어'였다. 물가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성장을 추구하는 게 '안정 성장'이다. 오로지 수출과 성장만 바라보던 입장에서 돌아서겠다는 뜻이다. 윤 장관은 이날 "경제 회복의 흐름이 계속될 수 있을지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이른바 '747공약'(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경제 7위 대국)으로 대표되는 현 정부 정책기조의 포기선언이다. 치솟는 물가를 보며 쏟아내는 한숨 앞에선 불도저 같은 추진력도 주저앉았다.
같은 날, <프레시안>이 만난 사람은 김종인 전 의원이었다. 그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정책 입안에 참여했다. 또 전두환 정부 시절, 여당이던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에선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다. 이런 이력을 놓고 '좌파', '진보'라는 딱지를 붙일 사람은 없을 게다.
하지만 그는 박정희 정부 시절, 의료보험을 도입했고 전두환 정부에선 헌법 119조, 즉 경제 민주화 조항을 집어넣었다. 노태우 정부에선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그는 한결같은 재벌 개혁론자로 통한다.
한마디로, 묘한 이력이다. 하지만 이런 이력이 그를 교조적인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풍부한 맥락에서 정책을 이해하게끔 했다. 실제로 그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대표적인 정책전문가로 꼽힌다.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이유다.
'물가대란'을 바라보는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경제정책에서 정답은 없다. 물가가 오른 데는 나라 밖 사정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다만, 정책 대응이 꼭 필요한 시기가 있다. 그리고 현 정부는 그 시기를 놓쳤다. 그게 그의 생각이다.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의식해서 무리하게 돈을 풀었다는 설명이다.
생계가 빠듯한 이들일수록 물가에 민감하다. 그런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은 계속 얇아지고 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진행된다는 말이다. 이는 '물가대란'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말과도 통한다. 이 대목에서도 이미 경고음은 울렸다. 정치권에선 지금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양극화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이런 때늦은 복지 논쟁이 못마땅하다. 복지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박정희 정부에서 의료보험을 도입했던 그가 보기엔, 말만 요란하지 내용이 없다는 게다.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내세운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기선은 잘 잡았다. 그러나 내용이 없다"고 평가했다. 복지를 강화할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측에 대한 비판은 신랄했다. 한마디로 "복지 잘해서 망한 나라는 없다"는 게다.
이날 김 전 의원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다.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 내내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편집자>
"정부가 곰탕 값 낮추라고 하면, 식당 주인은 재료를 싸구려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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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프레시안(김봉규) |
프레시안 : 물가 불안이 심각하다. 일차적으로는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올랐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인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물가 문제는 불가항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답답해하는 이들도 많다. 정부가 물가 불안에 대응할 방법이 정말 없을까.
김종인 : 중동 사태로 원유값이 오르고, 투기자본이 달라붙으니까 국내에서 취할 대응책이 부족한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불가항력'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그럴 거면 정부는 왜 있나? 대통령의 말처럼 정말로 정부가 할 일이 없다면, 물가 잡겠다며 기업 압박하는 모습도 보이지 말아야지.
요즘 관료들이 직접 기업에 드나들며 가격 낮추라고 위협하는 모양인데, 물가라는 게 그렇게 해서 잡히는 게 아니다.
어떤 이들은 전두환 정부 시절에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았느냐고도 한다. 하지만 틀린 이야기다. 당시엔 나라 밖 상황이 워낙 좋았다. 유가가 1983년부터 급락하기 시작했다. 배럴당 34달러 하던 게 10달러 이하로 떨어질 정도였으니까. 동시에 모든 원자재 가격이 하락했다. 그래서 물가가 자동적으로 안정이 된 것이지, 기업을 쥐어짰기 때문에 물가가 잡힌 게 아니다.
1990년에 청와대 경제수석 하면서 2년 동안 물가목표를 없애본 적이 있다. 그전에는 정부가 물가를 통제했다. 예산도 동결하고, 임금도 동결하고, 추곡수매가도 동결하는 식이다. 이렇게 물가를 잡으면 간단하겠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문제가 복잡하다. 이런 통제는 경제에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시장에서 상대가격(relative price)이 왜곡된다. 결국, 경제가 중장기적으로는 위험해진다.
당시는 식료품 가격이 갑자기 오르면 방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정치적 한계가 어디냐'했더니, '두 자릿수 인상은 안 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럼, 한 자릿수, 그러니까 9.9%까지는 올라도 좋으니까 이까지는 그대로 둬서 상대가격을 정상화시키자'라고 했다. 그 뒤로는 한국 정부가 과거처럼 직접 물가통제를 하지는 않았다. 최근 들어 정부가 급하다고 옛날에나 하던 짓을 하는데, 현명치 못한 조치라고 본다. 그 대가는 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온다. 생각해보라. 정부가 곰탕 값 낮추라고 하면, 식당 주인은 곰탕 재료를 싸구려로 쓰지 않겠는가.
"정책은 '타이밍', 그런데 그걸 놓쳤다"
프레시안 : 현 정부가 출범 당시부터 고집해 왔던 '고환율 저금리' 정책을 탓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종인 : 맞다. 정부가 올해 성장 목표치를 5%로 잡았는데, 당시 국내외 정황을 꼼꼼히 보면 도저히 그런 목표를 설정할 수가 없다. 당장 민간연구기관들은 전부 4% 내외 성장할 거라고 했는데 정부만 유독 5% 성장하자고 정했지 않은가. 그걸 달성하려고 하니까 다른 데가 주름살이 갈 수밖에 없는 거지. 종합적인 정책 판단부터 오류를 범했다.
그래서 수출에만 목을 매게 됐고, 환율 절상을 막았다. 하지만 그러면 수입 물가를 잡을 수 없다. 물가 불안을 자초했다는 말이다.
그럼 그렇게 한다고 해서 실제로 수출이 늘어나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국제 정세를 보면, '고환율' 정책이 꼭 수출 증대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반대로, 2004~2005년 무렵에는 원화 가치가 달러당 910원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그때도 수출은 두 자릿수 이상 증가했었다. '저환율' 시대에 이런 성과를 거뒀던 기업들에게 굳이 '고환율' 환경을 제공해야만 수출이 늘어난다면, 이는 한국 수출기업들의 경쟁력이 과거보다 떨어졌다는 근거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기업들을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서 이익을 보장해주고 대신 국내 소비자에게 고통을 돌리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작년 상반기에 기준금리 올렸어야…그러나 'G20' 때문에"
작년 상반기쯤에 기준금리를 올려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정부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반적인 거시경제 수치를 좋게 만들려고 하던 때다. 그래야 자랑할 수 있다 싶었겠지. 하지만 그래서 타이밍(시기)을 놓쳤다. 그리고 그 후유증을 지금 겪고 있다. 정책이라는 게 타이밍을 놓치면 효과가 없다.
정책 타이밍 놓친 결과를 보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니까 대출 액수 늘려주겠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가계부채를 잔뜩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금리를 올리겠다고 하면, 가계부채가 부담이 된다. 정책 타이밍 놓친 결과가 이렇게 무섭다.
이미 시그널(신호)이 왔는데, 그걸 무시하고 정책 타이밍을 놓쳐서 재앙을 겪은 것은 선례가 많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를 보라. 외환위기 가능성은, 1970년대 국제수지 적자가 엄청나게 늘어났을 때 이미 시그널이 온 거였다. 이게 김영삼 정부 시절까지도 해결이 안 됐다. 1994년도 주변 상황을 보면, 중국 위안화가 20% 평가절하 됐다. 일본 엔화 환율은 크게 올랐다. 우리 인접국 화폐가 평가절하 되면, 원화도 절하됐어야 했는데 정부가 안했다. 김영삼 정부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다른 정책을 다 희생시켜 버린 것이다. 이게 결국 외환위기로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 '환율 주권론' 이야기하는 이들, 그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환율은 중요한 문제다. 달러가 과거에 비해 너무 풍부하게 풀리는, 양적완화 정책이 계속되니까 달러가 자연스럽게 평가절하 됐다. 그런데 이 후유증으로 각국이 물가 문제에 부딪히니까 이제 다들 자기나라 환율을 절상하는 게 최근 모습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다. 물가 때문에 사회적인 긴장이 커지니까, 최근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앞으로는 5년 동안 경제성장은 7% 정도만 하고 국내 가격을 안정시키자는 얘기를 했다. 한국 정부도 이제는 냉정하게 기존 정책을 재고해야 할 때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소득 감소 현상이 심각해진다. 소위 말하는 '양극화 현상'이 더 심해진다는 말이다. 사회적으로 굉장히 불안해지고, 그러면 그 자체로 정권에 큰 부담이 된다.
첫댓글 저는 원불교인들이 하나같이 바른 정신과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스승님들이 정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삼국은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들이고 소득이나 행복지수가 가장 높습니다.
이 정권은 항상 복지가 사람을 게으르게 만들어 나라를 망친다지만
세금을 소득의 50% 이상 내는 복지국가들의 실업율은 역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를 수 없는 3%대입니다.
실업수당 많이 주니 일하지 않기에 복지를 늘릴 수 없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복지망국이라고 울부짓는 것들이 나라를 맡은 3년, 이나라는 서민경제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브라질 룰라대통령은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1350만 가구 서민층에 한 가정당 몇십만 원씩 생활비를 무상지원한 결과
5년만에 세계경제에 7위로 성큼 올라섰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서민들이 돈이 없어 생필품마저 제대로 구입하지 못해
제조업 서비스업 농어민 모두가 함께 망해가고 있습니다.
호의호식하는 고소영 정권이 도저히 서민의 밑바닥 삶을 보지 못하는 동안
전세계 1위의 자살률은 해마다 올라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