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망경 – 토봉, 동봉(비로봉), 서봉, 만경대
1. 병풍바위, 운악망경의 대표이다
소나무 뿌리가 얽혀 온 산이 꽉 막혔다. 나아가자니 길이 없고 물러서자 해도 문이 없다. 이 백척간두에 이르러 살
길을 찾되 일만 가지 길이 있다지만 손끝에 닿느니 절벽 뿐, 이야말로 승지절경에 섰도다. 이때에 즈음하여 지팡이
를 내리치며 한 마디, 온통 구름 속에 봉우리가 덮였구나.(非徒松徑不通 全山莫開 進之無路 退亦無門 勢至於百尺
竿頭 更尋活路 於萬法之中 而觸處便塞 至是而可謂勝地絶景 當恁麽時 如何打柱杖 一下雲中峰巒)
―― 김장호(金長好, 1929~1999), 『韓國名山記』 ‘운악산(雲岳山)’에서, 한용운의 ‘멧줄기가 둘러친 속에 구름마저
가렸다(一帶峰巒雲更遮)’라는 십현담(十玄談) 선론(禪論)의 주(註), 그 비(批)에 ‘한 발자국 더 갈수록 더 기이한
경지가 있다(一步更奇於一步)’이라 했다. ‘귀향마저 부정하다(破還鄕)’ 편에 나온다.
▶ 산행일시 : 2023년 5월 20일(토), 맑음,
▶ 산행인원 : 오기산악회 6명
▶ 산행코스 : 운악산 주차장, 눈썹바위, 토봉, 입석대, 만경대, 운악산 동봉(비로봉), 서봉, 만경대, 동봉, 절고개,
현등사, 운악산 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거리 8.0km
▶ 산행시간 : 5시간 56분
▶ 교 통 편 : 승용차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8 : 34 – 운악산 주차장, 산행시작
08 : 45 – ┣자 갈림길, 직진은 대로로 현등사 1.4km, 오른쪽 산길로 감
09 : 42 – 눈썹바위
10 : 46 – 토봉(726m)
11 : 45 - 운악산 동봉(비로봉, 937.5m), 휴식( ~ 12 : 00)
12 : 04 – 서봉(935.5m), 만경대
12 : 15 – 동봉, 점심( ~ 12 : 35)
12 : 51 – 절고개, ╋자 갈림길 안부
13 : 38 – 현등사(懸燈寺)
14 : 30 – 운악산 주차장, 산행종료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일동 1/25,000)
산악인 김장호는 그의 명저인 『韓國名山記』(1993)에서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에 있는 산으로 9좌를 들면서 운악산
을 맨 먼저 올려놓았다. 물론 이 책에서 뽑은 총 61좌 중 맨 먼저는 백두산이고, 그 다음은 강원도 설악산이다. 서울
인근의 화악산이나, 명지산, 국망봉 등을 오를 때 운악산이 전망의 화룡점정 역할을 할뿐더러 등대이기도 하고, 그
근처인 축령산이나 서리산에서는 현란한 암벽으로 둘러싸인 운악산을 전망하려고 오른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김장호는 위의 책에서 운악산의 접근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 언저리에 접어들자 이내 한 눈에 저 산이구
나 하는 탄성이 불시에 입에서 새어나리만큼 여느 산과는 다른 면모가 대뜸 눈에 띈다. 청평에서부터 조종천을 끼고
들어서거나, 아니면 광릉내에서 일동 쪽으로 치오르다가 서파에서 현리로 빠져들어 바라보거나 간에, 그 정수리
어깨죽지에 시원스레 암벽을 둘러치고 버틴 앉음새가 이미 잘 생겼다 못해 오히려 위압적이다.”
우리는 서파에서 현리로 빠져들어 위압적인 운악산을 바라보면서 그 들머리인 동구 주차장으로 간다. 오기산악회
(동부기술교육원 제5기 모임이다)가 코로나 19로 3년간 주춤했다가 작년 가을부터 분기 1회로 산행을 이어가기로
하였다. 우리가 11년 전 이맘때 운악산을 오른 그 코스로 가기로 하였다. 한때는 버너와 고기를 싸 짊어지고 올라서
산중에서 구어 먹는 재미에 맛을 들였는데, 지금은 뭇 등산객들의 눈 밖에 나는 일이라 삼가고, 대신 틈틈이 먹을거
리를 바리바리 싸간다.
11년 전이니 얼마나 변했을까? 처음처럼 간다. ‘초심회’라는 수십 명의 산악회 회원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그들의 발걸음마다 웃고 떠드는 즐거움은 우리들에게도 전염된다. 먹자동네 지나 현등사 가는 대로를 0.3km
오르면 오른쪽으로 지능선을 오르는 주등로의 하나인 갈림길이 있는데 공사 중이라고 막았다. 바로 위쪽에 전장
1km인 구름다리를 설치하는 공사다. 오는 5월 25일 개통한다고 한다.
지킴이는 없다. 안전띠 비켜 데크다리 올라 건너고 옛 계단 길을 오른다. 당분간은 하늘 가린 숲속길이다. 사면의 풀
숲을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풀숲이 드물기도 하지만, 산행 시작할 때 주차장 옆의 가게 뜰에 화초로 키우는 더덕이
보이기에 이 산에서 자라는 더덕인가 물었더니, 주인아주머니가 운악산에는 바위가 많고 흙은 물이 잘 빠지는 마사
토라서 산나물이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띄엄띄엄 삽주만이 산나물 행세한다.
┫자 갈림길 지나고 눈썹바위부터 험로가 시작된다. 멀리서는 대단치 않게 보이던 슬랩이 다가가면 거대한 암장이
다. ‘선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된 총각(눈썹 바위)’이라고 한다. 안내판 설명이다. “옛날에 한 총각이 계곡에서 목욕을
하는 선녀들을 보고는 치마를 하나 훔쳤다. 총각은 치마가 없어 하늘을 오르지 못한 선녀를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지
만, 선녀는 치마를 입지 않아 따라갈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 말에 총각은 덜컥 치마를 내주었고, 치마를
입은 선녀는 곧 돌아오겠다며 하늘로 올라갔다. 총각은 선녀 말만 믿고 하염없이 기다리다 이 바위가 되었다.” 슬픈
얘기다.
3-1. 자주달개비
3-2. 운악산 주릉
4. 운악산 동쪽 사면
5. 운악산 정상 부근
6. 오른쪽이 병풍바위
7. 병풍바위 부분
눈썹바위는 아무리 더듬어도 직등하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왼쪽 밑자락을 길게 돌고 바위 섞인 가파른 오르막을
사족보행(四足步行)한다. 군데군데 핸드레일 붙들며 슬랩 오르고 되똑한 바위가 나오면 그에 올라 운악산의 주변을
살피곤 한다. 우리 일행들로서는 오랜만의 산행이라 무척 힘들어 한다. 산을 오르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다.
그리고 쉴 때마다 주전부리하니 배가 불러 더욱 힘이 드는 산행이다.
612m봉 넘고, 삿갓바위가 더 어울릴 둣한 고인돌바위를 지난다. 연속해서 마주치는 가파른 슬랩을 핸드레일 밧줄
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오른다. 오룩스 맵에는 726m봉을 ‘토봉’이라고 한다. 산 하나를 얻는다. 토봉 내리막은 데크
계단을 길게 설치하였다. 계단마다 경점이다. 가평 8경의 제6경인 운악망경(雲岳望景)을 광고하는 사진은 여기에서
찍었다. 그 백미는 이제 막 펼치려는 병풍을 연상케 하는 병풍바위이다. 우리가 약간 늦게 왔다. 암벽 틈의 신록이
좀 더 옅었다면 훨씬 보기 좋았겠다.
한껏 고급해진 눈이다. 바닥 친 안부 지나고 병풍바위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오른다. 그 오른쪽 발아래로 불쑥불쑥
죽순처럼 솟은 일단의 바위는 미륵바위다. 미륵바위 또한 운악산이 자랑하는 명물이다. 우리 일행 여성 3명은 안부
에서 골짜기로 갔다. 힘들어 더 못가겠다며 하산한 것이다. 남은 남자 셋이서 간다. 속도가 난다. 등로는 점점 더 험
해지고, 뒤돌아보는 경치 또한 점점 더 가경이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뒤돌아본다.
여기다. 지도에 사다리 혹은 철계단이라고 표시된 20m 직벽 오르막이다. 사실 나는 이 구간을 오늘 우리 일행들을
데리고 오를 일이 무척 기대되었다. 슬링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그 옆으로 널찍하고 완만한 데크계단을 놓아버렸다.
아울러 운악산도 버려놓았다. 녹슨 그 사다리를 내려다보며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미륵바위 전망대 지나고
왼쪽 사면을 길게 돌아 한 피치 가파른 슬랩을 오르면 그 위 너른 암반이 만경대다.
나는 왜 여기를 만경대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동쪽으로 전망이 훤히 트여 화악산을 위시한 명지
산, 연인산 등을 바라볼 수 있지만, 아직 나는 그 경치가 감동적일 때를 만나지 못했다. 나는 여기 만경대보다는
서봉 아래 만경대가 낫다는 생각이다. 거기서는 북한산을 하늘금으로 보이는 첩첩 산이 그야말로 가경이다. 슬랩
내리고 전에 없던 데크계단 오르면 운악산 정상이다. 너른 공터에는 뙤약볕이 가득하고 그늘 아래 아이스케끼 장사
는 목청 높여 호객한다.
운악산 정상 표지석은 장대한 화강암과 그 전면에 새긴 ‘雲嶽山毘盧峯’ 글씨가 아주 멋들어진다. 해발 937.5m.
지도마다 약간씩 다르다. 나 혼자 대표로 서봉과 그 아래 만경대를 다녀오기로 한다. 숲속 평탄한 길이다. 서봉은
포천시에서 세운 뭉툭한 정상 표지석이 있다. 해발 935.5m. 그 아래로 잠깐 내리면 절벽 위 너른 암반이 만경대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여 원경은 가렸다. 다시 동봉을 오르고 그 아래 쉼터 평상에서 점심밥 먹는다.
9. 병풍바위와 그 주변
12. 미륵바위
13. 병풍바위
15. 미륵바위
16. 병풍바위
17. 멀리 왼쪽 흐릿한 산은 천마산
만경대는 거기서 보는 경치도 가경이지만 운악산 동봉을 한 피치 내린 안부께에서 오른쪽은 약간 벗어난 지능선 암
봉에 올라 만경대를 바라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층층바위 두른 우뚝한 만경대를 볼 수 있다. 오늘은 무심코 내리
다 그 암봉을 들르는 것을 깜빡 놓치고 말았다. 남근석 전망대에서 남근석 바라보고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 915m
봉을 잘난 왼쪽 우회로 따라 내리다 보니 ╋자 갈림길 안부인 절고개다.
욕심으로는 백호능선을 가고 싶고, 아기봉과 이어지는 능선도 가고 싶지만 그러자고 한다면 오기산악회에서 나는
탄핵 당할 것이다. 현등사(1.1km) 쪽으로 하산한다. 골로 간다. 오른 만큼 내린다. 돌길과 슬랩 내리기가 사납다.
골짜기에는 물이 말랐다. 눈이 퍽 심심한 내림 길이다.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선사의 승탑 지나고 대로인
언덕바지 잠시 오르면 경기도 명찰인 현등사다. 함허득통 선사가 희양산 봉암사에서 열반에 들자 태종의 둘째 아들
인 효령대군의 명령으로 사리를 수습해 여러 곳에 탑을 조성했는데 그 중 한 곳이 이곳이다.
내가 대표로 절 구경한다. 11년 전 툇마루에 앉아 아이패드로 속세(?)를 들여다보던 젊은 여승은 간 곳이 없다. 현등
사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운악산을 유람하다가 밤에 불빛을 보고 자취를 따라갔다가 폐사(廢寺)의 옛터를
찾아냈다고 한다. 탑 위에 등불 하나가 매달려 있었는데, 국사는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이 절을 중건하고 그 절 이름
을 현등(懸燈)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등사 영산보전(靈山寶殿)은 주련과 현판 글씨가 아름답다. 삼성각(三聖閣)의 주련이 행서라 얼른 알아보기 어렵
고, 그 해석 또한 무슨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 이해하기 어렵다.
雖宣雲山千萬事
海天明月本無言
白鷺下田千點雪
黃鶯上樹一枝花
비록 산의 구름처럼 천만 법문 설하였으나
바다와 하늘과 명월은 본래 말이 없네
백로가 밭에 내리니 천점의 눈이요
꾀꼬리 나무에 오르니 한 송이 꽃이로다
이제 도로 따라 내린다. 낭랑하게 법문하는 계류 물소리 들으며 내린다. 도로에 웬 사람들이 몰려 있다. 우주라도
촬영하기에 알맞은 커다란 망원렌즈를 장착한 사진가들이다. 무슨 귀한 사진을 찍으시냐고 묻자, 저 숲속 나무에
육추하는 까막딱따구리를 찍는 중이라고 한다. 길옆에는 문화재청과 가평시에서 “까막딱따구리를 지켜주세요(천연
기념물 제242호)” 라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천연기념물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촬영은 문화재보호법 제35조 제3항에 따라 사전허가 대상이며, 이를
위반할 경우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니 협조 바란다고 부기했다. 많은 사진가들이 각기 승용차를 몰고
왔다. 한 분이 나에게 자기가 육추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그중 하나를 나에게 빌려준다. ‘육추’라는 말이
낯설다. 그런데 이런 새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상용하는 말이다. 육추(育雛). 알에서 깐 새끼를 키운다는
뜻이다.
잴잴 흐르는 무우폭포(舞雩瀑布)는 내려다보고, 삼충단 비와 운악산 시비 들여다보고, 일주문 뒤편 ‘漢北第一地藏
極樂道場’이라 쓴 현판 올려다보고 환속한다. 운악산 시비다. 운악산은 그러하다.
雲岳山 萬景臺는 金剛山을 노래하고
懸燈寺 梵鐘소리 솔바람에 날리네
百年沼 舞雩瀑布에 푸른 안개 오르네
18. 미륵바위
19. 운악산 동릉
20. 운악산 동봉에서
21. 운악산 서봉 아래 만경대에서 조망, 가운데가 애기봉이다
22. 하얀 수피 가운데 구멍이 까막딱따구리 집이다.
23. 까막딱따구리, 전문사진가가 나더러 사진 찍으라고 보여준 카메라 모니터다.
24. 큰뱀무
25. 천남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