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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魔法(마법)의 새
박두진
아직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몇 번만 날개 치면 산골짝의 꽃
몇 번만 날개 치면 먼 나라 공주로,
물에서 올라올 땐 푸르디푸른 물의 새
바람에서 빚어질 땐 희디하얀 바람의 새
불에서 일어날 땐 붉디붉은 불의 새로
아침에서 밤 밤에서 꿈에까지
내 영혼의 안과 밖 가슴속 갈피갈피를
포릉대는 새여
어느 때는 여왕으로 절대자로 군림하고
어느 때는 품에 안겨 소녀로 되어 흐느끼는
돌아설 땐 찬바람
빙벽 속에 화석하며 끼들끼들 운다.
너는 날카로운 부리로
내 심장의 뜨거움을 찍어다가 벌판에 꽃뿌리고
내가 싫어하는 짐승 싫어하는 뱀들의
그것의 코빼기를 발톱으로 덮쳐
뚝뚝 듣는 피를 물고 되돌아올 때도 있다.
너는
홀로 쫓겨 숲에 우는 어린 왕자의 말이다가
밤마다 달빛 섬에 홀로 우는 학이다가
오색 훨훨 무지개 속 구름 속의 천사이다가
돌로 치는 군중 속의 피흐르는 창녀이다가
한번 맡으면 쓰러지는 독한 꽃의 향기이다가 새여.
느닷없이 얼키설키 영혼을 와서 어지럽혀
나도 너를 알 수 없고 너도 나를 알 수 없게
눈으로 서로 보면 눈이
넋으로 서로 보면 넋이
타면서 서로 아파 깊게깊게 앓는,
서로 오래 영혼끼리 꽃으로 서서 우는
서로 찾아 하늘 날며 종일을 울어예는
어쩔까 아 징징대며 젖어오는 울음
아직도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있다.
《11》묘지송
박두진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수가 빛나리
향그런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12》默示錄(묵시록)
박두진
나의 사랑하는 이의 꿈이어 거기에 있거라
아무도 올라갈 수 없는 하늘언덕의 노을자락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하늘꽃의 꽃언덕
그 무지개로도 햇볕살로도 바람결로도
이슬방울로도 하늘 푸르름으로도
짜낼 수 없는 깁,
그 맞닿아야 할 가슴과 가슴의 따스함
입술과 입술의 보드라움
눈과 눈의 깊음
살과 살의 향기로움이 내려 엉긴
아, 어디까지 가도 그 멀음 끝이 없고
언제까지 언제까지 가도 그 오램 끝이 없는
너와 나 닿고자 하는 언덕의 사랑이어
이루어지고 싶은 그 꿈의 꼭대기
자리잡고자 하는 사랑의 알칡이어 거기 있거라.
《13》바다가 바라 뵈는 언덕의 풀밭
박두진
벗꽃이 조금씩 제절로 흩날리는
바다가 바라 뵈는 언덕
풀 밭에 잠자는 꽃에 물든 바람이어.
아직은 땅 속에 잠자는 폭풍이어.
그, 비둘기는 깃쭉지, 작은 羊은 목 줄기에서
지금은 죽음,
소년과 아낙네와 젊은이의 피 뿌림의
꽃잎보다 더 고운 따스한 피의 소리.
그 위에 무성하는
풀뿌리 밑의 울음소리. 가늘은 넋의 소리.
간간한 사투리소리.
그 풀 언덕 바다가 바라 뵈는
조금씩 흩날리는 꽃이 흩는 풀밭 속에
지금은 죽음,
손으로 눈을 가린
봄. 햇살.
날아 올라보고 싶은 비둘기여.
뛰엄뛰고 싶은 羊들이어.
살고 싶은 소년이어.
울어보고 싶은 아낙네여.
말 해 보고 싶은 젊은이여.
《14》별
박두진
아아 아득히 내 첩첩한 산길 왔더니라. 인기척 끊이
고 새도 짐승도 있지 않은 한낮 그 화안한 골길을 다
만 아득히 나는 머언 생각에 잠기여 왔더이라
백엽 앙상한 사이를 바람에 백엽 같이 불리우며 물
소리에 흰 돌 되어 씻기 우며 나는 총총히 외롬도
잊고 왔더니라
살다가 오래여 삭은 장목들 흰 팔 벌이고 서 있고 풍
운에 깍이어 날선 봉우리 훌훌훌 창천에 흰 구름 날
리며 섰더니라
쏴아 - 한종일내 - 쉬지 않고 부는 물소리 안은 바람
소리 ... 구월 고운 낙엽은 날리여 푸른 담 위에
흐르르르 낙화 같이 지더니라.
어젯밤 잠자던 동해안 어촌 그 검푸른 밤하늘에 나
는 장엄히 뿌리어진 허다한 바다의별드르이 보았느니.
이제 나의 이 오늘밤 산장에도 얼어붙는 바람 속
우러르는 나의 하늘에 별들은 쓸리며 다시 꽃과 같이
난만하여라.
《15》별 밭에 누워
박두진
바람에 쓸려가는 밤하늘 구름 사이
저렇게도 파릇한 별들의 뿌림이여
누워서 반듯이 바라보는
내 바로 가슴 내 바로 심장 바로 눈동자에 맞닿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
그 삼빡이는 물기어림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려 하지만
무심하게 혼자 누워 바라만 보려 하지만
오래오래 잊어버렸던 어린적의 옛날
소년쩍 그 먼 별들의 되살아옴이여
가만히 누워서 바라보고 있으면
글썽거려 가슴에 와 솟구치는 시름
외로움일지 서러움일지 분간없는 시름
죽음일지 이별일지 알 수 없는 시름
쓸쓸함도 몸부림도 흐느낌도 채 아닌
가장 안의 다시 솟는 가슴 맑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울고 싶음이어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소리지름이어
《16》사랑이 나무로 자라
박두진
바다로 돌담을 넘어
장미가 절망한다
이대로 밤이 열리면
떠내려가야 할 끝
그 먼 마지막 언덕에 닿으면
꽃 등을 하나 켜마.
밤별이 총총히 내려
쉬다 날아간
풀 향기 짙게 서린
바닷가 언덕
금빛 그 아침의 노래에
하늘로 귀 쭝기는
자유의 전설이 주렁져 열린 나무 아래
앉아 쉬거라.
사랑이 죽음을
죽음이 사랑을 잠재우는
얼굴은 꿈, 심장은 노래
영혼은 기도록 가득 찬
또 하나 바벨탑을 우리는 쌓자.
파도가 절벽을 향해
깃발로 손짓하고
사랑이 나무로 자라
별마다 은빛 노래를 달 때
그 커다란 나무에 올라
비로소 장미로 지붕 덮는
다시는 우리 무너지지 않을
눈부신 집을 짓자.
《17》山脈(산맥)을 간다
박두진
얼룽진 산맥들은 짐승들의 등빠디
피를 품듯 치달리어 산등성을 가자.
흐트러진 머리칼은 바람으로 다스리자.
푸른 빛 잇빨로는 아침 해를 물자.
咆哮(포효)는 절규. 포효로는 불을 뿜어,
죽어 잠든 골짝마다 불을 지르자.
가슴을 살이 와서 꽂힐지라도
독을 바른 살이 와서 꽂힐지라도,
가슴에는 자라나는 애기해가하나
나긋나긋 새로 크는 애기해가 한 덩이.
미친듯 밀려 오는 먼 바다의
울부짖는 파도들에 귀를 씻으며,
떨어지는 해를 위해 한 번은 울자.
다시 솟을 해를 위해 한 번은 울자.
《18》새벽바람에
박두진
칼날 선 서릿발 짙 푸른 새벽,
상기도 휘감긴 어둠은 있어,
하늘을 보며, 별들을 보며,
내여젓는 내여젓는 백화(白樺)의 손길.
저 마다 몸에 지닌 아픈 상처에,
헐덕이는 헐덕이는 산길은 멀어
봉우리엘 올라서면 바다가 보히리라.
찬란히 트이는 아침이사 오리라.
가시밭 돌사닥 찔리는 길에,
골마다 울어예는 굶주린 짐승
서로 잡은 따사한 손이 갈려도,
벗이여! 우린 서로 불르며 가자.
서로 갈려올라 가도 봉우린 하나.
피 흘린 자욱마단 꽃이 피리라.
《19》서한체
박두진
노래해다오. 다시는 부르지 않을 노래로 노래해다오.
단 한번만 부르고 싶은 노래로 노래해다오.
저 밤하늘 높디높은 별들보다 더 아득하게
햇덩어리 펄펄 끓는 햇덩어리보다 더 뜨겁게,
일어서고 주저앉고 뒤집히고 기어오르고
밀고 가고 밀고 오는 바다
파도보다도 더 설레게 노래해다오.
노래해다오. 꽃잎보다 바람결보다 빛살보다 더 가볍게,
이슬방울 눈물방울 수정알보다 더 맑디맑게 노래해다오.
너와 나의 넋과 넋, 살과 살의 하나됨보다 더 울렁거리게,
그렇게보다 더 황홀하게 노래해다오
환희 절정 오싹하게 노래해다오.
영원 영원의 모두, 끝과 시작의 모두, 절정 거기 절정의 절정을 노래해다오.
바닥의 바닥 심연의 심연을 노래해다오.
《20》소
박두진
푸른 하늘인들 한 줄기 선혈을 안 흘리랴?
의지의 두 뿔이 분노로 치받을 때
태산인들 딩굴으며 무너지지 않으랴?
전신이 노도처럼 맞받아 부딪칠 때
오늘 한 가락 고삐에 나를 맡겨
어린 소녀의 이끌음에도 순순히 따라 감은
불거진 멍에에 山 같은 짐을 끌고
수렁에 철벅거려 종일을 논 갈음은
네굽 놓아 내달리는 벌판의 자유
찌르는 뿔의 승리를 모르는 바 아니라
오늘은 오오래인 오늘은 다만 참음
언젠가는 다시 벅찰 크낙한 날을 위하여
눈 스르르 감고 새김질하는 꿈 한나절
먼 조상 포효하던 산악을 명상하고
뚜벅뚜벅 한 걸음씩 절렁대는 요령에
대지 먼 외줄기길 千里를 잰다.
《21》시인 공화국
박두진
가을 하늘 트이듯
그곳에도 저렇게
얼마든지 짙푸르게 하늘이 높아 있고
따사롭고 싱그러이
소리내어 사락사락 햇볕이 쏟아지고
능금들이 자꾸 익고
꽃목들 흔들리고
벌이 와서 작업하고
바람결 슬슬 슬슬 금빛 바람 와서 불면
우리들이 이룩하는 시의 공화국
우리들의 영토는 어디라도 좋다.
우리들의 하늘을 우리들의 하늘로
스스로의 하늘을 스스로가 이게 하면
진실로 그것
눈부시게 찬란한 시인의 나라
우리들의 영토는 어디에라도 좋다.
새푸르고 싱싱한 그 바다 ----
지즐대는 파도소리 파도로써 돌리운
먼 또는 가까운
알맞은 어디쯤의 시인들의 나라
공화국의 시민들은 시인들이다.
아 시인들의 마음은 시인들이 안다.
진실로
오늘도 또 내일도 어제도
시인들의 마음은 시인들만이 안다.
가난하고 수줍은
수정처럼 고독한
갈대처럼 무력한
어쩌면
아무래도 이 세상엔 잘못 온 것 같은
외따로운 학처럼 외따로운 사슴처럼
시인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운다.
아 시인들의 마음은 시인들만이 안다.
실로
사자처럼 방만하고 양처럼 겸허한
커다란 걸 마음하며 적은 것에 주저하고
이글이글
분화처럼 끓으면서 호수처럼 잠잠한
서슬이 시퍼렇게 서리어린 비수,
비수처럼 차면서도 꽃잎처럼 보드라운
우뢰를 간직하며 풀잎처럼 때로 떠는,
시인은 그러면서
오롯하고 당당한
미를 잡은 사제처럼 미의 구도자,
사랑과 아름다움 자유와 평화와의
영원한 성취에의 타오르는 갈모자,
그것들을 위해서 눈물로 흐느끼는
그것들을 위해서 피와 땀을 짜내는
또 그것들을 위해서
투쟁하고 패배하고 추방되어 가는
아 현실 일체의 구속에서
날아나며 날아나며 자유하고자 하는
시인은
영원한 한 부족의 아나키스트들이다.
그
가난하나 다정하고
외로우나 자랑에 찬
시인들이 모인 나란 시의 공화국
아 달처럼 동그란
공화국의 시인들은 녹색 모잘 쓰자.
초록빛에 빨간 꼭지
시인들이 모여 쓰는 시인들의 모자에는
새털처럼 아름다운 빨간 꼭질 달자.
그리고 , 또
공화국의 깃발은 하늘색을 하자.
얼마든지 휘날리면 하늘이 와 펄럭이는
공화국의 깃발은 하늘색을 하자.
그렇다 비둘기,.......
너도 나도 가슴에선 하얀 비둘기
푸륵 푸륵 가슴에선 비둘기를 날리자.
꾸륵 , 구 , 구 , 구 , 꾸륵!
너도 나도 어깨 위엔 비둘기를 앉히자.
힘있게 따뜻하게,
어깨들을 겯고 가면 풍겨오는 꽃바람결,
우리들이 부른 노랜 스러지지 않는다.
시인들의 공화국은 아름다운 나라다.
눈물과 외로움과 사랑으로 얽혀진
희생과 기도와 동경으로 갈리어진
시인들의 나라는 따뜻하고 밝다.
시인이자 농부가 농사를 한다.
시인이자 건축가가 건축을 한다.
시인이자 직조공이 직조를 한다.
시인이자 공업가가 공업을 맡고,
시인이자 원정, 시인이자 목축가, 시인이자 어부들이,
고기 잡고 마소 치고, 꽃도 심고, 길도 닦고,
시인이자 음악가, 시인이자 화가들이,
조각가들이,
시인들이 모여 사는 시의 나라 살림을,
무엇이고 서로 맡고 서로 도와 한다.
시인들과 같이 사는,
시인들의 아가씨는 눈이 맑은 아가씨,
시인들의 아가씨도 시인이 된다.
시인들의 손자들도 시인이 된다.
아, 아름답고 부지런한
대대로의 자손들은
공화국의 시민,
시인들의 공화국은 멸망하지 않는다.
눈물과 고독, 쓰라림과 아픔의
시인들의 마음은 시인들이 아는,
아, 시인들의 나라에는 억누름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착취가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도둑질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횡령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증수뢰가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미워함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시기가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위선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배신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아첨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음모가 없다.
아, 시인들의 나라에는 당파싸움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피흘림과 살인,
시인들의 나라에는 학살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강제수용소가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공포가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집없는 아이가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굶주림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헐벗음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거짓말이 없다.
시인들의 나라에는 음란이 없다.
그리하여 아, 절대의 평화, 절대의 평등,
절대의 자유와 절대의 사랑.
사랑으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리고,
사랑으로 이웃을 이웃들을 받드는,
시인들의 나라는 시인들의 비원
오랜 오랜 기다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인, 어쩌면,
이 세상엘 시인들은 잘 못내려 온 것일까?
어디나 이 세상은 시의 나라가 아니다.
아무데도 이 땅위엔 시인들의 나라일 곳이 없다.
눈물과 고독과 쓰라림과 아픔,
사랑과 번민과 기다림과 기도의,
시인들의 마음은 시인들만이 아는,
시인들의 이룩하는 시인 공화국,
이 땅위는 어디나 시인들의 나라이어야 한다
《22》아버지
박두진
철죽 꽃이 필 때면,
철죽 꽃이 화안하게 피어 날 때면,
더욱 못견디게
아버지가 생각난다.
칠순이 넘으셔도 老松처럼 정정하여,
철죽꽃이 피는 철에 철죽 꽃을 보시려,
아들을 앞세우고
冠岳山,
서슬진 돌 바위를 올라 가셔서,
철죽 나물 캐어다가
뜰 앞에 심으시고
철죽 꽃이 피는 것을 즐기셨기에,
철죽 나물 캐어 드신
흰 수염 아버지가
어제같이 산탈길을 걸어 내려오시기에,
철죽 꽃이 피는 때면,
철죽 꽃과 아버지가
한꺼번에 어린다.
물에 젖은 둥근 달
달이 솟아오르면,
흰옷을 입으셨던
아버지가 그립다.
달 있는 川邊길을
늦게 돌아오노라면
두진이냐 ?
저만치서 커다랗게 불러 주시던
하얗게 입으셨던 어릴 때의 아버지
四月은 가신 달,
아아, 철죽 꽃도 흰 달도
솟아 있는데,
손수 캐다 심어 놓신
철죽 꽃은 피는데,
어디 가셨나
큰기침을 하시며,
흰옷을 입으시고
어디 가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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